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을 깨자 최순실 씨도 입을 열었다. 지난 25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른바 '녹화 사과'를 했고, 그 다음 날인 26일 최순실 씨는 <세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마치 '배턴'을 주고받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세계일보>를 오해할 필요는 없다. 지난 2014년 <세계일보>는 청와대의 비선 조직을 파헤치기 위해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 그리고 십상시'(十常侍)를 다루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던 전력이 있으니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흥미로운 사실은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의 사과 내용과 최순실 씨의 인터뷰 내용이 영화 속 액션 장면처럼 '합'을 맞춘 듯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연설문'에 대한 문제제기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쿵' 하면 '짝'이지!" 박 대통령이 '사과문'을 통해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셈인데, 솔직히 이쯤되면 헷갈린다. 혹시 최순실의 인터뷰가 가이드 라인은 아닐까? 이런 혼란을 자초해 합리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그들'이니 자업자득일 게다.


▲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 드리기 위해 이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거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저로서는 좀더 꼼곰하게 챙겨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립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철저히 '연설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최순실 씨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지난 대선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2.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적도 있다.


논란을 축소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은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로 말을 시작해, 최순실 씨를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씨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왔던' 사실이 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당시 JTBC의 보도 내용(24일, 첫 번째 폭로)이 '연설문' 쪽에 맞춰져 있었던 것을 감안해 박 대통령도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이라 선을 그었다. 


최순실 씨가 수정했던 것으로 확인된 '드레스덴 선언문(2014년 3월 28일)'의 경우에는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되기 전까지)'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납득하기 어려운, 얼토당토 않은 해명이었다. 최 씨가 마지막으로 읽은 문건이 2014년 7월이었다는 점에서 도대체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과문 낭독 후 질문을 받지 않은 채 돌아가버렸으니 물을 도리는 없다.



이어서 최순실 씨의 '해명'을 들어보자. <세계일보>의 인터뷰 내용을 옮겨왔다. 


▲ 박 대통령이 연설문 유출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는데. 


"박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다. 나라만 생각한 분이 혼자 해보려고 하는데 안돼 너무 가슴 아프다. 대통령이 훌륭한 분이고, 나라만 위하는 분인데, 그런 분에게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사과 드리고 싶다. 정말 잘못된 일이다. 죄송하다."


▲  구체적으로 대통령 연설문의 무엇을 어떻게 수정한 것인가. 


"대선 당시인지 그 전인가 했다. 대통령을 오래 봐 왔으니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 (박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아니까 심경 고백에 대해 도움을 줬다. 그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다.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다면 손이나 댔겠느냐."


▲  지금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사회 물의를 일으켰는지 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 여러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 정말 죄송하다. 제가 신의(信義)로 뭔가 도와주고 싶었고, 제가 무슨 국회의원이 되거나 권력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기 짝이 없다. 너무 잘못됐다.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 것은 정말 잘못했다. 신의 때문에 했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세계일보, [최순실 단독 인터뷰] "연설문 수정, 신의로 한 일인데..국가 기밀인줄 몰랐다"


'인정(人情)'에 호소하기로 전략을 세운 걸까? 최순실 씨는 박 대통령을 '나라만 생각한 분', '훌륭한 분'이라 말하면서, '그런 분에게 심적으로 물의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대통령 연설문의 무엇을 어떻게 수정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도와드린 것'이라며 한발짝 물러섰다. '무엇을'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고, '어떻게'에 대한 답변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겨레>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인터뷰(10월 26일)한 내용에 따르면, "최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cm 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으며, "최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어떻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데, 최씨는 인터뷰에서 순진무구하게 "국가 기밀인지도 몰랐다"면서 "알았다면 손이나 댔겠느냐"며 철없는 소리만 늘어놨다. 최 씨는 '신의(信義)'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는데, 그들의 우정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1. 청와대의 대통령(VIP) 자료를 받았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당선 직후 초기에는 이메일로 받아본 것 같다. 민간인이어서 그것이 국가기밀이나 국가기록인지 전혀 몰랐다."


2. 특히 당선자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면담 내용이나 외교안보 관련 문서 등도 봤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


3.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대통령의 보고서를 매일 봤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말도 안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지칭하는 듯)이다. 저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협박도 하고 5억(원)을 달라고 했다"


4. 청와대 정호성 비서관이 청와대 문서를 전달했다고 하는데

"저는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만난 적이 없다."


