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배트맨, 원더 우먼, 아쿠아맨, 사이보그, 플래시. DC의 슈퍼 히어로들이 뭉쳤다. DC 코믹스가 <저스티스 리그>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슈퍼 히어로 군단인 '어벤져스'를 영화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던 마블 코믹스에 비해 DC 코믹스의 움직임은 한참 뒤쳐져 있었다. 마블 코믹스는 <아이언맨>(2008)의 성공을 토대로 지구 최강의 영웅들을 차례차례 불러 모았는데, 그 중심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캐릭터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있었다. 아이언맨이 자리를 굳건히 잡자 이야기의 확장이 원활했고, 다른 히어로들도 무리 없이 어벤져스에 합류해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반면, DC 코믹스는 <배트맨> 시리즈의 실패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크리스터포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만이 예외적인 대성공을 거뒀는데, 그 성취는 가히 경이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DC 코믹스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정신을 못 차리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정점을 찍은 후 뒤따르기 마련인 하강이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급작스러웠고 모양새도 매우 나빴다. 여기에 <어벤져스>(2012)의 개봉은 결정타였다. 두 회사의 격차는 점차 커지기만 했다.




이렇게 되자 DC 코믹스는 뒤늦게 '저스티스 리그' 카드를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원래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에 영향을 받은 마블 코믹스가 '어벤져스'를 탄생시켰던 역사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DC 코믹스는 자사의 대표적인 슈퍼 히어로인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을 그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을 통해 DCEU(DC Comics Extended Universe)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스토리와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가 패착이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아든 DC 코믹스는 임원 교체를 단행했고,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듯 하다. <원더우먼>(2017)은 그 반격의 출발점이었다. 갤 가돗은 원더우먼 역을 맡아 자신의 매력을 확실히 드러내며 길고 긴 잠에 빠졌던 DC 코믹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개봉 첫 날 3880만 달러(한화 약 426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는데, 기대했던 오프닝 성적은 아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출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DC 코믹스가 내놓는 영화들에 혹평을 쏟아냈던 대한민국 관객들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저스티스 리그>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18일까지 851,080명을 동원했는데, 19일에 100만 돌파는 기정사실이다. <토르 : 라그나로크>의 성취(4,526,907명)를 넘어설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DC 코믹스의 변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반응이 많아 '입소문'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과연 DC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균형을 맞춰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저스티스 리그>는 슈퍼맨이 빌런 둠스데이와의 전투 끝에 죽고 난 뒤의 세계를 그린다. 수호자를 잃어버린 지구는 혼돈 속에 놓인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추앙하던 영웅과의 이별을 슬퍼한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존재의 상실은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긴다. 거리의 곳곳에는 다시 무법(無法)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배트맨(벤 애플렉)의 고민도 커지기 시작한다. 배경 음악으로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Sigrid)의 'Everybody Knows'가 깔리는 이런 장면들은 착잠함을 더한다. 


이 틈을 빌런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행성 아포콜립스(Apokolips)의 지배자 다크 사이드의 대장군 스테픈 울프는 '마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파라데몬 군대를 이끌고 지구로 온다. 마더 박스는 시공간, 에너지, 중력을 통제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물체인데, 스테픈 울프는 세 곳(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와 아틀란티스, 인간계)으로 흩어져 있는 마더 박스를 합쳐 지구를 멸망시키려 한다. '인류의 멸망'을 좇는 빌런들의 뻔한 욕망이 지겹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구가 위기에 빠져야 슈퍼 히어로가 존재 의의를 얻게 되는 것을.





배트맨은 원더 우먼(갤 가돗)과 함께 스테픈 울프를 막기 위해 팀을 꾸리기 시작하는데,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 사이보그(레이 피셔) · 플래시(에즈라 밀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아틀란티스의 왕위를 계승한 아쿠아맨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인데, 바닷속의 수많은 생물들과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기로는 삼지창을 사용한다. 사이보그(레이 피셔)는 몸 자체가 컴퓨터로 세상의 모든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번개를 맞고 초월적인 스피드를 얻게 된 플래시는 엉뚱한 모습으로 영화에 활력을 준다.


