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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다룬 <마녀의 법정>이 마냥 사이다일 수 없었던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7. 10. 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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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어요."


승소(勝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종이었다. 그래서 '마녀'라는 별명도 얻었다. 피의자들의 죄를 밝히는 것만 궁리했고,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형량을 줄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처입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심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냐고 따져묻는 동료 검사에게 "그걸 내가 왜 해야 돼죠? 난 검사지, 변호사가 아니거든요."라고 되받아쳤다. 자신은 절대 피해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아동범죄전담부'에 들어가게 된 마이듬 검사(정려원)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용의자는 전 여자친구들의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상균(강상원)이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김상균에겐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사를 받던 중에 수사 검사인 마이듬을 성희롱하고, 급기야 마 검사의 집안에 침입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영상을 촬영한다. 그리고 "뒤태 죽이던데, 혼자 보기엔 아깝더라"라고 속삭이며 도발하기까지 했다. 


졸지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마 검사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재판의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찍힌 영상을 증거로 제출해야 했지만, 그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증거라고는 하나 자신의 알몸이 촬영된 영상이 아닌가. 공판을 맡은 여진욱 검사(윤현민)는 "선택해라. 가해자에 벌을 줄 것이냐, 아니면 피해자로 평생 도망다닐 것이냐"며 마 검사를 설득한다. 결국 마 검사는 고심 끝에 영상을 제출하고, 김상균은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다. 



자, 드라마에서 잠시 빠져나와 보자. 일부 언론들은 '몰카'라는 지극히 가벼운 용어를 남발하면서, <마녀의 법정>가 그린 승소를 '사이다'라 부르며 통쾌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무죄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던 상황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된 부분은 반길 만하다. 하지만 '가해자 처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외면하는 이런 관점들은 <마녀의 법정>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놓치다 못해 왜곡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이 승리를 단순히 '사이다'라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지나치게 쉽게 가벼운 접근이다. 


한번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됐던 마 검사는 자신의 집 안에서도 마음껏 행동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탈의도 하지 못하고 샤워도 꺼려진다. '동그란 물건'만 보면 카메라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제 안전한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어진 것이다. 찜찜한 느낌과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 진득거리는 공포는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가해자는 몇 년의 징역을 받는 것으로 죗값을 치르겠지만, 피해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끝없이 고통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사이다'와 '통쾌함'을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마녀의 법정>은 현실 속의 디지털 성범죄를 제법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또, 누구나(대부분 여성이겠지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심지어 그가 '검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세상에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 없다는 거 이제 좀 아시겠죠? 마 검사님도 원치 않게 피해자가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뭘 잘못해서 피해자가 된 게 아니"라는 여 검사의 대사는 <마녀의 법정>이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또렷한 메시지였다.


'피해자'를 강조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현실적으로 조명한 <마녀의 법정>은 '고마운 문제작'이 분명하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가령, 아무리 '검사'라는 신분이라 하더라도, 마 검사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아닌가. 그런데 여 검사와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은 마 검사를 압박하며 영상을 내놓으라 윽박지른다. 그러지 않으면 '증거 인멸'로 입건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강조하며 마 검사를 혼냈던 그들이 아니던가. 



최근 디지털 성범죄가 더욱 교묘해지고, 피해자의 수치심 등의 이유로 증거를 입증하는 게 어렵다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한 강조였던 걸까. 그렇다고 해도 피해자인 마 검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 검사는 피해자 신분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했다. 결국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마 검사의 지론을 입증한 꼴이 아니겠는가. 이 간극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느라 생긴 틈이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마녀의 법정>이 강조하고 있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는 옳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선 중언부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장님은 몰래카메라 피해 경험이 있으신가요?" 진선미 의원의 질문에 이철성 경찰청장이 '읏으면서'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는 사실상 여성에 국한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미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메시지를 던질 거라면, 오히려 '가해자'인 '남성'을 향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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