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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윤여정, 유시민, '노을'을 바라보는 그들의 자세

너의길을가라 2017. 7.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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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 넘어간다."

"왜 이렇게 해는 빨리 질까? 아쉽게.."

"없어졌다."

"안녕.."

 

대관절 저 붉은 빛이 무엇이길래,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게 되는 풍경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JTBC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와 아이유에게도 그랬을 게다. 두 사람은 제주도의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바위 위에 걸터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가요계의 선배가 아니라 '언니'의 마음으로 '스물다섯의 지은'에게 진심을 담은 조언을 해주는 이효리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유의 모습이 참 예쁘기만 하다.


한참 말을 섞던 두 사람은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본다. 사진을 찍어주며 꺄르르 웃던 그들이 이내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말이 없어진 건 비단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TV 속 두 사람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그러했을 게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려 왔다. 연예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던(과거형으로 표현하기에 여전히 그는 최고지만) 이효리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아이유가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효리의 마음을 바꾼 건 제주도의 저 노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무한도전>에 출연해 "사실 제주도에서 멋진 기억만 남긴 채 사라져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보다 아름답게 내려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달라진 자신의 생각을 전한 바 있다. '내려오는 법'을 익히고 있다는 이효리가 지긋이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울컥하게 만든다. 아이유는 어땠을까.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멀지만 그리 많이 남지 않는 미래를 떠올렸을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도대체 '노을'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 '붉은 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는 걸까. tvN <알쓸신잡>의 정재승 박사의 말처럼 "물리학적으로는 그냥 빛의 산란일 뿐인데" 말이다. 과학자의 언어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해질녘 돼서 멀어지면 붉은색 주파수를 가진 사물이 훨씬 더 많이 산란이 돼서 푸른 빛이 붉은 빛으로 바뀌는 거죠. 근데, 그 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 보던 형상과 색상이 아니죠."

 


하지만 '배우'의 언어는 다르다. tvN <윤식당>에서 마지막 영업을 마친 윤여정은 직원들과 함께 해변 근처의 식당을 찾는다. 푸른 빛이 가득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어느새 붉은 빛이 감돈다. 물론 그것이 '빛의 산란'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새빨갛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감정은 그 과학적 설명을 가볍게 밀어낸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동료들과 담소를 즐기던 윤여정도 노을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이 어둡다. 


"나는 노을 지는 게 너무 싫은 거 있지? 싫어, 노을 지면 너무 슬퍼. 꼭 울어야 될 거 같아. 난 노을 질 때 굉장히 슬퍼, 아무튼. 혼자 있을 때는 운 적도 많아. 노을 지는 거 보면서. 그만, 그만 울어 버렸네. 아니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구. 이제 꼴깍 넘어가지? 저러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석양이 싫은 건가?"


해가 뜨고, 찬란히 빛난다. 그러다 언제 그리 뜨거운 적이 있었냐는 듯 저 멀리 사라지고야 마는 하루의 주기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아, 윤여정의 언어는 '배우'의 것이 아니라 '노년'의 것이었던가. "오우야~ 진짜 저거 봐. 너무 슬프잖아. 마지막으로 막 빨갛게 빛을 발하면서..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안 그렇지. 한 번 가면 다시 안 오지.." 내일이면 다시 뜨는 해와 달리 우리의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인생 선배' 윤여정의 무심한 말이 슬프게 와닿는다. 


"왜 이렇게 해는 빨리 질까?"라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중년의 이효리. 그에게는 아직 머리 위에서 '따갑게' 내리쬐던 시절이 더 가까워 보일 게다.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안 그렇지. 한 번 가면 다시 안 오지"라며 담담히 말하는 노년의 윤여정.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노을'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너무 슬퍼히잔 말자. 어쩌면 유시민의 위로가 조금은 위안이 될까. 

 


"왜 저렇게 느낌이 강할까? 노을이. 저는 일출을 보면 별 느낌이 없어요. 근데 오늘이 질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나요. 해가 넘어가는 게 정해져 있잖아요. 해는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우리네 인생도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돼 있어요. 근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는데 붉은 노을이 남아 있는 거야. 우리 삶의 끝이 저러면 참 좋겠다. 끝나는 건 끝나는 건데,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지만, 딱 끝나고 나서 약간의 여운이 남잖아요. 잊혀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 근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내 삶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 동안이라도 내 삶이 만들어 낸 어떤 것이 여운을 좀 남기면 그게 상당히 괜찮은 끝이 아닐까? 그런 막연한 느낌 같은 게 들어서 노을을 보고 있으면 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져요, 나는."


해가 넘어가는 게 정해져 있듯, 우리네 인생도 지게 돼 있다. 그 필연성을 담담히 받아들이되, '붉은 노을'을 생각해보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도 빨갛게 타는 석양은 남아 있다. 마치 그 이별을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잠시동안의 여운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던가. 당신의 '노을'도 아름답게 빛나길 바란다. 나의 노을은 어떤 여운을 남길까. 오늘 저녁엔 그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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