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들은 여전하다. 이순재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TV를 좋아해 한번 자리를 잡았다 하면 라면의 유혹마저 뿌리칠 정도지만, 아직까지 ‘직진순재’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구는 늘 그래왔듯 자상하다. 혼자 주방을 지키고 있는 이서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이든 할 기세다. 언제나 청춘인 박근형은 세월이 흘러도 자기관리에 투철하다. 앞장 서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솔선수범한다.


백일섭은 푸근하다. 그가 짓는 미소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이야기하는 그의 천진한 표정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용건의 투입은 ‘신의 한수’였다. 그의 수다는 꽃할배들을 들썩이고, 그의 농담은 꽃할배들을 배꼽잡게 만든다. 그가 소환하는 추억들에 꽃할배들은 그저 행복해진다. 꽃할배들은 여전히 꽃할배다웠고, 그들의 여행은 따스한 감동을 선물했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를 매주 챙겨본다. 피곤하고 지친 금요일 저녁에 좋은 활력소가 된다. 8.444%의 높은 시청률(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만 봐도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할배들의 여행에 동참하며 위로를 얻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겐 낯설고 누군가에겐 반가운 유럽의 풍경들과 그곳을 누비는 할배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는 분명 좋은 텍스트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할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라는 아쉬움이 자꾸만 느껴져서 그렇다. 아무리 할배들의 이름 앞을 ‘꽃’으로 치장해도 그들의 눈길이 과거 파란만장했던 젊음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옛 이야기를 나누며, 그 추억 속에 아스라이 빠져드는 그들의 표정이 왜 그리 아련해 보이는지 알 것도 같다. 



그들의 정신은 청춘일지라도 육체는 확연히 늙었다는 게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처음 여행을 떠났던 5년 전과 비교하면 그들의 늙음은 확연하다. 흰머리가 더욱 늘었고, 발걸음은 더욱 더뎌졌다. 잠깐의 외출 후 코를 골며 뻗어버린 할배들이 짠하다. 에너자이저였던 이순재는 부쩍 피로를 쉽게 느낀다. 신구는 말이 현저히 줄었다. 백일섭은 아픈 몸을 이끌고 가뿐 숨을 내시며 겨우 걸음을 맞춘다.


여행은 젊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들의 세대에 그것이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번 시즌에 들어 ‘짐꾼’ 이서진에 대한 의존도가 눈에 띠게 늘었다. 이제 이서진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숙소 예약에서부터 식사 준비, 침구 정리는 물론 일정을 짜고 길을 안내하는 것 등 여행 전반의 모든 일이 짐꾼의 몫이다. 


이쯤되니 일각에서 '효도 관광'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할배들이 무언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이라면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할배들의 도전이라고 해봐야 아침식사를 주문하는 것 정도다. 할배들은 이제 누군가의 도움을 넘어 인도를 받아야만 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늙는다는 건 그런 걸까. 



그러다보니 이서진도 과부하에 걸렸다. 함께 여행을 떠났지만, 이서진에겐 여행지가 주는 감동을 느낄 여유가 전혀 없다. 그저 다음 숙소를 어디로 정할지가 걱정이고, 저녁 메뉴로 뭘 먹을지가 고민이다. 온통 할배들 생각뿐이다. 아무리 짐꾼의 신분이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서진이라고 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도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말이다. 


이번 시즌까지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전보다 늙어버린 할배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 백일섭을 배려하는 할배들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김용건의 합류는 처진 분위기를 살리며 잠재하고 있는 문제를 감추는 특효약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딜레마다. 



그럼에도 <꽃보다 할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에 뒷짐지지 않고, 호기심을 품고 공부하는 태도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는 ‘꼰대’와는 다른 어른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늘 청춘인 할배들을 통해 자신의 ‘노년’을 상상해 보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꽃보다 할배>는 그 효용을 다하고 있다. 


딜레마는 딜레마대로 내버려 두고 <꽃보다 할배>는 그만의 역할과 기능에 전력을 다하는 게 답일까, 소수의 멤버를 교체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답일까? 아니면 아예 새롭게 합류한 김용건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는 게 답일까? ‘리턴즈’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나영석 PD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제 반환점을 돈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이 조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종로3가역(지하철 5호선) 6번 출구로 나가서 뒤쪽의 사거리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왼편으로 작은 골목이 나온다. 어쩌면 별 거 없어 보이는 허름한 골목인데, 마치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곳으로 안내하는 통로인양 설렘을 준다.




