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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짝다리, 이 가혹한 논란이 마음 아픈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6. 12. 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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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지난 19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진행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무대 인사에서 '하이힐'을 신은 김유정이 '짝다리'를 짚은 채 손톱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 촬영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고, 이에 대해 대중들은 '무성의하다', '건방지다', '예의가 없다', '산만하다', '인성이 먼저다' 등의 가열한 비판을 가했다. 태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김유정의 소속사인 싸이더스 HQ는 "자신의 태도에서 비롯된 논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항상 신뢰해주신 팬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 사건 이후의 일들

김유정은 22일과 23일로 예정돼 있던 영화 관련 인터뷰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김유정이 감기에 심하게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인터뷰 장소를 향하던 취재진들은 '허탕'을 쳐야 했다. 그들의 심기가 제법 상할 법 하다. 영화 홍보사 측에 따르면, 김유정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음에도 21일 잡혀 있던 무대 인사 일정을 끝까지 소화했던 것이라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것'이라 했지만, 결국 몸 상태가 악화돼 병원을 급히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김유정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하이힐'의 버거움을 알지 못하지만, 그 불편함과 고됨을 간접적으로나마 얼핏 안다. 그 높고 위태한 물건이 다리 라인을 아름답게 만들진 몰라도, 그 위에서 서 있어야 하는 여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라 하겠지만, 그 '아름다움'의 틀을 정의내린 건 혹시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은 아닐까. 진정 '누가' 18세에 불과한 십대의 어린 소녀에게 '하이힐' 위에 올라서도록 했을까.


이처럼 김유정을 위한 가장 쉬운 변론은 '고작 18세가 된 어린 소녀에게 지나치게 잔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김유정을 '18세'라는 나이와 '소녀'라는 단어로 '무력화'시키고 싶진 않다. '미성숙함'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보호'의 대상으로 묶어 둘 생각은 없다. 어차피 우린 '모두' 완전하지 않다. '나이'가 '성숙'과 비례한다면, 어른들은, 김유정을 향해 살벌한 비판을 했던 사람들은, 김유정을 꾸짖을 만큼의 '완전함'을 갖춰야만 하지 않겠는가. 


'미성숙함'을 강조하는 것이 '책임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할 순 있을지라도 독립적인 인격체인 김유정을 진정으로 위한 변론 방법은 아닐 게다. 따라서 어쭙잖게 김유정을 보호하기에 힘쓰기보다 객관적인 상황들을 짚어보고 우리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는 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김유정이 취했던 행동은 '나이'를 떠나서 그토록 가열한 비판을 받아야 할 만큼의 '잘못'이었을까? 또, 문제가 됐던 김유정의 행동이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고, 그 일부를 제외하면 팬들을 향한 '공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건 어떻게 봐야 할까.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i5awF6tmzEU -

그 '불성실한 태도'가 포착된 영상만 해도 김유정은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고, 말미에는 90도로 몸을 숙여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날 진행된 여러 무대 인사 동영상을 확인해보면 김유정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브이(V) 포즈를 취하면서 최선을 다해 무대 인사를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또 다른 영상에선 김유정이 자신의 코멘트가 끝난 후 난간에 등을 기대는 모습이 찰영돼 있었고, 대중들은 이를 두고 '한번이 아니다'라며 열을 올려 '낙인'을 찍어댔다. 


그러나 이 또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과연 이 한두 장면을 두고 김유정이라는 인격체의 '인성'을 판단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오히려 '포커스'가 '마이크를 쥔 사람'에게 넘어가는 무대 인사의 특성상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다른 배우들도 각자 잡담을 하는 등 다른 행동들을 취하기도 한다. 그만큼 무대 인사는 '딱딱한' 자리라기보다는 좀더 자유롭고 편안한 행사다.


마음이 아프다. 진짜 마음이 아픈 이유는 '김유정'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정도의 관용도 베풀지 못할 만큼 강퍅해져 있었던가, 라는 자책 때문이다. 어쩌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상황이 주는 극심한 짜증을 비롯해서 버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면서 날이 잔뜩 서 있던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감정을 '배설'할 대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짝다리'를 짚었던 김유정은 때마침 나타난 좋은 타깃이 됐던 것 아닐까.


더 가슴이 찢어지는 건, 김유정을 꾸짖는 여론의 분위기에 편승해 "짝다리에 손톱 정리?"..김유정, 무대인사 태도 논란", "김유정 무대인사 태도 논란, 처음이 아니라고? 결국, 사과했지만..", "김유정 태도논란+인터뷰 취소, 공든 탑 무너지나" 따위의 기사를 쏟아낸 '언론'의 분별 없는 태도다. '전체'를 보기보다 '일부'에 집착하고, 약간의 흠을 거대한 잘못인양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태도야말로 '논란'의 대상이 아닐까. 이 잔혹한 마녀사냥의 승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정혜신의 『사람 공부』를 보면, 세월호 희생 학생의 엄마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인용한 대목이 있다. "거리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쫙 깔렸다. 오는 길에 야채를 사서 양손에 들고 오는데 더 무겁게 느껴져 발길이 더뎌졌다. 힘들어 죽겠다 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느 여핵생이 존나, 씨바, 빙신새끼가 어쩌고저쩌고, 열받아하며 지나가는데 여학생 가방에 리본이 달랑당랑.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이 여학생 편에 선다. 그래, 어떤 XX가 이쁜 너를 열받게 했을까. 나는 우리 아들 보고픈 거 삭히느라 가슴에 열이 나 숯덩이 된단다. 휴~"


김유정이 '용감하게도' 지상파 예능인 『1박 2일』에 출연하면서 복고풍 교복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던 장면을 기억한다.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김유정의 하이힐, 그 '짝다리'를 넉넉히 받아들일 생각이다. 물론 이 대답은 설령 그가 노란 리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작 우리가 꾸짖어야 할 건, 우리의 강퍅함이고, 더 나아가 그 강퍅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언론의 무분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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