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른이 지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서른 즈음에 사형 선고와 같은 그 말에 조급함과 함께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씁쓸하다.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걸까. 저 압도적 선언 앞에 이토록 무기력해지는 건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본래 쉽사리 바뀌는 존재가 아닐 뿐더러, '서른'이 지나면 변화의 여지가 사실상 닫혀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잘못 끝내 놓으면 돌아가요. 잘못 도와주면, 잘못 이 방송을 끝내고 나면, 나중에 몇 달 뒤에 들어보면 어머니만 죽어라 일하고 있고, 아들은 보이지도 않을 거고. … 그런 굳은 결심 없으면 지금이라도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일주일 더 줄게."


"하겠습니다. … 제 의지로 배워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종원이 왜 저렇게까지 다짐을 받으려고 했는지 안다. 그는 홍탁집 아들에게 두번, 세번 묻는다. 그리고도 부족했는지 또 묻는다. 정말 결심이 섰는가. 정말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진짜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시간을 더 달라고 하면 주겠다. 쉽게 대답하지 마라. 중간에 그만두는 것보다 지금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정말 힘들 거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솔루션 대상인 홍탁집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들'이었다. 백종원은 그 사실을 간파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백종원만의 경영 노하우를 가르치고, 방송의 힘을 빌려 가게를 살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종원은 이렇게 말한다. "일주일 동안 고민해본 결과, 이 골목을 위해 가게를 살릴 수는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해드리면 어머니만 등골 휘어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요구됐다. 아들이 변해야 했다. 지금처럼 엄마에게 가게를 몽땅 맡긴 채, 뒷짐만 지고 있는 태도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몸까지 불편한 엄마가 언제까지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가게를 운영해야만 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백종원은 계속해서 홍탁집 아들을 압박했다. "네!" 대답은 우렁차다. 일주일의 말미가 주어졌다. 과연 홍탁집 아들은 변했을까? 


"뼈를 깎고 그 정도 노력은 안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

"오늘 한 다섯 번이라도 만들어."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예상했었다고 해야 할까. 홍탁집 아들은 '역시' 바뀌지 않았다. 처음에는 뭔가 달라지나 싶었다. 백종원이 나가고나자 곧바로 대청소를 시작했고, 닭 토막내기 연습을 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며칠 가지 않았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점검까지 4일 남았을 때, 홍탁집 아들은 허리를 삐끗했다며 조리 연습을 포기했다. 


시간이 지나도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엄마의 조리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 생강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도, 몇 분을 끓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예고편에서 확인됐다시피) 백종원이 제시했던 과제('엄마의 닭볶음탕' 완벽 마스터, 닭 토막 내는 법 완벽 마스터)를 완수하지 못했다. 하루에 고작 한번 연습을 하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의지가 부족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게 자랑이야? 나는 음식하는 사람인데, 내가 모를 거 같아? 딱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내가 진짜 카메라 없었으면 진짜.. XX 설거지거리가 있는데 여기서 닭을 씻고 있다고? 이건 몰라서 그런게 아니라 안 한 거야. 나를 개무시한 거야 이거. 이게 말이나 되는 줄 알아? 하지 마라, 이렇게 할라면. 이거 안 돼요. 이렇게 해갖고. 할 거야, 그만 할 거야?"



백종원은 분노했다.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또, 화를 내야만 했다. 물론 백종원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탁집 아들이 한번에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종원이 아닌가.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봤던 백종원이 아닌가. 일주일 만에 평생 요리를 한 엄마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라는 과제를 낸 건 어쩌면 불가능한 미션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종원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왜 그런 어려운 과제를 냈을까. 백종원이 홍탁집 아들에게 원한 건 노력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밤새워서라도 연습을 하면서 의지를 되새기는 태도 말이다. 그러나 점검을 하루 앞두고 작가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홍탁집 아들은 끊임없이 변명으로 일관했다.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이라며 늘어놓은 이야기는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사람은 서른이 지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서 '서른'은 자신의 아집이 완성되는 시점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가능과 불가능을 얕은 시선으로 섣불리 구분짓고, 변명과 핑계로 스스로를 보호할 궁리밖에 하지 않는 시기 말이다. 홍탁집 아들을 보면서 '서른'의 강퍅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과연 홍탁집 아들이 변할 수 있을까? 솔직히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기대를 품게 된다. 서른 이후에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머니를 위해서? 아니, 그 자신을 위해서.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무지개 막둥이'가 오랜만에 MBC <나 혼자 산다>를 찾았다. 지난 9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 헨리의 모습이 담겼다. 두 부자는 추수감사절을 보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했고, 지인들을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문제는 헨리가 아니라, 스튜디오에 앉아 VCR를 보며 코멘트를 날리고 있는 MC들이었다. 