그런데 이들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배트맨은 '슈퍼맨의 부활'을 모색하게 되고, 마더 박스를 이용해 슈퍼맨을 죽음에서 깨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슈퍼 히어로 간에 의견 다툼이 발생하지만, 슈퍼맨을 되살리는 일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전체가 된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은 스테픈 울프로부터 마더 박스를 지키고,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게 된다. 물론 싸움 자체는 시시하기 짝이 없다. 슈퍼맨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스티스 리그>의 가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스티스 리그>는 '저스티스 리그의 창설'과 '멤버들의 소개'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러닝타임(120분)의 절반 가량을 팀 규합에 할애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다. 액션신을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면서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 달리 초반에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액션 장면을 적절히 집어 넣었다. 아쿠아맨 · 사이보그 · 플래시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무엇보다 원더 우먼의 활약이 돋보인다. '원더 우먼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을까'라는 염려가 나올 만큼 훌륭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이야기의 엉성함은 고질병처럼 남아 있다. 배트맨이 뜬금없이 자살 특공대가 되려 하는 장면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힘이 아닌 스토리의 힘을 기반으로 했던 DC 코믹스로서는 힘을 잃어버린 이야기 구조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또, 빌런인 스테픈 울프의 힘과 매력이 약했던 점도 아쉽다. 저스티스 리그의 결성과 멤버 소개에 치중하다보니 불가피했던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어차피 스테픈 울프는 거쳐가는 단계에 불과하니 말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배트맨의 역할이 지나치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플래시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능력은 뭐냐고 묻자 "나 부자야"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배트맨의 능력에 대한 아쉬움을 보여준다. 초인적 능력을 갖춘 슈퍼 히어로들의 등장으로 배트맨은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가 내세울 건 리더십과 돈이지만, 그마저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슈퍼맨의 절대적인 힘과 비교할 때 초라함이 더욱 커진 게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고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DC 코믹스가 반격의 서막을 올렸지만, 이후의 행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P.S. 쿠키 영상이 2개 있으니 섣불리 자리를 뜨지 않길..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같이 힘을 합쳐서 각자의 원수들에게 복수해 주는 거예요. 복수 품앗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네요.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 어때요?"


홍도희(라미란)는 코웃음을 치며 기막혀 했다. 사기를 치는 것 아니냐며 의심스러워 했다. 이미숙(명세빈)은 두손을 저어가며 만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았던 그가 남편에게 복수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김정혜(이요원)의 엉뚱하지만 진심이 담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그들은 자잘한 복수들을 성공시키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끝내 완벽한 복수를 성사시키고야 만다. 그렇다, '복자 클럽'의 승리다. 



악의 축이었던 홍상만(김형일), 백영표(정석용), 이병수(최병모) 그들이 저질렀던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갇히게 됐다. '복자 클럽'의 그것이 사적 복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적 복수, 즉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악했던 실체들이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지며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사회적 지위마저 깡그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만방자했던 세 사람은 모든 면에서 빈털터리가 됐다. 그야말로 통쾌하고 후련한 '사이다' 복수였다. 


무엇보다 가장 반가웠던 건, 홍도희 · 이미숙 · 김정혜 세 사람이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집안이나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말이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김정혜는 해외로 배낭 여행을 떠났고, 이미숙은 딸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되찾았다. 홍도희는 자녀들의 응원을 받아 박승우(김사권)와 연애를 시작했다. 가부장제의 고통 속에 살아왔던 복자 클럽 멤버들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당신한테서 날 빼면 뭐가 남는데?"

"내가 남겠지."

"네 까짓 게 뭔데?

"나, 김정혜야!"


복자 클럽 멤버들의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역시 '나'라는 존재의 (재)발견, 다시 말해 주체성의 획득 때문이었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들은 '아내' 혹은 '엄마'라는 역할에 갇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 의식은 희미해지게 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은 자연스레 남성에게 귀속되기 마련인데, 여성들은 과도한 희생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때 과도한 희생과 폭력 감수는 마치 '미덕'으로 여겨지고, 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비난을 당하기까지 한다.


