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난 8일과 9일, 사전투표를 통해 전체 유권자의 12.19%(513만 1,721명)가 미리 투표를 마쳤지만, 여전히 많은 유권자가 내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뜻'을 정한 유권자도 많겠지만, 기표소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유권자도 많을 것이다. 



또는 투표 자체를 고민하는 유권자도 있을 텐데, 가급적이면 자신의 (의무이면서) 권리를 행사하고 떳떳하고 든든하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빨간날'을 즐기시길 바란다. 간혹 SNS를 비롯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투표만이 정치를 바꿀 수 있고, 투표만이 생활을 바꿀 수 있다'며 강요에 가까운 투표 독려가 펼쳐져 그것이 민주주의 전부인양 호도되곤 하지만, 어쨌든 투표가 정치를 바꾸고 생활을 바꾸는 '하나의 통로'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반 의석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그것을 저지하는 한편 호남에서의 맹주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호남 석권을 토대로 제3당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은 국민의당, 의미있는 의석을 확보해 진보 정치의 확대를 염원하는 정의당. 이번 총선에 임하는 각 정당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위와 같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군소 정당들의 약진은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인다.



한편, 청와대는 대통령의 뜻에 거역했던 '반역자'들이 대구에서 응징받고,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어 향후 '레임덕'을 최소화하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움직임도 분주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충북 청주 청원구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이번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데,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는 국회가 되길 기원하겠다"는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겼다.


어찌보면 적절한 수준의 발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 자리에서 총선과 관련된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긴 한다. 대통령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선거개입 논쟁으로 이어졌다. 더민주의 김성수 대변인은 "지난번 해외순방 전에 두차례 지역을 다녀오셨는데, 그때도 중단하라고 요구했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지만 의도는 아주 뻔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안형환 대변인은 "대통령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행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모든 행정 행위까지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양 쪽의 의견이 모두 틀리지 않다. 조금 달리 풀어보자면, 사실상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①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機關·團體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 

①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신설 2014.2.13.> 

②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 경우 공무원이 그 소속직원이나 제53조제1항제4호부터 제6호까지에 규정된 기관 등의 임직원 또는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따른 취업제한기관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하는 선거운동으로 본다.


물론 현행법(공직선거법)에 근거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유의미한 논쟁이다. 지난 2004년 故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게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가 탄핵을 당하는 전례가 있지 않은가.



- SBS,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③ : "최대한 하지마" 법치 준법의 상징 '대.통.령' -


그 아픔을 기억하는 야당 지지자들의 입장에선 이를 고스란히 '되갚아' 주고 싶은 심정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례'를 남긴 탓에 앞으로 그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탄핵이 가능한 위험 수위가 너무도 뚜렷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할 수 있게 된 탓이다. 무엇보다 '탄핵'을 시도할 만한 의석 수를 (야당 측에서)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선거 '관여(개입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기 때문에 관여 정도로 해두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발언을 했고, 또 지난해 11월에는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며 노골적으로 의중을 내비쳤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진박(眞朴)을 '구원'하기 위해 대구에 내려가기도 했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이 일었었지만, 사소한 말다툼 정도에서 마무리됐다. 이를 보건대,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버린 것이다. JTBC <썰전>에 출연하고 있는 유시민은 이를 두고, "정치 이론상, 대통령의 선거 관여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면서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현직 연방 총리나 대통령의 선거 운동을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정당의 1번, 수석당원인데, 이를 막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다"는 그의 말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항변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정치 이론에 비춰봤을 때 설득력 있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전 국무장관과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Bernard Sanders) 중 힐러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힐러리가 후보로 결정되면 직적 선거 운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처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면 수석당원인 오바마가 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주지사 선거를 비롯해 각종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연설을 하곤 했다. 이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자신이 소속한 당을 위해 선거에 임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불법적인 일도 아니다.



물론 전원책 변호사의 지적처럼 "권력의 개입이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부정 선거로 점철됐던 과거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이 최근에 치러진 몇 번의 선거만 놓고 보더라도 부정이 판을 친 명백한 '부정 선거'가 아니었던가? 


만약 이런 후진적 양태가 개선되기만 한다면, 대통령의 선거 관여를 옥죄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뜬금없이 '야당심판론'이 재기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거는 '대통령'과 그가 소속된 '여당'에 대한 평가의 성격을 띤다. 대통령과 여당을 분리한다는 건 선거공학적인 차원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3년 간의 국정 운영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집권'에 대한 (평가란 의미의) 심판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를 충분히 고려해서 내일 투표장을 찾길 바란다. 만약 그동안 대통령이 잘했다고 판단된다면 여당에 힘을 실어주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야당에 표를 줘 견제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보다 발전해서 대통령이 정당의 수석당원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그래야 대통령이 좀더 책임감 있게 국정수행을 하지 않겠는가?)하는 한편, 유권자들도 대통령과 여당을 연계해서 바라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부디 대통령이 선거에 관여했니 안 했니, 와 같은 후진적인 논쟁이 지루하게 반복되지 않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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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