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들보드를 타기 위해 곽지과물해변에 도착한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이지은은 해변이 잘 보이는 장소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는다. 세 사람은 텐트 안에 앉아서 맑고 깨끗한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상순이 패들보드 장비를 대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효리와 지은은 그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 짧은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효리가 입을 연다. 늘 그렇듯,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히 만드는 웃음을 동반한 다가섦이다. 


"너 처음 왔을 때 표정이 좀 어둡다가 중간에 밝아지는 듯 싶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것 같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뭔가 오늘은 내일 다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쓸쓸한 기분이 들어?"

"네, 네.."


쓸쓸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 어디 지은이뿐이겠는가. 마음 속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따스한 위안을 얻었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매한가지다. 사실 믿고 싶지 않다. 오는 24일 <효리네 민박>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 말이다. 6월 25일 첫 방송 이후 3달 동안 일요일 저녁이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효리네의 느긋함에 빠져 살았던 터라 '종영'이 주는 충격은 예상보다 크게 다가온다. 비록 2주 연장된 것이라 해도, 역시 이별은 너무도 갑작스럽다. 



"진짜 2주 길어 보였는데.. 아까 언니 주무실 대 작업실 앞 의자에 앉아가지고 새소리랑 듣는데 처음 온 날 생각나는 거예요. 근데 그거 진짜 어제 같은데, 내일 간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언니랑 처음 여기저기 가가지고, 바다 가가지고 노을 본 게 진짜 대박이었고, 손님들이나 막.. 그런 추억들이랑 그런 게.."


민박집이 운영됐던 15일 동안 총 13팀 39명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이효리는 회장, 이상순은 사장, 그리고 이지은은 직원 역할을 맡아 성심성의껏 손님들을 맞이했다. 조식, 청소, 잠자리, 바비큐 파티, 픽업 서비스 때때로 요가 수업까지 <효리네 민박> 임직원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신들의 공간을 거리낌없이 오픈했고, 그곳에 다양한 이야기가 묻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어보였고, 그 친근함에 손님들도 기꺼이 화답했다. 


장기 투숙하며 제주도를 샅샅히 살피고 조사했던 탐험가들, 아픈 가정사에도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사랑스러운 삼남매,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지만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없어 아쉽다던 정담이,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든 직장 생활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준 대구에서 온 영업사원들, 가고 싶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해질 것 같았다는 청춘의 고민을 털어놓는 예고 동창까지. 성별과 세대, 직업과 분야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소통과 배려, 이해와 감동이 한가득 모였다.



초반에는 포커스가 이효리에게 집중적으로 맞춰졌다. 시대를 호령했던 최고의 스타였던 그의 모든 것이 여전히 궁금했다.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효리가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호기심이 쏠렸다. 차로 아침을 열고, 요가와 명상으로 감정을 컨트롤하며, 산책과 낮잠으로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는 그의 삶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자연스레 이상순과의 결혼 생활이 주목됐다. 이효리는 매순간 남편이자 가장 좋은 친구인 이상순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초점은 이상순에게 슬그머니 옮겨갔다. 아마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남자이길래, 천하의 이효리가 '선택'한 걸까?'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내면에 화가 없는 사람'이라는 이효리의 설명처럼, 이상순은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 이효리를 느긋하게 지켜볼 줄 알았다. 매사에 차분하고 침착했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무언가를 요구할 때도 조곤조곤 설득했고,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려 들지도 않았다. 자상함과 배려가 돋보였다. 그러다보니 '워너비 남편'이라는 찬사까지 얻었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민박 손님들, 여기까지였더라도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단조로움'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룡점정을 찍은 무언가가 필요했을까. "3달 정도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그 둘과 민박객 이외에 다른 인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는 정효민PD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투입된 인물이 바로 아이유였다. 가요계를 넘어 연예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효리와 필적할 커리어를 가진, 현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아이유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됐다.



"그녀는 하얀 얼굴에 가지런한 단발머리/놀란 듯 눈은 동그래/왠지 모를 슬픈 표정/어디서 왔을까/큰 옷에 자그마한/어디로 가는가/하늘하늘 휘청휘청 걸어가네" - '효리&지은 송' 중에서 -


효리가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나 연예인의 모습을 내려놓고 그저 '이효리'로 다가왔던 것처럼, 아이유도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그저 '이지은'이 됐다. 그러자 꾸밈 없는 순수함이 빛나기 시작했다. 조금 느리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뒤뚱거리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수한다. 항상 밝게 웃고 크게 인사한다. 특유의 청량함이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또, 몸에 밴 예의 있는 태도가 보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지은은 가요계의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이효리에게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또, 효리는 지은을 통해 주인공의 자리를 내려놓는 법을 깨다는 등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어느새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어쩌면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값을 매길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다르면서 같은, 같은면서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그들의 대화에 깊이 빠져든다. 