솔직히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조금 회의적이었다. tvN <부암동 스캔들>이 얻어낼 수 있는 성취에 대해서 말이다. 섣부른 개과천선과 가정의 봉합이라는 어설픈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부장제 내부에서 싸움을 이어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닐 뿐더러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때려부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봤다. 그런데 이미숙과 김정혜는 과감하게 '이혼'을 선언했고, 불합리한 가부장제의 온상이었던 가정을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접근이 과연 '아내 폭력'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이라 밝힌 바 있다. 그는 "피해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력 가정을 떠나지 못해서 가족 폭력이 지속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재의 가족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피해자, 가해자, 사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토록 지켜야 하는 가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가족인가를 새롭게 질문하지 않는 한, 가정 폭력은 근절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숙과 김정혜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지금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 붙잡혀 있었다면, 그래서 '사람을 고쳐 쓰려는 시도'를 계속 했다면, 과연 마지막 회의 그 행복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또 다시 여러가지 양태의 가정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로 남았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백영표와 이병수가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가정 폭력이 '개인 인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감안하면 무의미한 장면일 것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미숙과 김정혜가 이혼을 선택함으로써 주체적 개인이자 사회적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젖혔다. 또, '엄마'라는 역할에 묶여 살아왔던 홍도희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부암동 복수자들>의 복수가 진짜 '사이다'일 수 있었던 까닭은 '복자 클럽' 멤버들이 자신들의 원수를 처단하는 저차원적인 복수를 넘어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고차원적 복수를 성사시켰다는 데 있다. 


휴식기를 갖고 1년 만에 다시 뭉친 '복자 클럽' 멤버들은 카페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갓난아이를 안고, 큰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아내에게 소리를 치며 화내는 남편을 목격한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간다. 아직도 '복자 클럽'에겐 복수해야 할 대상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린 가족보다 나은 남이 될 것"이라는 김정혜의 말처럼, 그들의 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6.330%를 기록하며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부암동 복수자들>의 시즌2를 기대해 본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단편영화는 독립영화의 초석이다. 예능이라도 '독립영화의 초석이 되는 단편영화'라는 것을 잊지 않고, 예능과 영화가 서로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문소리)

영화와 방송이 만났다. 아니, 정확한 '권력 관계'를 반영하자면 방송이 영화마저 품었다. JTBC <전체관람가>는 '예능'이라는 포맷을 통해 (단편) 영화가 제작되는 전 과정을 담아냈다. 방송을 통해 영화가 방영되는 수준을 뛰어넘어 기획과 캐스팅을 비롯해 촬영까지 그야말로 모든 속살이 공개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제작진은 내로라하는 10명의 영화 감독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영화 제작에 관한 모든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자세히 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미 방송은 그 괴물스러운 힘을 여러차례 보여줬기 때문이다. MBC <나는 가수다>를 떠올려보자. 기존에 시청자들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노래'를 들을 뿐이었지만, 이제 창작자의 '고통'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완성된 노래 한 곡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들고, 노력이 요구되는지, 더불어 가수들이 무대에 서기 전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떠는지도 알게 됐다. 그런가 하면 KBS2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작곡가들의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보여주면서 '작곡의 세계'마저 속속들이 내보여주지 않았던가.

<전체관람가>는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지원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제작진은 수익금을 한국독립영화협회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동시에 그 성취에 대해 홀대받고 소외당하고 있는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상의원>의 이원석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 역량있는 감독들이 흔쾌히 참여를 결정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전체관람가>에 출연하는 감독들의 다수는 여러가지 이유로 관객들을 만날 기회를 얻기 힘든 처지에 놓였다. 아픈 곳을 긁는 꼴이 됐지만, 그 이유들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흥행 실패. 상업 영화의 세계에서 한번의 실패는 곧 죽음과도 같기에, 그들은 더 이상 창작의 기회를 부여받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그런 마당에 '제작비'를 지원하고,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처럼 <전체관람가>는 여러모로 긍정적인 구석이 많은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제한 없이 영화 제작을 맡길 리 없다. 이른바 ‘방송(예능)’의 틀 속에 영화를 집어넣는 작업이 따라왔다. <전체관람가>는 몇 가지 룰을 정했는데, 첫 번째는 배우 개런티를 포함해 제작비는 3,000만 원으로 제한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러닝 타임을 12분 내외로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소재인데, 2017년을 관통한 20개의 키워드(아재, 외모지상주의, 인공지능, 미니멀 라이프, 가상 현실, 데이트 폭력, 광장 등) 중 하나로 영화를 만들도록 주문했다. 역시 가장 첨예할 수밖에 없는 건 '제작비'였다.