골목 안쪽으로 접어들면 시장통 먹자골목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복잡하고 시끌벅적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수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곳곳에 자리잡은 식당들은 저마다 자기네가 맛집이라 써붙여 놓았다.

수요 미식회, 생생정보통 등 온갖 TV 프로그램의 이름이 난무한다. 저녁 무렵이면 이미 손님들로 식당 안은 가득 차 있고, 바깥에 마련한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그득하다. 발길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다.

온통 맛집 같아 보여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싶어지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걸어보기로 하자. 목적지까진 아직 조금 남았다. 골목길 특유의 정취를 느끼며 조금 걸었을까 갑자기 골목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시장통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개성 넘치거나 고풍스러운 식당들이 즐비하다. 이곳이 바로 ‘익선동(益善洞)’인데, 원래 이 지역에 있던 익동의 ‘익’과 조선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중부 정선방의 ‘선’을 합친 이름이다.

얼핏 연남동이 떠오르지만,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연남동이 좀더 정돈된(개발된) 느낌이라면, 익선동은 보다 정겨운 분위기다. 아무래도 미로처럼 이어진 자그마한 골목길의 영향인 듯 싶다.



이름 : 간판 없는 가게
주소 :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36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이번에 소개할 맛집은 ‘간판없는 가게’라는 곳이다. 주택을 개조한 듯한 곳인데, 이미 익선동에서 제법 유명한 식당이다. 식당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개성이 물씬 풍기는데, 실제로 이곳은 간판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찾아가냐고?

구글 맵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익선동의 골목은 정맥처럼 이어져 있어 자칫 길을 헤매기도 한다. 한번에 찾는 것도 좋겠지만, 익선동 구석구석을 누비는 재미도 있으니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



‘간판 없는 가게’를 찾으려면 입구 옆 입간판(사진 참조)과 프라이팬 국자 거품기 등으로 장식된 출입문(사진 참조)을 찾아야 한다. 건너편에 있는 잡화점의 ‘예쁨’에 눈을 빼앗길 우려가 있으므로 조심(?)하자. 일단 먹고 구경하자!




식당 내부는 인테리어가 거의 돼 있지 않았다. 요즘 많은 상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돈이 들어간 건 조명뿐이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고, 문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회색빛이 시원해 보인다.



특별히 메뉴판은 준비된 게 없었고, 벽에 붙어 있는 종이조각이 전부다. 굉장히 심플하다. 메뉴판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멋드러진 메뉴판이 그 식당의 아이덴티티가 되기도 하지만, 이렇듯 단출한 것도 매력이 있다.



고민 끝에 명란 스파게티(16,000원)와 스테이크 리조또(23,000원)를 주문했다. 명란 스파게티는 보통 크림 스파게티가 많은데, ‘간판 없는 가게’의 경우에는 오일 스파게티였다. 이렇게 조리를 하니 명란의 식감과 맛이 제대로 살아있었다.

스테이크 리조또는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우선, 스테이크의 양이 제법 많았고, 고기도 부드러워 씹기에 좋았다. 크림베이스에 파마산치즈가 잔뜩 뿌려져 있어 고소한 맛이 진했다. 입맛에 따라 조금 느끼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살짝 느끼한 맛을 좋아해서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명란 스파게티보다 스테이크 리조또 쪽이 입맛에 맞았다. 명란 스파게티는 처음 먹어보는 맛에 가까웠 신기했다고 할까.

간판 없는 가게는 익선동에 들린다면 꼭 들러봄직한 식당이다. 기존 식당의 틀을 깬 다양한 시도들이 마음에 들었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맛도 준수했다. 다만,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다. 메뉴 2개에 39,000원이니 가벼운 금액은 아니다.

그래도 익선동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고,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맛보는 기회 비용으로 그 정도의 지출은 지불 가능하지 않을까? 어서 식사를 마시고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익선동 골목 구석구석을 누벼보자!


지극히 개인적인 별점은 ★★★★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수목 드라마의 왕좌를 지키고 있던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종영했다. 기가 잔뜩 눌려있던 지상파 드라마들에겐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반격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기선을 제압한 건 SBS <친애하는 판사님께>였다. 윤시윤의 1인 2역 연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7.7% 시청률을 기록하며 8.602%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MBC <시간>(4.2%)과 KBS2 <당신의 하우스헬퍼>(4.0%)가 이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첫회에 비해 시청률이 상승하는 곡선을 그렸던 것과 달리 <시간>은 첫회 시청률과 큰 변화가 없었다. 과연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점유하고 있던 파이가 어느 쪽으로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간>과 <당신의 하우스헬퍼>에게 기회가 남아 있을지,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독주가 진행될지 궁금하다.