<효리네 민박>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예능적 요소'가 전혀 없다. 제작진과 출연진 그 누구도 웃기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저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콘셉트 속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TV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는 간접 광고도 없다.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존재'하게 하는 힘은 이효리에서 발현된다. 오로지 이효리이기에 가능한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효리네 민박>인 셈이다.


첫회 6.745%로 시작해서 최고 시청률 9.995%를 기록하기도 했던 <효리네 민박>은 꾸준히 7~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의 중심에 있었다. <효리네 민박>은 느림의 미학, 여유로움의 힐링을 더할나위 없이 증명했고, 성공만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삶을 강제받는 현대의 소시민들에게 인생에 대한 다른 시선을 제공했다. 그것이 경제적 안정 속에서 가능한 판타지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적어도 이효리가 줬던 진심과 힐링은 '진실'이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이별이 한없이 아쉽고 섭섭한 까닭은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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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동 : 전원 투표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사회 

장동민(개그맨), 엠제이 킴(MMA 선수), 줄리엔 강(방송인), 고우리(연기자), 정인영(방송인), 학진(연기자), 김회길(피트니스 모델), 유리(모델), 박현석(대학원생), 캐스퍼(래퍼), 이준석(정당인) 


마동 : 소수 권력에 의한 독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사회 

이천수(전 축구선수), 조준호(유도 코치), 박광재(연기자), 김하늘(외국 변호사), 정은아(대학생), 손태호(취업 준비생), 권민석(MMA 선수), 알파고(기자), 구새봄(방송인), 유승옥(모델), 김광진(전 국회의원)


tvN <소사이어티 게임2>의 세 번째 탈락자는 정당인 이준석이었다. 높동과 마동은 '러시아 장기'라는 종목으로 대결을 펼쳤다. 룰은 간단했다. 두뇌 팀이 장기 대결을 하고, 신체 팀이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버티는 식이었다. 장기에서 패배하면 진 팀의 양동이에 5L의 물이 추가된다. 승부는 일방적으로 갈렸다. 적어도 '러시아 장기'에선 그러했다. 믿었던 장동민이 첫 판을 허무하게 내주자 높동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필승법이라 여겼던 가장 큰 말을 가운데 놓는 전략은 마동의 파해법에 산산조각났다.

 

 

마동은 '러시아 장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손태호를 중심으로 두뇌 팀인 정은아, 알파고가 선전하며 손쉬운 승리를 가져왔다. 높동의 신체 팀은 강한 정신력으로 두뇌 팀의 열세를 만회하려 애썼지만, 쌓여가는 물의 무게를 견뎌낼 초능력은 없었다. 승리를 거둔 마동은 1천 만 원의 상금과 닭가슴살 소시지를 부상으로 챙겼다. 마동은 부상인 닭가슴살 소시지의 일부를 높동 측에 던져주며 선심을 썼는데, 높동의 리더 정인영은 여기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러시아 장기'에서 전패를 당했던 미안함도 한몫 했으리라.


정인영은 게임에서 부진했지만, 리더이기 때문에 탈락자에서 제외됐다. 장동민은 사실상 리더와 다름 없는 '대주주'였으므로 탈락의 가능성이 낮았다. 결국 '존재감이 없었던' 이준석이 탈락하게 됐다. "엠제이와 내가 불안하다"던 이준석의 불길한 예감이 여지없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엠제이의 경우에는 두뇌와 신체, 두 분야에서 활약이 가능하기에 이준석에 비해 생존의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이준석은 장동민과 이미지나 캐릭터가 중복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선택은 오히려 쉬웠다.

 

 

 

이준석마저 탈락함으로써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스토리가 하나 생겨났다. 출연자 가운데 직업이 '정치인'이었던 두 명이 모두 원형 마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난 2회의 탈락자는 전 국회의원 김광진(마동)이었다. 비록 지금은 '무직'인 상태이지만, 그들에게 빨리 '(본업인) 정치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낸 것일까. 김광진의 탈락은 이천수가 주도한 측면이 있다. 그는 "정치하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얍삽해."라고 끊임없이 주입시켰고, 주민들도 이천수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했다. 


