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사라진 연예인 조문 사진, 기자들의 자성이 반갑다

너의길을가라 2014. 7. 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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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4일,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유채영(41·본명 김수진)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동료 연예인을 비롯해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네티즌들도 가슴 아파하며 애도를 표했다.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위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남편인 김 씨가 한 인터넷 매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알려졌다. 김 씨는 "채영이가 활동할 당시 대중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 같다. 지금 (채영이가) 아프고 힘드니까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기도와 응원을 당부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그 기사를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응원의 글을 남기고 기도를 했지만, 끝내 유채영 씨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수 · 배우 · 예능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과 호흡했던 유채영 씨의 밝은 웃음과 쾌활했던 모습은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이 윽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된 빈소에 동료 연예인을 비롯한 조문객이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임종 순간까지 병실을 지켰던 배우 김현주는 처음부터 빈소를 지켰고, 김성수, 성대현, 주영훈, 채연, 유재석, 김종국, 임창정, 김경식, 정종철, 정가은, 신봉선, 라미란, 이경실, 박미선, 송은이, 노호철, 정준하, 김구라, 사유리 김정민, 구지성, 송지효, 등 많은 동료들이 빈소를 찾았다.



- 과거에 기자들이 찍어댔던 '조문 사진',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사진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한 가지 '예전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이른바 '조문 사진'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예전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면, 연예인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뒤에는 항상 '조문 사진'이 포털 사이트를 가득 채웠었다. 조문을 하기 위해 빈소를 찾는 실의에 빠진 연예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경쟁적으로 셔텨를 터뜨리는 기자들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를 넘어서 비(非)인간적이었다. 


아 무리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업적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고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빈소가 아닌가. 고인을 떠나보낸 가족과 친지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가. 그런 곳에까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고작 연예인의 모습을 찍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렇게 실시간으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서 네티즌들은 연예인들의 '조문 패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쏟아냈다. 그들의 옷이 조문하러 오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비아냥대기도 했고, 누가 가장 슬피 울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연예인의 죽음마저도 상업적 도구로 활용되는 비정한 자본주의 세상의 씁쓸한 단면이었다.



그 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동료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관련 기사에는 '사진공동취재단'이라는 이름의 유채영 씨 모습이 담긴 빈소 사진만 담겨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조문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일까? <쿠키뉴스>가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故유채영 빈소, 스타들 조문 행렬.. 그런데 사진은 없다?)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17년차 사진기자 한 명의 제안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난 2011년 4월 SG워너비 출신 가수인 故 채동하 씨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진기자는 빈소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붙였다. "빈소 내 스케치는 전체 사진기자 풀로 빈소라 차려진 첫째 날만 진행하고, 모든 매체 사진기자는 빈소 풀 취재를 제외한 유가족, 조문객을 취재하지 않는다" 이 일을 계기로 기자들이 빈소까지 쫓아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추한 짓'은 사라졌다. 기사에서 권남영 기자는 "3년 째 지켜지고 있는 약속이 참 고맙다"고 썼다. 




권남영 기자의 말처럼 소위 '기레기'들은 "
조문객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3년 동안 지켜오고 있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사를 검색해봤다. (기자가 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체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분명한 것은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몇몇 언론사의 경우 연예인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더 이상 '조문객을 취재'하지 않았다.



조문을 온 연예인 관련 기사를 쓸 때에는 이번처럼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빈소 사진을 쓰거나 이미 보도됐던 연예인들의 다른 사진들을 사용했다. ' 조문객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자 상식)이 이제 기자들에게도 확실히 정착이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기자들도 괴로웠을 것이다. 그들도 장례식장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버린 기자들에게 힘이 있을 턱이 없다. 위에서 '찍으라면 찍어야' 하는 게 직장인의 비애가 아닌가?


그 동안 '조문 사진'은 잘 팔리는 사진이면서도 엄청난 비판을 받아왔다. 17년차 기자의 제안도 그동안 숱하게 제기됐던 비판에 대한 자구책이었다. '인간적으로 장례식장까지 가서 사진 찍는 건 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기자들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인간적 고뇌와 자괴감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기자의 제안이 꺼림칙해하던 모든 기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리라.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죽음 앞의 슬픔마저 상품화하는 극단의 상황은 막아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낸 셈이다. 기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이 약속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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