<시간>은 KBS2 <비밀>, SBS <가면> 등 밀도 있는 이야기를 선보였던 최호철 작가의 신작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남자가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한 여자를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드라마다. ,시간>은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다만, '좋은 쪽'의 반응은 아니었다. 다름 아니라 안하무인의 재벌2세 천수호 역을 맡은 김정현의 태도 논란 때문이었다.


지난 20일에 진행됐던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김정현은 웬일인지 시종일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포토타임 도중에도 '다정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고, 서현이 팔짱을 끼려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했다. 이는 거만한 태도로 비췄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비롯해 이 소식을 접한 다수의 누리꾼들은 앞다퉈 비난에 나섰다. 


"촬영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제 모든 삶을 천수호처럼 살려고 노력 중이다. 결과가 어떻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 자체를 전부 넣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김정현은 "역할에 몰입하느라 그랬다"고 해명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어찌됐든 김정현의 '과몰입 해프닝'은 <시간>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됐다. '도대체 얼마나 연기를 잘 하길래?',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볼까?' 많은 시청자들이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간>을 시청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정현의 연기는 자신의 변명을 변명하기에 충분했다.


김정현이 연기한 천수호는 그야말로 망나니라는 말이 제격이었다. 자신이 VIP라는 사실을 몰라보고 잘못 안내했다는 이유로 백화점 안내원 설지현(서현)에게 무례한 언행을 일삼고 심지어 무릎을 꿇게 만든다. 이 사실이 인터넷에 알려지자 무마하기 위해 당사자를 찾아가 돈다발을 건넨다. 모든 사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는 등 폭력적인 태도를 취한다. 정말이지 꼴불견이다.


김정현은 천수호 역에 완전히 '몰입'한 듯 보였다. 모든 것을 가진 재벌2세이기는 하나 '첩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터라 자존감이 훼손된 거친 모습을 잘 표현했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몰려오는 감정들을 무리없이 끌어냈다. 눈빛은 안정적이었고, 발성 등 기본적인 요소들도 잘 갖춰져 있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극에 몰입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아쉬움은 드라마의 뻔한 설정에서 나타났다. 우선, 캐릭터들이 주는 피로감이 컸다. <시간> 속의 '재벌' 집안 내의 알력 다툼은 기존 드라마들이 그려왔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천수호의 무례함은 그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했다지만, 결코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가난에 허덕이는 여자 주인공(설지현)이 무한 긍정에 생존력과 사회성을 갖춘 캔디형인 건 진부하기만 하다.



"너 살기 싫어? 이런데 멍 때리고 있으면 어떡해!"

"나도 모르겠어요. 살고 싶은지. 아닌지"


게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동생 지은(윤지원)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설지현을 돕는 상대가 재벌2세라는 건 식상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될 테고 말이다. 수호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와중에 횡단보도 한가운데 멍하니 주저앉은 지현을 번쩍 들어올려 나오는 장면(4회 엔딩)은 '흑기사 포옹'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남녀 주인공 간의 뻔한 구도의 재연이라 설렘보단 답답함이 앞섰다.


그나마 흥미로웠던 건 지현의 남자친구 선민석(김준한)이었다. W그룹 법무팀 변호사인 그는 반듯한 외모와 달리 억눌린 욕망을 품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좇던 그는 천수호의 약혼자인 은채아의 폭행이 지은의 죽음에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지현에게 말하기보다 '자살'로 사건을 은폐하는 데 앞장선다. W그룹의 변호사로서 재벌의 비호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민석은 "힘 없는 피해자가 진실을 알게 되면 재벌을 상대로 긴 싸움을 시작할 겁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처럼 보인다 해서 진실을 위해 싸울 권리마저 빼앗아 버리는 걸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시간>이 끄집어낼 수 있는 보다 흥미로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시간>이 첫주의 부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반격 카드가 없다면 반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 논란의 대상이었던 서현은 '아이돌 출신'이라는 완전히 편견을 깰 정도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한 연기를 펼쳐 보였다. 김정현도 '과몰입 변명'을 납득케 했다. 역시 <시간>을 압박하는 건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무서운 기세다. <시간>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잉글랜드의 왕자 에드워드와 거지 소년 톰이 옷을 바꿔 입었다. 장난으로 한 일이었다. 그러고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저 신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둘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줄 말이다. 왕자의 옷을 입은 톰은 졸지에 왕자의 대우를 받았고, 거지의 옷을 입은 에드워드는 거지 취급을 받았다. 아,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마크 트웨인이 쓴 『왕자와 거지』의 기본 줄거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영민했던 톰은 곧 왕이 돼 선정을 베푼다. 그동안 보고 겪었던 어려움을 정책으로 잘 녹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드워드는 거지 떼에 끌려가는 등 고난을 겪지만,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직접 경험하면서 진정한 지도자로 성숙해 간다. 결국 에드워드는 톰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아 훌륭한 왕이 된다. 