김광진은 탈락을 맞이하면서"'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존해야지'라고 하는 것에는 100%를 투자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정치인이니까 '이중적으로 보이지 않을까'라고 하는 두려움? 제 스스로가 자처한 실패인 것 같아요."라고 자성했다. 하지만 <소사이어티게임2> 제작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는데, 제작진은 김광진에게 '피아식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조언을 건넸다. 그가 자신을 제거하려고 했던 이천수를 과도하게 믿고 있었던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적을 모르고 나를 몰랐던' 김광진은 마동 생활에 있어서도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줘 주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그는 먼저 나서서 궂은 일을 하기보다 뒤로 물러서 지시하는 데 익숙한 듯 보였다. 이러한 태도들은 집단 생활이 요구하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두뇌와 신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그의 능력을 어필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요인이었다. 야심차게 예능에 뛰어들었던, 각광받던 젊은 정치인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그의 말처럼 자처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튀지 않아야 오래 산다고. 하지만 견제가 두려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언젠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준석은 어땠을까. tvN <더 지니어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그는 '두뇌' 영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왔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소사이어티 게임2>에서도 그의 분야(혹은 대중들의 기대)는 뚜렷했다. 하지만 이준석의 활약은 미미했다. 장동민과의 직접적 경쟁 관계로 돌입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그는 최대한 몸을 사렸고, 그 때문에 존재감은 더욱 약해졌다. '굳이 이준석이 아니라도 괜찮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준석의 탈락 뒤에는 고우리의 모략이 있었다. 감옥에 갇혀 탈락의 예봉을 피할 수 있었던 고우리는 박현석에게 "(네가) 탈락될 수 있겠다. 이준석을 찍어야 탈락되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감을 심어줬다. 위험을 감지한 박현석은 이준석에게 투표했고, 결국 탈락자는 고우리의 생각대로 이준석으로 결정됐다. 그렇다고 해서 고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궁지까지 몰리는 상황을 만든 건, 결국 지나치게 몸을 사렸던 이준석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광진과 이준석의 탈락은 '정치인의 탈락'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형 마을에서 주민들이 정치인을 먼저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건, 현실에서 우리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의 직업이 '정치인'이라고 해서 매사에 '정치적'으로 임하진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천수나 고우리가 훨씬 더 '정치적'이지 않았던가. 또, '정치인'이라고 해서 남다른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이준석이야 두뇌를 활용하는 예능의 단골 손님이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남다른 포부를 안고 예능에 뛰어든 김광진의 경우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작별을 고하게 돼 스스로도 아쉬움이 컸으리라. 진짜 정치인들이 사라진 <소사이어티 게임2>는 앞으로 더욱 '정치적'인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생존을 위한 특유의 정치적 DNA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치인들로부터 그것을 야무지게 배워 청출어람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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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화(黑化, Being Blacken) : 선한 인물의 타락

 

"내가 치료하면 네 형은 죽는다. 너 또한 다칠 수 있다."


치료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뿌리칠 수 없었다. 더욱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구하려다 양반에 의해 매질을 당했던 일이 아직 눈에 선했다. 게다가 그가 살려낸 동막개의 어머니가 양반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 것을 막아낼 수 없었던 무력감도 생생했다. 그러나 허임은 다시 한번 손에 침을 쥐었다. 의원의 삶을 살아가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일까. 측은지심을 지닌 선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딜레마일까. 


허임은 결국 두칠(오대환)의 형 딱새를 치료하고 살려낸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희망도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병조판서(안석환)는 자신의 '소유'를 건드린 허임의 죄를 묻는다. 양반의 것이었던 딱새는 매질을 당해 죽임을 당한다. 형의 죽음을 목도한 두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병판에게 달려들다가 그 역시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허임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양반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먹고 꼬리나 흔드는 개새끼'라며 한껏 낯춘 채 살려만 달라고 애걸한다. 

 

 


"개, 돼지만도 못한 이놈들. 대감의 노여움이 풀릴 수만 있다면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하지요. 허나, 저희 같은 천하고 더러운 것들을 죽여봐야 대감님의 귀한 손만 더러워질 터, 부디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목숨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대감."


조선에서 또 한번 극단적 상황을 겪고 현대로 타임슬립한 허임은 '흑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의원의 손길이 필요한 거리의 노숙자들을 모른 채 하고 지나치고, 자신의 침통을 한강에 버린다. 그러면서 "다신 그리 짓밟히고 천대당하며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과거의 자신과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처음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유혹'처럼 다가왔던 이사장 마성태(김명곤)의 제안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 돼 버렸다. 귀한 사람을 치료하고, 그들을 얻는 일. 다시 말해 의술을 파는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흑화한 허임은 최연경과 갈등 관계에 돌입한다. 조선에서 허임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알게 된 최연경은 그의 곁에 있어주려 애쓴다. 하지만 허임은 이를 거부한 채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급기야 마약에 중독된 VIP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대립각을 세운다. 허임은 환자를 빼돌리는 걸 막아선 최연경에게 "치료는 최 선생이 먼저 받아야 할 거 같은데요. 툭하면 환자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이 누굴 치료하겠다는 겁니까. 그러고도 의사를 운운할 자격이 있어요?"라며 독설을 던지며 무력화시킨다. 

