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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의<품위있는 그녀>, 박복자와 우아진의 연대는 가능할까?

너의길을가라 2017. 7.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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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漸入佳境)

1. 들어갈수록 점점 재미가 있음. 

2.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간병인 박복자(김선아)는 대성펄프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에 성공하고, 명실공히 집안의 안주인의 자리에 올랐다. 상대방의 약점을 틀어쥐는 등 '공포 정치'를 통해 집안의 전권(全權)을 장악하고,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천방순(황효은)을 새로운 가사 도우미로 데려와 자신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천방지축 철없는 딸 안재희(오나라)를 집밖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하고, 애초부터 자신을 천시했던 첫째 며느리 박주미(서정연)와 자신을 적대시하는 첫째 아들 안재구(한재영)에 대한 숙청 작업을 진행해 사실상 쫓아냈다. 

 

 

"이제 하나 남았네?"라는 천방순의 말처럼 박복자는 자신의 욕망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을 하나씩 차례차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집요했고, 신속했으며, 철저했다. "둘째 네는 어쩔꺼야?" 지금까지 박복자가 취해왔던 방법대로라면 '제거'해야 마땅했지만, 그의 대답은 기존의 스탠스와는 달랐다. "걔는 안 건드려." 자신을 유일하게 '사람'으로 대했던 상류층에 대한 고마움이 남았기 때문일까. 지성과 미모, 덕(德), 게다가 센스까지 갖춘 그야말로 '품위있는' 상류층에 대한 동경일까. 


박복자는 남편 안재석(정상훈)의 외도로 인해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아진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우아진은 결코 할 수 없는 '품위없는 복수'를 대신 해주겠다며 '해결사'가 돼 윤성희(이태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살벌한 눈빛으로 '이쯤에서 관계를 끝내라'며 엄포를 놓는 대목의 임팩트는 남달랐다. 또,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지후 엄마 좋아요."라고 고백을 하기도 한다. 전반적인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의 핵심은 두 인물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거기 왜 껴 네가. 너 사실 우리 모임에 낄 클래스가 아닌데 껴준 거야. 윤재 네 친자식도 아니잖아. 너 같은 근본 없는 기집애가 그 자식 업고 행세하면 출신성분 세탁이 되는 줄 알아?"

"당신,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 대학교 나온 거 모를 줄 알아? 대학도 돈만 주면 들어가는 2년제. 약사는 얼어죽을, 양심이 있어야지?"


이번에는 속물적인 상류층의 또 다른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일명 '브런치 모임'의 풍경을 들여다보자. 강남 상류층 부모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청담동 수학 학원의 원장인 백주경(오연아)를 비롯해 자녀들을 영재 중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엄마'들이다. 우아진과 차기옥(유서진), 김효주(이희진), 오경희(정다혜)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겉으로는 서로를 위하는 듯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실제로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다. 


또, 이들에게 '불륜'은 일상과도 같은데,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끝내 이 허울뿐인 관계를 파탄내기에 이른다. 성형외과 원장의 사모님으로 브런치 모임의 최연장자인 차기옥은 자신의 남편과 오경희가 바람이 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격분해 스파게티를 쏟아부으며 육탄전을 벌인다. 그야말로 '막장'이라 할 만한데, 서로의 '실체'를 폭로하며 자발적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저들의 민낯이 참으로 추하다. 오로지 돈과 특권의식으로 치장한 상류층들의 '천민자본주의'가 얼마나 타락하고 볼썽사나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 할 수 있었던 JTBC <품위있는 그녀> 10회는 시청률 6.899%를 기록하며 마의 6%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욕망은 더욱 분명해졌고, 갈등도 선명해졌다. 따라서 전선 역시 뚜렷해졌다. 격투기를 연상케 하는 육탄전이 불을 뿜는다. 볼거리가 늘었고, 꼴불견도 더욱 강렬해졌다. <품위있는 그녀>는 사다리를 타고 자신의 계급을 바꾸려는 박복자와 계급을 수호하려는 우아진을 앞세워 상류층의 철저히 해부해 나간다. 마치 <밀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밀회>가 은밀하게 그와 같은 작업을 해나갔다면, <품위있는 그녀>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화끈하다.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하며 파격적이다. 또, <품위있는 그녀>의 '폭로'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안태동 회장을 위시해 대성펄프 집안의 남자들이 얼마나 분별없는 존재들인지 드라마는 낱낱히 보여준다. 단지 그들뿐인가. '브런치 모임'의 구성원들의 남편들은 또 어떠한가. 불륜을 당연하게 여기고, 가정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한숨을 넘어 강한 분노가 일어난다.


한편, 여자들에 대한 묘사도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거침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품위있는 그녀>가 취하고 있는 지나치게 공평한(?) 시선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에 맞바람으로 대응하는 김효주,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륜을 저지른 오경희, 남편을 굳게 신뢰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차기옥 등 드라마 속 여자들은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비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품위있는 그녀>는 이에 대한 차별화된 접근 없이 이들을 '막장'으로 퉁치고 있는 느낌이다.

 


결국 여자들은 대립의 구도에 갇힌다. 집안의 헤게모니를 두고 박복자와 박주미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우아진은 남편의 불륜 대상인 윤성희에게 불꽃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주다가 무릎을 꿇기도 한다. 또, 차기옥과 오경희는 눈물나는 처절한 몸싸움을 벌인다. 다시 말해서 갈등과 문제의 또 다른 주체인 남성들은 이 대결구도에서 몇 걸음 뒤로 빠져있다.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이 <품위 있는 '그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죽일 놈'보다 '죽일 년'에 집중하는 이 드라마의 시선이 조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개싸움'에 비견되는 여자들 간의 대결은 tvN <비밀의 숲>에서 검사장 이창준의 아내 이연재(윤세아)가 넌지시  "여자의 적은 여자라던데"라는 낡은 프레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말을 들은 한여진(배두나)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다른 여자들을 적으로 대해 온 게 아닐까요?"라고 맞받아쳐 통쾌함을 줬지만, <품위있는 그녀>들 속의 '그녀'들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박복자와 우아진 사이에 '연대'가 성립할 여지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두 사람 간에 흐르는 묘한 기류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반갑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박복자와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우아진의 대립은 필수불가결했지만, 두 사람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터놓기도 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호감을 표시하며 공존을 모색하기도 한다. 물론 이 막장의 끝은 파국이겠으나,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 박복자와 우아진의 관계는 앞으로 <품위있는 그녀>의 키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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