문제의 장면을 살펴보자. 시작은 박나래였다. 초대를 받은 헨리의 친구들이 속속 찾아오기 시작했고, VCR을 지켜보던 박나래는 헨리의 친구들을 두고 “아버님 친구 아니에요?”라며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전현무와 기안84등 MC들은 낄낄댔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헨리와 그 친구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두고 비교했다. 기안84는 “왜 이렇게 삭았어?”라며 외모 품평에 나섰다. 



이윽고 다시 초인종이 울렸고, 헨리는 자신이 무서워하는 바이올린 선생님일까봐 전전긍긍했다. 다행히도(?) 헨리의 또 다른 친구와 그 부모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고 보기 좋았다. 그런데 MC들이 또 찬물을 끼얹었다. 헨리가 "옆집 사는 친구예요."라고 소개를 하자 전현무는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저 머리 없으신 분?"이라 되물었다. 그러자 박나래는 "아버지 친구 아니고요?"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자체가 무례한 말이었지만, 발언의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웃음을 위해서는 못할 말이 없다는 것일까. 분위기는 브레이크 없이 급속도로 흘러갔다. 방송의 맥이 뚝 끊어지고, 스튜디오의 MC들은 그 문제로 한참동안 옥신각신했다. 전현무는 헨리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누가 네 친구야?"라고 따져 물었다. 박나래는 “이게 내가 오해하는 거예요?”라고 거들었고, 기안84는 눈치 없이 "다 친구 먹어!"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당황한 헨리가 지인들의 관계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전현무는 또 다시 헨리의 친구를 두고 바이올린 선생님이 아니냐며 헛웃음을 유발했다.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고,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이 천박한 문화를 헨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금도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진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대혼란'이라는 자막과 함께 웃음소리를 잔뜩 깔아놓으며 희희낙락했다. 



과연 시청자들도 그 장면을 보며 같이 웃었을까? 결코 아니었다. 누리꾼들은 단호했다. "사람 외모에 대해 삭았네 어쩌네 하며 웃음거리 삼으려는 게 즐겁고 웃긴 일인가?”, "농담이라도 지나친 외모지적은 좀...", "저도 나혼자 애청자이지만 어제는 유독 외적인 것에 평가가 과하다 싶더라." 이처럼 <나 혼자 산다> MC들의 외모 평가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애청자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물론 발단은 패널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웃음의 소재로 삼은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거나 그 정도는 (예능에서) 용인될 거라 여겼던 것 같다. 공영방송 KBS 아나운서 출신이자 방송 경력이 많은 베테랑인 전현무조차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워낙 친근한 동료들끼리 스튜디오에서 편히 방송을 해서 마음이 풀어졌던 것일까.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씁쓸한 일이다. 


외모 비하를 하더라도 어쨌든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저런 발언을 내뱉는 패널들의 인식도 난감하지만, 이를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내는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외모 비하가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 상황을 걸러내기는커녕 오히려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조장한 꼴이 아닌가. 



사실 <나 혼자 산다>만의 문제는 아니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축구선수 박주호의 딸 박나은을 소개하면서 "먹을 때도 울 때도 한결 같이 역대급 미모" "(톰 크루즈의 딸) 수리 크루즈 뺨치는 외모"라는 자막을 달아 놓았다. 네 살 어린 아이에게 외모 지상주의의 굴레를 덮어 씌운 것이다. KBS <개그 콘서트>를 비롯한 개그 프로그램들은 그동안 외모와 체격 등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적극 사용해 왔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 그에 따른 외모 품평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고,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과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방송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더 철저하고 깐깐해야 한다. <나 혼자 산다>의 제작진과 MC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부디 빨리 인식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건 지양을 넘어 용인될 수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빨리 와. 빨리 오라고!", "장모님 오셨다니까. 너 안 올꺼지?"


