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박람기

대영박물관전 - 영원한인간, 박물관에 대해 생각하다

너의길을가라 2015. 12. 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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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博物館) :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 자료를 수집ㆍ보존ㆍ진열하고 일반에게 전시하여 학술 연구와 사회 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


'박물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보존(保存)일까? 질문은 질문을 부른다. 그 보존은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보존일까? 그리고 보존만 된다면, 그 과정은 용납되는 것일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다녀왔다. '대영박물관전 - 영원한인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3년간의 기획! 한국 최초 전시! 전 시대와 전 대륙을 아우르는 방대한 인류사 전시!' 이 매혹적인 홍보 문구를 보라. 누구라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구미(口味)가 당긴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시작됐다. 어째서 '전 시대와 전 대륙을 아우리는 방대한 인류사'가 대영박물관에 있단 말인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파르테논 신전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현재 이 신전은 둘로 쪼개져 영국과 그리스에서 각각 보관되어 있다. 19세기 초 투르크 주재 영국 대사 엘긴이 신전의 대리석 조각을 톱으로 잘라 훼손한 후 영국으로 가져갔던 탓이다. 그 조각들은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그렇게 옮겨진 것이 파르테논 신전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보존과 반환을 두고 날선 공방이 이어졌고, "아테네가 아니라 런던에 있었기에 보존이 가능했다"는 주장과 "파르테논은 곧 그리스의 것이며 그리스의 것이므로 파르테논은 그리스에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격렬히 부딪쳤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 것일까? 물론 전자의 주장에는 반환의 선례를 남기면 대영제국 시절에 '약탈'했던 다른 문화재도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불우한 근현대사를 경험했던 역사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후자의 주장에 좀더 마음이 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국외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는 16만 342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매매를 통해 건너간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약탈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일본이 소장한 우리 문화재는 6만 7,708점이나 된다. '일본에 있었기에 보존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소개했던 것처럼 '대영박물관 한국전 - 영원한인간'에는 전 시대, 전 대륙을 아울러 영원한 테마인 '인간'을 주제로 한 유물(조각 포함)과 회화 등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76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기원전 8,400년 전부터 2012년을 넘나들었고,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아랍, 유럽, 지중해, 이집트,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그야말로 전 세계를 아울렀다. 


전시되어 있는 전 시대의, 전 세계의 수많은 '인간'들 앞에 서는 순간마다 '질문'은 계속 떠올랐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마주치는 예리코(Jericho, 여리고)에서 출토된 기원전 8,400년 전의 해골에서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유려한 조각상, 고대 이집트의 신비로운 유물,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얼굴 형상, 중국과 일본, 한국의 얼굴이 담긴 그림, 라파엘로, 피카소, 마티스 등 대가들이 담은 인간의 모습들은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 했다.


그 많은 '인간'들은 도대체 이 전시를 찾아 자신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후세의 '인간'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이국적인 땅의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기괴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보존의 공간 혹은 교육의 현장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덮여 있는 박물관의 '욕망'과 '약탈'이라는 본질은 결코 그 추악함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예상치 못했던 '반가움'도 있었다. 당신의 '미의식'은 건강한가요? 라는 글을 통해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했던 오토 딕스가 전쟁의 끔찍하고 참혹한 참상을 화폭에 옮긴 「적진으로 돌진하는 병사들」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그래, 박물관이 아니라면 이 작품을 이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겠는가.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스쳤다. 


부끄럽게도 이번 전시 감상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19~20세기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빼앗았는지를 체감하는 동시에 이 다양한 것들을 한 데 모아 볼 수 있는 것에 편의(便宜)를 느끼는 모순 속에 1시간 30분을 헤맨 양가적(兩價的)인 감정 속에 짓눌렸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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