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더 킹>에 김기춘도 있고, 우병우도 있고, 조윤선도 있더라

너의길을가라 2017. 1. 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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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태에 대해서 얘기 한마디 해 주시죠.) "엘리베이터가 왜 안 오나?" (김기춘)

"영장실질심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윤선)


'왕실장'과 '스타장관'의 몰락.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았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결국 구속됐다. 박영수 특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국회위증죄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21일 오전 3시45분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마(法魔) 김기춘과 법비(法匪) 조윤선은 향후 최악의 법률가 표본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평가했다. 


이제 남은 건 또 한명의 '법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과 이 모든 범죄의 '몸통' 박근혜 대통령이다. 특검은 이미 두 사람을 사정권(射程圈) 안에 놓고 정조준하고 있다. 우 전 수석에 대해선 개인 비리를 포함해 재직 당시 최순실 씨 등의 비리를 눈감고, 이를 넘어 비호 · 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고, 박 대통령에 대해선 세월호 참사 직후 '좌파 성향'의 문화 · 예술계 인사들을 관리하도록 검토 · 지시한 주체로 보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은 희대의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도 무겁게 져야 할 것이다. 



"그 법 기술을 현란하게 능수능란하게 사용해서 선악을 안 가리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쓰는 거 아니에요 보면. 그렇게 해서 이해관계와 권력의 정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전리품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60회 중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국회의원의 인터뷰 내용)


법을 '정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했던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18일 개봉한 <더 킹>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시국과 절묘히 조응(照應)하는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했지만, 그 중에서 <더 킹>이 차별성을 갖는 이유는 법을 다루는 '검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런데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한 두 편이었던가?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은 영리하게도 '돌파구'로 박태수(조인성)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그 흥망성쇠와 '현대사'를 절묘히 병치시킨다. 


박태수는 동네 건달, 그의 표현대로라면 '양아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바람을 피운 아버지 탓에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오래다. 그런 아버지에게 배운 게 무엇이겠는가. 주먹질, 싸움질 그런 것들이다. 그날의 사건이 아니었지만, 그도 아버지처럼 '양아치'가 됐을 것이다. 어느 날, 태수는 아버지가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모습을 본다. 작은 체구의 그 누군가는 어디서나 큰소리를 치던 아버지를 간단히 제압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검사'였다. 태수는 그날로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검사가 된 태수는 180도 달라진 현실을 맞이한다. 부잣집 딸인 임상희(김아중)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재력까지 손에 넣는다.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간다. 검사로서의 정의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저히 불합리한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가진 채 말이다. 그러다 지역 유지 아들의 성폭행 사건을 맡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박태수는 대학 선배 양동철(배성우)의 청탁을 받아들이게 되고, 서울지검 전략부 부장 검사 한강식(정우성)의 라인에 올라타게 된다.


이제부터 박태수는 99%의 선량한 검사들의 삶이 아닌 비뚤어진 권력욕에 물든 1%의 비리 검사의 편에 선다. 아니, 적극 가담한다. <더 킹>은 무소불위의 힘을 손에 거머쥐고 나라를 마음대로 뒤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엮어낸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은 시대적 배경이 될 뿐 아니라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왜냐하면 비리 검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라인'을 잡는 것이고, 누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묵혀 두는 거야. 김치 익히듯이 묵혀 뒀다가 때가 되면 꺼내는 거지."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


그리하여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도박판'과 마찬가지다. '무당'을 찾아가서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물어봐야 하고, '굿'을 해서라도 누구만큼은 절대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 그동안 묵혀 뒀던 자료들은 이때 긴요하게 사용되는데, 줄을 댈 후보 측에 갖다바치고 '자리'를 약속받는 식이다. 영화 속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로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 샤먼의 지배를 받는 한심한 대한민국이여!  


한강식과 양동철, 박태수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현실에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뒷북'이 될 법했던 <더 킹>은 블랙코미디이자 풍자극이라는 접근을 통해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같은 날 개봉했던 <공조>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선악의 대비가 도드라지지 않아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적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을 곱씹을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정치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차 있어 즐겁게(씁쓸함은 각오해야 한다) 감상할 수 있다. 또,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권력만을 좇아왔던 김기춘, 우병우 등이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 그리고 서거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 건 한재림 감독이 어떤 각오를 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 박근혜 대통령의 출연 장면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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