제작비 상한선을 접한 감독들은 당장 우려를 표했다. 총대를 멘 이명세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말했고, 봉만대 감독은 "여기 있는 감독님들이 저 예산을 보는 순간 딱 드는 생각이 뭐냐면, 다 사정을 해야 된다는 것"이라며 걱정했다. 아무리 12분 내외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빠듯한 액수가 분명했다. 감독들이 계속 우는 소리를 내자 MC 문소리는 "3,000만 원에 맞게 아이템과 시나리오를 쓰셔서 너무 사정하지 않는 영화를 만드셔야 한다."고 딱 잘라 못박았다.

정윤철 감독의 <아빠의 검>, 봉만대 감독의 <양양>,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작품들이 호평을 받으며 감독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웰컴투 동막골>, <조작된 도시>를 연출한 박광현 감독은 '단편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할 거라면서 '히어로물' <거미맨>을 찍겠다고 밝혔다. <거미맨>에는 보조출연 포함 약 200명의 배우(찬스를 통해 제작진으로부터 보조 출연자 지원을 받았다), 스태프가 무려 70여 명이 투입됐다. 또, 억대의 장비인 카메라와 렌즈는 '구걸'로 협찬을 받아 진행됐다.

사실상 장편 영화에 맞먹는 장비가 투입됐는데, 이를 바라보는 다른 감독들도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광현 감독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고, 좋은 취지를 강조하면서 다양한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개런티 없이 출연하는 배우뿐만 아니라 의상, 특수 분장, CG 심지어 밥차까지 ‘구걸’과 ‘사정’을 통해 이뤄졌다. 이는 곧 자발적 참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감동스럽게 포장됐지만, 달리 보면 영화계의 열악한 제작 환경과 노동을 당위로 착취하는 그간의 영화계의 고질병을 보여주는 듯 했다.

방송의 성격상 예산에 한계를 두는 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전체관람가>가 정한 가혹한 상한선이 착취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부분이다. 도대체 허리띠를 졸라매는 예산 절감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제작진만 탓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3,000만 원이라는 한계를 정했던 건, 문소리의 말처럼 그에 맞는 시나리오와 아이템을 가려 쓰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의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이고, 끝내 선을 넘고야 말았다.그걸 간과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박광현 감독은 제작비 3,000만 원이라는 룰을 ‘자발적 참여’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넘었고, <전체관람가>는 이를 ‘열정’과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포장했다. 박광현 감독의 봉인해제로 <전체관람가>의 룰은 무의미해졌다. 감독들은 ‘인맥’을 동원해 제작비의 부족을 채우기 시작할 테고, 영화계의 다양한 종사자들은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답습, 재생산되는 데 일조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전체관람가>는 영화계의 열악한 제작 현장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13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가결했다. MBC의 프로그램에 대한 글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MBC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는 반가움에 <돈꽃>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자사의 드라마를 밀어주기 위해 1, 2회를 묶어 방송하는 '특별 편성'은 종종 있었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KBS2 <태양은 가득히>(2014), SBS <달의 연인>(2016), SBS <사임당>(2017) 등 그런 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연속 방송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여 기존의 경쟁작들 사이에서 돋보이려는 일종의 승부수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속 방송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시청률 면에서) 실패의 확률이 높았다. 



지난 11일 처음 시청자들과 만난 MBC <돈꽃>도 1, 2회 연속 방송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돈꽃>은 1회 10.3%(닐슨코리아 기준), 2회 12.7%로 두 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런데 <돈꽃>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경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 2회 연속 방송이 일시적인 전략이 아니라 계속해서 '토요일에만' 2회씩 방송되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의 전형성을 깨뜨리는 동시에 드라마계 전체에 충격을 주는 매우 파격적인 편성이다.


