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묻는 입

광복절 VS 건국절, 무엇을 위한 누구의 싸움인가?

너의길을가라 2015. 8. 2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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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IV-12권 -


A의 할아버지 춘산명세(春山明世)는 유교를 바탕으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부활시킨 경학원(성균관의 나중 이름)의 사성(司成 · 관리)을 지냈고, 친일 유학자들을 동원해 만든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 상임이사를 역임(1939년)했다.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발기인으로 참여했는데, 조선의 젊은이들을 향해 태평양 전쟁에 나가서 일왕(日王)을 위해 싸우다 죽으라고 강변했다.


1942년에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찬양하는 한시와 글을 발표했고, 이러한 주장을 전달하는 강연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펼쳤다. 이와 같은 전력(前歷) 때문에 A의 할아버지는 2009년 발표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됐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별다른 이견이 제기되기 어려울 만큼 분명한 친일파다.



B의 아버지 금전용주(金田龍周)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 활약했다. 또,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1943년 10월 3일자 2면 기사에 따르면, 그는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선(全鮮)공직자대회에서 "징병제 실시에 보답하는 길은 일본 정신문화의 앙양으로 각 면에 신사(神社)와 신사(神祠)를 건립하여 경신숭조 보은감사의 참뜻을 유감없이 발휘" 하도록 하여야 하며 "미영 격멸에 돌진할 것을 촉진"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징병제 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 선양 전선공직자대회 기록>면,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다. B<레> 다.



- 해촌 김용주 -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실명을 공개하도록 하자. A는 이인호 KBS 이사장이고, 그의 할아버지는 이명세(1893~1972년)다. B고, 는 해촌(海村) 김용주(1905~1985)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명세와 김용주는 구체적으로 명확히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다. 쉬운 말로 '친일파(親日派)'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암살> 속 염석천의 말처럼 '좋은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후손을 잘 뒀기 때문일까? 이들은 '친일파'에서 '애국자'로 둔갑되고 있고 있다. 이력(履歷) 세탁이라고나 할까? 이인호 이사장은 조부의 친일 행각에 대해 "당시 일제가 요구하는 협력의 글을 쓰실 수밖에 없는 위치에 계셨지만 본인 목표는 서양 사조에 맞서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자는 데 있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한편, 서동훈(칼럼리스트>은 <경북매일>에 '해촌 김용주'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그의 친일 행각은 쏙 빼버린 채 "조선총독부를 비난하다가 '포항지역 총살 대상 1호'로 지목"됐고, "해방후 해촌은 상당한 땅을 주민들에 나눠주었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면서 "김무성 대표가 해촌의 아들이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했"다며 노골적인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까지 정리를 해놓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첫 구절)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마치 커밍아웃처러 들리는 이 지난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념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의 축사 그 첫 구절이다. 광복 70주년에 굳이 건국 67주년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는 용어로 바뀐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고자 하는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다.


공교롭게도 이인호 이사장과 김무성 대표는 '건국절 논란(건국론)'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은 <중앙일보>에 기고한 '광복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다'이라는 글에서 "광복이 자주독립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오는 8월 15일은 ‘광복 70년’이 아니라 ‘해방 70년, 대한민국 건국 67년’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임을 알고 기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14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인 이화장을 찾은 자리에서 "역사는 공(功)과 과(過)가 있는데 그동안 과를 너무 크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공만 봐야 한다"며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언급을 했다. 그동안 자신이 강조했던 '이승만 국부론'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이승만을 국부로 내세우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고자 하는 '후손'들의 공통적인 움직임에 혹시 다른 의도가 개입된 건 아닐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1948.7.17. 제정된 헌법 '전문')


헌법 전문에는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다. 박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과 뉴라이트 진영은 1948년을 '건국한 해'로 기억하고자 하지만, 헌법 전문에 따르면 1948년은 '재건한 해'인 것이다. 이처럼 반(反)헌법적인 해석을 계속적으로 시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이승만과 해방 이후 애국자로 둔갑한 변절자들이다. 그리고 김구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 독립, 다시 말해 남한 단독 독립에 반대했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인호 이사장이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하는 건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까? 광복을 기준으로 하면, '친일 VS 독립운동'이라는 프레임이 설정되지만, '건국'을 기점으로 하면 좌익과 우익의 구도가 형성된다. 건국절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혀왔던 '친일파'라는 굴레를 떨쳐내면서 '애국자'로 변신할 수 있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건국절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가만히 잘 살펴보면, 이들이 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미화(美化)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자신들에 대한 면죄부이기도 하고, 자신의 출세(성공이라고 해도 좋다)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만이 유일하고 바람직한 해결책인 걸까?


다. 다. <암살> 속의 염석진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해방이 될 줄 몰랐으니까!" 타협 혹은 포기가 어느 정도는 정당화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광복을 기대하기에는 가혹했고 잔혹했던 시대였으니까.


또, 조상의 친일 행위를 그 다.다만, 그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인정과 사과는 더욱 큰 날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김용주에 대해선 달리 평가할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위에서 언급했던 두 사람의 행보는 매우 아쉽기만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첫돌 1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58명이 상해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www.mpva.go.kr)



면,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응답이 63.9%고, '된 1948년'은 21%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고, 다.


면, 63.9%도 순식간에 붕괴될지 모를 일이다. <암살>을 소개하면서 '기억'의 힘을 강조한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라고 읊조리는 김원봉, "우리 잊으면 안돼!"라며 덤덤히 돌아서는 영감(오달수),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며 결의를 다지는 안옥윤. 자, 우리의 대답은 무엇일까? 광복절과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대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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