숨이 넘어가듯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오정태이다. 소파에 누워 휴일을 만끽하고 있던 그가 왜 갑자기 아내 백아영을 찾는 걸까? 갑자기 장모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아내로부터 아무런 말도 전해들은 적이 없던 터라 당혹감은 더욱 컸다. 오정태가 다급해졌다. 휴대전화를 붙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기 바쁘다. 그 때문에 밖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있던 백아영의 전화기에는 불이 날 지경이다. 


오정태의 장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일을 돌보기 시작했다. 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챙겨 온 반찬을 정리하고, 밀린 설거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마냥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는지 의문이다)던 오정태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아내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장모와 둘만의 식사를 하게 된 오정태는 여전히 전전긍긍했다. 이제야 좀 알았을까? 


사실 이 정도에서 마무리됐다면 별 탈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가깝고도 먼 사위와 장모의 어색한 관계는 이미 SBS <백년손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없이 봤던 장면이 아닌가. 색다를 것도 없었다. 그런 어려움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가볍게 웃어 넘겼을 거라 미루어 짐작한다. 그런데 오정태의 태도는 도가 지나쳤다.



그건 명백히 무례(無禮)였다. 어른에 대한 공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경황이 없었다고 하나, 오정태는 장모를 맞이하는 현관에서부터 불편함을 드러냈다. 시종일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대화에 임했다. 장모는 "자네 얼굴이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며 안쓰럽다고 걱정을 했지만,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위의 얼굴을 왜 모르겠는가. 


게다가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장모에게 오정태는 "집안일 하는데, 뭐"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폄하했다는 고상한 비판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그건 아내에 대한 존중이 없는 태도였을 뿐만 아니라 장모에 대한 예의도 결여된 불량한 태도였다. 오정태는 합가 문제에 있어서도 아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 본 장모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시청자들이 오정태에게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에 반복되는 갈등이었다. 이 문제는 오정태가 곰곰히 돌이켜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오정태의 예의없는 태도가 논점을 가려버리긴 했으나, 결국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이번 방송을 통해 (연출)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역지사지'였다. 



오정태가 아내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를 바란다. 갑작스러운 장모의 방문을 통해 시어머니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쳤을 때 아내가 느꼈을 혼란을 간접 체험했다. 내가 그 순간이 불편하고 힘들었던 것처럼 아내 역시 그랬겠다고 생각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말이지 귀중한 경험이(어야만 한)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깨달았다면 달라지면 된다. 다행히 그에게서 아주 조금이지만 갱생(?)의 여지가 보인다.


MC 이지혜는 "이번에 제대로 역지사지를 느꼈을 것 같은 게 그동안 아영 씨도 시어머니랑 있으면서 지금 정태 씨가 느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혹시 해본 적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정태는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정말 와이프도 뭔가 많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라고 대답했다. 부디 오정태가 조금이나마 깨달았길 바란다. 그건 이 땅의 모든 '남편'들에게도 해당되는 바람이다. 


총평을 한 여성 철학자 이현재의 말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갈등을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곪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계속적으로 제기됐던 '연출 논란'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번 방송에서도 전화통화를 굳이 스피커폰으로 받는 등 과도한 연출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일정 부분 연출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연진의 폭로 등 선례도 있었던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MW치킨 마케팅팀의 최민주(류현경) 대리는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이다. 7개월 째라 제법 배가 불렀다. 첫째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아침마다 최 대리가 얼마나 정신없이 바쁠지 짐작이 되는가. 섣불리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건 당사자가 돼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전쟁통일 것이다. 최 대리는 오늘 지각을 했다. 제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지만,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5분을 늦었다. 


