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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드라마 속 걸그룹 아이돌이 달라졌다

너의길을가라 2016. 7. 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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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여기에서는 걸그룹 출신들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하자)의 연기 데뷔는 기회의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들이 뜬금없이 나타나 '주연 배우' 자리를 꿰차는 건 시청자들을 '도덕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명백한 '침범'이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이 작품 하나에 단역으로라도 얼굴을 내밀기 위해 숱한 오디션의 실패를 경험하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아이돌은 너무도 쉽게 카메라 앞에 서는 호사(豪奢)를 누리지 않던가. 



물론 그것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자신의 영역에서 쌓아 올린 '노력'의 대가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상품성'을 이미 갖춘 그들이 아닌가. 모든 매체가 '김태리'라는 무명 배우를 일약 스타로 발돋움시킨 박찬욱의 힘을 갖고 있진 않다. 이미 갖춰진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 그것은 필요악과도 같았다. 이런 설명에도 여전히 제작진과 시청자 간에는 '괴리'와 '반목'이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해답은 연기였다. 사실 간단한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일차원적인 방정식처럼. 연기를 하고 싶었다면, 연기를 '잘' 하면 될 일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성공률'은 제법 높아졌다. '팬덤'이라고 하는 '인기'만을 믿고, 무작정 연기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철없던 아이돌들은 이제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딱 맞는 '배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보다 수월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익숙한 모습으로 위화감 없이.



반대로 이야기하면, 영리해진 건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가령,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덕선' 역을 맡은 '걸스데이'의 혜리를 떠올려보자. 그는 작품 속에서 혜리가 덕선인지 덕선이가 혜리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 들어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물감(異物感) 없이 드라마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전혀 검증되지 않았던 혜리에게 덕선이라는 옷을 선물한 제작진의 정확한 선구안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혜리의 후속작 선택은 다소 성급했다. 쏟아지던 찬사를 자신감으로 받아들인 건 좋았지만, 그것이 조바심이 돼 독이 된 셈이다. SBS <딴따라>에서 혜리는 연기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덕선'에 최적화되어 있던 그의 연기는 다른 옷을 입자마자 발성에서부터 감정 연기까지 부족함이 드러났다. 성장통이라고 둘러대기엔, 한 편의 드라마가 그리 가볍지 않다. 



SBS <미녀 공심이> 민아 

tvN <굿와이프> 나나 

JTBC <청춘시대> 한승연, 류화영 

SBS <원티드> 전효성 

KBS2 <함부로 애틋하게> 수지 


"이제 진짜 공심이를 보내야 한다는 슬픔에 잠겨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참 슬프더라. 그래도 무사히 잘 마쳐서 정말 기쁘다. … 제가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스타일이고, 집에서 구박을 받지 않았던 것 빼고는 공심이와 비슷한 부분이 정말 많다." (민아)



최근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거둔 성적표(시청자 반응을 수렴한 주관적인 평가)다. 대체로 성적이 좋다. 특히 '걸스데이' 민아의 주인공 발탁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던 연기 경력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드라마 한 편을 이끌어가기엔 내공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공심'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난 민아는 연기에 빠져들 수 있었고, 팽배했던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켰다. 


민아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쁨'을 버린 채 똑단발 가발을 뒤집어 쓰고, '생명'과도 같은 아이라인도 과감히 지웠다. 화장과 의상에 신경쓰는 대신 그저 '공심'이 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8.9%로 시작한 시청률은 15.1%(닐슨코리아)로 끝을 맺었다. 연기자로서 민아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었다.



"제가 활동하면서 이렇게 좋은 댓글, 좋은 반응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서 솔직히 얼떨떨하다. 제작진이 원작 캐릭터의 냉정함보다는 제가 가지고 있는 솔직한 성격이 드러나는 쪽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주신 덕분이다." (나나)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tvN <굿와이프> 나나의 연기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다재다능한 로펌의 조사원 김단을 연기하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주로 합을 맞추는 전도연과의 연기 호흡도 훌륭하고, 유지태 · 김태우와의 기싸움에서도 결코 밀리는 기색이 없다. 준비를 많이 한 티가 역력하다. 또, 평소에 미디어를 통해 보여줬던 '나나'의 솔직 담백한 모습들이 '김단'에는 많이 녹아 있다.  


SBS <원티드> 에서 적은 분량에도 드라마 전개에 있어 의미 있는 배역인 박보연 역을 맡은 '시크릿'의 전효성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 JTBC <청춘시대>에서 개성이 뚜렷한 여대생 정예은으로 변신한 카라의 한승연과 강이나 역으로 출연하는 티아라 출신 류화영도 제몸에 꼭 맞는 캐릭터를 만나 부담없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캐릭터'다.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자면, '자신'에 딱 맞는 캐릭터 말이다. '영리한' 이들은 뜬금없이 '비운의 여주인공'이 돼 억지 눈물을 짜내는 연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과거의 선배들이 저질렀던 우(愚)를 반복하지 않는다. 설령 비중이 작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살린 연기를 구색있게 펼치고 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확장시켜 나가는 동시에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 견고히 내공을 쌓다보면 연기는 훨씬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런 다음에 주연 배우로 발돋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혜리나 민아의 경우처럼, 자신에게 꼭 맞은 캐릭터가 있다면 주연 배우를 맡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tvN <배우학교>에서 박신양은 '나 자신을 알라'고 강조했고, 마지막까지 '솔직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스스로에 대한 공부를 마친 아이돌들이 그때에야 비로소 연기라고 하는 장으로 나온다면,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 도전을 받아들인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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