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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의연했던<하숙집 딸들>, 나영석 PD였다면 어땠을까?

너의길을가라 2017. 2. 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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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주인' 이미숙을 필두로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까지 KBS2 <하숙집 딸들>은 '여배우'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여기에 '굳이 예능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이수근과 예능 대세로 등극한 박수홍을 투입했다. '여성 예능'이라는 타이틀로 론칭하긴 했지만, 사실상 예능 초짜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긴 불안했던 모양이다. 첫 방송 시청률은 5.4%, 정희섭 PD는 "화요일 심야 시간대는 KBS가 워낙 고전하던 시간대임을 감안했을 때 만족스럽지만,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할 것"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딸 예쁘기로 소문난 하숙집에 매주 남자 게스트가 방문해 토크와 리얼리티, 버라이어티를 오가며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예능 프로그램"


남초 현상이 압도적인 예능 판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예능을 편성했다는 것 자체는 반갑고 또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기대했다.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어떤 '조합'들이 펼쳐질까, 어떤 '이야기'들이 나열될까. 첫 방송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매우 실망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급해 보였다. 여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흡은 가빠졌고, 스텝은 꼬였다. 저들은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가?


다짜고짜 '하숙집'을 운영한다는데, 그 이유가 불명확하다. 여배우들의 '민낯'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맨얼굴이라는 게 단순히 '망가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너무 1차원적이다. 그리고 왜 남자 게스트를 초대해야 하는 걸까? 이수근과 박수홍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들의 투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이수근과 박수홍의 목소리가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사실상 이수근이 흐름을 '리드'하는 걸 보면 그들의 투입은 제작진의 '쉬운'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획 의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콘셉트가 또렷하지 않다보니 의미도 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첫 회는 산으로 가버렸다. 난데없이(1) 이다해의 고급스러운 집을 공개해 구석구석 소개한다. 한참을 걸어야 하는 길다란 복도와 운동장 같은 거실, 명품으로 즐비한 그의 방을 꼭 보여줬어야 했을까? 제작진은 "상견례는 식당에서 하려고 했는데 이다해 씨 제외하고 다들 모르는 사이라서 편한 분위기를 위해 집에서 촬영을 해보자 했"다고 설명했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애초에 '차례차례' 등장하도록 '콜'을 줬으면서 난데없이(2) 몰래 카메라를 하는 구태의연함이라니. '무서운 선배' 이미숙은 자신의 이미지를 또 다시 반복하며 윤소이를 속였지만, 신선하지도 않았고 재기발랄함도 느껴지지 않는 식상한 장면이었다. 차라리 '상견례'라는 형식적인 만남을 없애는 건 어땠을까? 아니면 순번을 정해 차례차례 등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좀더 자유로운 롤을 부여하고, 출연자들을 마음껏 놀게 했으면 어땠을까? 그러지 못하다보니 난데없이(3) 게임이 이어지고, 여배우들은 억지로 망가지고야 만다.




<하숙집 딸들>은 여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하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는 걸 강조한다. 한번이야 곱게 들어주겠지만, 그 언어가 반복되다보니 이렇게 들린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야. 근데, 당신들을 위해 기꺼이 망가져 주겠어. 웃지 않고 못 배기겠지?' 과연 그 '망가짐'을 누가 원했단 말인가? 게다가 벌칙으로 '빨간 내복'을 입는 그 저차원적인 망가짐을 말이다. 여배우들이 '망가지면' 시청자들은 즐거워할 것이라는 제작진의 속내가 참으로 얄팍하다.


"예능 초보이다 보니까 다들 게임할 때 당황스러워하더라"라며 "'왜 해야 되냐', '안하면 안 되냐'라고 질문하니까 게임하는 데 30분씩 걸린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명분이 없으면 안 하니까. 그런 거 설득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서 카메라 옆에서 부탁한다는 표정, 빨리하자는 표정 짓고 있는다" (정학섭 PD) <OSEN>, [Oh!쎈 톡] '하숙집딸들' PD "시청률? 만족하지만 더 노력해야죠"


지난 2009년 개봉했던 영화 <여배우들>은  개성이 또렷한 여배우들의 '만남'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굳이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그들은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빛났다. 그런데 <하숙집 딸들>은 '예능은 이런 것'이라는 기존의 공식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데 바쁘다. 이수근과 박수홍은 철저히 제작진의 입장을 대변해 여배우들을 망가뜨리는 데 앞장 선다. 여배우들은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해?"라고 반문하지만, 제작진은 '그게 예능이니까'라는 동어반복에 그친다. 



이는 최근 나영석이 구현한 예능의 새로운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박을 터뜨린 tvN <삼시세끼> 시리즈나 최근에 방송을 시작한 tvN <신혼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나 PD는 출연자들을 그냥 놓아둔다. '공간'을 마련해두고, 그 안에서 그저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관찰한다. 마치 그들의 배경이 되는 자연 환경이나 동물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선은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한데, 그래서 피사체가 되는 대상을 더욱 진솔하게 전달한다. tvN <꽃보다 누나>를 떠올려보라.


여배우의 집을 공개하지 않아도, 게임을 통해 망가짐을 연출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굳이 게스트를 출연시키지 않아도 괜찮았을 테고, 남자 예능인을 배치해 여배우들을 '조련'하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정말 제대로 된 '여성 예능'을 만들 요량이었다면, '여배우가 이렇게 망가지면 시청자들이 즐거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나 PD라면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사람'에 집중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저 사람 참 좋다'라고 느끼도록 하는 데 포인트를 뒀을 것이다.


이제야 <하숙집 딸들>이 빠진 늪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제목'에서부터 이 프로그램의 '한계'가 엿보이지 않는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예능에 출연했다지만, 정작 그들은 '딸'이라는 '역할'에 묶인 채 '망가짐'을 연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존재'가 아니라 '역할'이 그들을 압도하는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예능의 구태의연한 공식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하숙집 딸들>은 발전 없는 여성 예능의 표본처럼 기록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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