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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의 오 상궁, 달의 몰락 속에서 존재감 발휘한 우희진

너의길을가라 2016. 9. 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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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진다 달이진다 달이진다 달이진다 … 지네 달이 몰락하고 있네" 

- 김현철, <달의 몰락> 중에서 -


충격의 꼴찌. 제작비 150억을 쏟아부은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자존심은 완전히 뭉개졌다. 바야흐로 '박보검의 시대'를 열어젖힌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 참패를 당한 것도 모자라 지난 26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게도 밀려났다. 27일을 기준으로 <구르미>는 20.1%, <캐리어>는 8.4%, <달의 연인>은 7.5%였다. 그야말로 '달의 몰락'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국 온라인 영상 채널인 유쿠(YOUKU)에서 방영되고 있는 <달의 연인>은 무려 10억 뷰를 돌파했다. <구르미>는 중국 망고TV에서 방영하고 있는데, 25일까지 1억 2,700뷰를 넘어섰다. <구르미>도 선전하고 있지만, <달의 연인>의 폭발적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는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준기'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회당 40만 달러라는 비싼 금액에 판권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인기 덕분에 체면치레를 하고는 있지만, 국내 팬들의 외면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9회(6.2%), 10회(7.1%)에 이어 11회는 7.5%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해수(이지은)와 8황자 왕욱(강하늘)에 맞춰져 있던 스포트라이트가 점차 4황자 소(이준기)에게 향하고, 세 사람의 엇갈리는 사랑이 본격화되는 한편, '정윤(正胤)'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황실'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몰입도가 올라간 덕분이다. 



이처럼 달이 몰락하는 와중에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오 상궁 역의 우희진이다. 오 상궁은 다미원의 수장으로 과거 태조 왕건과 사랑을 나눴지만 버림받아야 했던 슬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지닌 해수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충주원 황후 유씨(박지영) 때문에 잃어야 했던 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자상하고, 때로는 엄하게 가르친다. 그 애틋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해수가 '황자 독살 혐의'를 뒤집어 쓰고, 교형(絞刑, 죄인의 목에 형구를 사용해 죽이는 형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옛 정인(情人)이었던 태조 왕건을 찾아가 '해수를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오 상궁은 자신이 반위(위암)에 걸려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 후, 해수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 쓰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담담히 교수대 위에 오른다. 




"한 사람만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죽음' 앞에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오 상궁의 죽음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게 그려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면서도, 자신의 걸음을 초연히 나아가는 오 상궁의 모습을 우희진은 완벽히 소화했다. 오열하는 해수를 다독이는 장면에선 어미의 마음이 녹아났고, 표독스러운 충주원 황후 유씨와 맞부딪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이었다. 


비가 처연히 쏟아지는 날 교수대 위에 오른 오 상궁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장면은 가히 최고의 장면이라 할 만 했다. 오 상궁의 죽음과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인물들 뒤로 OST 곡인 임선혜의 <꼭 돌아오리>가 깔리자 슬픔은 몇 곱절은 커졌다. 연출력도 발군이었지만,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우희진의 공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연기로 캐릭터에 차곡차곡 설득력을 불어넣었고, 그 때문에 시청자들을 오 상궁의 감정 속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실제로 잠시 다른 일을 하기도 했지만 떠나 보니 알겠더군요.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요. 지금은 연기자 우희진을 뺀 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연기가 제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이에요. 불완전하고 부족한 저를 완전체로 만들어주는 삶의 가장 큰 유희이자 보람이죠."


<여성조선>, <좋은 사람> 우희진의 시선


우희진은 단단하고 원숙한 연기로 <달의 연인>의 빈공간을 살뜰히 채웠다. 방송 초반부터 제기됐던 여주인공에 대한 아쉬움을 우희진이 메워줬던 것이다. 그는 김규태 감독 특유의 클로즈업에도 흔들림 없는 세심한 연기를 보여줬다. 발성과 발음, 표정 연기와 그 너머의 내공은 우희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좋은 배우는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이들을 성장시킨다. 초반에 비해 이지은의 연기가 극에 녹아들었다고 느껴진 건, 우희진이 든든히 버텨준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광고 모델로 데뷔한 우희진은 1987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 인현왕후> '세자빈' 역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톡톡 튀는 아역 배우를 거쳐, 청순하고 도도한 여배우를 지나, 그는 어느덧 햇수로 30년 째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중견 배우가 된 그는 3, 40대 여배우가 설 자리가 비좁은 현실 속에서 <달의 연인>을 통해 저력을 보여줬다. 아침 드라마를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이토록 청초히 빛나는 그를 거기에만 묶어두긴 아쉽다. (우희진은 현재 MBC <좋은 사람>에 출연 중이다.) 우희진의 또 다른 전성기가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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