이번 주부터 새롭게 선보인 SBS 수목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왕자와 거지'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 쌍둥이 형제가 있다. 형 한수호(윤시윤)와 동생 한강호(윤시윤)은 생김새가 똑같다. 그들의 삶은 왕자와 거지만큼이나 극과 극이다. 수호는 전국 1등을 놓친 적 없는 엘리트였고, 지금은 판사가 돼 대한민국 상류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왕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강호는 밑바닥 인생이다. 엄마는 늘 형과 강호를 비교했고, 그와 같은 편애는 강호를 엇나가게 만들었다. 고교시절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는 수호를 발견한 강호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개입한다. 형이 미웠지만, 그래도 맞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던 사실을 수호가 모른 척 하는 바람에 강호는 범죄자가 돼 감옥에 가게 됐다. 한순간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와 전과 5범의 범죄자. 이토록 기구한 운명의 형제라니! 감옥에서 출소한 강호는 또 다시 범죄에 휘말리고, '형을 찾아가지 말라'는 엄마의 매정한 말에 울컥해 수호를 찾아간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수호는 자신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괴한에게 납치를 당해 부재한 상태다. 강호는 자신을 쫓아 온 경찰에게 체포될 상황에 놓이자 수호인 척하며 위기를 벗어나고, 그대로 '형의 옷'을 입고 법정까지 들어간다.


그 다음부터는 예상됐던 것처럼 좌충우돌이다. 강호는 낯선 법원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사람들이야 어찌어찌 속인다하더라도 당장 한자가 가득한 선고문을 읽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기지를 발휘해 선고기일을 1주일 미뤄두고, 판사 시보로 온 송소은(이유영)에게 선고문을 한글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국민들이 읽어 볼 판결문이 이렇게 어려워서 되겠냐는 핑계로 둘러댔다. 



그런데 소가 뒷걸음질 하다 쥐잡은 격이랄까. 갑작스럽게 모든 사건의 선고기일이 늦춰지자 갑질 폭행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오성그룹의 재벌3세 이호성(윤나무)와 그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대양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대양(김명곤)과 그의 아들 오상철(박병은)은 이 사건을 선고유예로 풀어내기 위해 강호에게 접근한다. 상철은 연수원 동기라는 친분을 활용해 수호가 된 강호를 설득한다. 


강호는 상철에게 쉽게 설득 당하고, 재벌을 위한 판결을 내리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법에 무지한 그가 판결문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의 옆에는 판사 시보 송소은이 있었고, 강호는 소은에게 과제라는 명목으로 판결문을 쓰게 한다. 그러나 소은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뒤, 선고유예가 아니라 징역 7년짜리 판결문을 써낸다. 그리고 강호와 대립하며 이렇게 말한다.



"판결 원칙은 딱 하나입니다. 형벌의 고통이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커야 한다. 죄 지은 자가 선고를 받고 웃으며 법정을 나간다면 그건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은의 이 대사야말로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지향하는 가치일 것이다. 전과자에서 졸지에 판사가 된 강호의 성장과 활약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 전망이다. 차갑고 냉정한 형 수호와는 달리 강호는 인간적이고 온정적인 판결을 내릴 듯 보이니 말이다. 또, 법조계에 만연한 비리와 관행도 강호의 눈으로 보면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생긴다. 『왕자와 거지』의 해피엔딩처럼 말이다.


다만,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취하고 있는 '왕자와 거지'의 구도는 조금 식상한 측면이 있다. 사기꾼에서 검사가 됐던 <스위치-세상을 바꿔라>가 떠오르기도 하고, 상반된 성격을 지닌 쌍둥이의 우여곡절은 SBS <착한마녀전>에서 익히 봤던 내용이다. 또, 판사라는 직업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던 JTBC <미스 함무라비>의 섬세함과 동떨어져 있는 과격한 설정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결과가 뻔히 그려지는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성공 여부는 1인 2역을 맡은 윤시윤의 활약에 달려있다. 캐릭터의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초반에는 다소 과장된 연기를 펼치긴 했지만, 윤시윤의 연기는 충분히 설득적이었다. 5.2%-6.3%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7%-7.7%로 껑충 뛰어 올랐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친애하는 판사님'이 된 강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아직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 싶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갑자기 해방되고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 같은 만남이었다." - 요코 마즈다 -


니키 드 생팔(1930. 10. 29. ~ 2002. 5. 21.).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슴(Nouveau Realisme) 조각가. 낯선 이름에서 무한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예술적 영감이 잔뜩 묻어 있는 아우라라고 할까.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건 설렘이면서 기대였다. 


