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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자녀들의 공감 안 되는 독립, <둥지탈출>이 씁쓸하다

너의길을가라 2017. 7. 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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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용돈과 부모님이 차려준 따뜻한 밥상으로부터, 익숙한 환경과 안락한 침대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첫 회만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시청할 필요가 없겠다'는 결정을 하기에 말이다. 씁쓸함이 워낙 컸던 만큼 판단은 명쾌하고 단호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들었던 '궁금증', 도대체 우리가 왜 연예인을 부모로 둔 다 큰 자녀들의 여행기를 지켜봐야 하는가, 라는 물음표는 점점 커졌다. 물론 그 중에는 '정치인(기동민 의원)'도 한 명과 중3인 자녀(이종원의 아들 이성준)도 포함돼 있었지만, '연예인 부모(김혜선, 박미선, 박상원, 최민수, 이종원, 기동민)'와 '다 큰 자녀'라는 큰틀을 바꿔놓기는 역부족이었다. 

 

 

1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못한 '의문'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다. 어차피 설명을 할 의도도 없어 보였다. '연예인 자녀가 어떨지 궁금한 거 다 알아'라고 말하는 듯 했고, '닥치고 시청하라'는 인상이 강했다. 연예인 부모들이 차례차례 등장해 시끌벅적한 수다를 늘어놨다. 흡사 동창회를 하는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이어서 '낯뜨거운' 자녀 소개의 시간이 이어졌다. 자녀의 짐 정리를 도와주는 부모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고, 과도하다 느껴질 만큼 애틋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들도 이어졌다.


비행기 티켓과 2만 루피(약 20만 원)만 지급되고, 모든 결정은 자녀들의 자율에 맡겨진다는 제작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급된 금액 안에서 식비와 교통비, 숙박비를 지불해야 하며, 부족한 생계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자 부모들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엄살을 떤다. 본격적인 관찰이 시작됐고, 자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들은 '저런 모습은 처음이야'라며 신기해 했다. 또, 비가 오는 날씨와 해가 진 저녁, 낯선 외국에 도착한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시청자로서의 인내는 여기에서 바닥이 나버렸다. 

 

 

 

 

물론 제작진은 '부모의 마음'으로 공감해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보다 너그로운 마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다 큰 연예인 자녀들의 좌충우돌 여행기조차도 '예쁘게' 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스튜디어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연예인 부모들은 이미 자녀들의 여행에 깊숙히 몰입해서 온갖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저들 중 몇 명은 조만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아들,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 '우리 딸, 너무 대견하지 않아?'라며 리액션의 끝을 보여줄 것이다. 


제작진의 '바람'과는 달리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둥지탈출>에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는 까닭은 간단하다. 연예인들의 가족들이 걸핏하면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는 세태에 대한 불편함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방송계의 금수저들이 아닌가. 그가 가진 깜냥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쉽게 방송에 등장하고, 그 출연을 계기로 각종 이익을 차지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불합리함에 대한 전면적 거부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둥지탈출>에 출연하는 6명의 자녀들이 엄마, 아빠가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 만큼의 재능과 매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NO'일 텐데, 이처럼 설득력조차 없는 섭외는 시청자들을 더욱 좌절시킬 뿐이다. MBC <아빠! 어디가?>와 KBS2<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육아 예능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아이들'이라는 무기가 있었지만, <둥지탈출>의 경우에는 20대 성인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사정이 더욱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제목도 어이가 없다. 금전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을 그들이 머물렀던 부모의 품이 '둥지'였던 것은 맞겠지만, 고작 11일 간의 '여행'을 두고 '탈출'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저 행복한 일탈 정도 아닐까? 그런 그들을 두고 '청년 독립단'이라 칭하는 건 아무래도 낯부끄럽다. 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무리 고된 환경 속에 몰아넣어 고생을 시킨다고 하지만, 그조차도 호사로 느껴지는 건 현재 대한민국의 20대들이 겪는 고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20대들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걱정하고, 취업 전선에 내몰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그런데 '부모를 잘 만난' <둥지탈출>의 저들은 한가롭게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며 제작비의 지원을 받아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 얼마나 난센스란 말인가. 차라리 봉사활동을 떠나거나 또래의 20대들처럼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게 하는 건 어땠을까. 어찌됐든 비판에 직면하게 될 테니, 눈속임을 할 바에는 '여행'이라는 콘셉트가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행은 분명 사람을 성장시키기에 설령 그것이 방송이라 할지라도 <둥지탈출>의 저들은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스튜디오에 진을 친 연예인 부모들은 그 장면들을 보면서 물개박수를 치고 웃음과 눈물을 보일 테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그런 공감을 보낼 여유가 없어 보인다. 김유곤 PD는 "연예인 자녀들이 연예계에 데뷔하기 위해 출연한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공언했지만, 굳이 우리가 연예인 자녀들의 성장기까지 챙겨봐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둥지탈출>은 첫회 시청률 4.083%로 좋은 성적표를 거머쥐었지만, 프로그램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비판이 거센 만큼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정작 김유곤 PD는 "<아빠! 어디가?>를 들고 처음 나왔을 때도 대중은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를 주셨"다며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는데, 만약 이것이 김 PD의 진심이라면 그의 현실 인식과 상황 판단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기에 그의 자기 복제는 넘어갈지언정, 사회에 대한 고민 부족과 대중에 대한 공감의식 결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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