당장 상사인 백진상 팀장(강지환)에게 불러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말 진상 같은 인간이다. 자신의 무례함를 솔직함으로 합리화하며 상대방에게 온갖 막말을 쏟아내는 한심한 부류랄까. 걸핏하면 부하 직원들에게 "워낙 상식이 없으니까"라며 개무시를 한다. 자존심을 짓밟고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리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첫째에서 둘째까지 많이 힘들텐데, 우리 최 대리 참 애국자야. 애사심도 그 반만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백진상은 최민주를 비꼰다. 아주 야비하다. 그러면서 "최민주 대리가 5년 동안 지각한 시간을 합하면 하루는 나오겠다"고 말하더니 연차를 하루 깎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저런 꽉 막힌 상사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최민주는 비상계단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속상함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으리라. 동료들의 위로는 고맙지만, 버거운 현실 앞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사건은 연달아 터졌다. 고난은 한꺼번에 몰려오기 마련이다. MW치킨 시식회 행사 도중 최민주에게 한 통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었다. 최민주는 이 사실을 동료인 이루다 대리(백진희)에게 알리고 급히 자리를 뜬다. 이루다는 최민주가 아이가 아파 현장을 이탈했다고 보고했다. 그 사이 음식 알레르기가 있던 참가자에게 문제가 발생했고, 시식회 메뉴 담당을 맡았던 최민주에게 화살이 집중됐다. 


물론 그 문제의 책임이 순전히 최민주에게 있는 건 아니었다. 전달 과정에서 혼선이 생겨 벌어진 사건이었다. 또, 타임루프(Time loop)를 겪게 된 이루다가 반복된 하루를 살게 되면서 최민주가 당시 기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루다는 최민주가 당연히 아이 때문에 일을 버리고 갈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었다. 이는 워킹맘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보여준다. 



"나도 너랑 똑같이 고등교육 받고 대학 나오고 시험보고 입사해서 일하고 있거든? 당신이 선심쓰듯이 그만두라 말라 할게 아니라고. 초롱이 낳으면 당신이 육아휴직해. 애는 나 혼자 키우냐? 인생의 파트너라며. 육아도 공동으로 순번 돌아가며 해야 되는 거 아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게 더욱 씁쓸하다)을 하며, 독박 육아의 설움을 쏟아내는 최민주의 모습은 이 시대 워킹맘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줬다. 그건 비애(悲哀)였다. KBS2 <죽어도 좋아>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분위기였지만,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는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내용이었다. 


백진상은 최민주를 불러놓고 "회사를 그만두면 어떨까?"라며 퇴직을 권고한다. 백진상은 "애엄마는 집에 있으란 말씀이세요?"라고 항변하는 최민주에게 전업 가사인들의 노동을 폄하하는 거냐며 억지 논리를 펼친다. 이를 듣고 있던 이루다는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차피 자고나면 다시 아침으로 돌아갈 테니까 시원하게 질러보자는 생각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순간 타임루프에서 벗어나버렸지만..)



"좋아요, 어디 할 말 다 해봅시다. 나라에선 낳으라고 지랄이지, 회사에선 일보다 애가 중하냐고 염병이지. 뭘 어쩌라는 건데? 가사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 전업 가사인들의 노동 가치를 폄하해? 이게 웬 방향키 제대로 못 잡은 개소립니까? 그게 죽을둥 살둥 유치원 다니는 첫째에 뱃속 둘째까지 책임지는 최대리님한테 할 말이냐고요. 맨날 애들은 엄마를 더 좋아하니까 내가 보면 우니까 하면서 밖으로 나도는 남편들 이 건물에도 200명은 족히 있을 그 사람들 강당에다 싹 다 모아놓고 들려줘야 할 아주 주옥 같은 말씀 아니겠냐고요."


듣고 있는데 정말이지 속이 시원해졌다. "나라에선 낳으라고 지랄이지, 회사에선 일보다 애가 중하냐고 염병이지"라는 대사는 아마도 여성들의 입장에서 더할나위 없이 통쾌한 한마디였을 것이다. 야당의 대표는 "저출산은 이미 국가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적 재앙'이라며 여성의 출산을 경제성장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정부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2016년 12월 행정자치부는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라는 홍보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 영상에 '아빠'는 쏙 빠져 있었다. 이것이 '독박 육아'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죽어도 좋아>는 워킹맘의 수난에 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자연스레 공감지수도 올라갔다. 비록 시청률은 4%(1-2회)에 그쳤지만, 전작인 <오늘의 탐정> 마지막 호의 2.1%에 비하면 상당히 오른 수치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아 기대를 가져봄직하다. 강지환의 밉상 연기도 물이 올랐고, 오피스 드라마에 최적화된 백진희의 역량도 돋보인다.


