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그동안 타협했다" 자성의 사법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許)하자!

너의길을가라 2016. 10. 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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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 등을 볼 때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 개인 양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형사처벌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 국제사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이고, 우리 사회도 대체복무제 필요성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600명 정도로 추산되는 병역 거부자를 현역에서 제외한다고 병역 손실이 발생하고 기피자를 양산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항소심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왔다. 18일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영식)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 거부자 A씨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1년 동안 1심에서 무죄 판결이 여럿(9건) 나오긴 했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김영식 부장판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타협 판결'을 했다"고 통렬한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냈다. 


상당히 의미가 큰 판결이고, 용기 있는 '한걸음'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법부'를 향해 내지른 일갈(一喝)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게 무엇이고,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고 있을까. 간단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먼저 '헌법(憲法)'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헌법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1. 한 나라 최고의 상위법

3. 국가의 통치 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따위를 규정한 것


그러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최고의 상위법이고, 대한민국 통체 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서열상 헌법 아래 놓이게 되는 '실정법'은 헌법에 기반해야 하고, 헌법의 지향점을 거스를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수많은 실정법이 헌법적 가치와 충돌한다. 수도 없이 부딪친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등) ①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더불어 양심의 자유도 가진다고 천명(闡明)하고 있다. 알다시피, 집총(執銃) 거부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9% 이상은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그들'만'의 것이라 할 순 없다. 지난 2001년 불교 신자이면서 평화주의자인 오태양 씨가 병역 거부 선언을 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는 특정 종교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평화'를 우선시해야 할 여타 종교들이 '현실 세계'와 적극적으로 타협하고 있는 데 비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상당히 기이(奇異)한 것이긴 하다. 어찌됐든 그들'도' 당연히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마찬가지로 '양심의 자유'도 보장받는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겠다는 개인의 양심적 판단(내면의 생각 또는 지식)을 국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당연히 군대를 가야한다'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헌법에 보장도니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9일 청주지법은 '양심의 가치'를 최우선이라 판단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진지하고도 강력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 수 있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자유권으로 이를 보장하는 건 가치상대주의를 토대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구현의 기본적 전제가 된다." (2016고단64)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병역법'을 앞세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적 자유를 묵살해왔다. 2004년 대법원은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며 유죄를 선고했고, 2004년과 2011년 도 차례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은 징병제 하에서 병역자원 확보,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공익실현을 위한 것으로 정당하다"며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국방부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병역의 형평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다른 의무에 대한 거부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병역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일까?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이미 2004년 헌재는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라는 법익의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양 법익을 공존시킬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국회에 주문했다. 이듬해인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2007년 9월에는 국방부도 나서서 대체복무 허용 방안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돼던 대체복무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MB정부는 당시 실시됐던 여론조사(리서치앤리서치) 결과에서 반대 의견(68.2%)이 찬성 의견(29%)을 압도하자,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했다.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었던 '대체복무제 도입'은 연이은 보수 정권 하에서 수면 아래로 깊게 가라앉게 됐다. 한편, 지난 2013년 11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68%를 차지했다. 오잉? 국민적 여론이 그 사이에 180도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여론조사는 '과학'이라는 지적처럼 '포인트'는 '설문지'에 있었다. 국방부가 의뢰했던 리서치앤리서치의 설문지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영입 및 집총거부자'로 명기했고, 한국 갤럽은 그대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일반적 호칭을 따른 것이다. 굳이 '국민적 여론'을 참고하고자 한다면, '후자'의 것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만큼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대체 복무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각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유연하다. 



대체복무제의 악용 가능성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또, 그밖의 '양심적인 판단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군 복무 기간의 1.5배 내지 2배 가량의 대체 복무를 하도록 한다면 '악용'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곳(정신병원, 요양소, 구조 업무 등)에 복무토록 한다면 사회적으로 훨씬 이득이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또 한 번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번엔 '변화'가 있을까? "국가는 소수자 권리 주장에 인내만 요구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볼 때 현실적 대책(대체복무제)이 있는데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선 재판부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또, 정부도 이제는 방관을 멈추고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갈등 해결을 위해 움직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제스처를 취한다면, 헌법재판소도 마음 편히 '양심'을 따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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