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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김생민 시대와 또렷해진 명암, 그의 건투를 빈다

너의길을가라 2017. 12. 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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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도 이런 기생충이 있나요?", 간디스토마."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한 이영자는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에게 김생민과 비슷한 성향의 기생충이 있냐고 물었다. 서 교수는 '간디스토마(간흡충증)'를 언급하면서 "과거 1970년대만 해도 회충 감염률이 70~80%에 달했을 때도 간디스토마의 감염률은 5%였는데, 회충들이 멸종한 지금 여전히 비슷한 감염률을 유지하고 있는 간디스토마가 1등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의 적절한 비유에 패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김생민도 자신은 그냥 예전과 똑같이 지금의 위치를 유지했을 뿐이라며 격한 공감을 표현했다. 



1992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생민은 26년 동안 말 그대로 한결같았다. 특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적은 없었지만, 꾸준히 방송가에 머무르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개그맨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했다. 하지만 '리포터'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 출연한 지 어언 23년이 지났고, KBS2 <연예가중계>는 21년, SBS <농물농장>은 17년째 근속이다. 그것이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김생민의 근면성실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던 김생민은 26년 만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게 된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전화 연결이 됐던 게 인연이 돼 경제자문위원으로 고정 출연하게 됐고, 6월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별도의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론칭하게 됐다. 수면 아래에서 들끓기 시작한 김생민에 대한 지지와 인기는 곧 그를 지상파로 끄집어 올리게 된다. 지난 8~9월 KBS2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15분짜리 8회로 자투리 편성했고, 김생민 신드롬이 불기 시작하자 아예 70분으로 정규 편성을 하기에 이른다.



대기만성이라 할까.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는 시대를 만났다고 할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욜로적 소비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자, 그 반대급부로 '절약(저축, 적금)'이 사회적 미덕으로 제시됐다. 그 중심에 자린고비 정신으로 10억 이상을 모은 '통장요정' 김생민이 있었다. 그의 '과소비 근절 돌직구 재무 상담쇼'는 헬조선의 피폐한 삶을 견뎌내야 하는 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김생민의 조언과 훈수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것이었다. 그렇게 김생민은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바야흐로 김생민 전성시대다.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의 얼굴을 몰라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섭외 요청만 20개가 넘게 폭주하고 있다고 하고, SM C&C라는 대형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는 쾌거를 이뤘다. 데뷔 이래 소속사와 매니저 없이 활동을 이어왔던 김생민에겐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기존에 출연하고 있던 프로그램 외에 여러 예능을 통해 존재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첫방송을 시작한 tvN <짠내투어>와 11월 29, 30일 연속 방영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이 그 출발점이다.


<짠내투어>는 시청률 2.934%로 순조로운 스타트을 끊었고, <전지적 참견시점>은 5.6%, 5.3%의 산뜻한 성적을 거두며 정규 편성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두 프로그램은 '짠돌이' 김생민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 매력을 발산하기에 매우 적합한 작품이었다. 우선, <짠내투어>에선 박나래, 정준영과 함께 여행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김생민은 말 그대로 짠내나는 계획으로 가성비 높은 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지적 참견시점>에서는 전성기를 맞이한 김생민의 일상을 공개하는데, 절약 정신이 묻어나는 삶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라고 했던가. 모든 일엔 명암(明暗)이 있기 마련이다. 김생민 신드롬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많아지자 그만큼 대중들의 요구도 커졌다. 자연스레 노출 빈도가 높아졌고, 그 농도도 짙어졌다. <김생민의 영수증>처럼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프로그램과 달리 '관찰(또는 야외) 예능'의 경우에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김생민에겐 크고 위험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를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약을 앞세운 '짠돌이' 캐릭터는 서민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 검소함과 쪼잔함은 한끗 차이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적당한 수준의 절약은 호감을 품게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하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지 않던가. 주변에 김생민과 같이 짠내가 풀풀나는 친구가 있다면 (그와 깊은 수준의 인격적 교류가 생기지 않는 한) 솔직히 거리를 두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실제로 김생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김생민의 행동들은 모범이 되고 유익한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8,000원어치 주유를 하고 물을 한 병 챙겨가는 장면일 것이다. 기름값에 민감하게 반응해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들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단골 주유소보다 600원 가량 비싼 강남의 주유소에서 8,000원어치만 기름을 넣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일 것이다. 하지만 물까지 얻어가는 건 지나쳤다는 반응이 많다.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짠내투어>에서 보여준 가성비'만' 따지는 여행 방식도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콘셉트를 좀더 과하게 잡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에서조차 자린고비의 태도를 고수하는 건 '저럴 거면 뭐하러 여행을 가나'라는 씁쓸함을 남겼다.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경비를 아끼는 태도는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함께 여행하는 이들조차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쓸 때는 과감하게 쓰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김생민에 대한 비난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매우 고가(高價)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증폭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건 평생에 걸친 절약의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난의 소재는 결코 아닐 것이다. 수입이 적다고 하더라도 연예인인 그의 수입 구조는 일반 서민들과 확연히 다를 테지만, '절약 재테크'의 산증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김생민 신드롬은 항상 같은 자리에 가만히 지키고 있었던 그와 특정한 시대의 조우(遭遇)인 만큼 이 우연한 기회를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선 김생민의 노력이 부단히 요구된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점차 보폭을 넓혀갈 김생민이 자신의 캐릭터를 보다 긍정적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시청자들과의 공감대가 그의 유일한 무기인 만큼 극단을 향해 치닫는 예능의 문법에 갇혀 과도한 연출을 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또, 한정적인 캐릭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영리하게 돌파하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너무 주눅들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그에겐 돌아갈 터전, <출발! 비디오 여행>이 있으니까. 26년 세월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김생민,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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