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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를 바라는 뒤늦은 리뷰, <알쓸신잡> 고마웠습니다

너의길을가라 2017. 7. 3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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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그리고 유희열. 그들이 홍대의 한 카페에 다시 모였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출연진들을 다시 불러모아 '총정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젠 공식처럼 된 나영석표 애프터 서비스라고 할까. 그건 프로그램을 아껴준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출연진과 제작진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일이다. 잘 마무리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그렇게 만난 잡학박사들과 유희열은 못다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마지막 토크가 시작됐다. 그들의 얼굴이 반갑다가도 더 이상(이 아닌 당분간이 되길..) 그들의 수다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서운함이 뒤섞여 괜시리 심란했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이라는 기묘한 제목을 만들어 낸 양정우 PD는 개인적으로 소장해 두기엔 아쉬웠던 '뒷이야기'들을 대거 방출했다. 통영에서부터 시작됐던 여행은 순천, 보성, 강릉, 경주, 공주, 부여, 세종, 춘천을 찍고, 전주에서 마무리됐다. 두 달 간 국내의 10개 도시를 샅샅이 훑었던 짧고도 굵은 여정이었다. 


정치, 사회, 경제, 역사, 문학, 과학, 미식, 음악 등 모든 분야를 망라했던 말 그대로 지식(잡학)의 대축제였다.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이 알뜰살뜰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수다'의 꽃을 피우는 사이 텔레비전 안팎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고, 갸우뚱했다. 도전적이었고 모험적이었던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영석'이라는 이름값이 전제 됐고, 지식소매상 '유시민'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바탕됐지만, '아재들의 대화'라는 콘셉트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새 시청자들은 아재들의 끝없이 펼쳐지는 수다에 귀를 쫑긋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재들이 발산하는 '신비한' 매력에 푹 빠져 금요일 저녁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1회 5.395%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최고 7.192%를 기록하는 등 평균적으로 5~7% 사이의 높은 그리고 안정적인 구간을 보행했다. 방송 중은 물론 그 후에도 관련 내용들이 실시간 검색어를 독차지했고, 포털 사이트의 인기 기사에는 어김없이 <알쓸신잡>에 대한 뉴스들이 랭크됐다. 


심지어 휴가철을 맞아 <알쓸신잡>의 여행지를 참고 삼아 국내 여행을 떠나는 이른바 '알쓸신잡 투어'를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유시민 작가가 방문했던 관광지 및 유적지를 찾아가(서 부정확하고 왜곡된 정보들에 딴지를 걸어보)고, 황교익 맛칼럼니스트가 추천한 식당을 방문해 음식을 맛본 후, 김영하 작가가 보여줬던 불굴의 체험 정신을 본받는 식이다. 혹은 정재승 박사의 유행어 'OO하면 OO죠.'를 외치며 나만의 유니크한 여행 동선을 개척하는 것도 존중받게 됐다. 

 

 

"정말 빛나는 것들은 대화를 통해서 나온다. 이야기하는 중에 더 빛나는 것들이 많이 나왔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이 있었으면." (김영하)


이렇듯 <알쓸신잡>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국 '우리는 왜 <알뜰신잡> 속 아재들의 대화에 빠져드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의 향연이 주는 쾌감일 것이다. 각 분야에 정통한 네 명(엄밀히는 다섯 명이다. 유희열은 음악과 관련한 분야에서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전문가니까)의 전문가들이 대화라는 방식을 통해 지식(잡학)을 전달하는데, 우선 양(量)에서 보는 이들을 압도할 뿐 아니라 그 질(質)도 매우 양질이었다. 


실제로 '잡학박사'들은 회당 평균 35개, 총 282개의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정해진 규칙 따윈 없었고, 금기나 제약도 두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 과정 속에서 보고 느낀 것들과 거기에서 파생된 여러 주제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때로는 서로의 의견을 반박하는 진지한 토론이었고, 때로는 웃음기가 가득한 편안한 담소였다. 그들의 대화는 사피오 섹슈얼(sapio sexual, 똑똑하거나 지혜로운 사람 또는 성숙한 사람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
)들을 자극하기에 충분, 아니 넘쳐 흘렀다.

 

 

두 번째 이유는 좀더 본질적이다. 그 까닭은 초반에 이미 밝혀졌다. 2회 방송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시민과 황교익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자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합의를 이뤄서 어느 작품에 동의하는 건 불가능하고, 어떻게 보자면 각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소설이 가치가 있는 거예요. 생각의 다양성들을, 감정의 다양성들을 불러 일으키는 거예요." 여기에서 <알쓸신잡> 속 아재들의 대화가 기존에 우리가 접해왔던 아재들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됐다.


우리는 <알쓸신잡>의 대화에서 서로의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다시 말해서 <알쓸신잡>은 대화(그것이 수다이든 잡담이든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상관없다)라는 행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시청자들은 '(아재들의) 대화가 저렇게 유익할 수 있구나'를 넘어서 '저리 재미있고 가치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또, '저 대화의 현장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장면들을 머릿 속으로 그려본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리 되고자 노력하게 되지 않았겠는가.

 

이른바 '인문 예능'이라는 형식이 기존의 방송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강연 등의 방식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인문학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과정이 단순한 전달을 넘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사유하는 법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 일리일 뿐"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것 외에 다양한 일리들도 존재한다."는 황교익의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알쓸신잡>은 그 어떤 '강박'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저들의 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떻게, 또 모여서, 얘기 또, 해주세요. 저 듣게요." 



유희열은 말미에 '재회'를 이야기했다. 그건 유희열 개인의 바람인 동시에 제작진의 바람이면서 시청자들의 강렬한 희망이기도 했다. 2017년 상반기 최고의 예능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알쓸신잡>이기에 당연히 시즌2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대중들의 요구와 바람이 지엄하기에 <알쓸신잡>이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을 고민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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