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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의 '슬로 티비', <숲속의 작은 집>이 만들 기적이 기대된다

너의길을가라 2018. 4. 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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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필수품을 확보하면 불필요한 것을 더 얻으려 애쓰지 말고 비천한 노동으로부터 한숨 돌리고 삶의 모험을 감행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에서 -


피실험자 A와 B가 각각 제주도의 외딴 숲 속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전기, 수도, 가스 등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누렸던 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다. 자가발전을 통해 동력을 얻어야 한다. 이른바 '오프 그리드'의 삶이다. 최소한의 필수품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과연 그들은 '미니멀 라이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언뜻 듣기에 다큐멘터리 같지만,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분명히 예능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할까. 연출을 맡은 이가 예능계의 '미다스의 손' 나영석 PD이고, 피실험자 A와 B가 소지섭과 박신혜다. 나 PD의 기획력에 한번 놀라고, 나 PD의 섭외력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오래된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나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 아무리 더불어 있기에 좋은 사람이라 해도 이내 지루해지고 싫증이 난다. 나는 홀로 있는 것을 즐긴다. 고독만큼 마음이 잘 통하는 벗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는 보통 집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에서 -


언뜻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떠오른다. 월든(Walden)의 호숫가 숲속에서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 동안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했던 철학자 말이다. 소로는 문명사회에 반대하고, 타인으로부터 강요받는 삶에서 벗어나길 꿈꿨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사회를 비판하고, 스스로를 통해 대안적인 삶이 가능하는 걸 증명했다. 


소로는 주위의 자연을 관찰하고, 교감을 나눔으로써 깊은 성찰을 얻었다. 또, 그로부터 경이로움을 느꼈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의 전환은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 나간다. 문명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은 더욱 자유롭고 풍유로워진다. '자발적 고립'을 통해 소로는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동시에 인간성을 지켜냈던 것이다.



"시청률 안 나와도 되니까 만들어도 된다고 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숲속의 작은 집>을 "심심한 프로그램"이라 소개하면서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내려놨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망할 거라 예상했던 <삼시세끼>가 대박을 터뜨렸고, 별다른 웃음 포인트가 없었던 <윤식당>이 무려 15.986%(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던 전례를 떠올려보라. 나 PD는 '금요일 저녁'에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연출자다.


일주일의 고된 노동으로 온몸이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힐링'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식'이리라. 그건 시끌벅적한 예능인들의 수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동물,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뭔가를 하기보다 뭔가를 하지 않는 데 초점을 둔 <숲속의 작은 집>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베르겐~오슬로행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7시간 동안 방송했다. 편집은 물론, 성우의 내레이션도 없고, 자막조차 없었다. 이른바 '슬로 티비', 누가 이런 걸 보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이 '심심한' 방송은 2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경이로운 기록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나 PD는 <숲속의 작은 집>을 두고 심심할 것이라 겸손해 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현대인들의 심리를 가장 적확하게 꿰뚫고 있는 연출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있는 나영석 PD이기에 가능한 기획이다. 그의 진화가 놀라우면서도 반갑다. 나영석식 '슬로 티비'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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