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의 자괴감과 국격을 생각할 때 홍준표 후보는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오늘 홍준표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홍준표 후보와는 아예 말도 섞지 않겠다며 국민들의 양해를 구하며 토론회를 시작했다. 한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제가 MB 아바타 입니까?"라며 거듭 물으며 '인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각종 '음해'를 한번에 풀겠다는 '의욕'이 담겨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된 건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토론을 지켜보던 유권자들의 머릿속엔 '갑철수, MB아바타'라는 두 단어만 더욱 공고히 자리잡게 됐다.



안철수 후보의 톡톡 튀는 활약(?)은 계속 됐다. 박지원 대표의 '평양 대사' 발언을 물고 늘어지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겐 "참,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아우, 유 후보님, 실망입니다."라는 감정적 대응을 하며 오히려 유 후보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는 거듭해서 '사퇴하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얼굴 보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고 면박을 줬다. 마지막까지 "카메라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그의 모습은 약간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속시원한 대목이었다. 


▲ TV 토론회 시청률 추이

1차 토론회(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 : 1부 11.6%, 2부 10.8%

2차 토론회(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 : 26.4%

3차 토론회(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 : 38.477%


'예능적'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3차 토론회)는 시청률 면에서도 대박을 쳤다. 지상파 3사를 포함해 무려 7개 채널에서 동시 방영했기 때문일까. 총 38.477%(KBS 1TV 11.3%, SBS TV 9.4%, MBC TV 6.2%, MBN 4.256%, TV조선 2.884%, 연합뉴스TV 2.724%, YTN 1.71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13일 SBS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관했던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 1부 11.6% · 2부 10.8%와 19일 방송됐던 KBS1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회> 26.4%보다 상승했다.


'장미 대선'이 목전까지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 국민적 관심은 점차 집중되고 있고, '몰입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미 지지 후보를 확고히 정한 유권자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유권자도 상당수다. 2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동층은 12%으로 나타났는데 이례적으로 그 수치가 늘어나고 있다. 또,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TV토론을 시청했거나 뉴스를 접한뒤 지지후보를 바꿀 생각이 들었다'는 응답은 20.4%에 달했다. 


그만큼 TV토론회의 영향력은 커졌다. 그 중요성을 굳이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줘야 할 토론회의 '질'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마치 누가 더 토론을 못하는지 겨루는 코미디 쇼를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정해진 주제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건 예사일이고, 말을 끊고 화를 내는 장면도 심심찮게 눈에 띠었다. 토론의 기본 태도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네거티브(가 아니라지만)와 색깔론이 비전과 정책을 가로막았고, 토론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그 한심함에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후보자 별로 남아 있는 시간을 볼까요? 유승민 후보 3분 32초, 안철수 후보 8분 33초, 홍준표 후보 10분 11초, 문재인 후보 5분 18초, 심상정 후보 5분 31초가 남아 있습니다. 시간에 유념하면서 토론해주시기 바랍니다."

"문 후보님, 한 가지 답변 안 하셨습니다."


"이거 발언권 얻어서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손 드십시오."


"모든 후보님들이 발언을 신청하셨는데요.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시간이 제일 많으신 후보가 안철수 후보입니다. 안철수 후보 발언하시겠어요?"


물론 후보자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라든지 시간총량제 도입, 엉성한 규칙 등 '환경적 요인'의 영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목숨을 건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 그들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때로는 유치한 '감정 싸움'을 벌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회자'가 필요한 것이고, 그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3차례 토론회에서 사회자들은 어떠했는가. 참으로 일관되게 '초시계' 역할에 머물렀다.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사회자가 자신의 역할을 축소 또는 최소화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TV 토론회를 연달아 보면서 사회자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손석희 앵커'가 등판하는 JTBC '2017 대선후보 토론회'(4차 토론회)는 다를까. 경제불평등 심화, 사회 양극화 해법, 한반도 안보 등 정책 이슈를 다루게 될 이번 토론회는 독특하게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진행하게 된다



상대방을 마주 보며 질문과 답변을 나누게 된다면 더욱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공개된 자리 배치를 보면,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옆자리에 앉게 돼 안 후보가 시선처리로 고심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또, 주도권 토론에서 한 후보가 질문의 대상을 정하도록 하되, 1명이 아니라 3명을 지명하도록 해 특정 후보에게 질문이 쏠리는 현상을 막겠다고 한다. 의미도 효과도 없었던 '스탠딩 토론'을 비롯해 그동안의 토론회에서 노출된 문제점들을 보완한 것이다. 형식의 변화를 통해 내용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토론회에 기대가 큰 이유는 '손석희 앵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과거 MBC <100분 토론>(2002~2009)에서 보여줬던 사회자로서의 그의 모습은 '대체 불가능'이라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기계적 중립성을 뛰어넘는 공정함을 보여줌으로써 서로 다른 성향과 입장을 가진 패널과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JTBC에서 진행했던 수 차례의 토론회에서도 그의 진가는 여전히 발휘됐다. 사회자의 권한과 영향력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활용했고, 그의 '개입'은 토론의 방향과 질을 향상시키곤 했다. 


25일 저녁 8시4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될 JTBC '2017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열고 그 안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또, 그동안 '초시계'에 머물렀던 사회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손석희 앵커는 털어낼 수 있을까. 부디 수준 있는 양질의 정책 토론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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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7. 5. 9. (화)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심판하고자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던 '촛불'이 쏘아올린 이른바 '장미 대선'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시행되는 사전 투표(5월 4일~5일)를 감안하면 더 짧은 기간이 남아 있다. 방송사들은 TV 토론회를 열어 후보들은 검증하(겠다고 설치)고, 후보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뻔한 방식의 선거 유세에 여념이 없다.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과 선거 벽보가 난잡하게 깔렸고, 확성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네거티브가 정책을 잡아먹고, 신변잡기와 가십이 날뛰는 또 한번의 선거.