아무래도 하루에 연속으로 2회를 방영한다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어려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틀에 걸쳐 한 시간씩 시청하는 패턴에 익숙해져 있던 시청자들에게 2시간 연속해서 드라마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돈꽃>의 과감한 편성은 콘텐츠에 자신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도전인 셈이다. 그런데 <돈꽃>은 시청률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챙겼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시선을 압도하는 쫄깃한 이야기 구조와 강필주 역을 맡은 장혁의 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돈꽃>은 재벌인 '청아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승계권 다툼'이다. 청아그룹의 회장 장국환(이순재)은 맏며느리 정말란(이미숙)과 그의 아들 장부천(장승주)를 박대하고, 둘째 아들 장성만(선우재덕)과 그 아들 장여천(임강성)을 신뢰한다. 철부지와 다름 없는 장부천과 달리 장여천은 언론사를 처가로 둔 덕에 많은 이권들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청아그룹의 승계권은 맏손주인 장부천이 아니라 장여천에게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다. 


한편, 고아원 출신의 변호사로 청아그룹의 법무팀 상무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 강필주는 자신이 따르는 정말란과 장부천을 위해 '정략 결혼'을 제시한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나기철(박지일)의 딸 나모현(박세영)과 장부천을 결혼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국환 회장의 숙원인 '청아 타워'를 건설시키겠다는 것이 강필주의 계획이다. 문제는 나모현이 '운명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낭만적 인물이라는 점이다. 재벌이라면 치를 떠는 나모현의 마음을 장부천에게 돌리기 위해 강필주는 '운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이 표면적 갈등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겠지만, <돈꽃>은 쐐기를 박을 무기를 한 가지 더 준비했다. 바로 '강필주의 복수심'이다. 도대체 강필주는 누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청아 그룹에 들어온 걸까. 그 대상은 놀랍게도 장말란이었다. 강필주가 장말란의 심복으로 설정돼 있던 터라 2회 말미의 반전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상심한 장말란을 안아주며 위로하던 강필주의 싸늘한 눈빛은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알고보니 강필주의 아빠는 청아 그룹의 부사장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뒤 장말란이 강필주의 엄마와 동생을 죽이려고 했고, 이 원한을 되갚아주기 위해 청아 그룹에 '잠입'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필주는 장국환 회장의 숨겨진 손자였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었던 셈이다. 재벌, 복수, 출생의 비밀. <돈꽃>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성공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는데, 거기에 강필주와 나모현의 '사랑'까지 추가될 예정이어서 그야말로 '대박'은 기정사실인 듯 싶다. 



이번에는 장혁 이야기를 해보자. '믿고 보는 장혁'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기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게 사실이다. 그건 KBS2 <추노>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혁의 연기는 대길이로 수렴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가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거 사실이지만, 악을 쓰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대길'이 보이는 건 시청자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또, 특유의 감정 과잉도 보기 불편할 때가 많았다. 최근에 출연했던 OCN <보이스>에서도 그 '벽'에 부딪쳤다.


결국 해법은 '힘을 빼는 것'이었던 것 같다. <돈꽃>에서 장혁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면서도 넘치지 않는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또, 복수심과 사랑을 숨긴 채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강필주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눈에서 힘을 빼자 오히려 그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눈빛'이 더욱 빛났고, 시청자들의 몰입을 한껏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박세영의 어색한 연기 등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돈꽃>은 파격 편성이라는 승부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장혁이 있음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다양성'은 존중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현상이다.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의미의 다름이 보이고, 그것만의 가치를 귀중히 여길 수 있다. 우리는 간혹 다양성을 갈등 혹은 분열과 동의어로 여기는 얄팍한 생각들이 사회를 경직시키는 상황과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다양한 요구들을 묵살시키는 불쾌한 경우를 맞닥뜨리게 된다. 가령, 식당에 갔을 때 가장 끔찍한 상황은 "에이, 그냥 한 가지로 다 통일해. 여기, 사람 수대로 OO 주세요!"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가 아닌가. 



