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권위에 대한 복종, 밀그램의 실험과 세월호 참사

너의길을가라 2014. 4. 2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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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58분 


세월호 :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오전 9시 


해상교통관제센터 : 퇴선 준비를 하라






사건 발생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는 '퇴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세월호 승객들은 이 지시를 전달받지 못했다. 방송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9시 15분)'라는 멘트만 반복됐다. 오전 9시 28분에도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려 한 시간 뒤, 10시 15분에 이르러서야 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지시였다. 생사를 가르는 급박한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잘못된 지시와 그 지시를 굳게 믿고 있었던 대다수의 승객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잠겨버렸다. 




수색 작업이 이어지면서 사망자들이 발견됐다. 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만약 사망자로 발견된 이들이 선실 안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피신했다면 어땠을까? 배를 벗어나 바다로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 구명조끼에 의존해 얼마 간의 시간을 버티고, 구조선에 의해 구조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선실 내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생존 확률이 훨씬 높지 않았을까?


흔히 사람들은 '아이들이 너무 착했다. 선장 말을 고분고분 따르다가 변을 당했다'고 말한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1961년 예일대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 박사는 이른바 '권위에 대한 복종'에 관한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문제가 주어졌고, 그들이 틀린 답을 할 때마다 전치충격 장치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주게끔 했다. 물론 전치충격 장치는 가짜였고, 그 장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훈련된 연기자였다. 어쨌거나 실험 참가자들은 이 실험에서 굉장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연기자들이 내지르는 고통에 가득찬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하라"는 실험자의 명령에 '복종'했다. 


지난 2008년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 제리 버거 박사는 스탠리 밀그램 박사의 실험을 '재현'했다. 결과가 달라졌을까? 애석하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거 박사는 "기자가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어도 참가자의 70%는 계속 실험자들의 명령에 따라 전기충격을 주려 했다. 놀랍고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재확인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험에 참여한 대상은 21세부터 80세까지 평범한 성인 남녀였다. 아이들이 아니었다. 성별의 문제도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선장의 지시에 대한 복종은 위의 실험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승객의 대부분은 선장의 지시를 굳게 믿었다. 그는 베테랑이자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장의 지시는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지시에 대해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여객선은 그 완전히 침몰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선박에 머물러 있는게 안전했죠. 그런데 이거는 옆으로 뒤집어져 버리니까 뒤집어진 상태에서 객실에 있으니까 탈출구가 봉쇄되어 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는 권위에 대한 복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권위가 만들어내는 참혹한 결과도 잘 보여준다. 배가 기울고, 적재된 화물이 내는 요란한 굉음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만들어낸 아비규환 속에서 권위자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의심해봐야 한다. 전문가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확인됐듯이 성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사후적인 판단은 쉽다. 하지만 그 순간에 지금과 같이 많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순간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건 만만치 않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이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사전 교육일 것이다. 알아야 또 당하지 않는다. 알려면 더욱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수많은 생명을 잃으면서, 그 뼈아픈 고통과 슬픔을 통해 배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이리라. 


모여서 떠들어야 한다.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게 더 안전하대."

"배가 가라앉는데 이렇게 있으면 더 위험한 거 아냐? 밖으로 나가면 배가 가라앉아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움직여서 더 위험해지면 어떡해?"

"일단 문이라도 한 번 열어보자. 상황이 어떤지 파악이나 해봐야지."





이런 식으로 머리와 머리를 맞댔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우리는 모여야 하고, '빌어먹을' 권위에 바득바득 대들어야 한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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