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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쏙 뺐던 '진주댁' 염혜란, 코믹과 정극 다 되는 다재다능한 배우

너의길을가라 2017. 10. 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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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나옥분(나문희) 할머니가 미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는 장면일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민재(이제훈)가 도착하고, 옥분 할머니는 "I Can Speak."라 외치며 단상에 올라 끔찍했던 위안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본을 향해 "아이 엠 쏘리.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라고 절규한다. 그 장면은 수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한편, <아이 캔 스피크>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자연스레 '진주댁(염혜란)'을 떠올리게 된다. 가장 위안이 됐던 장면을 고르래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꽁꽁 숨긴 채 살아왔던 옥분 할머니는 용기를 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옥분 할머니는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삶의 터전이었던 시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시장 상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것만 생각하면 눈앞에 캄캄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장으로 들어섰건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게만 느껴진다. 심지어 오랜 친구였던 진주댁마저 쌀쌀맞게 돌아선다. 아, 다시 혼자란 말인가. 옥분 할머니의 얼굴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 진주댁의 '외면'은 사실 '삐침'이었는데, '왜 나를 피하냐'고 따져묻는 옥분 할머니에게 진주댁은 서운함을 토로한다. 긴 세월동안 그 아픔을 홀로 안고 살아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냐며 눈물을 쏟으면서 옥분 할머니를 꼭 끌어 안는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 진한 감동을 주는 동시에 우리들에게 깊은 위로을 준다. 어쩌면 진주댁이야말로 우리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염혜란은 진주댁이라는 인물을 100% 완벽하게 그려냈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완전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엘엔컴퍼니


염혜란은 극중에서 부산 사투리를 차지게 쓰면서 정말이지 맛깔스럽게 캐릭터를 표현했다. 부산 출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전남 여수 출신이라고 한다. 생각을 해보니, 지난 8월 종영했던 KBS2 <7일의 왕비>에서 채경(박민영)의 유모 역을 맡았던 그는 거창 사투리를 썼었다. 막힘없이 유려했던 사투리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매번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토박이 수준의 사투리 구사력도 놀랄 일이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씬스틸러로서 면모를 발휘하는 그의 가치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7일의 왕비>에선 비운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익살스러운 표정과 에너지 넘치는 제스처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무궁무진한 표정 연기는 극의 재미를 더했고, 결코 넘치는 법이 없었다. 탄탄한 연기력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tvN <도깨비>에서 엄혜란을 찾아보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은탁이 이모?'라고 반응했을 텐데, 그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덕분이리라. 염혜란은 지은탁(김고은)를 괴롭히는 얄미운 이모 지연숙 역할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며 밉상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나문희와 염혜란의 투샷이 낯설지가 않다. 기억을 가만히 더듬었더니, 두 배우를 '함께' 봤던 기억이 있다. 바로 tvN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정아(나문희)와 순영(염혜란), 모녀로 만났던 두 배우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절절히 그려냈었다. 결혼을 하고 수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정아는 순영을 입양해 길렀다. 착하디 착했던 순영은 결혼 후 가정폭력 피해자로 살아왔지만,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숨긴 채 지내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아가 순영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염혜란은 코믹스러운 연기뿐만 아니라 정극 연기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갖췄다. 그와 같은 연기력의 바탕은 2000년부터 연극 무대에서 쌓아온 단단한 내공일 것이다. 이후 <살인의 추억>(2003), <밀양>(2007), <오직 그대만>(2011), <조선마술사>(2015) 등 여러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조금씩 얼굴을 알렸던 염혜란은 2016년 이후 TV 쪽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씬스틸러로 자리매김 중이다. 그리고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명실상부 '조연'으로 자리를 잡으며, 자신만의 영역과 보폭을 넓히고 있다. 


ⓒ엘엔컴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더 많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그들이 더욱 존중받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그리 된다면 염혜란은 분명 그 시대의 주축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신원호 PD가 연출을 맡은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출연을 확정짓고 촬영에 돌입했다고 하니, 앞으로 염혜란이라는 배우의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 작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포인트를 잡아내 영감을 불어넣는 배우, 염혜란의 찬란히 빛날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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