과연 대한민국은 좀더 나은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잘 골라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선결과제는 역시 '투표율'이다. 세대별 투표율을 따져가며, 어느 세대가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해야 어느 쪽에 유리한지 혹은 어느 세대의 참여가 높으면 어떤 후보가 불리하다는 분석은 굳이 하지 않으련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해 자신의 '의무'이자 '권리'를 행사하길 바랄 뿐이다. 더 많은 참여가 만들어낼, 그래서 더욱 정교해진 '집단 지성'에 희망을 걸어본다. 그것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집단 지성을 믿어볼 밖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75.8%였다. 총 유권자 수 40,507,842명 가운데 30,721,45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과거의 대통령 선거들을 차례대로 짚어보자. 민주화의 열망이 그득했던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했던 직선제(13대 대선)는 무려 89.2%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투표율은 조금씩 떨어졌는데, 14대 대선의 경우 81.9%, 15대 대선은 80.7%, 16대 대선은 70.8%까지 하락했다. 가장 뻔한 승부가 예상됐던 2007년 17대 대선은 63%라는 초라한 투표율로 마감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역시 승부의 치열함이 투표율을 견인하기 마련이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의 후보들 곁으로 총결집하며 건곤일척의 대결이 펼쳐졌던 18대 대선의 투표율 반등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도 큰 기여를 했다. '정치가 곧 삶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덕분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대 대선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관심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8.1%, '반드시 두표할 것'이라는 응답은 82.8%였다고 한다. 


'관심도'는 지난 18대 대선 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적극적 투표 참여' 의사를 표명한 사람들은 4.6% 증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29세 이하(+18.5%)와 30대(9.8%), 40대(6.3%)에서 증가했고, 50대(-2.6%), 60대와 70대 이상(-7.9%)에서는 감소했다는 것인다. 아무래도 누가 이겨도 정권교체(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라 할 수 있는 문재인 vs 안철수, 양강 구도로 짜여진 선거 지형과 보수의 궤멸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지형과 선거 분위기가 이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특별시민>의 대사)


전반적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 좀더 나은 대통령을 뽑겠다는 의지가 뜨겁다. (주책 없는) 정치권이야 항상 뜨겁지만, 이번에는 연예계도 만만치 않다. 지난 MB 정부과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른바 '피맛'을 가장 많이 봤던 게 그들이 아니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침해 받는 경험을 실체적으로 했기에 이번에는 사뭇 진지하고, 상당히 적극적이다. 특히 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특별시민>의 주연배우들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현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선거전을 다룬 영화답게 출연 배우들의 '정치 의식'이 돋보인다. 지난 18일 <특별시민>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최민식은 "우리나라 좋은 정치 환경, 좋은 지도자를 통해 삶이 더욱 윤택해지려면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게 바로 이 '지겹다'는 생각인 것 같다"면서 "결론은 아주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투표를 잘 하자는 거다. 잘 뽑자는 거다. 잘 뽑으면 좋아지는 것"이라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곽도원도 "지친 현실에 또 정치 영화라서 진절머리날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정치인에게 당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자는 게 '특별시민'의 메시지다. 나쁜 정치인에게 지배당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는 심은경은 "막연히 정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었다면서도 "유권자로 행해지는 권리와 그것으로 인해 받는 의식들을 계속 예의주시 해야겠다. 이번 선거에 많은 관심이 있고, 박경처럼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과정이다"며 진중한 태도를 드러냈다. 



ⓒ 김영준 스튜디오


고소영, 고수, 고아성, 권율, 김성령, 김영광, 노희경, 류준열, 박근형, 박서준, 박정민, 배성우, 배종옥, 백진희, 변영주 감독, 비와이, 서지혜, 소이현, 유노윤호, 이병헌, 이서진, 이순재, 이영진, 이정현, 이준, 이준익 감독, 이특, 이해영 감독, 이현우, 정연주, 정우성, 조진웅, 지진희, 진구, 한예리, 한재림 감독, 한지민, 한지선 (가나다순)