 

지난 8회에서 과거 '헬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긴장감을 끌어올린 <명불허전>은 9회에서 급격하게 흐름을 바꿨다. 아마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급반전이 오히려 극의 재미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9회의 핵심적인 스토리라 할 수 있는 '허임의 흑화'에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또, 허임과 최연경 사이의 멜로 라인도 너무 뻔해서 식상하다는 것이다. '기승전멜로'의 고질병이 도졌다는 불만이다.


 

 

"의사로서의 선이라 그게 무엇이오. 그 곳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의사로서의 도리와 선의가 때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 사람을 살리는 것이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판단하는 것이 의사의 몫이 아니라 했습니까. 허나 나는 따질 것이요 무엇이 나한테 득이 되고 해가 되는 지를 두 번 다시 개처럼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 의사의 선이라는 것을 나는 넘을 것이오."


그러한 지적도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천한 신분 탓에 죽을 고비를 연거푸 겪었던 허임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바꾸려고 하는 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현대로 돌아온 후에 또 다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의료 행위를 한다면, 그게 더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 '달라진 게 없는' 현대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능력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 있는 이곳에서 다른 삶을 살려는 그의 '변화'에는 개연성이 있다. 비록 그것이 '흑화'이고, 일시적인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한편, 허임과 최연경의 멜로의 경우에도 애초에 그것이 '예고'돼 있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또, 허임이 최연경을 밀어내는 이유도 설명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엮이게 되면 '타임슬립'이 작동될 여지가 있고, 위험한 상황들에 노출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알고 있는 현대의 유일한 인물이 최연경이고,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흑화를 흔들리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최연경의 말처럼 쓸데없는 '자존심'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두 사람의 밀당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명불허전>의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허임의 흑화가 강조되다보니 자연스레 극의 분위기가 침체됐다. 김남길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한 포인트였는데, 이 부분이 몽땅 사라지면서 드라마 자체가 흑화된 것이다. MBC <선덕여왕>에서 '비담'역을, SBS <나쁜남자>에서 '심건욱' 역을 맡았던 김남길은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그 매력이 워낙 치명적이라 하드캐리하고 있지만, 극의 흐름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붕 뜬다는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또, 주변 인물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미미하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도드라진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좀더 촘촘하게 이야기를 짰더라면 어땠을까. <명불허전>이 보여준 조선과 현대를 왕래하는 타임슬립과 그 안에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섞어 넣는 설정은 참신하고 기발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스토리 진행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는 반전의 기회가 남아 있다. 허임의 흑화, 허임과 최연경의 멜로를 빨리 풀어내고, 애초에 이야기하고자 했던 '두 개의 시대'와 '의사로서의 선'에 다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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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지만, 2주차 방송에서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원의 첫 의학 드라마 출연으로 기대를 모았던 MBC <병원선>은 시작부터 '진부하다', '식상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병원선>은 대부분의 메디컬 드라마가 그러하듯, '휴먼 드라마'와 '청춘 드라마'를 적절히 섞어 녹여내고자 했다.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외딴 지역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진료하는 병원선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휴먼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철없는 군의관(공중보건의)들의 성장과 송은재(하지원)의 변화는 '청춘 드라마'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니까 '재료'는 더할나위 없었던 셈이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골고루 집어넣었으니, 잘 버무리기만 하면 여러 포인트에서 감동을 전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문제가 여러군데에서 터져 버렸다. 드라마 속 캐릭터는 진부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분석과 연기력의 부족이 주원인이겠지만, 문어체가 많은 대사도 단단히 한몫 했다. 배우들의 입에도 달라붙지 않는 그 딱딱한 문체들이 시청자들의 귀에 착착 감길 리가 있겠는가. 