가볍게 식당을 예로 들었지만, 다양성이 종(種)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일반적인 견해다. 또, 당연히 사회(조직)를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위의 '종' 대신에 '음악'을 넣는다고 해도 그것이 진리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으리라. 음악의 수많은 장르 가운데 한 가지만 득세한다면, 도태되는 건 다른 장르뿐 아니라 음악 그 자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치우침이 음악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계속해서 협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Mnet <더 마스터 – 음악의 공존>(이하 <더 마스터>의 등장은 더욱 반갑다. <더 마스터>는 클래식, 국악, 재즈, 대중가요, 뮤지컬, 공연 . 밴드라는 다양한 장르를 한 데 모았고, 각 분야의 대가들을 불러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음악 전문채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부 장르에 편중된 방송만을 기획했었던 Mnet으로서도 큰 도전이었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음악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장르인 클래식의 마스터로는 유럽이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임선혜가 무대에 올라 '울게 하소서'를 열창했다. 그의 무대는 마스터 감상단으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임선혜는 첫 번째 그랜드 마스터로 선정됐다. 대중가요의 마스터는 '낭만가객' 최백호였는데, 그는 이미자의 '아씨'를 특유의 음색으로 담담하게 불러 호평을 받았다. 다리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한 뮤지컬 마스터 최정원의 뮤지컬 <캣츠>의 'Memory'도 인상적인 무대였다. 


1,000회 이상의 단독 공연과 최장 기록(8시간 27분)을 보유하고 있는 공연의 신 이승환은 들국화의 '사랑일 뿐이야'를 선곡했는데, '416 합창단'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감동을 더했다. 대중에게 가장 낯선 장르라 할 수 있는 국악의 마스터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명창 장문희였다. 그는 판소리 춘향가 중 '천지삼겨'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불렀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대가는 재즈의 윤희정이었다. 그는 풍성한 성량과 특유의 스캣으로 양희은의 '세노야'를 불러 재즈의 진수를 선보였다. 


'운명'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경연을 시작한 <더 마스터>는 1.4%(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순조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다. MBC <나는 가수다>를 시작으로 한바탕 유행했던 '경연'이라는 틀을 유지하긴 했지만(<더 마스터>의 신정수 PD는 <나는 가수다>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경쟁'의 뉘앙스는 상당히 제거됐다. 오히려 '음악의 공존'이라는 부제처럼 각 장르들에 대한 '존중'으로 바탕으로 '공존'을 꾀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곁가지를 쳐내고 '음악'에만 집중한 건 좋았지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장르에 대한 설명과 마스터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MC로 윤도현을 내세웠지만, 그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실제 무대에서는 각각의 마스터들과 인터뷰도 진행됐던 것으로 보이는데, 방송에서는 음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예능적 재미'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어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을 끌어안게 됐다. 


굳이 가장 아쉬웠던 무대를 꼽으라면 역시 '국악'이었다. 작곡가 윤일상가 시도한 현대적 편곡은 오히려 독이 됐다. 크로스오버(crossover)를 시도했던 부분은 참신했지만, 장문희 명창의 힘을 믿고 오히려 정면돌파를 시도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문희 명창으로서도 '낯섦'만 강조됐던 무대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렸던 듯 싶다. 다음 무대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첫 방송에서 국악이라는 장르가 지닌 본연의 맛을 전달하지 못했던 점은 두고두고 안타까웠다. 


<더 마스터>에선 '경연'이라는 성격이 최소화됐는데, 그래서 오히려 경연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 프로그램 말미에 출연자들을 불러 앉혀놓고 '1등'을 시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정수 PD는 대중과의 소통과 동기부여를 위해 경연이라는 방식을 채택했다지만, 애초에 경연이라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마스터들에게 그것이 어떤 동기부여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이처럼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역시 '음악의 다양성'을 맛보게 해준 <더 마스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공존을 지지한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만약 이경규(혹은 강호동)가 집에 찾아와 "안녕하세요, 이경규입니다. 한끼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한다면, 과연 나는 '선뜻' 문을 열어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거절했을 것이다. 집안에 (게스트로 출연한)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중학생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JTBC <한끼줍쇼>의 열혈 시청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문을 열어줄 이유가 없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할 텐데, 특별한 예외적 상황이 있지 않다면 '거절'이라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실제로 이경규와 강호동은 하루종일 헤맨 뒤에야 겨우 한끼를 얻어 먹는다. 수없이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거의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들의 '한끼줍쇼'는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곧 '방송 출연'을 뜻한다는 건 제쳐두고, 우선 불편하기 때문이다. 집 안을 공개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과정이 달가울 리 없다. 제 아무리 유명한 이경규와 강호동이라지만, 약속도 없이 들이닥친 그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회마다 한번씩 예외적으로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경규와 강호동은 한끼를 얻어먹으며 감격했다. 그렇게 55회를 버텨왔고, 대망의 1주년(2016년 10월 19일 첫 방송)을 축하하기도 했다. 시청률은 5% 안팎으로 매우 준수하다. 1회 시청률이 2.822%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끼줍쇼>를 향해 쏟아졌던 비판과 혹평(예를들면 '민폐 방송',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예능')들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끼줍쇼>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끼줍쇼>가 붕괴된 도시의 저녁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온가족이 식탁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던 시절과 달리 한끼를 함께 먹기도 힘든 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한끼줍쇼>는 이러한 포인트를 적절히 잡아내면서 '저녁 식사'가 갖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꾀했다. 무엇보다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소통'의 노력과 흔적들이 묻어있는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충분히 예고됐던 트러블인데, 들쭉날쭉하던 '민폐'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 8일 방송에서 이경규는 잠실동을 찾았다. <한끼줍쇼>의 애청자이자 쌍둥이 남매를 둔 엄마를 만난 덕분에 이경규는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가 학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가 돌아왔고, 그렇게 한끼 식사가 계속 진행됐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화(發火)되기 시작했는데, 이경규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 그 발화(發話)가 발단이었다.




