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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미혼 여성직장인 담은 <미생>, 필요한 건 슬픔이 아닌 분노

너의길을가라 2014. 11.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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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금토드라마 '미생' 5국(회)에서는 BL(선적화물증권)을 둘러싼 자원팀과 영업 3팀의 갈등직장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워킹맘의 딜레마가 그려졌다. 두 가지 내용 모두 사회적으로 던지는 메시지가 뚜렷하면서도 묵직했다.



우선, BL을 둘러싼 갈등에는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부서 간의 갈등 속 양심의 문제가 화두로 던져졌다. 자원팀 정 과장이 결재 시 실수로 자원팀의 BL 서류를 빠뜨렸고, 마 부장은 이를 오 과장이 뒷돈을 챙긴 것이라 오해를 하게 된다. 가뜩이나 지난해 성추행 사건에서 오 과장이 증인으로 나선 일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던 마 부장은 한 건 잡았다고 생각하고 사건을 일파만파 키우게 된다.


안영이는 영업 3팀으로부터 BL를 받지 못했다고 우기는 자원팀 상사의 말을 의심하고 캐비닛을 뒤져 BL 서류를 찾아냈다. '진실'을 확인했지만, 안영이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팀을 배신하는 것이 되고, 팀으로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마치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 그가 머뭇거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고심을 하던 안영이는 성공한 워킹맘인 선 차장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안영이 : 여쭤볼 게 있는데요. 하는 게 옳은 일인데, 꼭 해야 하는 일인데 망설이고 있어요.

선 차장 : 왜요?

안영이 : 그렇게 하면 더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하죠?

선 차장 : 자원팀 일이이에요? 옳은 일을 모른 척 하면 버티기가 쉬워지나?

안영이 : 적어도 비난은 피할 수 있거든요. 여자라서 그렇게 했다는..

선 차장 :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옳다고 생각하는일에 남녀 문제가 있나. 기껏해야 양심 문제 정도 있으려나. 양심문제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과 알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직장 내에 만연한 성차별과 선배의 야단과 압박으로 기가 죽어 있던 안영이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남녀 문제가 있나"는 선 차장의 조언을 받고 다시 본연의 안영이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결국 안영이는 영업 3팀 장그래를 찾아가 BL 서류가 자원팀 캐비닛에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직접 나서기 힘들었던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생>은 양심의 문제를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과 알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원래대로라면 이쯤에서 '당신은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인가, 알기 때문에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겠지만, 그 질문이 나 자신에게 되돌아 왔을 때 망설임 없이 후자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어 질문을 꺼내기가 망설여진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일과 육아를 같이 하긴 어려워. 워킹맘은 어디서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죄인이야. 결혼하지마. 그게 속편해"


한편, <미생> 5국은 직장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워킹맘의 딜레마를 그 어떤 다큐보다도 사실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안영이는 직속 상관으로부터 "이래서 내가 여자랑 일이 안 된다는 거야! 희생 정신도 없고 말이야!"는 성차별 발언을 들었고, 임신 중 거듭된 야군으로 쓰러진 한 직원을 두고 동료 직원들은 "대체 애를 몇이나 낳는거야", "애 둘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떡하려고 또 임신을 했대? 이기적이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성공한 롤모델이자 슈퍼우먼인 선 차장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회사와 가정에서 각각 '선 차장'과 '엄마'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야근은 이어지고, 업무 관련 미팅도 쌓여 있지만, 어린이집이 끝날 시간이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날마다 반복된다. <미생>은 오 과장의 입을 빌려, "나도 남자지만, 이런 경우 남자들은 여자의 양보를 좀더 쉽게 생각해"라며 꼬집는다.



"워킹맘은 어디서나 죄인"이라며 "결혼하지마. 그게 속편해"라는 선 차장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언론은 합계출산율이 1.187에 불과하다며 걱정을 늘어 놓고,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겠다고 소리친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여성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더) 낳아도 되는' 사회일까?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아이를 낳으면 육아 문제는 대부분 여성에게 전가된다. 임신 직후부터 시작된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는 가시방석이고, 육아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남편과의 갈등은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게다가 시댁 어른들의 눈총은 덤이다. 워킹맘들은 두 가지 역할을 병행하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사표를 쓰게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한 사회가 함께 떠안아야 할 몫이다. 사업주가 사원들에게 직장보육시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육아부담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출퇴근시 별도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올 필요 없이, 함께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질 뿐더러 부모와 근거리에 있게 되는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직장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 휴가를 내게 되는 경우에 부서 내의 동료들은 업무를 분담하거나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반갑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당사자가 모를 리 없다.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한다', '희생정신이 없다'는 말을 듣기 싫어 야근도 자처하게 되고, 주어진 출산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한 불만이 애초부터 생기지 않도록 인력 충원 등 기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간호사의 경우 임신 순번제라는 것이 있어서 이를 거부하거나 임의로(라는 표현이 정말 이상하지만) 임신을 했을 경우에는 근무표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지어 타부서로 이동하게 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정부가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과연 이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사업장이 몇이나 될지 의문스럽다. 결국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미생>에 대한 기사 중에서 <텐아시아>의 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기사를 쓴 배선영 기자는 축 쳐진 어깨를 한 강소라를 보면서 '슬픔'을 느꼈던 모양이다. 필자는 강소라를 보며 슬픔을 느꼈던 배 기자 때문에 더 큰 슬픔을 느꼈다. 성차별을 당하고, 성희롱 발언을 듣는 강소라를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분노'다.


이는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아니라 바꿔야 하는 불합리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슬픔과 분노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남은 것은 고작 '인내'일 것이다. 그런데 참아내면 끝일까? 쏟아지는 슬픔을 견뎌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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