아이돌 출신 남자 주인공의 무게 없는 연기도 아쉬웠지만, 무게감에 짓눌린 하지원의 그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딱딱했고 경직돼 있었다. 그가 맡은 송은재가 냉철한 의사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감정 연기를 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이며 진가를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이질적인 모습을 이해시킬 '대본'과 '연출'이 문제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촌스러웠는데, 일각에서는 '90년대 메디컬드라마'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호사 폄하 논란'까지 더해져 <병원선>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병원선>에서 표고은(정경순)을 제외한 간호사들은 무능한 존재로 그려졌다. 재벌 2세 장성호(조현재)가 송은재를 보기 위해 '코드블루'를 떨어뜨리라 하자 그 지시에 따르고, 응급 상황에서 남은 마취제를 떨어뜨린다. 또, 응급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간호사 유아림 역을 맡은 걸그룹 AOA의 민아도 몸매를 뽐내긴 마찬가지다. 결국 송은재로부터 "유아림 선생은 부실하고요"라고 훈계를 받기에 이른다.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응급 환자를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간호사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또, 애초에 상하관계가 아닌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를 왜곡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추고 묵묵히 환자들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모욕이다. 결국 <병원선> 측은 7화부터 간호사 의상을 바지로 변경할 것이라면서 '간호사 논란'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즉각적인 반성은 좋지만, 이런 논란들이 초반부터 제기된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6일 방송된 5회에서는 송은재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했다. 병원선의 선원인 강정호(송지호)가 짐을 옮기던 중 철제 문에 팔이 끼어 부상을 입자, 괴사를 막기 위해 망설임 없이 손도끼로 팔을 절단한 후 접합수술을 성공한 것이다. 이어진 6회에서는 송은재가 병원선에 오르게 된 이유가 밝혀졌다. 스승이자 외과과장인 김도훈(전노민)이 자신의 의료 과실을 덮으려 하자 "환자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다"며 진실을 밝히다가 병원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병원선에서의 수술은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래서인지 긴장감도 전혀 없었다. 또, 꽁꽁 숨겨왔던 송은재의 '비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라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또, 환영회 겸 회식 장면은 불필요해 보였고, 그 연출도 억지스러웠다. 뻔하디 뻔한 배경음악은 드라마에 촌스러움을 더했고, 전형적인 연기로 일관하는 조연 배우들도 분위기를 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에는 하지원의 개인기가 <병원선>을 억지로 끌고 갈 거라 여겼지만, 그마저도  거친 물살에 허우적대고 있어 버거워 보인다.

 


하지원의 소속사 해와달엔터테인먼트는 "돌아오는 방송에서는 송은재의 진가와 이를 반영하는 하지원의 울림 있는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눈을 뗄 수 없이 몰아치는 전개와 송은재의 활약을 기대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선 <병원선>의 항해를 지켜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올해 초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이미 의학 드라마에 대한 눈이 한껏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 울림과 감동이 워낙 컸던 터라 <병원선>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tvN <명불허전>이 보여주고 있는 번뜩이는 참신함이 있었다면 모를까. 한석규도 없고, 김남길도 없는 <병원선>엔 기댈 구석이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달라진 게 없는 <병원선>의 항로는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경쟁작들이 워낙 바닥을 기고 있어 시청률 1위를 사수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이런 평가라면 부끄러운 1위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연 <병원선>은 반전의 키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 돌파구가 어설픈 러브 라인은 아니기를 바란다. 가라앉는 한이 있더라도 '정공법'으로 승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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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곤 : 원자번호 18번의 원소.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며, 비활성 기체중 공업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무색 · 무취 · 무미의 기체.

 

"좋은 보도 기대할게요."


HBC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아르곤'의 미드타운 붕괴 사고와 관련한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해 마련된 자리. 미드타운의 미심쩍은 인허가 미스터리와 '직접적'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국토부 차관은 앵커 김백진(김주혁)에게 '좋은 보도를 기대하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좋은 보도라.. 그렇다, 누구나 '좋은 보도'를 기대한다. 거기엔 생략된 부분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나한테' 또는 '우리 측에'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좋은 보도'란 필요치 않다. 그저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보도가 요구될 뿐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극본 전영신 주원규 신하은 연출 이윤정)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오직 팩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적인 언론인들의 치열한 삶을 그려낸 드라마'다. 그 중심에 HBC의 간판 앵커이자 탐사보도팀 아르곤의 수장 김백진이 있다. 언론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은 '팩트'다. 오로지 사실에 기반한 정직한 보도를 추구한다. 수익을 고려한 회사의 압박, '좋은 보도'를 기대하는 외압으로부터 흔들림없이 그 가치를 지켜 왔다. 그것이 김백진의 자부심이다. 

 

 


"경찰 확인 없는 반쪽 특종 빨아주느니 내 의심을 믿겠어."

보도국장 유명호(이승준)의 HBC의 '뉴스9'은 미드타운 붕괴 사고를 보도하면서 그 책임을 모두 주강호 현장소장에게 떠넘겼다. 주 소장이 공사 관리에 부실했고, 붕괴가 발생했을 당시 대피방송도 하지 않고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 탈출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자극적인' 보도에 시청률은 뛰어 올랐고, 여론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주강호 현장소장은 순식간에 '악'의 상징이 됐고, 그의 가족들은 죄인이 됐다. 급기야 분노한 유가족들이 던진 계란을 맞는 등 폭행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한편, '아르곤'과 김백진은 섣부른 '마녀사냥'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원적인 의문을 품고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뉴스9'의 '팩트 없는' 특종 보도를 받아쓰기하지 않고, 자사 보도에 반론을 제기했다. 김백진은 계약직 기자 이연화(천우희)가 현장 소장이 수 차례 공사 중지를 요청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찾아오자 이를 보도한다. 이 소식을 들은 '뉴스9'의 유명호와 그의 팀원들은 '아르곤'의 보도를 막기 위해 생방송 뉴스가 진행되고 있는 데스크에 들어와 몸싸움을 벌인다.