한편, 38명의 스타들은 '무현찹 무단체 노개런티'로 진행되는 '0509 장미 프로젝트'에 참여해 투표 독려에 나섰다. "이번 캠페인은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이끄는 한편, 지나치게 후보의 이미지에 의존해 투표하는 성향을 제고하고, 인물의 발자취와 공약, 정책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투표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는 것이 0509 장미 프로젝트 측의 설명이다. 스타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투표 참여를 호소했고, "나에게 투표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현실 정치'에 한걸음 비껴셔서 방관 혹은 무관심한 듯 보였던, 혹은 두려움에 뒷걸음치거나 움츠러 들었던 연예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참으로 반갑고 또 고맙다. 결국 정치 권력이 나의 삶, 내가 딛고 있는 영역을 좌지우지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가능한 변화다. 스타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런 참여 의식이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서진은 "대통령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잘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투표는 투자다. 투자를 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익을 잘 따져보시고 하셨으면 한다"는 생각을 전달했다. 그의 말을 곱씹어 다시 우리에게 되물어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꿀 '투자'에 참여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투자'할 생각인가. 당신의 '진주'를 찾아냈는가. 부디 '이익'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현명한 투자를 하길 바란다. 최민식의 말처럼, 잘 뽑으면 분명히 좋아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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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법비(法匪)와의 싸움을 그린 SBS 월화 드라마 <귓속말>은 방영되기 전부터 커다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갓지성'이 가고 '갓보영'이 온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이보영이 3년의 공백을 깨고 복귀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화제가 됐던 건 극본을 쓴 '작가'의 이름이었다. 박경수, 무려 박경수 작가였다. 그가 누구인가. SBS <추적자>(2012), SBS <황금의 제국>(2013), SBS <펀치>(2014)까지, 이른바 권력 3부작으로 연달아 '홈런'을 쳤던 장르물의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그는 전작들에서 곪아터진 대한민국의 처절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정치 · 경제 권력들 간의 암투와 그 부패상을 다루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탁월한 필력을 뽐냈다. 묘사는 섬세했고, 시선은 날카로웠다. 명쾌한 대립과 선명한 싸움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 긴박함이 해소되는 순간들은 찌르르 하는 쾌감을 선사했다. 시청자들은 그 '시원함'에 매료되고 중독됐다. 어느덧 믿고 보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필력은 <귓속말>에서도 여전했다. 드라마의 제목과 같이, 그의 예리한 언어들은 '귓속말'처럼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집중시켰다. 


13.9%(닐슨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은 꾸준하고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면서 8회 16.0%까지 올라왔다. 이러한 결과는 <귓속말>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기대치 혹은 눈높이를 충족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요구란 무엇인가. 바로 '개연성'일 것이다. <귓속말>과 같이 '범죄'와 '법'을 다루는 드라마의 경우, 어느 장르의 드라마보다 그 요구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에도 박경수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악은 성실하다" 


지금까지는 1막에 불과했다. "악은 성실하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던 <귓속말>은 지난 8회동안 '악의 성실함'을 집요하게 묘사했다. 마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불법은 성실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데, 드라마가 보여준 '악'이란 결국 '불법'과 맞닿아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법률회사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최일환 대표(김갑수)와 보국산업의 강유택 회장(김홍파) 간의 패권 다툼은 드라마의 큰 축인데, 여기에 태백과 보국산업이 함께 연관돼 있는 방산비리가 또 다른 핵심이다.


이러한 비리를 알아채고 취재에 돌입했던 김성식(최홍일) 기자는 최일환의 딸 최수연(박세영)의 사주를 받은 백상구(김뢰하)에게 살해 당한다. 최수연의 연인 관계인 강유택의 아들 강정일(권율)도 이 범행을 함께 한다. 희생양이 필요했던 그들은 기자의 절친인 신창호(강신일)에게 누명을 씌운다. 신창호가 김성식에게 빌린 돈이 있었던 사실은 좋은 '살해 동기'로 둔갑한다. 여기에서 끝일까. 괜히 악은 성실하다고 하겠는가. 최일환은 판사였던 이동준(이상윤)에게 압력을 행사해 신창호에 대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일종의 '마침표'를 찍은 셈이랄까.


한편, 경찰이었던 신창호의 딸 신영주(이보영)은 살인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고, 급기야 경찰 신분도 잃게 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이용해 이동준과 동침하는 동영상을 촬영해 이를 무기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신영주는 '창녀'라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다소 과해보이기도 하는 이와 같은 설정들은 달리 생각하면 저토록 성실한 '악'을 상대하려면 얼마나 처절하게 모든 것을 버린 채 싸워야 하는지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하기만 했다.


대립과 반목이 거듭됐고, 배신과 새로운 판짜기가 수차례 이어졌다. 같은 배를 타기로 한 이동준과 신영주는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최수연의 증언 동영상'과 '신창호 1심 판결문'을 삭제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신영주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동준에게 넘겨준 USB에는 신창호와 김성식 기자의 팟캐스트 방송이 담겨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보국산업의 방산 비리를 취재한 것이었다. 다 함께 모여서 승리의 휘파람을 부는 듯 했던 법비들의 얼굴이 구겨지는 장면은 시원함 그 자체였다. 



"스퍼커 폰으로 해줘요. 강정일 씨, 보이나요? 당신이 죽인 김성식 기자. 최일환 씨, 보입니까? 당신이 수술실에서 죽이려 한 신창호 기자. 한 분은 떠났고, 한 분은 떠나겠죠. 하지만 내가 남았어요. 최수현 씨 증언 동영상, 지금 법원에 제출할 거예요."


이동준은 "신영주 씨, 멈춰요. 이 사람들 못 이겨요. 당신도 다칠 겁니다."라며 신영주를 만류하려 해보지만, 신영주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를 거부하고 이렇게 말한다. "강정일 씨, 강유택 씨, 최일환 씨, 싸움은 이제 시작이에요. 이동준 씨는 선택해요. 내 옆에서 싸울지, 당신도 나하고 싸울지."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동준이 과거 판사로서의 영민함과 법비들과 부대끼며 깨달은 싸움법을 통해 절반의 승리를 거머쥔 채 멈추려 했다. 하지만 신영주는 달랐다. 그는 법비들과 끝까지 싸우는 정의로운 길을 선택했다.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반환점을 돈 <귓속말>은 앞으로 신영주의 반격이 스토리의 주된 축을 담당할 것이다. 제작진도 "이제 박경수 작가의 진면목이 본격적으로 발휘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과연 이동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처음에는 적으로 만나서 동지가 됐고, 이어 연인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결국 다시 한 배를 타게 될 것이다. "반격을 선언한 영주가 정의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이동준과 어떤 합체를 이뤄 악의 세력을 무찔러 나갈 지 기대해 달라"는 제작진의 힌트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흐름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드라마의 '끝'을 짐작해 본다면, 분명 '진실'과 '정의'가 법비들에 승리하는 짜릿함과 통쾌함이 가득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박경수표 드라마가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드라마적인 재미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 그 속에 담긴 인간 군상들과 그들이 태연히 저지르는 각종 비리와 범죄들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복사한듯 똑같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태와 적폐가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고, 이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성실함'을 발휘하고 있다. 정권 교체라는 이름 하에 정치 권력의 교체가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았다. 현재까지의 판세를 종합해서 볼 때,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두 명의 후보는 그 역할을 제대로 충실히 수행해 낼 수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치 권력을 바꾼다고 한들, <귓속말> 속에서처럼 활개를 치고 다니는 '법비'들을 제대로 제어하고, 그들에게 법을 농락한 죗값을 받아낼 수 있을까.



