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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을 아우른, 묵직하고 따뜻했던 유재석의 생각

너의길을가라 2016. 12. 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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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김성주, 유재석, 정준하. 2016년 MBC 연예대상, 호명된 대상 후보 4명의 면면은 모두 쟁쟁했다. 예측이 쉽지 않았다. <1박 2일>을 9년 동안 지켜왔던 '보통 사람' 김종민의 수상이 확실시 됐던 KBS 연예대상이나 <미운 우리 새끼>로 존재감을 증명한 '26년 만의 첫 수상' 신동엽의 우세가 두드러졌던 SBS 연예대상과는 달리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만큼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후보들이었고, 대상을 줘도 무방할 만큼의 활약을 펼쳤던 4명이었기 때문이다. 


뮤직 · 토크쇼 부문 최우수상으로 김성주가 결정되고,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에 정준하의 이름이 불리자, 그제야 '대상'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김구라는 '속마음 Talk'에서 "우주의 기운이 유재석 씨한테 가고 있다. 유재석 씨가 받아야 온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며 유재석의 수상을 점췄다. 이에 유재석은 "제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면서 '파블로프의 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작년에 대상을 수상했던 김구라의 2연패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였다. 이미 PD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상은 <무한도전>을 이끌었던 유재석에게로 돌아갔다.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웁니다. 요즘 특히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요즘 꽃길 걷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고, 내년에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많이 놀라웠다. 우선, 유재석이 공식 석상에서 시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도전>에서 산타 복장에도 '노란 리본'을 다는 등 그의 진심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은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그의 '언어'를 통해 그의 '생각'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혹자는 그를 향해 '비겁하다', '소신이 없다', '국민 MC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유재석은 자신의 말이 빛날, 그리고 제대로 전달될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앞서 열렸던 KBS와 SBS 두 번의 연예대상에서 시국 관련 발언들은 생각보다 자제됐던 측면이 있다. 대상 수상자들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시상식으로 전개됐다. PD가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의 박진영의 "새해엔 'K팝스타' 시청률이 떨어져도 좋으니 법조계가 공정하다는 평 듣고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일침과 올해의 프로그램상 교양-다큐 부문을 수상한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의 "어제가 성탄절이었으니 박근혜 대통령님께 한 말씀 드리겠다.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는 위트 있는 발언이 전부였다.



그래서 유재석의 수상 소감은 더욱 반가웠다. 수상 소감에 '개인적인 감사'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올라서는 기회가 생겼다면 대중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훨씬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재석의 수상 소감은 묵직했고, 따뜻했다. '역사'를 언급하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 외치는 그의 생각은 헌법 제1조 2항과 맞닿아 있었다.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한 해동안 각종 사건 · 사고들로 지쳐버린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누군가는 지상파 연예대상에서 이미 12번이나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에게 또 하나의 트로피를 안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재석에게 돌아간 13번째 대상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무너져버린 공영방송 MBC의 가치를 그나마 지켜온 건 <무한도전>이었고, 그 중심에 유재석이 있었음을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재석이라는 단단한 구심점이 없었다면, <무한도전>은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지 모른다. 


십수 년을 '최고'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유재석은 믿기지 않게도 여전히 '겸손'하고, 최우선으로 '시청자'를 생각하는 참된 '방송인'이자 '희극 배우'이고 '리더'이다. 유재석의 수상 소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부분이었다. 정형돈과 노홍철, 길을 언급하며 "시청자 여러분들에 허락하시면 그때 다 같이 방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해주시는 그 날까지 열심히 하겠다"며 낮은 자세로 다짐하는 내용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그렇다. 출발점은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에 있다. 부디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부의 불한당(不汗黨)들이, 정치권에 있는 저 불량한 자들이 유재석의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 출발점은 "국민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이어야 한다. 이를 망각한 정부라면, 이를 망각한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사퇴'하고 내려와야 마땅하다. 유재석의 13번째 대상 수상을 축하하며, 그와 함께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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