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쉽게 만들어진 영화 <시간이탈자>에 대한 아쉬움과 쓴소리

너의길을가라 2016. 4. 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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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스릴러 

국가 : 대한민국 

감독 : 곽재용

제작/배급 : CJ엔터테인먼트

런닝타임 : 107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줄거리 : 1983년 1월 1일, 고등학교 교사 지환(조정석)은 같은 학교 동료이자 연인인 윤정(임수정)에게 청혼을 하던 중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의식을 잃는다. 2015년 1월 1일, 강력계 형사 건우(이진욱) 역시 뒤쫓던 범인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30여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병원으로 실려간 지환과 건우는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살아나게 되고,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꿈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보기 시작한다…



<시간이탈자>는 '감성추적 스릴러'라는 혼합적인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어찌됐든 '타임워프(time warp, 시간왜곡)'라는 흔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영화가 분명하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터라 괜시리 그 장르를 취하고 있는 영화에 조금 더 민감해지곤 하는데, <시간이탈자>는 예민함에 제대로 걸려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쉽다. 복잡하게 꼬지 않아서 관객들이 딱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될 수준이다. 쉬운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영화를 쉽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영화의 주된 '뼈대'가 된 '타임워프'에 대해 짚어보자. <시간이탈자>에겐 불행스러운 일이지만, 영화보다도 영화 같았던 드라마 <시그널> 덕분에 '타임워프'를 소재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노력' 정도는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개연성을 확보하고, 치밀함을 덧대는 등 고민의 흔적이 엿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시간이탈자>는 2012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타임워프'는 숱하게 쓰여왔던 소재가 아닌가>) 설령 그것이 <시간이탈자>처럼 '멜로'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타임워프'라는 소재를 '차용'하는 수준에서 활용하고자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그널>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무전기(주인공의 직업이 경찰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적절한 설정이었다)'였다면, <시간이탈자>의 그것은 '꿈'이다. 1983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지환(조정석)과 2015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건우(이진욱)은 '꿈'으로 연결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설정 자체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어차피 '판타지'를 표현하는 데 그것이 '무전기'면 어떻고, '꿈'이면 어떻겠는가.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너무 쉽게 '타임워프'를 낭비한다는 점이다. 가령, 1983년의 지환(조정석)이 어떤 사건을 막아내면 그 결과가 2015년으로 고스란히 연결 돼 '현실'이 변화된다. 2015년의 건우(이진욱)가 어떤 힌트를 '꿈'을 통해 주면, 1983년의 지환이 아무런 장애 없이 100% 꿈을 꾸게 되고 부랴부랴 움직인다.


이 단순하고 평면적인 설정과 구조는 일부 관객들에게는 '쉽게' 다가와 오락적으로 즐길 수 있는 포인터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tvN 드라마 <나인>이나 <시그널>을 통해 눈높이가 향상된 관객들에게는 그저 소꿉장난 정도로 여겨질 것이다. 어쩌면 아무런 고민 없는, 1차원적이고 전형적인 '타임워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굳이 '1983년'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타임워프'의 매력은 특정 시점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시그널>이 많은 지지를 받았던 까닭은 '대도사건',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씁쓸하거나 슬픈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사회적 고민을 나눌  토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곽재용 감독이 1983년에서 뽑아왔던 '사건'은 '미그기 귀순 사건'과 '청소년 축구대표팀의 4강 진출'이었는데,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었던 것일까? 스토리에 있어서도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두 사건을 굳이 '타임워프'를 통해 보여준 까닭을 모르겠다. 이 정도면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은 죽는 순간, 다음 생애의 모습을 보게 된대. 하지만 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그걸 다 잊는 거야. 그런데 난 지금과 똑같이 태어날 거야. 그래서 지환(조정석 분) 씨가 날 알아볼 수 있도록 말이야"


사실 '타임워프'는 부차적인 소재이고, 곽재용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일 것이다. 이는 그의 전작인 <클래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작품에선 '윤회'라는 종교적 세계관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를 위해 여주인공은 1인 2역을 담당한다. <클래식>에서 손예진이 1인 2역을 소화한 것처럼, <시간이탈자>에선 임수정이 1인 2역을 연기한다.


문제는 '윤회'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내기 위해 '감정선'을 배제한 '러브라인' 만들기에 올인하고 있는 빈약한 스토리다. 1983년의 지환과 윤정(임수정)이야 처음부터 '우린 사랑하는 사이'라고 호들갑을 떨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에 몰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단지 복고스러운 영상과 음악을 참아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2015년의 건우(이진욱)와 소은(임수정)의 '사랑'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감정선을 쌓을 기회도 없이 사건은 전개되고, 몇 번 만나지 않은 둘은 이미 죽도록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있다. 그들이 결국 과거의 인물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운명론'에 입각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되면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설명' 아닌 '강요'가 된다. 당연히 관객들은 그 상황들에 '몰입'할 수 없게 된다. 


몇 가지만 더 지적을 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자. 미래로부터 '힌트'를 얻은 지환이 선택한 방법은 '피해자(학생)'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마'을 잡는 것이었다. '살인'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환은 피해자를 대피시키거나 경찰을 부른다거나 그 외의 방법들을 생각하기보다 '숨어서' 기다린다. 이런 문제 해결은 상식적이지 않을 뿐더라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살인마를 잡아야 끝이 나는 것이겠지만, 평범한 한 개인(게다가 지환은 음악 선생님이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치고는 매우 비정상적이다. 또, 체육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 안에 있던 다수의 학생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환의 선택은 소화기 두 개를 들고 체육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살인마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 집착한 나머지 이처럼 무리한 설정을 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후반부에 밝혀진 살인마의 정체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살인마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쯤되면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깡그리 무시한 처사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막판에 살인마가 '좀비화'되는데, 이런 설정은 식상할 뿐더러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살인마'가 죽었는데, '교사 2명이 죽었다'고 신문에 나오는 게 말이 되나?


'스릴러'에 대한 애정 때문에 '쓴소리'를 많이 했다. '그럴듯한(스릴러 영화가 그럴듯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진 <시간이탈자>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다양한 장르적 속성을 한 영화에 담고자 했던 곽재용 감독의 욕심(혹은 도전)이 영화를 다소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몇 가지 설정들이 비상식적이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를 감안하고 본다면, 아니, 아예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본다면, 제법 괜찮은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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