결국 주강호 현장소장의 시신이 지하 2층 무너진 비상 계단에서 발견됐다는 속보가 전해지고, 그가 현장에서 도망친 비겁자가 아니라 실종 아동인 양빛나를 구하기 위해 끌어안은 채 죽음을 맞은 의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된다. '팩트'에 근거한 '정직한' 보도를 했음에도 김백진과 '아르곤'은 위기에 처한다. 회사 측은 일관성 없는 보도로 방송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며 오히려 질책을 했는데, 그 진짜 이유는 '아군끼리 난사 금지'라는 금기를 어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배신자'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이건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희 팀이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야기야. 정말 아르곤의 존속을 원했다면 너는 명호처럼 머리를 조아렸어야 해, 임마. 넌 유 국장이 천하의 기회주의자, 쓰레기로만 보이지? 착각하지 마라. 그렇게 살아남아서 길게 보도하는 거, 그것도 기자야."


'아르곤'은 제작비가 절반으로 삭감될 처지에 놓였고, 계약직 스태프들의 목숨까지 경각에 달했다. 김백진은 '연맹이 우선'이라 생각하는 '뉴스9'의 앵커인 선배 최근화(이경영)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화는 "회사가 진짜 원하는 거, 사장은 아르곤의 DNA를 바꾸고 싶어 해. 겁 없이 사장 건드리는 애들, 껍데기는 두고 알맹이만 싹 다 바꾸고 싶단 얘기야. 얼굴마담인 김백진, 너만 두고 전부 다."라고 알려주며, 김백진에게 미드타운 붕괴 사고와 관련한 후속 보도를 멈출 것을 조언한다. 


김백진은 '아르곤'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그 딜을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찾아온 육혜리(박희본), 엄민호(심지호), 허종태(조현철), 오승용(지윤호), 박남규(지일주), 이진희(박민하) 등 팀원들이 자신들이 잘려도 좋으니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요구하자 마음을 바꿔 미드타운 인허가 과정의 비리를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이연화에게 해당 사건의 취재를 계속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둘만의 비밀로 두기로 한다. 앞으로 까칠하지만 빈틈없는 김백진과 겁없이 달려드는 이연화의 팀플레이가 기대된다.

 


첫회 시청률 2.5%를 기록했던 <아르곤>은 2회 2.869%로 상승 기류를 타며 tvN 월화드라마 부활을 알렸다. 웰메이드 드라마의 기본인 대본의 쫄깃함이 전제된 상태에서 미드를 연상케 하는 연출이 돋보여 한층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김주혁과 천우희를 비롯한 배우들의 캐릭터 분석이 선명하고, 연기력도 뒷받침되고 있어 몰입이 수월하다. 김주혁은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담백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의 연기는 <아그곤>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천우희는 파업 참여로 해고된 기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특별 채용돼 '용병' 취급을 받는 천덕꾸러기지만, 남다른 기자 정신을 갖고 있는 기자 역을 물흐르듯 연기해냈다. KBS와 MBC의 구성원들이 공영방송 재건을 위해 적폐(積弊)인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시점에 올바른 언론, 바람직한 언론인을 다루는 <아르곤>이 던지는 질문들은 무겁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아르곤'은 산소가 다른 물질을 산화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안정적인 기체라고 한다. 이제야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아르곤>인지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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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권력'과 '생존'에 대한 특별한 실험, tvN <소사이어티 게임>이 시즌2로 돌아왔다. 지난 8월 25일 방송된 <소사이어티 게임2> 첫회 시청률은 0.842%로, 지난 2016년 10월 16일 전파를 탔던 <소사이어티 게임> 시즌 1 첫회 시청률 1.263%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쁜 출발을 했다. 하지만 2회에서 1.073%로 상승하면서 좋은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다. 출연진에 대한 소개와 소속 사회(높동과 마동)를 결정하는 인트로가 마무리 되고, 본격적인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어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사이어티 게임2>는 통제된 상황 속에서 계획된 모의사회 게임쇼다. 제작진은 원형마을 속에 높동과 마동이라는 두 개의 대립된 사회를 세워놓고, 22명의 출연자(남성 7명, 여성 4명)를 불러모아 각기 자신이 속할 사회를 선택하게 한다. 출연진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이 토대가 되는 높동과 소수 권력이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마동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회를 고르게 된다. 그렇게 나뉜 두 개의 사회는 내부 갈등과 외부 경쟁을 겪으며 최종 대결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시즌 1에서 신체, 두뇌, 감각으로 구분됐던 능력은 신체와 두뇌로 단순화 됐다. 출연자들은 신체와 두뇌 능력이 바탕이 된 다양한 게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게 되고, 끝까지 살아남게 된 최후의 3인이 파이널 챌린지에 진출해 각 사회의 명예를 건 대결을 펼치게 된다. 기본적으로 '능력'이 우선이지만, 그 능력치가 엇비슷할 경우에는 '정치력'과 '연맹'이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게 된다. '체제'와 '리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권력'과 '생존'을 논하는 <소사이어티 게임2>의 두 번째 실험이 시작됐다. 