또, 국민들의 오랜 염원이라 할 수 있는 '사법 개혁'은 실현될 수 있을까. 그리고 '법비'들에게 손쉽게 휘둘고, 돈과 권력 앞에 양심을 가볍게 내팽개치곤 하는 법조계가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까. 지난 18일, 대법원(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이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를 축소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법원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조차도 부실조사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를 보면, 여전히 우리는 사법부의 독립이 요원한 <귓속말>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실 속에도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신영주 같은 인물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국민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말이다. 박경수 작가에겐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부디 그의 드라마가 더 이상 통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 그 시작의 단초가 5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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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보세요. 몸이 움츠러들어 있잖아요? 다른 땐 안 그래요. 이 학생만 나타나면 긴장해요. 손도 약간 떨고요. … 물건이 없어진 건 훔쳐간 게 아니라 아드님이 그냥 준 거예요. CCTV에 찍히는 걸 아니까 도서관 카드로 긁는 시늉만 한 거죠. 아드님이 계산대를 맡을 때만 이 학생이 나타난 이유는.." 


유설옥(최강희). 이름에서부터 저 유명한 '셜록'을 연상케 하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추리의 여왕'이다. CCTV 화면을 통해서 동네 슈퍼에서 물건들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이유뿐만 아니라 슈퍼 주인의 아들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밝혀냈다. 어디 그뿐인가. 시장에 비치된 보관함이 부서진 것을 꼼꼼히 살피더니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마약 사건임을 포착해냈다. 그리고 끈질긴 추리와 탐문 끝에 마약사범인 장도장(양익준)을 잡아내고 만다. 


뛰어난 눈썰미와 남다른 추리력. 설옥은 현장의 사소한 흔적들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이렇게 획득한 작은 단서들은 그의 섬세한 추리에 의해 거대한 사건으로 재탄생된다. 이 유쾌한 퍼즐 맞추기는 긴장감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동시에 선사한다. '몸풀기'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질 차례. 단순 빈집털이라고 생각됐던 사건 현장에서도 설옥의 활약은 이어지는데, 사건 현장을 차근차근 살피던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이 '절도를 위장한 살인 사건'임을 캐치해낸다. 



한편, 설옥은 장도장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그를 쫓고 있던 열혈 형사 하완승(권상우)과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처음에만 해도 그들의 관계는 '악연'이었다. 완승은 정체불명의 설옥이 '추리'를 통해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는 게 마뜩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범인을 잡으려면 몸으로 뛰고, 직감을 통해 잡아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옥을 향해 "앞으로 파출소 근처에도 오지 마. 어슬렁거리다 걸리면 바로 체포할 거야!"며 으름장을 놓고, "아줌마!"라며 큰소리를 친다. 무시하고 면박을 주는 건 예삿일이다. 


물론 공무집행을 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시민의 개입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완승이 보여주는 행동과 어법은 매우 무례하고 상식 밖의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믹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불쾌감보다는 웃음으로 승화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어찌됐든 완승은 설옥이 자신의 추리를 거듭해서 증명해내자 완승은 점차 설옥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듯 사뭇 독특한 '결'을 지닌 KBS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설옥과 완승이 '공조'를 통해 범인들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김과장>의 후속으로 편성된 <추리의 여왕>은 11.2%의 준수한 시청률로 스타트를 끊었다. 2회(9.5%)에서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3회(10.1%)와 4회(11.6%)를 거치면서 조금씩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톰과 제리'처럼 앙숙 관계로 시작했더 설옥과 완승이 묘한 '케미'를 이루면서 콤비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담긴 4회는 드라마의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했다. 또, 애초에 '생활밀착형 추리물'로 차별화를 선언했던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추리물(혹은 형사물)이 긴장감의 '증폭'에 초점을 맞춰 스릴의 극대화를 추구했다면, <추리의 여왕>은 오히려 '유쾌함'을 무기로 시청자들을 공략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오피스물과 차별화됐던 <김과장>과도 궤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역시 설옥이라는 캐릭터와 이를 맛깔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최강희의 내공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의 분석처럼, 아줌마 · 소년 · 여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공존하고 있는 설옥, 이 복합적이고 복잡한 역할을 최강희는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영리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한편, 설옥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주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추리들로 사건 현장을 누빈다. '세련된 집안 물건들에 비해 촌스러운 이불'이라는 포인트를 짚어낸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젠더 바이어스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선 이 드라마가 설옥을 통해 그와 같은 연상 작용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에피소드 격으로 삽입된 내용이긴 하지만, 마트에서 계란 세일하는 코너를 추리해 내는 과정은 설옥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면서 '주부'라는 그의 위치다. 무려 검사의 '아내'로 시어머니 박경숙(박준금)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며느리'인 설옥은 '시댁'이라는 제약에 꽁꽁 묶여 살아간다. 남편이 검사가 되는 데 설옥의 희생이 큰몫을 차지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결혼 8년 차 주부에 고졸이라는 씁쓸한 '스펙'뿐이다. 최강희가 특유의 4차원적인 매력으로 연기한 덕분에 이와 같은 '압박감'이 다소 희석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설옥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라 하기에 지나치게 순응적이고 의존적이다. 


