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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의도 없었다는 <코빅>과 장동민, 개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너의길을가라 2016. 4. 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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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어린이 A : 이것 봐라, 우리 아빠가 또봇 사줬다, 너네는 이런 거 없지?


이를 듣고 있던 어린이 B, C는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다. 


어린이 B : 야, 오늘 며칠이냐…. 25일이요, 25일이면 자축인묘…. 잉,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어린이 C : 어허 듣겠다. 쟤 때문에 부모 갈라선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애 들어요.


어린이 A가 화난 기색을 보이자,


어린이 B : 에헤이, 부러워서 그랴. 너는 봐라. 얼마나 좋냐. 네 생일 때 선물을 '양짝'으로 받잖아. 이게 재테크여, 재테크.


장면 2.


이어서 등장한 할머니는가 어린이 A에게,


할머니 : 근데 너는 저기 엄마 집으로 가냐, 아빠 집으로 가냐.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른 여자랑 두 집 살림 차렸다고 소문이 아주 다 돌고 있어.

어린이 A : 할머니한테서는 이상한 냄새 나거든요?

할머니 : 지 애비 닮아서 여자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너 동생 생겼단다, 서울에서.


장면 3.


할머니 : 니 애미가 이걸 버렸다. 이걸 왜 버렸겠냐

어린이 C : 오래되고 찌그러졌으니 버렸겠쥬

할머니 : 오래되고 찌그러졌으니 버렸겠지. 그 다음은 누구겠냐?


마음이 상한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어린이 B가 할머니를 데리고 건물 뒤로 가고,


할머니 : 아이고! 우리 동민이 장손 고추, 한 번 따먹어보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위의 세 장면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문제의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잘못 됐다'라고 하는 기본적인 공감대는 이뤄졌을 것이라 믿는다. 간단히 짚어보자면, 위의 장면들에는 이혼 가정 자녀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조롱과 모욕(장면 1), 그리고 노인 비하(장면 2)와 아동 성추행 미화(장면 3) 등이 담겨 있다. 


참고로 위의 세 장면은 지난 3일 방송된 tvN <코미디 빅리그>의 새 코너인 '충청도의 힘'의 부분인데, 과거 <팻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개 같은 X", "창녀" 등 여성 혐오 발언과 상품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를 '오줌 먹는 사람들 동호회 창시자'로 표현하는 등 무개념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던 장동민이 출연한 개그 무대였다.



이혼 가정의 아동으로 설정된 어린이 A는 개그맨 양배차이고, 그에게 조롱과 모욕을 퍼붓는 어린이 B는 장동민이다. 또, 어린이 C는 조현민, 할머니는 황제성이다. 혹시 '장동민'에 대한 '편견'이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장면'들을 먼저 소개하고 난 후 그 장면들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이 장면들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장면들을 연기(를 넘어 대본을 짜는 데도 어느정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한 당사자가 '장동민'이기에 논란의 진폭이 커지고, 비난의 수위가 한층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동민에겐 '과오(過誤)'가 있기 때문에 그의 복귀작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사실을 장동민은 몰랐을까? 팟캐스트 사건이 발생한 후 "치기 어린 마음에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누군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웃길 수만 있다면 어떤 말이든 괜찮다고 생각했던 제 잘못이 크다"며 반성했던 걸 까마득히 잊었던 것일까? "정말 부끄럽지만 한번만 지켜봐주신다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망각했던 것일까?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그 '누구'에 '장동민'이 배제될 이유는 전혀 없다. 일전에 여성 혐오 발언으로 장동민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굳이 비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 때문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진정한 의미의) '공인'이 아닌 연예인에게 과거의 발언의 책임을 소급하는 건 가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그래서 그와 같은 '나쁨'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잘못(그것도 질 나쁜)이 '반복'된다면 좀 다른 문제가 된다. tvN 측은 "해당 코너에 대한 논란은 명백히 제작진의 잘못"이라 밝히면서 "출연자 장동민은 잘못이 없다. 다만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조치하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라고 덧붙였다. 장동민을 감싸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과연 장동민은 아무런 그럴까? 이 코너의 대본을 짜는 데 장동민의 지분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장동민 정도의 이름값을 가지고 있는 개그맨이라면, 그리고 그를 주축으로 짜인 개그를 하는 상황이라면, 그 개그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어떤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연기'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장동민 측은 "대본 대로 한 것이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역시 연기자의 잘못이다. 죄송하다. 성추행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해 없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 측이 내놓는 일관된 반응이자 대응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작정하고 '그럴 의도'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속내를 다 알 순 없지만, '충청도의 힘' 코너에 참여한 제작진과 장동민도 그랬을 것이라 치자. 문제는 그럴 의도도 없이, 비윤리적 사고와 언어를 마구 저질러 버리는 저들의 머릿 속이다. 거기에 동조해 깔깔 거리며 웃는 '우리들'은 또 어떠한가.



개그맨(혹은 개그우먼)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매우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무조건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 웃음은 전혀 반갑지 않다.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타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들을 미화시키는 건 '웃음'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퇴색시키는 짓이다.


'코미디 빅리그' 측과 장동민을 비롯한 '충청도의 힘'에 출연했던 개그맨(우먼)들은 시청자들에게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내놓길 바란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면피용 발언으로 어물쩡 넘어가는 우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이와 같은 반성은 기존의 개그 프로그램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외모나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바탕으로 '손쉽게' 사람들을 웃기려 하지 않았던가?


'개그'도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한 단계 성숙해야만 한다.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아니라 건강한 웃음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송사 측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극적인 소재와 방식으로 시청률만 잡으면 된다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곤란해도 한참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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