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엄지원과 공효진이 만난 <미씽: 사라진 여자>가 특별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6. 12. 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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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시나리오에서 '엄마' 역할을 제외시켰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없어진 자식을 찾는 엄마는 너무나도 강하다. 약점이 없는 주인공이 나오면 영화가 성립이 안 된다." 모성(母性)의 위대함은 '인간'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을 간단히 뛰어넘어버린다. 그래서 그 힘은 초인적이고, 심지어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섣불리 끝을 잴 수 없고, 애시당초 깊이를 알 수 없다. 한계가 없다. 그걸 간파했던 봉 감독은 <마더>를 통해 '모성'을 따로 다루는데, 김혜자가 구현한 '마더'는 '엄마'라기보다는 '어미'에 가깝다.


그밖에 '모성'을 이야기한 영화로 김윤진이 주연을 맡았던 <세븐데이즈>를 빼놓을 수 없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강렬히 표현됐는데, 과감함 액션과 김윤진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가 잘 버무려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영화였다. 최근 작품 중에는 장르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비밀은 없다>가 떠오른다. 자신만의 처절한 복수를 완성시켜 나가는 광기어린 모성을 그려낸 손예진은 연기의 스펙트럭을 확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이처럼 '모성'을 다룬 영화는 제법 많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이하 <미씽>)가 '모성'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그러니까 (또 다시) '사라진 아이를 찾는 엄마의 이야기'였다면 뻔하다 여겼을 것이다. 식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목을 유심히 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사라진 아이'가 아니라 '사라진 여자'다. 그렇다. <미씽>에는 엄마 지선(엄지원) 외에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바로 보모 한매(공효진)다.


지선은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어린 딸을 키우지만 사정이 녹록치 않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국 출신의 보모 한매를 고용해 다은을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매가 다은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의사인 전 남편은 지선이 양육권 분쟁 때문에 아이를 일부러 숨긴 것이라 여기고, 경찰도 이에 동조하는 눈치를 보인다. 결국 지선은 스스로, 직적, 아이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씩 한매의 정체에 접근해간다. 이름도 신분도 가짜였던, 한매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이다.



<미씽>이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그리하여 특별해지는 포인트는 바로 '한매'다. 한국 농촌으로 시집을 온 중국 여성 한매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갖은 폭언(시어머니는 한매를 두고 '사왔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 한매의 역할은 아들을 낳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과 폭행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미씽>은 한매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위치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한국 국적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지선의 위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시달리고,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그는 한매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분명 두 사람은 계층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처해있는 위치와 상황은 그들 사이에 '유리벽'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선과 한매는 '모성'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 화해한다. 초반에는 제법 명확하게 구분될 것 같던 '가해'와 '피해'가 전복되고, 심지어 그 구분의 의미조차 상실한다. 



이전에 '모성'을 다뤘던 영화들이 결국 '분노'와 '복수'로 귀결(반전을 통해 모성 간의 충돌을 그려냈던 <세븐데이즈>조차도 그러했다)됐다면, <미씽>은 그 뻔함을 넘어 '모성'을 통한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로 나아간다. '모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난다고 할까? 그 결이 다른 접근과 태도가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물론 영화적으로 보면 '스릴러'라는 장르로서의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 무엇보다 너무 쉽게 이야기(사건)가 풀려나가는데, 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빨리 들려주고 싶은 감독의 조바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상업성'의 지배에 사실상 무릎을 끓은 한국영화는 판에 박힌 기획과 캐스팅을 반복해왔다. '남자 배우'들이 전면에 내세워졌고, '여자 배우'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왔다. 그와 같은 편향된 흐름은 최근에 들어 더욱 심화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자 배우 두 명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얕은 수준의 접근이 아니라 탄탄한 이야기 속에서 호흡하는 캐릭터를 소화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공포, 드라마, 멜로, 코미디 등 장르 불문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엄지원과 TV 드라마 속 '공블리'라는 틀을 깨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공효진은 <미씽>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엄지원은 히스테릭한 목소리와 섬세한 표정과 동작으로, 공효진은 특유의 무표정과 처연한 눈빛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두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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