'밥이나 하라'는 시어머니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끌려다닐 뿐 아니라 바람을 의심하는 그 불쾌한 시선에도 당당히 한마디 하지 못한다. '경찰'이 되는 것이 설옥의 오랜 꿈이었지만, 그가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그저 때마다 교재를 주문하는 것이 유일한 위로다. 이런 갑갑한 현실을 탈피해서 오롯이 '설옥'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순간이 바로 사건 현장에 있을 때다. 물론 '시어머니의 전화'로 상징되는 현실의 개입은 매번 설옥을 강제 소환하곤 한다.



'왜 굳이 '설옥'이 '주부'여야 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만큼 '주부'라고 하는 포지션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제약'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추리의 여왕>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생활밀착형 추리를 펼치는 설옥의 활약상과 티격태격하면서도 힘을 합쳐 범죄를 해결해나가는 설옥과 완승의 호흡일 것이다. 오히려 핵심은 추리 그 자체(의 완전성)가 아니라 캐릭터가 주는 통쾌함 혹은 캐릭터들 간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깨알 같은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김과장>에 매료됐던 시청자들이 엄청난 개연성에 빠져든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숨겨진 또 다른 관점 포인트는 바로 설옥의 성장일 것이다. 과연 설옥은 지금처럼 검사 남편의 아내, 괴팍스러운 시어머니의 며느리라는 포지션을 유지한 채 '몰래' 탐정 놀이를 계속하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사건 현장을 누비는 과정에서 '자각'을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는 제약을 깨뜨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인가. 10년이나 경찰 준비를 해왔으면서도 시험 한번 치지 못한 그가 꿈을 향해 한걸음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부디 이 드라마의 귀결이 전자의 후진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만약 (짐작해 보자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설옥이 또 다시 시어머니 '몰래' 두부를 사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서 부랴부랴 사건 현장에 도착해 권상우와 눈을 마주치며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살인사건이에요'라고 한다면 꽤나 실망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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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웃긴’ 예능 프로그램이 뭐냐고 묻는다면 JTBC <아는 형님>이 꽤나 높은 ‘지지율’을 얻을 것이다. 초기만 해도 폐지를 걱정하던 미래가 없던 방송이었다. 하지만 마니아층을 확보하더니 점차 지지층을 확대하며 어느덧 시청률 5%를 돌파했다. 제작진과 강호동을 비롯한 출연진들이 합심해서 오로지 ‘웃음’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이제 <아는 형님>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믿고 보는 예능으로 듬직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 하차 공약은 안 할 거예요!“

 

얼마 전 <아는 형님>은 이른바 ‘시청률 공약’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방송 중에 김영철이 <아는 형님>의 시청률 5%가 넘으면 하차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는데, 시청률이 시나브로 오르기 시작하더니 5% 문턱까지 치고 올라섰기 때문이다. 진짜 하차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자 김영철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고, 멤버들은 그런 김영철을 놀리며 ‘웃음’을 유발했다. 한편, 김영철은 JTBC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하차 공약은 김희철에게 엮인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해 또 한번 웃음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3월 11일 방영됐던 66회가 5.333%를 기록하며 공약 이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아는 형님> 제작진은 김영철의 친누나인 김애숙 씨를 등장시키는 승부수를 띄웠는데, 그는 기대 이상의 예능감을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꽃을 선물했다. 또, "5% 공약을 건 것은 철없이 한 행동이니 영철이 잘 부탁한다. 사실 팔십 먹은 엄마가 올라오려 했는데.."라며 김영철을 위한 코멘트까지 준비해 하차 위기(?)에 놓였던 동생을 기사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홍색과 청색 양갈래 염색 머리하기(강호동)

서장미 분장을 한 채 여대에서 수업 듣기(서장훈)

40대 래퍼들과 <아는 형님> 주제곡 만들기(이상민)

오프로(5%)드 생존 게임(이수근)

일본에서 일본 여성과 니코니코니하기(김희철)

의정부고 학생들과 하이패션 데이트(민경훈)


김영철의 공약은 잘 마무리가 됐지만, 남은 멤버들도 각자 내걸었던 공약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이라는 휴식을 주기 위해 예능인들이 저리 부단히 애쓰는 모습을 보면 가끔 ‘짠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재미’와 ‘웃음’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내건 공약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멤버 개개인에 대한 호감도와는 별개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언론은 ‘김영철, 하차 공약으로 깨달은 말의 무게와 책임감’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써내기도 했지만, 그 아래 달린 베스트 댓글은 이런 촌철살인을 날린다. “이런 잣대는 정치권에다나 좀 대서 기사를 썼으면 좋겠네. 예능입니다, 예능.” 이는 김영철이 <말하는대로>에 출연했을 당시 “‘김영철 씨 하차하세요. 하차 안 하면 정치인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시청자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저는 정치인이 아니에요.“라고 호소햇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차 안 하면 정치인과 다를 게 뭐가 있어요?"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은 그동안 숱하게 말을 바꿔왔던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정치인들은 그래왔다.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언제 그랬냐며 말을 바꾸기 십상이었다. 정책은 시도때도 없이 요동쳤고, 일관성은 엿장수에 엿 바꿔 먹듯 쉽게 팔려나갔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변명들을 매번 반복해서 듣는 건 고욕과도 같았다. 



