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미혼 여성에게 부담스러운 이름 산부인과, 여성의학과로 바꾸면 안 되겠니?

너의길을가라 2015. 3. 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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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이상이 생기면 피부과를 찾고, 코나 기관지가 아프면 이비인후과를 찾아야 한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짝 맞추기'를 굳이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성에게 생식기 관련 질환이나 이상 증세가 있다면 '산부인과(産婦人科)'를 찾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부인과(婦人科)'를 찾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미혼 여성의 입장에서 '산부인과'를 찾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가임기 여성 출산 건강 관리지원 방안 연구'에는 안타까운 내용의 설문조사가 실려 있는데, 성인 미혼 여성 1천 314명 중 53.2%(699명)이 생식 건강에 이상을 경험했지만, 그 가운데 56.9%(398명)가 산부인과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청소년(708명)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는데, 생식 건강에 이상 증상을 느낀 42.1% 중에서 고작 23.5%만 산부인과를 포함한 병 · 의원을 찾았다고 한다. 대부분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자가대처를 하거나 그냥 참는다고 응답했다. 답은 뻔하지만, 그래도 질문을 던져보자. (청소년을 포함한) 미혼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헬스조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이상림 부연구위원은 "산부인과적 이상을 경험했음에도 병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은 다양한 문화 인식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라면서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부정적 사회인식을 내재화하거나 생리 불순과 같은 부인과적 이상 증세 등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하다"라고 분석했다.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왜곡되어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하물며 청소년은 어떻겠는가? 가임기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상담이나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적극 권장해야 할 일이다. 또, 몸에 이상이 있다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상식적인 일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통용되지 않고 있다.

 

 

 

 

이상림 부연구위원은 "청소년에게 산부인과 상담 쿠폰을 제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부인과에 방문할 기회를 마련하고, 성인기 여성에게는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실시해 산부인과 방문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내야 한다"며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두루뭉술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산부인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사실 그 명칭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부인과'를 떼어내거나 이름을 바꾸면 된다. 본래 산부인과(産婦人科)는 '임신, 분만, 신생아 및 부인병을 맡아보는 의학의 한 분과. 또는 그 부문을 진료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산과학'과 '부인과학'이 합쳐진 것이다. 영어로는 obstetrics and gynecology 이다.

 

ⓒ 쿠키뉴스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처럼 관련 의학을 한 분과로 통일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명칭 자체가 '산부인과'로 되어 있다보니 '산과'가 아니라 '부인과'에 볼일이 있는 여성도 당연히 '산부인과'로 갈 수밖에 없다. 성(性)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무지한?)인 사회에서 '산부인과'를 들르는 여성은 무조건 '임신' 혹은 '출산'과 연결되고, 그 이후에는 제각각의 상상력이 개입되면서 그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 가해진다.

 

'산부인과'에서 '부인과'를 떼어내는 것은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는 일이다. 당장 수입이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관련성이 깊은 두 과(科)를 굳이 분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하나로 모아진다. 이름을 바꾸자! 사실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몇 년 전부터 있어 왔다. 지난 2012년 10월 6일,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대의원총회를 열어 '여성의학과'로의 개명에 합의했다.

 

"각종 규제와 제도로 산부인과가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산부인과 대신 '여성의학과'로 명칭을 바꾸고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변화를 향한 발걸음은 지지부진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흐른, 2014년 4월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명칭을 대한여성의학의사회로 병용하자는 정관 개정안을 내놨다"고 발표했다. 모든 것은 '먹고 살기 힘든'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의사회 측의 주장을 들어보면, '불합리한 규제'로 산부인과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산부인과'라는 이름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듯 보인다.

 

 

출산률이 바닥을 기면서 그만큼 수입이 현저히 떨어진 그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에, 여기서는 초점을 '여성의학과'로의 명칭 변경에만 맞추기로 하자. 조병구 총무이사는 "교과서에서도 산부인과, 부인과로 나눠 쓰지 않고 여성의학(women's health)으로 포괄해서 쓴다. 외국에서도 Total Women's Care 등으로 명칭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기에는 '유방이나 불임 등 질환을 포괄해서 진료 · 치료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산부인과'라는 명칭이 갖는 부담감, 그로 인해 높아진 심리적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는 '여성의학과'라는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이름이 적합해 보인다. 이처럼 좋은 해법이 있음에도 각 의학과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 쉽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헛발질을 연발하는 여성가족부가 '산부인과' 명칭 문제에 천착해 여성들의 권익을 높이는 데 힘을 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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