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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울렸던 <미스 함무라비>, 법원의 닫힌 창도 두드렸을까?

너의길을가라 2018. 7. 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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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미스 함무라비>가 종영했다. 3.739%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마지막 회에서 5.333%까지 올랐다. 비록 한 자릿수에 불과한 시청률이었지만, 드라마가 주는 울림과 그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사실 '법조물'은 흔하디 흔한 장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검사 또는 변호사가 주축이 되는 기존의 법조물과는 달리 '판사'가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판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지난해 방영됐던 SBS <이판사판>이 떠오른다. 젊은 판사들을 내세워 그들의 성장 스토리를 그렸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미지근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단지 직업만 판사로 설정된, 무늬만 '판사 드라마'를 시청자들은 원하지 않았다. 



<미스 함무라비>는 구체적이었다. 집중 해부에 가까웠다. 법원의 구성과 권력 관계에 대해 다뤘고, 판사 개개인의 일상과 고뇌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부장판사를 필두로 좌배석과 우배석의 관계, 그들이 재판을 하고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치열하게 다뤄졌다. 또, <미스 함무라비>는 판사뿐만 아니라 참여관, 실무관, 속기사, 경위 등 법원 내 직원들까지 등장시켰고, 그들의 이야기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았다. 


구체적일 수 있다는 건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정확히 모르는 이야기를 전달할 때 뭉뚱그리기 마련이다. 구체적이라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느껴졌던 힘은 디테일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스 함무라비>가 '법원'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판사'라는 외계인(外界人)에 대해 구체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도 역시 간단하다. 극본을 쓴 문유석 덕분이다. 


현직 부장판사인 그가 쓴 극본은 디테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건 취재로 얻을 수 있는 시선과는 또 다른 리얼한 자기고백이었다. <미스 함무라비> 속에는 작가 문유석이 '판사로서' 겪었던 경험들과 수도 없이 품었을 고민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법원 내의 갈등구조, 조직 내의 부조리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문유석은 과감하게도 자신의 속한 조직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 



부장판사와 좌·우배석 간의 권력 관계, 법원 내에 팽배한 서열 구조와 만연한 성차별 등은 <미스 함무라비>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문제였다. <미스 함무라비>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을 통해 이러한 문제제기에 나섰다. 그리고 박차오름의 끊임없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보수적인 법원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미스 함무라비>가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섣부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단하지 않았다. 선과 악을 미리 정해두고 판단하지 않았고, 경청하고 또 경청했다. 현상에 집중하기보다 '왜 그랬을까?'라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 사건 속의 사람을 들여다 보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간단하고 쉬워 보였던 케이스가 한없이 어렵고 막막해졌다. <미스 함무라비>는 그럴 때마다 차분히 좀더 나은 답을 찾으려 끊임없이 궁리했다.


선의를 믿고 늘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좌배석 박차오름과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냉철한 우배석 임바른(김명수), <미스 함무라비>는 이 두 날개를 가동시켜 중심점을 찾아나간다. 그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는 건 굉장히 흥미진진한 공부였다. 그런가 하면 후배들의 의견을 모아 균형감 있는 판결을 내리는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세상에 저런 판사가 어디 있어?'라는 의문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주는 괴리감은 분명히 있었다. 작금의 사법부를 보라.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거래에 나섰던 게 바로 '양승태 대법원'이었다.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기여할 테니 상고법원 입법을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로비에 나섰던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를 위해 법관을 사찰했고, 은밀히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사찰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렇게 되자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민의 64%가 사법부의 판결을 불신한다고 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종영한 <미스 함무바리>를 보내야 하는 심정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그럼에도 희망과 기대감이 조금 더 크다 '세상에 저런 판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바람이야말로 온 국민의 공통된 희망사항 아닐까. 부디 현직 부장판사가 전하고자 했던 <미스 함무라비>의 간절하고 간곡한 메시지가 법원의 닫힌 창을 끊임없이 두드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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