바야흐로 ‘촛불’이 피워낸 ‘장미대선’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이미 각 정당들은 후보를 결정했고, 후보들은 유권자들 앞에 자신들의 공약을 내걸고 ‘세일즈’에 한창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 변화하는 민심을 체크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언론들은 각종 자료들을 동원해 후보와 그들의 공약들을 검증하고 있다. 또, 앞으로 계속될 TV토론은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의 면면을 꼼꼼하게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13일 SBS 프리즘 타워에서 대선 후보들의 첫 TV 토론회가 열렸다.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서울방송과 한국기자협회 공동 개최)’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 자리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은 저 하나뿐인 것 같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입장을 모두 바꾼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최근에 바뀐 게 아니라 올 초부터 주장했다“고 대응했지만, 그가 ‘사드 배치’에 대해 말(생각)을 바꾼 것은 분명한 사실이 틀림없다.

 

사드 졸속 결정이 이해 안 된다”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 · 미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취소가 어렵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나 “사드 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드 배치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해야 한다”며 180도 다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분명 의아한 측면이 있다. 물론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 봐야겠지만, 이런 식의 말바꾸기가 일상화된다면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두 후보 모두 실망스러운 모습이라 할 것이다.

 

정치 상황이나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공약들마저 바꿔버린다면 그의 정책들을 ‘믿고’ 지지 혹은 표를 보냈던 지지자들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부디 대선 후보들이 자신들이 내건 공약들을 (애초에 촘촘하게 만들어내고) 꼼꼼히 지켜나가길 바란다. 만약 그것이 상황적 변화나 현실적 한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예능인들의 저 수고로움을 보라. '말의 무거움을 아는 것'은 예능인보다는 오히려 정치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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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월, 화, 수, 목, 금. 사람들은 매일 전쟁터와 지옥을 누빈다. '월요병'에 시달리고, '수요일'을 앞둔 시점에는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도달한다. tvN <미생>은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야”라고 했지만, 굳이 어느 쪽이 더 끔찍한지를 두고 ‘경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금요일 다음에 또 다시 ‘금요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과 '주말'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는 자영업자들에게 ‘주5일제’는 꿈만 같은 이야기이겠지만, 일반적으로 금요일 저녁은 ‘해방’이자 ‘휴식’과도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꿀’ 같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어떤 이들은 술집이 즐비한 ‘먹자골목’을 헤매며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또 어떤 이들은 TV 앞에 앉아 분주했던 마음을 다독인다. 아마 후자의 방법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최고의 ‘힐링’ 친구일 것이다.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여행’이라는 판타지를 충족시켰고, <삼시세끼> 시리즈에서는 ‘귀촌(歸村)’에 대한 로망을 자극했다. 이런 기본적인 주제 속에 ‘동물’과 ‘요리’라는 테마가 프로그램의 뼈와 살이 됐다.



 

시청률 면에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신혼일기> 역시 기존의 프로그램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귀촌’을 바탕으로 동물과 요리가 끊임없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을 ‘정화’시키고, 무엇보다 ‘안구 커플’이라는 ‘진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판타지’를 구체화시켰다. 제작진의 개입이 없는, PD 입장에서는 ‘거저먹는’ 프로그램으로 한 템포 쉬어갔던 나 PD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름하야 <윤식당>, 참으로 간결하고 명쾌한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인근 섬, 길리 트라왕간(Gili Trawangan)에서 윤여정과 이서진 그리고 새로운 얼굴 정유미가 ‘윤스 키친(Youn's Kitchen)‘이라는 이름의 한식당을 열었다. 직업이 ’배우‘인 이 세 사람은 당연히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없다. 음식을 조리하는 것부터 모든 게 서툴 수밖에 없다. 이원일 셰프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석천에게 ’마더 소스‘를 전수받고 식당 관련 여러 노하우를 배웠다. 주 메뉴는 세 가지로 간소화했다. 불고기를 바탕으로 밥과 누들, 버거를 만드는 식이다.

 

준비를 마치고 현지에 도착한 <윤식당> 멤버들은 본격적인 장사에 돌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박’이 터졌다. 현재 여행객들은 윤식당의 불고기 맛에 반했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하루, 일손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무렵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회장 포스를 풍기며 등장한다. 바로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나 PD와 인연을 맺었던 신구다. 그의 합류로 성비(性比)뿐만 아니라 나이에 있어서도 신구(新舊)의 조화가 이뤄진 <윤식당>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6.215%에서 시작한 시청률은 어느덧 11.298%까지 상승해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윤식당’ 1호점이 예정돼 있던 해변정리사업으로 철거되는 사태를 맞이하면서 멤버들의 ‘멘붕’이 그려지고, 2호점을 통해 재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긴 3회는 최고 13.8%까지 치솟았다. 흥미로운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10대부터 50대까지 각 연령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윤식당>의 다양한 시청자 층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다채로운 요소들이 프로그램 속에 녹아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중의 ‘판타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내는 나영석 PD의 영리함은 <윤식당>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시시때때로 카메라에 잡히는 발리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여행’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고, 윤여정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불고기 요리들은 ‘쿡방(먹방)’에 대한 시청자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준다. 이처럼 여행, 요리라는 기존의 요소에 ‘경영’이라는 포인트가 더해지자 쫄깃한 ‘긴장감’이 피어오른다. 남성 시청자들의 흡수는 여기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뉴욕대 경영학과 출신의 이서진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빛난다.

