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그리운 故 김주혁, <독전>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너의길을가라 2018. 5.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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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2017년 10월 30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보(誤報)에 비판적이지만, 그 소식만큼은 잘못된 것이길 바랐다.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단 열 글자로 설명된 그의 죽음. 참으로 황망했다. 믿기지 않았다. 한 배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함께 고통을 나눴다. 그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게다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였다. 원인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올해 1월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차량에 대한 감정 결과를 '결함 없음'으로 결론지었고, 강남경찰서는 이 결과를 인용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김주혁이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죽은 후 가죽을 남기듯 배우는 작품을 남기는 것일까. 이제 남은 건 먹먹한 심정으로 그가 남긴 유작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요즘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글을 봐도 얄팍하게 보였다면,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던 그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해 이미 촬영을 마친 후였다. 김주혁이 어떤 연기를 남겼을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됐다. 


먼저 개봉했던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개연성 부족 등 영화의 만듦새에서 허술함을 드러내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조현근 감독의 성희롱 사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지면서 영화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故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특별한 의미까지 퇴색시켰다. 결국 <흥부>는 총 관객 416,346명에 그치고 말았고, 김주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나 감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독전>뿐이었다. 중국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 <독전>은 ‘이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피말리는 싸움을 그린 영화다. 잔혹성과 선정성은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가 탄탄하고, 이야기의 몰입도 역시 높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데드풀2>이 휩쓸고 있는 극장가에서 1위 자리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짱짱’하게 뽑히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받기 시작했다.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진서연 등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역량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물론 앞서 이름을 거론한 배우들의 활약에 뛰어났지만, 역시 가장 돋보였던 건 특별출연한 故 김주혁이었다. 그는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을 연기했는데, 광기 어린 카리스마는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예측할 수 없는 진하림이란 캐릭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故김주혁의 연기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의 탁월한 연기는 어수선한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아내 보령 역을 맡은 진서연과의 호흡은 경탄스러울 정도다. 더욱 놀라운 건 평소 예능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형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천상 배우였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제야 故 김주혁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서글퍼졌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배우로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혼이 담긴 연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른 이별이었다. 분명 그는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이 남은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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