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2조 원 예술품 훔쳐 집에 장식해둔 '예술 도둑', 본질적 의문과 마주하다

너의길을가라 2024. 11.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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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네이유 드 리옹, '프랑스 왕녀 마들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작품 중 하나)


전시를 보러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하는 놀이가 있다. ' 전시된 작품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 고를까?'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애당초 경매에 나오지도 않을 작품이지만, 나온다고 한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하지만 나만의 답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에 좀더 집중하게 되고, 내 미적 취향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 '도둑들'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물론 결이 조금 다르긴 하다. 그의 질문은 '하나만 훔칠 수 있다면..'이었다. 역시 '도둑들'의 감독답다고 할까. 접근이 다소 과격하기는 하지만, 그 나름의 참신한 전시 감상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몰입도가 확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실제로 실천(?)한 인물이 있다. 정말 훔쳤다는 얘기다.

마이클 핀클의 '예술 도둑'은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품을 훔친 박물관 절도범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일대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그는 여자친구 앤 캐서린 클레인클라우스와 함께 8년간의 도둑질 기간 동안 200여 회에 걸쳐 300점이 넘는 작품을 훔쳤다. 그 가치는 무려 수십억 달러에 육박한다. 과연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많은 예술품을 훔친 걸까.

만약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예술품을 어둠의 통로를 통해 팔아 넘겼다면, 그러니까 오직 돈을 좇아 예술품 절도에 나선 것이라면 우리가 이처럼 주목할 이유도 없으리라.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은 훔친 수많은 예술품을 어머니의 다락방에 비밀스럽게 보관한 후 감상하며 미적 즐거움을 얻는 데 몰두한다. 다시 말해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훔친 것이다.

그 심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고흐, 모네, 샤갈 등이 그린 원작을 미술관이 아니라 집에 걸어놓고 매일같이 볼 수 있다면 그 쾌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해보면 어떨까. 17세기 북유럽 작품에 특히 매료됐던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단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때문에 미술관에 갇힌 예술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거장의 작품을 곁에 두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첫 절도는 1994년 늦은 봄 어느 주말, 알자스 지방의 탄이라는 마을에서 시작됐다. 16세기 곡물 창고를 개조한 박물관에서 18세기 초 수발총 발견한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아버지가 갖고 있던 어떤 것보다 더 오래되고 훌륭한 총이야. 이걸 가지면 아버지에게 그야말로 빅엿을 먹이는 거지."라고 외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이면에 잠재된 왜곡된 심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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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페텔, '아담과 이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작품 중 하나)

"진정한 수집가라면 누구나 갖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모두 포화점이 없다." (독일 심리 분석학자 베르너 무니스터버거)


성공 이후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절도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수법은 더욱 대범해지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쾌감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앤 캐서린이 망을 보며 위험을 체크하면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경이로운 손재주를 발휘해 예술품을 훔친다. 독자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환상의 호흡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행태에 절레절레 고개를 젓게 된다.

문제는 나도 모르게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절도가 발각될까봐 마음을 졸이게 되는 순간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가 절도에 성공하기를 응원하고, 위기를 맞닥뜨리면 어서 빨리 거기에서 탈출하기를 고대한다. 마이클 핀클의 유려한 문장력 때문이겠으나, 예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동화되었던 탓도 있으리라. 어느 틈엔가 그의 공범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이클 핀클은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를 인터뷰했던 여러 심리 치료사들의 말을 빌려 그를 철저히 분석하고,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변질되는 과정과 파국에 이르는 경로를 담아낸다. 물론 물론 스테판 브라이트비저의 행위는 정당화하기 어려운 범죄가 분명하다. 그를 기소했던 검사 역시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고 일갈했다. 결국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감옥에 갇히고, 인생은 산산조각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에서 시작되는 예술품 절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300점이 넘는 작품들을 훔친 남자와 그를 도운 여자친구 그리고 아들의 절도를 눈감아줬던 어머니. 그리고 이 범죄 행각을 좇는 경찰. 이 기묘한 이야기를 담아낸 저자의 시선. 과연 당신은 어떤 눈으로, 어떤 생각으로 '예술 도둑'을 읽게 될까. 각자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 경이로운 절도 행각을 따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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