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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봉착한 <피고인>, <역적>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7. 1. 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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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자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 눈을 떠보니 기억은 사라졌고, 인생은 뒤바껴 있었다. 납득하기 힘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반면, 그가 상대했던 희대의 망나니 차민호(엄기준)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 형마저 자살로 위장시켜 죽여버렸다. 그리곤 형의 자리를 꿰차고 차명그룹을 이끌어 나간다. 대척점에 선 두 주인공의 극단적 대비, 시작은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2015년 MBC 연기 대상에 빛나는 지성의 단단한 연기가 드라마를 가득 채웠는데도 말이다. 



역시 허술하고 어설픈 설정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발코니 턱을 잡았다는 이유로 지문이 지워져 사망자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건, 작가의 기발한 '재치'라기보다는 유치한 '억지'처럼 여겨졌다. 공교롭게도 형의 아내인 나연희(엄현경)는 형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진 '비밀'을 안고 있었고, (또 다시) 공교롭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차민호는 형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또, 박정우가 계속해서 지문을 의심하며 압박해오자 아예 지문을 훼손해버린다. 그러면서 "박정우, 넌 날 절대 못 잡아"라며 웃는 꼴이라니.


그나마 2회까지는 허술했을지언정 가지고 있던 '패'를 몽땅 꺼내놓으며 제법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하지만 30일 방송됐던 3회의 전반부 약 30분의 분량은 없어도 무방한 내용이었다. '박정우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래서 엄~청 괴로워한다'의 무한 반복이라고나 할까? 행복했던(?) 과거사의 나열이라든지 교도소 내의 동료(?)들이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장면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주변인물 소개는 차라리 '자막'으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갔어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느릿한' 전개를 고집할 이유가 있었을까. 


최근 드라마들의 트렌드는 '빠른 전개'라 할 수 있는데,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 못한 박정우의 '오열'과 '고함'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고구마' 같은 답답함을 자아냈다. <피고인> 관련 기사에 달린 "100부작 입니까?"라는 댓글은 그야말로 '사이다'였다. 압축적으로 그려냈다면, 2회 안에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용들이었다. 아무리 지성의 연기가 훌륭하고, 시청자들이 그의 열연을 보길 원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 자체가 늘어지는데 배겨낼 재간은 없다. 



지난 3회의 하이라이트는 변호사 서은혜(권유리)가 박정우를 대면하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줄 실마리를 찾아내는 장면들이었다. 서은혜는 현장 검증 동영상을 어렵사리 구해, 그것이 '대역'을 써서 촬영됐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결정적인 '힌트'는 바로 박정우가 왼손잡이였다는 사실이었다. "어설프지 않아요?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찌르니까. 동영상 속의 남자도 어설프더라고요, 저처럼." 고작 동작이 어설프다는 이유로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변호사나, 이를 추궁하자 순순히 인정하는 검사 모두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서은혜는 박정우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우습게도 그에게 뺨을 맞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는 무조건 왼손으로 뺨을 때릴 것이라는 전제도 '변호사'의 것이라기엔 한심한데, 서은혜가 박정우로부터 뺨을 맞은 사건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바로 자신의 피고인을 위해 검사실에 숨어들어 관련 자료를 훔치다가 들통나 뺨까지 맞은 것이다. 검찰청에 CCTV는 괜히 있을까. 또, 이와 같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 자체가 없다는 걸 몰랐을까? 그렇다고 변호사의 뺨을 때리는 검사도 과한 설정이 아닌가. 


30일은 MBC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첫선을 보였던 만큼 <피고인>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도 고구마처럼 지루한 흐름, 어설픈 설정과 허술한 전개로 일관한 건 의아하다. 실제로 <역적>은 8.3%(TNMS 기준)로 동시간대 2위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한편, <피고인>은 12.8%로 2회의 12.9%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역적>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피고인>이 4회에도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면 '역전극'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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