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끔찍한 토익(TOEIC)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너의길을가라 2015. 3. 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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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토익(TOEIC)과 관련한 몇 가지 사실들부터 확인해보도록 하자. YBM한국토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2014년) 하반기 구직자들의 토익 평균 점수는 692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서 56점 높아진 수치라고 한다. 시험이 다소 쉽게 나왔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여성(723점)이 남성(674점)보다 높은 점수를 획득했고, 27세 구직자(702점)가 24세 구직자(689점)보다 높았다.


넘어가기 전에 간단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보자. 여성과 남성의 점수 차이는 어학 능력의 차이일까, 군대라는 2년의 공백기 때문일까? 혹은 그 두가지 이유가 결합된 탓일까? 또, 27세 구직자들의 점수가 조금 더 나은 것은 그들이 24세 구직자들에 비해 영어를 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24세 구직자들도 앞으로 2~3년 더 취업준비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점수가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할까?


ⓒ 쿠키뉴스


쓸데없는 이야기(까진 아니지만)는 접어두고, 계속해서 실황(實況)을 파악해보자. 최근 6년간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토익 시험에 응시한 걸까? 놀라지 말길 바란다. 무려 1,219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응시료만 해도 4,842억 원이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젠장! 토익 시험을 한 번 치르기 위해서는 4만 2,000원(추가접수 응시료는 4만 6,000원)이라는 거금(巨金)을 내야 한다.


지나치게 비싼 응시료가 아닌가? 그렇다고 비용 때문에 토익 시험을 '거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졸업 요건으로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있고, 무엇보다 거의 모든 기업에서 채용 조건으로 토익 점수를 제출하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토익'을 공부해야 하고, 꼬박꼬박 4만 2,000원 씩을 갖다바쳐야 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교육부에서는 국가예산 587억원을 쏟아부어가면서 '국가공인영어시험(NEAT)'을 개발했지만, 응시자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면서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올해 관련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은 "토익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그 활용도가 높아 소위 '갑질'을 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탁상행정으로 국민들의 혈세만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토익을 대체할 시험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면, 남은 방법은 토익의 활용도를 낮추는 것이다. 안 의원의 지적처럼 토익은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잘 나가는 시험이다. 자연스레 지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알아서 쩔쩔매는 (사회의) 사람들 위에서 '갑질'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토익의 활용도를 떨어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에서 토익 점수를 요구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입사 지원자들의 영어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냐고?


토익 공부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영어 실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말이다. 토익은 '기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학원에서는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지 '테크닉'을 전수한다. 물론 그것조차 영어 '실력'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대학에서도, 기업에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토익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까닭은, 오로지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 세계일보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 들어서 SK, LG, 현대차, 포스코 등 기업들과 금융권이 '탈(脫)스펙(spec)'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능력과는 무관한 스펙들로 사원을 채용해왔던 '바보짓'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혼란이 가중된다'는 의견과 '긍정적인 변화'라는 의견이 공히 제기되고 있다.


'스펙 쌓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쌓아왔던 '스펙'들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 허탈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데만 올인하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다. 낭비되고 있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보라. "궁극적으로는 출신학교나 영어 성적 등과 상관없이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말에 우리 모두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대학신문


문제는,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응시자가 더욱 몰리고 있는 공무원 시험에서 토익 시험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경우 2017년부터 토익(토플과 텝스 포함) 점수를 제출하면 영어 시험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이미 5급 공무원, 입법고시, 외교관 후보자선발, 변리사시험, 사법시험, 경찰간부·소방간부 시험 등에서 토익을 활용하고 있는데, 7급 시험도 그 흐름에 보조를 맞춰간다고 볼 수 있다.


YBM 한국토익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사법시험과 행정고시(5급 공채) 응시자 중 84.4%가 토익 성적을 영어 점수로 대체했"다고 한다. 7급 시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짐작해보면, 토익 응시자 수는 자연스레 증가하게 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로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서도 적용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토익이여, 영원하라!'


기업들이 (미약하지만) '탈스펙' 채용 흐름으로 전환하면서 토익에 대한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하고 있는 데 반해, 국가고시를 시행하는 정부(인사혁신처 등)는 오히려 토익을 절대적 영역으로 격상시키려고 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옆구리에 토익 책을 끼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당장의 취준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에게도 토익만이 살 길이라는 끔찍한 조언을 해줘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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