한 가지 흥미롭게 짚어볼 점은 KBS 드라마의 변화다. KBS 드라마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월화 드라마에 <최고의 이혼>이 방영되고 있고, 수목 드라마에 <죽어도 좋아>를 배치했다. <최고의 이혼>은 이혼 후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강휘루(배누다)의 성장을 그리고 있고, <죽어도 좋아>는 정의로운 이루다를 통해 여성 직장인의 시선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페미니즘적 시각에 한걸음 다가가려는 시도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여기는 솔직한 얘기로 주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요. 여기 주방은 안 들어가겠습니다."


그건 찬사(讚辭)였다. 더할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주방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위생 상태와 조리 방식의 문제점 등을 꼬집어내야 했다. 음식점에서 주방은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니까. 그러나 돈가스의 높은 퀄리티에 반한 백종원은 주방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의 품질과 맛이라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건 인정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존중이었다. 멋모르고 요식업에 뛰어든 서툰 아마추어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동안 '주방 검사'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중요한 의식(?)이자 재미 요소이기도 했다. 따라서 주방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백종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상찬(賞讚)이었던 셈이다. 돈가스집 사장님은 그런 대우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지난 7일 방송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홍은동(弘恩洞) 포방터 시장을 찾았다. 홍은동은 전원 정취가 가득한, 한마디로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서울 구석구석을 누볐던 백종원조차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만큼 외진 느낌이 강했다. 70년대 랜드마크였던 '유진상가'로 더 유명할 만큼 포방터 시장은 인지도가 없었다. 게다가 교통이 불편해 유동인구가 적은 탓에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이었다. 


이쯤되면 답이 나온 것 아닌가. 방송을 보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번엔 얼마나 두들겨 맞을까?', '어떤 식당이 또 나의 혈압을 높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첫 번째 식당부터 분위기가 남달랐다. 노부부의 알콩달콩한 금슬이 돋보였던 막창집은 막창의 완성도 역시 높았다. 백종원은 "소스만 잘 만들면 되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번째 식당인 돈가스집도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무뚝뚝한 부부는 별다른 대화도 없이 각자의 일에만 몰두했다. 남편은 주방에서 음식을 했고, 아내는 홀을 지켰다. 조금은 냉랭한 공기였다. 그러나 돈가스의 맛만큼은 일품이었다. 일본식 돈가스보다 경양식 돈가스가 더 취향에 맞다는 백종원은 "이 정도라면 제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님 인정! 여긴 솔루션 할 게 없겠는데?"


백종원의 역대급 칭찬에 김성주와 조보아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방송된 이래 이 정도의 평가를 받은 식당은 없었다. 백종원은 오히려 가격을 1,000원 올려도 무방할 정도의 맛과 퀄리티라며 칭찬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면서 "6,500원이면 장담하는데, 우리나라 돈가스 끝판왕"이라며 "우리 골목식당에서 끝판왕 한번 나왔으면 좋겠"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상황실에서 앉아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던 사장님은 그제서야 활짝 웃었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돈가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장님의 진정성이 인정받은 순간인데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겠는가. 그때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 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라며 남편을 토닥토닥했다. 그러자 남편이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아내 역시 눈물을 훔쳤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제가 우울증이 너무 심해지니까 저를 데리고 시골을 가려고 한 거예요. 너무 미안했어요.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데 저 때문에 시골을 내려가면 포기해야 되니까.. 돈가스라도 한번 해보자고 했어요. 제가 좀더 참아보겠다고, 견뎌보겠다고 하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말씀을 해주시니까 제가 조금 덜 미안해요."


"저는 어쨌든 요리를 오래 하긴 했지만 요리는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아내부터, 사람이 먼저니까요. 그래서 시골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죠. (아내가) 괜찮아지면 다시 하려고는 했습니다. 버릴 수가 없어서 제 마음속에서.."