5. 태블릿 PC를 통해 VIP보고서를 사전에 받아봤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쓸지도 모른다. 제 것이 아니다. 제가 그런 것을 버렸을 리도 없고, 그런 것을 버렸다고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남의 PC를 보고 보도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유출됐는지, 누가 제공한 지도 모른다. 검찰에서 확인해봐야 한다. 취득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세계일보, [최순실 단독 인터뷰] "연설문 수정, 신의로 한 일인데..국가 기밀인줄 몰랐다"


한편, 최순실 씨는 '연설문' 외에 모든 의혹에 대해서 '몰랐다', '기억이 없다', 말도 안된다', 만난 적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특히 태블릿 PC에 대해서는 제법 자세한 대답을 내놓았는데, "제 것이 아니다", "남의 PC를 보고 보도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잡아뗐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정말 그 태블릿 PC는 '남의 것'이었다. JTBC는 [단독] "최순실 태블릿PC 명의는 청와대 행정관 김한수"를 통해 그 태블릿 PC가 최순실 씨의 명의가 아니라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는 김한수 씨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태블릿 PC의 사진 폴더에는 2012년 6월 25일 촬영된 최 씨 본인의 사진을 비롯해 드레스덴 대통령 연설문 등 각종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최 씨는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뭉개고, 가급적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교묘한 전략으로 인터뷰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최 씨가 전체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기자회견(인터뷰)을 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6.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이나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을 통해 국정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안 수석의 얼굴을 알지도 못한다. 그들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김 차관의 경우 저와 연결하려는 '그림'인 것 같다. 한양대와 관련해 아는 사람이 없다."


7. 청와대 제2부속실 윤전추 행정관 인사 청탁 등 인사 개입 의혹도 제기되는데.

"나이와 연배도 달라 내가 전혀 추천이나 인사 청탁은 없었다. 이게(인사청탁 의혹) 전부 저를 엮어서… 사람이 살다보면 이렇게 알고 저렇게 알고 연관되는 것이다"


8. '팔선녀'라는 비선모임을 만들어 국정에 개입한다는데.

"처음 듣는 말이다. 팔선녀는 소설이다. 그와 같은 그룹을 만든 적도 없다."


세계일보, [최순실 단독 인터뷰] "연설문 수정, 신의로 한 일인데..국가 기밀인줄 몰랐다"


매우 일관적인 답변이다. 최 씨는 이어진 '미르 및 K스포츠재단'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자금 지원'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차은택 씨와도 가깝지 않으며, K스포츠의 노숭일 부장과 박헌영 과장은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극히 폐쇄적으로 만난 사람들을 연계하고 있을 뿐이다", "극히 제한된 사람만 본다"고 덧붙였는데, 그 대목이 오히려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도대체 그는 '누구'와 만나고 있는 걸까? 그 '극히 제한된 사람'이란 누구일까?


'오리발을 열심히 내민' 탓에 인터뷰의 핵심은 최순실 씨의 '최근 근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려 있고 심장이 굉장히 안 좋아 병원 진료를 받고 있어서 돌아갈 상황이 아니"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멀쩡했던 몸이 7월 17일(출국) 이후 급격히 안 좋아진 것일까? "건강이 회복되면 용서를 구하고, 죄가 있다면 받을 것은 달게 받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순 없었다. 



충분한 재력(그가 소유한 구두를 보라!)을 보유한 그는 1등석을 탈 수도 있을 테고, 정말 비행기를 탈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다면 독일 현지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는 것도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런데 최 씨는 자신의 위치를 밝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시 꽁꽁 숨어버렸다. 검찰이 이영렬 서울중앙지겁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송환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며 독일과 공조작업 중이라 밝혔지만 최 씨가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순실 씨와 관련한 의혹들은 까도 까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17.5%까지 급락(리얼미터)했다. 콘트리트 지지율이라고 여겼던 30% 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파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 방식에 대해 묻는 여론조사에서 42.3%가 '하야 또는 탄핵'이라 대답했다.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성신여대, 부산대, 전남대 등등 전국의 20개 대학은 '공동 시국 선언'을 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나와라 최순실! 나가라 박근혜!"를 외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그 주어는 '대통령'이 아니다. 국정 운영의 '정당성'을 잃어버린 그에게 더 이상 어떤 결정을 맡기긴 힘들어 보인다. 같은 이유로 '여당'도 그 조치를 결정할 자격이 없다. 주체는 '시민'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잠시동안 권력을 위임한 시민들이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특검? '무용론'이 지배적이다. 탄핵? 현실적으로 불가능(국회 및 헌법재판소 구성을 보라!)하고, 설령 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사람이 '황교안 총리'라는 걸 잊어선 곤란하다.


그렇다면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였다면, 해법은 간단했을지 모른다. 내각 총 사퇴 후 총선거를 통해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면 끝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정농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과 그가 구성한 정부는 굳건하기만 하다. 느긋하게 우병우 민정수석을 교체할지 말지를 재는 모양새라니.. 그럴수록 '불길'은 더욱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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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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