 


나영석 PD는 ‘나만의 가게를 갖고 싶다‘는 욕망, 혹은 자영업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을 제대로 저격한다. 혹은 ’퇴직 후 자영업‘이라는 은퇴 공식을 떠올리게 한다. (식당의 사장이 이서진이 아니라 ’윤여정‘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물론 등 떠밀린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 ’고민‘이 <윤식당>에서는 참으로 예쁘게 그려진다. 실제로 OECD 2013년 통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자영업 비율은 27.4%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6.6%와 일본의 11.5%에 비해 현격히 높은 수치다.

 

(단지 자영업자들만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제대로 된 준비나 철저한 시장 조사 없이 뛰어든 자영업자들의 성공률(생존률)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집계 결과에 따르면, 창업은 949만 개, 폐업은 793만 개였는데, 생존률은 고작 16.4%에 불과했다. 참담하리만큼 낮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종편의 요상한 프로그램에 의해 직격탄을 맞아 순식간에 ‘골’로 갈 수도 있는 취약한 바탕 위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윤식당>은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그런 치열함을 찾아볼 수 없다.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그쯤에서 장사를 접고, 손님이 기대만큼 찾지 않으면 남은 재료들로 저녁 식사를 해 먹는다. 손님들의 태도도 흥미롭다. 메뉴판을 받으면 느긋하게 꼼꼼하게 살핀다. 궁금한 게 있으면 주저 없이 질문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즐긴다. 이서진은 신구가 손님들 앞에 계속해서 서 있자 “선생님 시간 좀 충분히 주시죠”라고 말하고, 신구는 “재촉하는 거 같아?”라고 웃으며 받아들인다. 나영석 PD의 ‘느림의 미학’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게다가 ‘발리’라는 여유로운 여행지가 주는 느낌과도 잘 부합한다.

 

물론 ‘사장’인 윤여정은 외진 곳에 위치한 ‘2호점’에 손님들이 잘 찾지 않자 “두 명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며 “장사하는 사람 심정이 이렇구나”라고 마음을 졸이지만, 그 애타는 심정의 본질은 준비한 재료들의 ‘아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계(生計)’가 빠져 있다. 시청자들이 나영석 PD가 구현한 ‘판타지’ 세계에 마음 편하게(심지어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런 시름 없이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무(無) 걱정'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90분 남짓한 시간의 ‘판타지’에 일주일 동안의 시달림을 조금이라도 떨쳐낼 수 있다면 ‘예능’으로서의 역할은 100% 수행한 것이 아닐까? "<윤식당>을 통해 시청자들이 쉴 틈 없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는 제작진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또 한번 견뎌내야 할 '월화수목금'의 공포 뒤에 <윤식당>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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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오랜만에 만나가지고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져 싸요. 거, 작가가 써준 거 읽지 말고 그냥 편하게 물으세요.”

“손 박사도 지금 재판 받고 있으면서 그 질문하면 안 되지”

 

‘손석희를 당황시킨 홍준표'


지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8.6%의 지지층에게 ‘영웅’ 대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하의 손석희 앵커를 상대로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맞서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전신인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 성향의 지지자들이 고스란히 이동한 자유한국당 내에서 손석희 앵커는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 아닌가.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 성향의 단체에서 손 앵커에 대한 음해가 무분별하게 이뤄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당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손 박사 보고 내가 민주당원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거냐”며 꼬집지 않았던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음모’였다고 생각하는 8.6%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토록 묻고 싶었던 말을 홍 후보가 대신 해준 것이었다. 물론 그 물음은 적절치 않은 것이었다. 손 앵커의 질문은 자유한국당 내의 친박 패권주의(양아치 친박)를 문제 삼았던 홍 후보가 며칠 사이에 ‘친박은 없다’고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손 앵커가 “김진태 의원은 친박이 아니라고 보는 거냐”고 거듭해서 묻자 ‘본인이 아니라고 했으니 아니다’는 해괴한 논리로 맞서다가 점차 궁지에 몰리자 이내 특유의 되치기로 맞선 것이었다. 그동안 숱한 토론과 인터뷰에서 홍 후보가 수도 없이 보여줬던 익숙한 패턴이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친문 패권주의는 없다’, ‘빨갱이가 아니다’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발언에도 더 이상 토를 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여기에 대해서 홍 후보가 또 어떤 괴상한 논리를 꺼내들지 궁금하다.

 

인터뷰가 있었던 다음 날, 부산 삼광사를 방문한 그는 기자들이 ‘계산된 발언이었냐’고 묻자 ”KTX타고 올라가면서 오늘 손석희 박사를 한 번 생방송에서 재미있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능구렁이‘ 홍준표 후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례‘와 ’안하무인‘이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에 당할 장사가 있겠는가. 이미 작정을 하고 달려들었던 홍 후보와 여기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던 손 앵커의 인터뷰 내용을 잠시 감상(하기엔 너무 화가 날지도 모르겠지만)해보자.


1.

 

(손석희 앵커)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냥 친박이 아닌 게 되는 건가요?

(홍준표 후보) 그럼 손 박사 보고 내가 민주당원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실래요? 아니라고 할 거 아니야.

(손석희 앵커) 물론 저는 아닙니다.

(홍준표 후보) 그렇죠. 본인 말을 믿어야죠. 재선 국회의원인데.

(손석희 앵커) 그런데 재선 의원이고, 본인이 친박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가지 양태가 친박이라면 그건 사람들이 친박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홍준표 후보) 오랜만에 만나가지고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져 싸요. 거, 작가가 써준 거 읽지 말고 그냥 편하게 물으세요.