 

높동 : 전원 투표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사회

장동민(개그맨), 엠제이 킴(MMA 선수), 줄리엔 강(방송인), 이준석(정당인), 고우리(연기자), 정인영(방송인), 학진(연기자), 김회길(피트니스 모델), 유리(모델), 박현석(대학원생), 캐스퍼(래퍼)        


마동 : 소수 권력에 의한 독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사회

이천수(전 축구선수), 조준호(유도 코치), 박광재(연기자), 김하늘(외국 변호사), 정은아(대학생), 손태호(취업 준비생), 권민석(MMA 선수), 알파고(기자), 구새봄(방송인), 유승옥(모델), 김광진(전 국회의원)

 

밑그림은 그려졌다. 높동은 돌아온 시즌 1의 주역 엠제이 킴이 리더를 맡았다. 하지만 tvN <더 지니어스 : 블랙가넷>과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장동민의 놀라운 두뇌 능력와 생활력,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훨씬 더 돋보이고 있다. 장동민은 압도적인 암기 능력으로 자신의 게임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능력 향상까지 책임지며 '갓동민'의 위력을 어김없이 과시하고 있다. 엠제이 킴은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여자 연합'을 비밀리에 구상하고 있지만, 높동은 장동민 위주로 흘러갈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한편, 마동은 호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김하늘이 첫 번째 리더가 됐지만, 끊임없이 '리더십'을 문제 삼는 이천수의 흔들기 공세에 휘둘렸다. 첫날은 승리를 거둬 '야권'의 반발을 무마했지만, 둘째 날 완패를 당하며 저항선이 무너졌다. 자존심이 상한 이천수는 대놓고 반란을 모의했고, 끝내 박광재를 움직여 반란의 징을 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반란의 열쇠를 챙기며 추후 자신이 리더로 올라설 여지를 남겼다. 권력 욕심이 있었던 박광재가 표면적인 리더가 됐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이천수라고 봐야 할 듯 싶다.

 

<소사이어티 게임2>는 시즌 1에서 노출됐던 아쉬움을 일부 보완했다. 높동의 경우, 과거 리더가 탈락자를 결정하던 방식에서 투표를 실시해 다수결에 따르도록 했다.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높동의 성격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또, 리더가 매 챌린지가 끝난 후 주민들에게 상금을 '배분'했던 시즌 1과 달리 이번에는 한 명에게만 줄 수 있게 바뀌었다. 또, 그 상금 현황도 리더만 알 수 있게 함으로써 리더의 권환을 강화했다. 물론 그만큼 '리더에 대한 의심'도 커져 리더 교체의 가능성도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 부분은 의아하게 다가온다. 전체 출연진 22명 가운데 남성이 14명에 달한다. 비율로 따지면 63.6%에 달한다. 이는 남성 2488만2000명, 여성 2497만4000명으로 조사(2016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된 내국인 성비와도 맞지 않다. 신체 능력이 중요시되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숫자를 5:5로 정확히 맞추진 않더라도 비슷하게 맞출 순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제작진은 애초에 각 사회마다 남성 7명, 여성 4명을 제시하면서 고정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수적 열세에 놓인 여성 출연자들은 탈락의 공포를 더욱 크게 느껴야 했고, 그래서 모종의 연합을 구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첫 번째 탈락자는 여성인 캐스퍼였고, 두 번째 탈락자는 남성인 김광진으로 결정됐지만, 수적 열세는 여전히 집단 내에서 불안 요소일 수밖에 없다. 엠제이 킴이 정인영과 '속닥속닥' 하는 관계를 만드는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이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

 

2회까지 진행된 지금까지는 '탐색전'에 불과하다. 그것도 초반이다. 벌써부터 존재감을 드러낸 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아직까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승리를 향한 싸움은 더욱 거칠어질 테고, 권력을 향한 욕망은 점차 솔직해질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더욱 처절해지리라. 파이널 챌린지에 진출하게 될 6인은 누가 될까? 과연 '우승'을 차지하는 건 높동일까, 마동일까? 이런 질문들과 함께 각 사회가 어떤 '리더'를 배출하고, 어떤 '권력'을 생성해 나갈지, 그리하여 어떤 '사회'를 꾸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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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줄타기 : 공중에 매단 줄 위에서 광대가 재담 · 소리 ·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곡예.


