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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조승우는 뼛속까지 장사꾼인가, 돌을 던져준 사람인가?

너의길을가라 2018. 8. 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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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戰線)이 꾸려지면 이후의 양상은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다. 합심해서 싸우거나 분열돼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거나. JTBC <라이프>의 초반 전선은 분명해 보였다. '자본 논리'를 앞세워 병원을 바꾸려는 외부인과 그로부터 '무언가'를 지켜내려는 내부인들의 싸움 말이다. 전자가 화정 그룹에서 내려꽂은 총괄사장 구승효라면, 후자는 상국대학병원 구성원 전체였다. 


구승효는 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각 과의 경영실적을 파악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료센터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지방병원 파견 근무'라는 제도를 통해 세 개의 과를 낙산으로 내려보내 병원의 적자를 감소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해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지방으로 가기 싫은 의사들의 이기주의로 몰아세워 간단히 제압했다. 강력한 항원(抗原)이었다.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이동욱)는 구승효라는 항원에 본능적으로 맞서는 항체(抗體)였다. 그는 각 과별 매출 평가액 표를 구해 병원 게시판에 올렸고, 이를 통해 낙산의료원 파견이 인도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었음을 폭로했다. 상황은 급변했다. '나만 아니면 돼'로 일관했던 병원 구성원들은 '파업'이라는 카드로 구승효에 맞서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항체였다. 



"왜 한 해 나오는 흉부 전문의가 전국에 스무 명이 되지 않을까요? 병원이 흉부에 투자를 안 해섭니다. 적자 수술이 많아서. 병원이 채용을 안 해섭니다. 일 할 데가 없어서. 그래도 우린 오늘도 수술장에 들어갑니다."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의 일침이 통했던 걸까. 구승효는 전격적으로 적자 3과에 대한 낙산의료원 파견 계획을 철회한다. 의사들은 얼떨결한 승리에 당혹스러워 한다. 이대로 지키려는 자들의 승리인 걸까? 파견이 취소되자 이를 명분으로 시작됐던 파업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결국 병원 측의 파업은 별다른 실속 없이 무산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구승효는 왜 한걸음 뒤로 물러섰던 걸까? 그는 화정 그룹이 상국대학병원을 이끌자마자 삐거덕댄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조남형 회장(정문성)과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무엇보다 의료진에게 상국대학병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득을 거뒀다. "한 가지는 분명하네. 우리 목구멍이 구 사장 손아귀에 달렸어."라는 주경문의 탄식처럼 말이다.


구승효의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병원 내 쉬쉬했던 투약 사고를 외부에 터뜨려 또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 후, 화정 화학으로부터 바코드 리더기 설비 투자를 받는다. 투약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자 병원 내부의 반응은 좋았지만, 이는 약품 도매 자회사 설립을 통해 화정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구승효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전략이었다. 게다가 화정 화학의 의약품 홍보 및 영업까지 할당됐다. 



"사장님은 이 사람들 다 뭘로 보이십니까?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온 사람들 다 뭘로 보이시냐고요. 우리가 장바닥 약장숩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자괴감 안겨서 사장님한테 좋은 게 뭐가 있어요."


"화정 그룹이 이 대학 재단 인수했을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고 그때 반대를 하던가 이제와서 무슨 뒷북입니까. 오세화 과장, 여기 병원 사람들 전부 합병을 통해서 화정 그룹의 직원이 된 겁니까. 그럼 이제 일 하셔야죠. 직원들 하는 일이 뭔데요. 회사에 이익 주고 월급 타 가는 겁니다. 여기서 자괴감이 왜 나오는지 난 도통 이해가 안 되네. 영업이 부끄럽습니까? 뭐가요? 왜? 댁들한테 영업직들은 뭐 죄다 불가촉천민인가. 그 사람들도 뼈빠지게 일해서 자기 가족들 먹여 살리는 사람들입니다. 의사는 밥 안 먹고 똥 안 싸는 신선이라도 되는 모양이죠. 똑똑히 들으세요. 돈 안 받고 일할 거면 일 안해도 됩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


신경외과 센터장 오세화(문소리)의 반발은 구승효의 논리 앞에 철저히 박살나고 만다. '장바닥 약장수', '자괴감'이라는 감정적인 접근이 가져 온 실패였다.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싸움은 곧 완패로 귀결된다. 반면, 구승효의 행보는 거침없다. 동물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부르는 게 값이라는 강경아 팀장(염혜란)의 말에 동물병원에 눈독을 들이고, 유기견센터 자원봉사를 계획하는 등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 나간다.


한치 앞 밖에 내다보지 못하는 의사들은 이 상황이 숨가쁘기만 하다. 게다가 분열도 가시화 됐다. 애초부터 지키려는 '무언가'가 달랐던 탓이었다. 애초부터 상국대학병원은 상국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성골 출신들이 내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타 대학 출신인 주경문 같은 사람은 철저히 배척 당하고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워낙 수직적인 구조인 병원 내에서 젊은 의사들은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쥐죽은 듯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성골이라고 해서 다 같은 편이라고 보긴 어렵다. 당장 '그들만의 리그' 병원장 선거를 앞두고 계산에 분주하다. 부원장 김태상(문성근)을 비롯해 암센터장 이상엽(엄효섭), 신경외과 센터장 오세화(문소리), 안과 과장 서지용(정희태) 등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모양새가 참으로 정치적이다. 안 그런 곳이 있겠냐마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속살이라 착잡함이 크기만 하다.



"구 사장은 뼛속까지 장사꾼이야. 이 선생처럼 나이브하게 받아주면 순식간에 잡아먹혀."


"무조건 배척만 하면 뭘 배우나요? 이 집단이 폐쇄적이고 이기적인지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요. 저는 구 사장이 돌을 던져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안 잡아먹히려면 두 눈 똑바로 떠야죠. 근데 그게 귀찮으니까, 하루하루 나 바빠죽겠으니까 아예 돌도 던지지 마. 그러면 아무것도 안 바뀌어요. 우린 영원히 고인 물로 남을 거예요."


정답은 무엇일까. 자본논리를 앞세운 구승효처럼 이익의 극대화를 이뤄내면 되는 걸까? 회사에 이익을 주고 월급을 타기만 하면 끝인 걸까? 그렇다고 해서 자본의 호율성, 자본의 합리성을 아예 외면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맞는 걸까? 쉽지 않다. 순식간에 잡아먹힌다는 주경문의 경고와 가만히 두면 영원히 고인 물로 남을 거라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노을(원진아)의 자조, 그 중간 즈음에 정답이 숨어 있진 않을까?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전락한 의사들. 결국 자본논리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들어가야만 조금이나마 움찔하는 그 집단의 무신경함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을까. 의료사고가 빗발치고 환자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이를 묵살해 왔던 병원과 의사들. 그들도 할 말이 없진 않겠지만,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환자들의 실망과 외면으로부터 시작된 문제였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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