돈가스집의 부부의 이야기를 듣는 데 눈물이 핑 돌았다. 도대체 감동까지 주면 어떡하란 말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존재 의의란 무엇일까. (일개 방송과 한 명의 요식업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주고 싶진 않지만) 죽어버린 골목상권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또, 요식업의 교과서(혹은 경고등)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역량이 부족했던 중식집이나 분식집(국숫집) 사장님을 돕는 데도 분명 의의가 있다. 그러나 오늘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음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 음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든 좀더 좋은 재료로 손님들에게 양질의 요리를 제공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는 걸 발굴해 내는 것이야말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진짜 존재의의가 아닐까.


한결같이 기본에 충실하고, 처음의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는 식당. 돈가스집 사장님은 요식업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확인시켜 줬다. 그가 대한민국 돈가스 끝판왕이 되길 바란다. 아마 방송을 지켜본 수많은 시청자들도 한마음 한뜻일 것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어머니, (딸을) 사랑하죠?"

"안 사랑할 수가 있어요, 자식을?"


이영자가 딸에게 매정한 엄마에게 뻔한 질문을 뻔하게 던졌고, 엄마는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이영자가 그리 물은 까닭은 그가 다른 엄마들하고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고, 굉장히 야박하게 굴었다. 그들의 카톡 대화 내용은 가족 간의 것이라기보다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대화에 가까웠다. 관계는 단절돼 있었다. 


딸은 엄마의 매정함을 성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고 한다. 심지어 교통비와 학생회비마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불가피하게 엄마에게 도움을 부탁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싸늘했다. “네가 쓸 거니까, 네가 알아서 해.” 책임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라고 변명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초등학생 때 저녁 6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고, 대학생이 된 지금은 통금시간을 20분 넘겼다는 이유로 엄마가 3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은 채 냉랭하게 대했다며 답답함을 털어 놓았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정한 룰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딸의 입장에서 딸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저 남의 집 딸이 아닐까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라는 하소연이 이해가 됐다. 



솔직히 '매의 눈'을 뜨고, KBS2 <안녕하세요>를 챙겨봤다. 방송 전날부터 딸에게 지나치게 야박한 엄마 때문에 이영자가 오열했다는 기사가 올라왔고, 누리꾼들은 그 아래 신랄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대부분 엄마의 태도를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흥미로운 건 방송이 끝난 후 엄마를 이해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판단이 달라졌던 것이리라.


엄마 입장에서도 '입안의 혀'같이 만족스러웠던 딸이 청소년기에 들어서 술과 담배를 배우는 등 소위 탈선의 길로 접어들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혼란스러웠으리라. "우리 딸이 그럴 줄 몰랐던 거예요."라는 말의 의미를 MC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편의점까지 쫓아가서 업주에게 죄송하다고 빌어야 했던 당시가 너무 많이 힘들었다고 말하던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


잘잘못을 가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탈선을 저질러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딸의 잘못일까? 그 이전에 엄마의 훈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됐든 훈육의 1차적인 책임이 부모에게 있고, 부모는 그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제한적이다. 그들 가족 사이에 방송에서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어떤 식으로 훈육이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다만, 엄마가 정한 엄격한 룰이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철썩같이 밑었을 게다. 엄마의 방침에 잘 적응했던 큰딸과는 달리 둘째 딸은 기질상 좀 갑갑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답답함이 탈선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긴 몰라도 사고를 엄청 쳤을 것이다. 충격을 받은 엄마는 딸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했고, 성인이 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딸에게 또한 상처로 다가왔으리라. 



"저는 사실은.. 너무 마음이 외로워요. 들으면서. 부모는 주는 사람이잖아, 하염없이 주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엄마가 담배 얘기를 계속 할 때 모르겠어요. 친구랑 얘기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부분만 지금 너무나 물고 들어지잖아요. 어머니도 어머니만의 받고 싶었던 사랑이 있었겠지만, 엄마가 사랑을 좀 넉넉하게 줬으면 좋겠는데.. 사랑에 가뭄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그런 것 같아요. 복수심이 좀 있었어요. 너도 한번 당해봐. 나만 아플 순 없지. 저도 미숙한 거예요. 엄마로서 미숙함을 인정하게 되네요."


이영자의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있던 엄마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복수심이 좀 있었다'고 시인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부모로서 자신의 미숙함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엄마는 완전히 닫혀있지 않았다. 방송에 나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을 해보자는 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참으로 용기 있는 모녀가 아닌가. 