김구라의 방송 스타일은 자칫하면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줄타기와 다름 없다. 스스로를 백척간두에 몰아넣어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후 신묘한 재주를 부려 바라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는다.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함이 아찔한 탄성을 자아내고, 재치있는 말과 능글맞은 발재간이 쉼없는 박수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위험도가 높으면 자연스레 위기가 잦기 마련이다. 위기가 자주 찾아온다는 건 그만큼 추락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오는 것이다. 김구라가 또 한번 삐끗했다. 


포털 사이트 DAUM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김구라 라스 퇴출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약 3만 명(10시 40분 현재 29,978명)이 서명했다. 대중들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폐지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발단은 이미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그 사건, 바로 '김생민 조롱 논란'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는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라는 콘셉트로 염전(천일염)' 측에 김응수와 김생민을 섭외했고, 욜로 측에 조민기와 손미나를 데려왔다. 

 

 

방송 콘셉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제작진은 '염전'과 '욜로'를 비교하면서 웃음을 생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마어마한 콜렉터인 조민기는 클래식 차 7대, 바이크 3대, 안경을 800개를 소유하고 있다고 자랑(?)했고, 반면 김생민은 '절약 노하우'와 '짠돌이스러운 지혜'를 방출했다. 그런데 '방점'이 이상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조민기의 지출은 부러움의 대상이 됐고, 그와 같은 소비가 '욜로'라는 식으로 포장됐다. 어떻게든 돈을 아껴보려는 김생민의 노력은 '미간을 찌푸리는 이야기'가 돼갔다.


제작진은 "방송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김생민씨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녹화에 모셔 좋은 내용으로 다시 찾아뵙겠다"며 공식 사과했다. 조롱하려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사과의 주요 골자이며,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콘셉트를 잡는 데 있어 신중치 못했던 책임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는 콘셉트에는 숨겨진 '뉘앙스'가 있었고, 그것이 방송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간에 궁극적으로 '욜로를 외치'는 것이 결론으로 못박혀 있었던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에 맞춰 MC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고, 김구라는 아예 선봉에 섰다. 그가 '독설'과 '비판' 혹은 구박'을 주무기로 하고 있기에 캐릭터 적인 면에서 자처한 일이지만, 그의 태도와 발언이 과했던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그의 경솔함이 자초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줄타기의 장인'답게 적절한 선에서 묘기를 마무리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김생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김구라와 김생민과의 1:1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김생민에게 공감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소시민들과의 관계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김구라의 핀잔과 놀림은 김생민에 대한 조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퍽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김생민'들에 대한 공격으로 보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라 형님과 원래 친한사이다. 이번 일로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촬영 현장은 화기애애했고, 우려하시는 일은 없었다"는 김생민의 쉴드는 이 사태를 갈무리하는 데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선봉에 섰던 김구라가 집중 포격을 맞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라디오 스타> 제작진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팟캐스트로 시작해 KBS2에 자리를 튼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캐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라디오 스타> 측도 내심 억울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경청'이 아니라 '물어뜯기', 그것도 인정사정 없는 공격이 프로그램의 근본 정신이었던 만큼 지금의 논란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우린 원래 이랬는데..' 라는 항변, '쟤네들은 원래 그랬는데..'라는 일부 애청자들의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섭외와 콘셉트에 좀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지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어설프게 '욜로'와 '염전'을 비교하기보다 차라리 '염전' 특집을 좀더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게 어땠을까. 공정한 비교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염전에도 욜로가 있다'는 김응수의 말처럼 그 부분을 강조했다면 더 재미있는 방송이 됐을 것이다. 


제작진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해서 김구라에게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 아무리 사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연자의 말을 중간에서 끊는다거나 짜증섞인 반응으로 일관하는 건 (캐릭터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면, 대중들의 사랑이 존재 이유인 예능인으로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더 사려 깊은 방송을 하"겠다는 그의 반성이 빠른 시일 내에 반영되길 바란다. 그래야 김구라라는 유니크한 방송인, 그의 줄타기를 계속 TV를 통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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