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블랙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아기에 대한 부모님의 전통적인 가치관, 자식이 결혼하면 그 다음 순서는 아기잖아요. 그 관심은 자연스러운 건데, 제이블랙이 아내의 입장을 잘 이해하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존중도 있거든요. 그 사이에 아주 조심스럽게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가교역할을 하는 게 놀라웠어요."


솔직히 제이블랙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배우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정하면 그 때부터는 편해진다. 지난 주부터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한 '신세대 부부' 제이블랙-마리 부부의 일상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자유분방한 머리와 독특한 스타일은 편견을 갖게 했지만, 제이블랙은 알면 알수록 진국인 사람이었다. 


제이블랙은 아내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존댓말'이 아니라 '태도'이다. 그에게는 아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기본적으로 배어 있었다. 또, 제이블랙은 음식 준비에서부터 설거지까지 주방일을 도맡아 했다. 여전히 주방은 여성의 영역이며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라 못박는 성고정관념이 팽배한 사회에서 제이블랙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결국 집안일은 '집사람'이라는 왜곡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의 일이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인 남편과 아내가 '분담'해서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도와준다'는 시혜적 입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혹은 능숙도에 따라 적절히 배분하면 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제이블랙-마리 부부는 매우 현명해 보였다. 신세대 부부의 삶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시댁을 찾은 제이블랙-마리 부부는 기존의 출연 부부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시어머니는 주방을 장악했고,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아들과 며느리에게 명확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시어머니는 쿨하게 거실로 가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라고 지시한다. 마리는 나중에 수저를 놓는 일 정도만 돕는다. 대다수의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서 좌불안석인 채 어려움을 겪는 풍경과는 완연히 다른 그림이었다.


얽매임 없이 자유로워 보였던 제이블랙-마리 부부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손주를 바라는 건 세상의 모든 시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일까. 식사를 마친 제이블랙의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자녀 계획에 대한 주제로 옮겨갔다. 굳이 꺼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주제였다. "낳을 생각은 했어?" 시어머니의 질문에 마리의 얼굴이 살짝 경직된다. 


자녀 계획은 오롯이 부부 사이의 문제이고, '필수'가 아니라 '선택'에 불과한 일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언제나 이 문제 앞에서 '죄인'이 되고 만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마리도 손주가 보고 싶다는 시부모의 은근한 압박에 주눅이 들었다. 매사에 당당한 며느리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를 눈치챈 제이블랙은 진지한 태도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마리도 어머니와 아머지가 원하시는 거 다 알고, 저나 마리도 원하는 쪽이 강한데. 저희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 가질 생각도 하고는 있어요. 갑자기 시도하기엔 겁은 나잖아요. 마리가 춤을 그만 두면 마리가 얼마나 우울할지 아니까 절대로 저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화면을 보고 있던 이지혜는 "남편이 단호하게 딱 잘라주는구나!'"라며 감탄했다. 제이블랙은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아내의 입장도 충분히 대변했다. 중간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양쪽에 대한 존중을 보여줌으로써 위기를 탈출했다. 제이블랙이 명확히 대답을 하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없었다. 제이블랙의 태도는 기존의 남편들이 보여준 유우부단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임신에 대해 '여자의 특권'이라고 여기는 풍조가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놀랍고도 신비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제 몸에 가져서 제 몸으로 낳는 거니까."라는 마리의 말처럼, 임신은 여성에게 굉장한 페널티이기도 하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로 인한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일터에서 배척받고, 결국 직장을 떠나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없고, 출산 후 복귀도 여의치 않다. 


이와 같은 사회적 위치의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신은 '특권'이라기보다 '제약'에 가깝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저주'일 수 있다. 낳기만 하면 끝인가. 육아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고, 그로 인한 단절도 여성에겐 사회적 죽음으로 다가온다. 사정이 이러한데, 며느리들은 여전히 임신에 대한 부담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제이블랙의 명쾌한 태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남편들을 위한 훌륭한 교과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보면서,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역시 '결혼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먼저 다가온다. 이 문제가 풀려야 시댁이라는 이상한 나라와 그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며느리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까지 나아갈 수 있다.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하루빨리 결혼의 핵심적 정의가 '독립'으로 정착됐으면 좋겠다. 경제적 독립뿐만 아니라 정서적 독립까지 이뤄진 완벽한 독립 말이다. 


그러면 민지영의 친정 아버지가 "결혼을 하면 시댁 중심으로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 일도 없을 테고, 박세미와 그 시어머니가 "왜 며느리가 (집안의 제사를 비롯한 대소사를) 책임을 지고 짊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스러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안 좋은 건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인습을 대물림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선 '남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