그들에겐 상황을 바꿔나갈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엄마는 "저도 부모가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단지 변명처럼 들리진 않았다. 이영자는 '부모는 하염없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마치 끝없이 희생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부모라고 해서 왜 상처받지 않겠는가. 왜 아프지 않겠는가. 부디 엄마를 지나치게 매정한 사람으로 몰아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피렌체에서 르네상스(Renaissance)의 기운을 느끼고 온 잡학박사들이 이번에는 경상남도 진주를 찾았다. 진주성을 방문해 김시민 장군의 숨결을 느끼고, 임진왜란(조일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의병과 무참히 살육당했던 진주성민들을 기렸다. 또, 논개라는 인물의 자취와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이라고 하는 거대한 존재들로 가득했을 지구를 떠올리고, 인간의 유한함을 상기하기도 했다.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소박한 식당에 둘러앉은 잡학박사들은 어김없이 수다의 꽃을 피웠다. 논개에 대한 '팩트 체크'에 나서더니, 국가주의 서사로 점철된 논개 이야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의심 많은 과학자' 김상욱 교수가 운을 띄우자, 유시민 작가는 "국가라는 어떤 권위 있는 인간 조직을 위해서, 한 여인이 국가를 위해서 뭘 한 것과 같이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 서사가 왠지 불편"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tvN <알쓸신잡3>가 '지식'의 관점에서 시청자들을 감탄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알쓸신잡3>(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가장 큰 미덕은 '사유(思惟)'의 관점에 있다. 단순히 몰랐던 혹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정보들을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궁리하게 만든다. 다양한 주제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그 신념은 무릇 강한 힘에 대한 반항이 되었고 그러한 반항 정신이 문학을 하게 한 중요한 소지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서 나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 박경리, 「반항 정신의 소산」 중에서-


지난 2일 방송(7회)은 특히 그런 성격이 강했다. 잡학박사들의 대화는 논개를 거쳐 박경리 작가로 이어졌다. 여성으로서 힘겹고 불안정한 시절을 보냈던 박경리 작가의 삶을 반추하던 중, 많은 제약에 묶여 있던 여성들의 삶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 왔다. 꿈을 꾸되 그것을 키워나갈 수 없었던, 현실의 높은 벽 앞에 말없이 돌아서야 했던 그 시절 수많은 소녀들의 좌절에 대한 공감과 반성이 이어졌다. 



유희열은 "최근에 페미니즘, 여성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얘기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김영하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제를 제기하고,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도록 좀 들어야 한다. 사회 전체가."라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거침없이 말하도록 하고, 이를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김상욱 교수는 숫자의 문제를 제기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과학'의 영역에도 숫자의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털어놓았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여성이라서 생각는 문제점들을 남성이 인지 자체를 못"하게 된다면서, 자신도 과거에는 "여성의 생리, 임신, 육아 이런 문제들을 인지해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숫자의) 불균형이 오해와 차별을 낳기도 한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요. 더 근본적인 걸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게 굉장히 반가워요. 더 근본적인 게 뭐냐면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거북함, 불편함, 이거를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느냐."


드디어 김진애 교수가 나설 차례다. 그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 다시 말해서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바로 일상적인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 피부로 느껴지는 거북함에 대해 주목했다. 예를 들면, 여성 차별적 언어라든지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포르노적 시선의 거북함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세대는 그런 불편함과 거북함을 예전의 자신처럼 참고 견디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떳떳하게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변화를 추동하는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데 감격했던 것이리라. 김진애 교수는 불편함이야말로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라고 강조하면서 그 부분이 고쳐지면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서 여성들만이 나가서 여성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건 반만년 만에 처음이야."


남자 패널들만 가득했던 <알쓸신잡>이 시즌3에 김진애 교수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듣고 싶었던 건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것이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언어로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우리가 좀더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좀더 처절하게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태도는 김영하 교수의 그것처럼 '경청'이다. 입을 다물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는 김상욱 교수와 유희열이 그랬던 것처럼 반성과 성찰일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이 겪었던, 혹은 자신이 부지불식 간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고백함으로써 공감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유희열의 말처럼 이 문제는 빠져나갈(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