(손석희 앵커) 지금 제가 작가가 써준 걸 읽고 있지 않습니다.

(홍준표 후보) 확실합니까?

(손석희 앵커) 네.

(홍준표 후보) 내 옆에서 딱 이야기하면 그걸 볼 수 있는데, 떨어져서 보니까 볼 수가 없잖아.

 

앵커를 향해 ‘작가가 써준 거 읽지 마‘라고 말하는 건 ’모욕‘에 가깝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를 대변하는 앵커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질문을 준비하고, 이를 순서대로 혹은 순번을 건너뛰고 질문을 건네는 것을 두고 ’앵무새‘ 취급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자신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척척 대답을 해낼 만큼의 내공을 갖춘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상식 밖의 접근이었다.

 

더군다나 공당의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가 아닌가. 손 앵커가 다음 질문을 이어가기 위해 시선을 아래쪽으로 옮기자 또 다시 홍 후보는 딴죽을 걸고 나섰다. “저, 뭐 보고 이야기하잖아. 보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죠. 그냥 작가가 써준 거 말고,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 오랜만에 만났잖아요. 그렇죠?” 허탈한, 썩소에 가까운 웃음을 짓던 손 앵커는 더 이상 두고 보면 인터뷰 진행이 어렵겠다고 생각했던지 정색을 하고 홍 후보에게 일침을 놓기에 이른다. 


홍 후보님, 제가 준비한 질문을 드리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은 홍 후보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지금 자꾸 저한테 하신다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 어렵고, 그렇게 필요한 말 같지 않습니다.” 방송사고 급의 인터뷰는 앞으로도 계속됐다.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2.

 

(손석희 앵커) 그 무자격 후보라고 유승민 후보가 몇 번씩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대한 반론을 말씀하지 않으시면, 글쎄요.

(홍준표 후보) 이 방송 이외에서는 구체적으로 말한 바가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다. 잘못 알고 있다. 그 이야기를 한 일이 있죠. 지금, 지금 손 박사도 아마 재판 중일껄요? 그렇죠? 손 박사도 재판 중인데, 거꾸로 방송하면 되냐, 내가 이래 물을 때 어떻게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그래 이야기하면 안 되죠.

(손석희 앵커) 저는 출마하지 않았고요. 홍 후보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후보 자격과 바로 직결된다는 상대방의 주장이 있는데 (중략) 그걸 전혀 답변을 안 하시겠다고 하니까 제가 질문 자꾸 드릴 수밖에 없는 거죠.

(홍준표 후보) 안 하는 게 아니고, 그거는 이미 이틀 전 <조선일보>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왜 그게 문제가 안 되는지는 내 언론에 한 두번 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니 손 박사도 지금 재판 받고 있으면서 그 질문하면 안 되지, 그건 국민이 판단할 사항이고.

 

손 앵커는 ‘홍준표 후보는 무자격 후보다’라는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의 말을 인용해서 이에 대한 홍 후보의 대답을 물었다. 홍 후보는 ‘그거는 내가 답변하지 않겠다. 자꾸 답변을 하게 되면, 기사를 만들어주지 싶어서 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답변을 거부한다. 집요한 손 앵커가 거듭 물어오자 홍 후보는 “손 박사도 지금 재판 받고 있으면서 그 질문하면 안 되지”라며 또 다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손 앵커의 자제력이 한계에 달했던 듯싶다.

 

“제가 지금 재판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홍 후보께서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내용은 아닌데요. 그 내용은 여기와 관련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따로 안 드리겠습니다마는, 제가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시기로는 방송할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그 말씀이십니까?”

 

그제서야 홍 후보는 “내가 싸울라고 하는 게 아니고”라며 한걸음 물러선다.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 이야기가 다 나온다“는 그의 말에 손 앵커는 연달아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홍 후보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인터넷에서 계속 다 찾아보려면 제가 인터뷰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손 앵커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웅웅거린다‘며 홍 후보가 징징대자 ’다른 후보들은 괜찮던데, 유독 홍 후보만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며 뒤끝을 작렬시킨다.

 

길이길이 회자될 역사적인 인터뷰가 아닌가 싶다. 이런 막무가내식 인터뷰는 결코 흔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렸지만, 솔직히 ‘웃음’이 났다. 재미있지 않은가. 홍준표 후보의 민낯(이야 이미 오래전에 탄로 났고)과 수준(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체험했으리라)도 알게 된 인터뷰였고, 무엇보다 손석희 앵커도 ‘사람’이라는 걸 재확인 할 수 있었던 기회였으니 말이다. ‘시간도 좀 지체된 편이다‘는 그의 두 번째 뒤끝은 인간미가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홍준표 인터뷰의 최대 수혜자는 곧이어 인터뷰를 가졌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아닌가 싶다. 수준 이하의 문답을 보다가 멀쩡한 인터뷰를 보게 됐으니 그 대비가 얼마나 명료했겠는가.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안철수는 홍준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보수표 주을 수 있으니”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만큼 홍준표 후보가 보여준 모습들은 공당의 책임있는 대통령 후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저열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경악스럽게 만들었던 수준 이하의 인터뷰를 복기할 생각이 전혀 없겠지만, 마치 사적인 자리에서 농담 따먹기와 같은 대답들은 유권자들을 설득시키기엔 한심한 것이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찌할꼬. “노무현은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는 둥 끊임없이 막말을 제조해왔던 그의 광폭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말이다.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기엔 남은 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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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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