"무슨 일 하세요?"

"고향은 어디세요?"

"잠실에 살게 된 이유는?"

"은행 대출이 좀 끼어 있습니까?"


이경규는 쌍둥이 아빠에게 개인사를 묻기 시작했다. 물론 '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을 감내할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이 '소통'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MC들과 한끼 제공자들과의 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경규의 질문은 가벼운 개인사라고 보기엔 눈살이 찌푸려질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어린 딸이 옆에 있는데 굳이 '(집을 마련하는 데) 은행 대출이 좀 끼어 있느냐'는 질문을 해야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이경규의 질문이 있은 후 식탁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민망하고 뻘쭘한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그만둘 법도 한데, 이경규는 엄마가 돌아온 뒤에도 "잠실에서 사는 건 어떠세요?", "물가가 조금?"이라며 같은 질문들을 되풀이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삶의 한 부분이고, 주요한 이야깃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더없이 민감한 내용일 수 있기 때문에 상황과 분위기, 혹은 친밀도 등에 따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이야기라는 게 중론이다. 아쉽게도 이경규가 보여준 인터뷰는 '호구조사'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JTBC <한끼줍쇼>는 '줄타기'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민폐'와 '소통' 사이,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 <한끼줍쇼>가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가령, 낯선 이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때 전해지는 찌릿함이라든지, 그들이 들려주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감동적인 '인간극장'은 <한끼줍쇼>만의 전매특허다. 또,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 현대 가족의 양태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난데없이 동네에 들이닥치고, 초인종을 눌러 '밥 좀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건 여전히 '민폐'의 영역이다. 또,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TV를 통해 낱낱이 공개되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제작진에게 보다 신중함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자면 MC들도 달라져야 한다. 부동산 가격을 묻고, 대출을 했는지와 같은 불쾌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가 얼마나 많은가. 나이, 직업, 고향, 집값 등을 묻는 아저씨 특유의 '호구조사' 대화법을 버리길 바란다. 


<한끼줍쇼> '잠실' 편은 이경규와 강호동이 한끼를 얻어먹는 일이 왜 그토록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현대인들이 문을 닫아버리고 자기 집에 숨어버린 까닭은 야박해진 인심(人心) 때문이 아니다. 인심을 가장한 과도한 관심과 간섭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질문의 수준을 높이지 않는다면, 대화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닫힌 문이 더욱 꽁꽁 잠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한끼줍쇼>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착한 며느리병이라는 말 아세요?"

"네? 무슨 병이요?"

