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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낭중지추] 김원해, 그가 써내려가는 배우열전

너의길을가라 2017. 2. 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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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됨을 이르는 말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얼마 동안은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별다른 표시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기간이 제법 길어질 지도 모른다. 1년, 2년, 그러다 10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 이상이 흘러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뾰족함'이 주머니를 뚫기 마련이다. 송곳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빛'을 보는 배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뚫고 나왔구나!' 막혀 있던 강이 터지듯,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그들을 바라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나는 접어두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서 처박아놔서 이거 어딨는지 찾지도 못해. 근데 나도 한때 있잖아. 여기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 만큼 날카롭고 빳빳하던 시절이 있었어. 근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무뎌지고 구겨지더니,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가더라. 결혼할 때 한 번, 애 낳고 나서 아빠 되니까 또 한 번, 집 사고 나서 또 한 번, 그리고 애 대학갈 때쯤 돼서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이게 다 녹아서 없어졌더라구." (KBS2 <김과장> 10회 중에서)


▲ 배우(俳優) : 연극이나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하는 사람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tvN <시그널>부터 tvN <혼술남녀>, 그리고 2017년 상반기 가장 뜨거운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KBS2 <김과장>까지 그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배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입밖으로 흘러나온다. "야, 진짜 배우다, 배우. 저런 사람이 진짜 배우지." 물론 연기를 업(業)하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라는 이름을 갖지만, 그 말에 단순히 '직업'이라는 의미를 넘어 '존경심'을 담는다면, 김원해는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다.


물론 그는 '주연' 배우가 아니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 있다. 또, 제작 단계에서 캐스팅 선택지의 첫 번째일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면, 그의 존재감은 주연 배우에 못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아우라'를 뽐낸다.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시그널>을 예로 들어보자. 김혜수와 조진웅 그리고 이제훈이 막강한 포스를 뽐냈던 그 드라마에서 김원해는 자신만의 맛깔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목배개를 차고 컵라면을 들고 등장했던 김계철 형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혼술남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타 강사 앞에서는 나긋나긋한 표정과 말투로 기분을 살랑살랑 맞춰주면서 만만한 강사(민진웅)에게는 잔소리를 쏟아내며 핀잔을 주는 밉상 상사의 모습을 100% 리얼하게 구현했다. 게다가 또 회식은 왜 그리 좋아하는지, 또 어쩜 저리도 우리 회사 상사 같은지, 많은 시청자들이 김원해가 만들어 낸 '현실감'에 몰입했다. 그러면서도 민진웅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곁을 지키며 손을 잡고 다독이는 뭉클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그널>에서는 강력계 형사, <혼술남녀>에서는 공무원 학원의 원장. 이처럼 김원해는 디테일한 직업 묘사와 리얼한 생활 연기를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의 리얼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빨리 몰입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한다. 그렇게 마련된 배경 속에서 주연 배우를 비롯한 다른 연기자들은 마음껏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김원해라는 배우가 만들어 내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김원해가 가진 저력은 <김과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현된다. 



"나, 적어도 앞으로 6, 7년은 더 버텨야 돼. 하나 있는 딸래미 대학은 끝내줘야 한다고. 자꾸 없는 일도 있게, 작은 일도 크게 만들지 말자고. 부탁이야." (KBS2 <김과장> 9회 중에서)


명문대 출신으로 한때는 TQ그룹의 잘 나가는 사원이었던 추남호, 그러나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 만큼 날카롭고 빳빳하던 시절'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그저 자리를 보전하는 게 우선인 경리부장일 뿐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머리를 조아린다. 자존심 따위 접어둔 지 오래다. 새파랗게 어린 직장 상사의 막말도 꾸역꾸역 참아낸다. 간도 쓸개도 내버렸다. 왜 화가 나지 않겠는가. 분노가 치밀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는 추 부장에게 회사는 단지 '그'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아둥바둥 버텨야만 하는 곳이다.


이 짠내 가득한 캐릭터를 김원해는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궁민의 활약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회사'가 배경인 <김과장>이 수많은 샐러리맨들의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었던 건 역시 김원해의 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과장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사이다'를 선사하고, 시청자들에게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물하는 바탕에는 추 부장이라는 캐릭터가 제공하는 현실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균형감이야말로 <김과장>의 돌풍을 만들어 낸 진짜 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1997년 <난타>의 원년 멤버로 합류(<김과장>에서 보여줬던 현란한 칼 퍼포먼스는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했던 김원해는 tvN <SNL>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이후 <명량>, <해적>, <타짜2>, <검사외전>, <아수라> 등 스크린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했고, 지금은 '김원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배우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쯤되면 더 욕심을 부릴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주연배우로 남고 싶은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은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OSEN>, '시그널' 김원해, "주연배우로 남을 욕심은 없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김원해가 그려나갈 또 다른 '캐릭터'들이 기대된다. 또, 앞으로 그가 추구하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배우'로 오래토록 대중 곁에 남길 바란다. 주머니를 뚫고 나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이고 있는 '낭중지추' 김원해를 응원한다. <김과장>식 말장난을 한번 해보자면, 대중들은 더욱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배우 김원해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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