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9년 만에 만난 옛 친구<제이슨 본>,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너의길을가라 2016. 7. 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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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시리즈


<본 아이덴티티>(2002), 더그 라이만 + 맷 데이먼

<본 슈프리머시>(2004), 폴 그린그래스 + 맷 데이먼 

<본 얼티메이텀>(2007), 폴 그린그래스 + 맷 데이먼

<본 레거시>(2012), 토니 길로이 + 제레미 레너

<제이슨 본>(2016), 폴 그린그래스 + 맷 데이먼


9년 만에 돌아왔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실제로 '본' 시리즈의 3편인 <본 얼티메이텀> 이후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하차했고, 번외편이라고 할 수 있는 4편은 토니 길로이 감독과 제레미 레너가 호흡을 맞춰 기존의 '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돼버렸다. 그래서 재회(再會)는 더욱 감격적이다. 그래, 이게 바로 '본' 시리즈야!


놀랍게도 이 친구는 변한 게 별로 없다. 첩보 액션 영화의 클래식이자 교본이면서,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던 '본' 시리즈의 '귀환'이라 일컬을 만 하다.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여전히 빈틈 없고, 다부지고, 완벽하다. 움직임은 더욱 간결해졌고, 더불어 원숙함마저 갖췄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긴 하지만, 여전히 지난 시절의 강인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 친구, 여전히 잘 나간다.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30일 기준 116만 7,041명)했다. 



시크하게도 존재로 이유를 설명한 셈이 됐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9년 만에 돌아왔는가?' '본' 시리즈의 1편인 <본 아이덴티티>의 더그 라이만으로부터 바통을 이어 받아, 사실상 '본' 시리즈를 완성시킨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자신도 그런 의문을 가졌고, 그래서 맷 데이먼에게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돌아온 대답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너무나 기다리고 있잖아요!"


"데이먼의 이 말이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 후속작 제작에 대해 고민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결국 우리는 관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만화 속 대사처럼 오글거리지만, 사실 그게 정답이었다. 가장 완벽한 첩보물인 '본' 시리즈에 열광했던 수많은 영화 팬들은 <본 레거시>의 함량 미달에 실망한 상태였고, 그래서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의 복귀를 간절히 원했다. 


그건 바로 '진짜'를 돌려달라는 요구이자 열망이었다. 폴 그린그래스는 군중 속의 고독, 외로운 늑대인 '제이슨 본'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이다. 특유의 근접 촬영과 숨가쁘게 전환되는 빠른 화면들의 편집은 제이슨 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직시하게 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옥죄는 듯한 촘촘함은 어느새 느릿한 걸음걸이로 '사건'을 배회한다. 약간의 지루함이 스치려는 순간, '제이슨 본'이 움직인다.




폴 그린그래스는 촬영과 편집에 있어 '본' 시리즈에 특화된 기술을 선보이면서도 애초에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원초적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관객들이 원했던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본' 시리즈'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최강의 '인간병기'가 돼버린 전직 CIA 첩보요원 제이슨 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첩보 액션 영화일 것이다. 이 서사는 시리즈의 모든 영화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약간의 상황이 바뀔 뿐, 이야기의 얼개는 같다.


좀더 깊이 들여다보자면, 엄격한 통제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집단(여기서는 CIA일 것이다)'의 욕망(<제이슨 본>에서는 끊임없이 '애국자'라는 기만적 언어가 등장한다)과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판단 속에서 이뤄지는 행복의 추구 사이의 충돌이 자리잡고 있다. <제이슨 본>은 이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갈등 구조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역시 그것이 '본' 시리즈를 존재하게 했던 이유였으니까. 


9년 만에 세상으로 돌아온 '제이슨 본'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첨단화 됐다. <본 얼티메이텀>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이 본을 추적한다. CIA가 본을 추적하기 위해 활용하는 CCTV와 GPS 등의 기술의 정교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다 '소셜 네트워크'까지 접목시키려는 '집단'의 욕망은 더욱 체계적이다.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또,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사이버 정보요원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등장은 상징적이다. CIA의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과거와 단절된 인물이기 때문인지, 그의 판단과 행동은 거침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2시간이라는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은 '여운'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도 동시에 남겼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했던 탓이었을까. 영화 속에서 발전적인 요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같은 갈등, 같은 과정, 갈든 해결이다. 또, 여전히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건 이해한다고 쳐도, 갑자기 본의 '아버지'를 끌고 와서 CIA의 음모를 설명하는 건 지루한 느낌이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제이슨 본'이 감정의 절제를 놓아버리는 이유가 '아버지'라는 건 다소 쉬운 설정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돌아온 <제이슨 본>은 분명 관객들에게 '만족'을 줬지만, 그만큼의 고민도 끌어안게 됐다. 적(敵)은 더욱 강해지고 완벽해지고 있는데, 제이슨 본은 여전히 빈손으로 맞서야만 한다.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의 죽음으로 그의 편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됐다. 과연 다시 '제이슨 본'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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