"결혼하고 나면 여자들이 시댁에 착하고 싹싹하고 말 잘 드는 며느리가 돼야 할 것 같아서 무리하는 거요. 그렇게 부른대요. 착한 며느리병."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지호(정소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시월드' 말이다. '애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기반한 2년짜리 계약의 '가짜' 결혼이기에 다를 줄 알았다. 적당히 하면 되리라 여겼고, 큰 부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은 역시 결혼이었다. 결혼이란 단순히 두 사람 간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이 결부된 매우 복잡한 수식이 아니던가. '며느리' 혹은 '사위'라는 새롭고 낯선 임무가 주어지는 굉장히 스펙터클한 역할극이기도 하다. 세희가 인정했던 최고의 수비수였던 지호지만, 시월드 앞에선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평일이 지나고 평온함이 찾아온 주말 아침부터 시어머니의 방문이 시작된다. 미리 협의된 적도 없는, 최소한의 고지조차 되지 않았던 깜짝 기습이었다. "설마 비번 누르고 띠디디디 서프라이즈, 막 이런 건 아니지?"라며 경악하는 수지(이솜)의 말처럼 요즘 세대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난입'이라 해도 무방했다. 물론 시어머니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반찬을 가져다 주는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들이 산 집에 출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이상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사랑(?)은 눈물겨웠다. 말로는 "우리 며느라기 아까워서 어떻게 일 시키니"라지만, "부엌일은 전문가가 하는 것"이라며 아들의 '식모' 역할을 지시하고, 말없이 사과를 내밀더니 눈짓으로 사과를 깎도록 눈치를 줬다. "무뚝뚝한 남자들만 보다가 지호 네가 들어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더니 온갖 제사 노동을 막무가내로 떠안긴다. 졸지에 지호는 선 채로 전을 부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등 고역에 시달려야 했다. 


지호는 왜 제사에 참석하라는 시어머니의 호출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적당히 둘러대지 그랬느냐. 수비 잘하시는 분이 왜"라는 세희의 (눈치없는) 타박처럼, 지호는 어째서 수비에 실패한 걸까. 시댁에 가서 제사 노동을 도맡아 하면서도 "딸은 TV 좀 보면서 쉴게요"라고 똑부러지게 한마디 하지 못하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걸까. 왜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도 '착한 며느리병'에 대해 검색하고 나서 "이건 좀 아니다. 왜 거절을 못하냐"라며 의아했으면서 말이다.



'착한 며느리병'에 대해 세희는 "일종의 인정 욕구"라고 정의하며 "결혼을 통해 소속감의 욕구가 충족되었으니 그 다음 단계인 인정 욕구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특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호에게 제사 노동의 대가라며 10만 원을 건넨다. 계약에 없던 부당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세희의 분석과 대응은 온당한 것이었을까. 


지호의 입장과 생각은 달랐다. 지호는 정색을 하며 세희에게 되묻는다.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되세요? 인간의 동물적인 욕구 단계가 아니라 마음일 수도 있다고요. 좋아하는 사람의 가족들이니까 잘해주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그렇다. 지호가 '착한 며느리병'에 걸려버린 까닭, 부당한 시월드를 적절히 수비하지 못했던 이유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희를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그를 위해 '마음'을 쓰게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계약 결혼'이라는 흥미롭고 생경한 설정을 통해 '결혼'의 본질에 대해 보다 다채로운 접근을 허용한다. 한걸음 비껴 있을 때, 대상의 실체를 좀더 명쾌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또, 기존의 드라마들이 단순히 '현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다양한 해석과 대응 방식을 보여준다. '시월드'와 '착한 며느리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과격하고 오버스러운 설정들로 시청자의 분노를 자아내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을 유지하면서 논의의 확장을 꾀한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제시한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지호는 세희가 건넨 돈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세희에게 전화를 걸어 "저희 집에 가서 똑같이 노동으로 갚으세요. 저희 집, 이번 주에 김장해요."라고 통보한다. 시월드의 등장과 세희의 답답한 대처라는 '고구마'로 인해 답답해졌던 가슴에 시원한 '사이다'를 콸콸 쏟아부은 느낌이었다. '노동'에 대한 완벽한 등가교환은 역시 '노동'이었고, '제사 노동'과 '김장 노동'을 적절히 배치시킨 선택은 탁월하다고 여겨졌다.


물론 그것이 부당한 간섭과 제재를 의미하는 '시월드'를 해체하는 돌파구는 아닐지라도 '똑같이 노동으로 갚으라'고 말하는 지호의 선언은 정말이지 통쾌했다. '인정 욕구'이든 '마음'이든 간에 '착한 며느리병'을 강요하거나 혹은 용인하는 건 결국 '남편'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제사 노동의 대가로 10만 원을 건네는 세희는 과거 가부장제 체제 하의 남성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호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들은 세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가로 가서 김장을 하게 된 세희의 좌충우돌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