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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피고인>, 지성 혼자 '열일'하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

너의길을가라 2017. 1. 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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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혔던 '낭만'에 다시 불을 지피며 월, 화를 굳건히 책임졌던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빈자리, 그 허전함을 '일단' 채운 건 SBS <피고인>이었다. 비록 <낭만닥터 김사부>로 쏠렸던 시청률 27.0%(번외편)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1회(14.5%), 2회(14.9%)의 시청률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만 하다. 다만, 기가 눌려 있던 KBS2 <화랑>이 10%대 시청률로 뛰어 올랐고, MBC에선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렀던 <불야성>의 뒤를 이어 '홍길동'의 삶을 다룬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을 선보일 예정이라 치열한 3파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치즈인더트랩>, <또, 오해영>, <굿 와이프> 등 화제작을 통해 월화 드라마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던 tvN이지만 최근에는 그 상승세가 다소 잠잠해진 분위기다. 지난 16일 첫 방송을 시작한 <내성적인 보스>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5>로부터 넘겨 받은 3% 대의 시청률마저 잃고 1.970%까지 하락했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박혜수의 연기력 논란까지 불거지며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당분간 3파전의 양상으로 진행될 월화 드라마의 판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역시 <피고인>이지만, 앞서 '일단'이라는 전제를 단 까닭은 <피고인>의 사정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피고인>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단순하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다. 이 말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할 대상, 즉 '응원'할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 박정우(지성)는 검사다. 하지만 딸과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힌다. 검사에서 피고인으로, 그야말로 처지가 180도 바뀐 것이다. 물론 그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하니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럴수가, 4개월의 기억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이처럼 <피고인>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가지 단서는 있다. 박정우가 검사 시절 수사했던 차명그룹 차민호(엄기준) 부사장이다. 차민호는 한마디로 망나니 재벌 3세다. 그는 야구 방망이로 여성을 때려 살해하고, 자수를 권하는 쌍둥이 형 차선호(엄기준, 1인 2역)마저 죽인다. 그리고 그룹의 대표였던 형의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차민호라는 캐릭터를 역대 최악의 악인으로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박정우는 차민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그가 형마저 죽였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압박해 들어간다. '비밀'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 대립 과정에서 차민호가 박정우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굵직한 사건들은 이미 나열됐고, 그 내용들은 상당히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또, 전개 속도가 빨라 속도감도 있다. 웬만한 패는 다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흥미롭지는 않다. 이상한 일이다. 다시 점검해 보자. <피고인>은 <베테랑>의 '유아인'을 뛰어넘는 망나니 재벌 3세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지만 전혀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들은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일란성 쌍둥이, 형수와 불륜으로 낳은 아이의 존재, 게다가 기억상실증이라니! '막장 드라마'에서나 사용됐던 설정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정작 더 큰 문제는 '허술함'이다. 일란성 쌍둥이마저도 지문이 다르다는 건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99% 일치하는 지문은 차민호가 꾸민 짓일 게 분명하다. 서류 등을 위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3회 예고편에는 차민호가 자신의 지문을 지져 버리며 웃음을 짓는데(아, 순진하기도 하여라), 그런다고 '위장'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게 더 우습다. 신원을 확인하는 데 있어 지문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차민호의 유서 필적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그건 당연히 똑같을 테니까), 차선호로 위장한 차민호가 차선호의 필적을 흉내낼 수 있는지 파악하면 그만 아닌가? 



이처럼 빈틈 많은 시나리오는 첨단 공포증(모서리 증후군)마저도 간단히 극복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가? 4개월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박정우의 상태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기억상실과는 다르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자기방어기제가 발현된 것"이라는 정신과 정문의의 설명이면 그만이다. 드라마 만들기 참 쉽다. 차민호의 존재를 알아채린 두 명, 그러니까 형수 나연희(엄현경)은 "은수가 누구 아들인지" 한마디에 간단히 제압되고, 아버지는 "아들 두 명을 다 잃을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에 모든 것을 용납한다. 참 우스꽝스럽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계속 시청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남은 건 지성과 엄기준의 치열한 연기 대결이다. 2015 MBC 연기 대상에 빛나는 지성의 연기력이야 흠잡을 곳 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강제' 감정이입을 시킨다. 뮤지컬 무대를 주름잡고, 드라마 영역까지 보폭을 넓힌 '엄배우' 엄기준도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차민호가 죽은 형 앞에서 울면서 웃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했다. 다만, 엄기준의 경우에는 다소 과잉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희대의 악인을 연기해야 하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에서처럼 과장된 연기가 카메라에 비칠 때마다 몰입이 깨지는 건 아쉽기만 하다. 



<피고인>은 지성과의 '악연'으로 얽힌 국선변호사 서은혜(권유리)를 히든 카드로 제시했다. 판사한테도 대들 정도로 '싸움닭'이지만, 따뜻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캐릭터다. 한마디로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뻔한 캐릭터'다. '소녀시대' 출신 연기자라는 딱지를 달고 출발점에 섰지만, 2회까지 보여준 그의 연기는 딱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칭찬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의 연기나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살벌한 연기력을 보일 지성과 엄기준 사이에서 '서은혜'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진실', '정의'라는 담론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무작정 고래고래 외친다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경' 하나로 다른 사람도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이야기와 설정의 허술함, 논리의 비약을 '속도감' 하나로 덮고 가려는 발상은 '날림 공사'와 무엇이 다를까. 결국 권선징악을 향해 달려갈 <피고인>은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연 3회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러다가 전작인 SBS <딴따라>에서처럼 지성 혼자(엄기준이 있어 '둘'이라 해야 할까?) '열일'하다 끝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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