지난 주 수요일 '니키 드 생팔 전 - 마즈다 컬렉션'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의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다.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워낙 지독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터라 가는 길이 곧 고난의 길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러나 더위는 짧고 예술은 길었다. 전시관에 들어선 순간, 에어컨 바람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래서 피서를 미술관으로 가나(?) 싶었다. 시원함 못지 않게 놀랐던 건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진 생동감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마주했던 작품(<스웨덴 TV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부터 강한 인상을 풍겼다.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이름을 현대미술계에 데뷔시켰던 '사격회화(shooting painting)'들이었다. 


사격회화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총을 쏘는 걸까? 그렇다. 물감이 담긴 오브제를 석고로 감싼 후, 실제로 총을 쏴 무작위적인 추상화를 연출하는 퍼포머스다. 총을 쏘는 행위를 통해 공격자를 연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공격성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꽤나 과격하면서도 통쾌한 예술 방식이다. 니키 드 생팔이 선택한 오브제는 다양했는데, 셔츠, 넥타이, 낡은 장난감, 폐품 등을 비롯해 그리스도 수난상도 포함돼 있다. 그가 선택한 오브제는 곧 그가 고발하고자 하는 대상이었고, 그를 억압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왜 사격을 예술에 접목시켰을까? 니키 드 생팔이 어린 시절 겪었던 참담한 사건을 통해 그가 ‘사격회화’를 고안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니키 드 생팔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지옥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으로부터 가부장적 여성성을 강요받는 등 순탄치 않은 생활 끝에 파국을 맞았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니키 드 생팔은 우울증을 겪는 등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는 개인적 상처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억압을 미술치료를 통해 극복해 나간다. 


그리하여 탄생한 사격회화는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여성들이 겪는 정신적 폭력을 고발하는 성격을 띤다. 아무래도 작품 속에 '분노'가 담겨 있다. 다만, 그건 적개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라기보다 위로와 같은 치유적 성격에 가깝다. 


샘의 나나 (백색의 춤추는 나나) 


거꾸로 서 있는 나나




사격회화 이후 니키 드 생팔의 작품 세계는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괴기함이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양태의 조각들이 등장한다. 특히 임신한 친구 클라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나나> 시리즈는 니키 드 생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나나'는 '보통의 여자아이'를 일컫는 프랑스어인데, 니키 드 생팔이 묘사한 나나는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하다. 기존의 여성에게 강요됐던 이미지, 이를테면 조신함이라든지 단정함로부터 벗어난 활기로움이 넘쳐 흐른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청량감을 지녔다. 


그건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나나가 지니고 있는 '전복의 통쾌함'이 내뿜는 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남성중심의 사회가 결정한 (여성의) 미의 기준을 탈피한 자유로운 나나의 모습들은 여성의 존재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 포스터 

나나 (작은 그웬돌린 I)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과거 여성들은 힘을 갖기 위해 문화나 제도를 바꾸기보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대로 맞춰 살아가는 데 집중했고 소비시장에서도 여성들에게 '섹시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탈락한다', '예쁘지 않으면 지는 거다' 식의 인식을 주입해 왔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나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탈코르셋란 문자 그대로 코르셋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코르셋은 중세시대부터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착용했던 속옷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확장해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규정된 '예쁜 모습'을 뜻한다. 


날씬한 몸매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표준이 되면서 여성들은 자신을 학대에 가깝게 몰아세워야 했다.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 돼 버렸고,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강박적으로 살빼기에 매진했다. 그것이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머리에 TV를 얹은 커플


거대한 얼굴


부다


니키 드 생팔은 자신의 작품인 '나나'를 통해 이 땅의 수많은 나나들을 위로한다. 아마 수많은 여성들이 니키 드 생팔 전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지 않았을까. 또, '탈코르셋 운동' 등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움직임에 참여할 작은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전시회에는 우연한 계기로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본 후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한 요코 마즈다의 이야기도 상세히 담겨 있다. 그림편지로 확인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단단한 우정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니키 드 생팔의 외침이 지구 반대편의 요코 마즈다에게 가 닿았듯,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러하길 바란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파리의 '퐁피두 센터' 옆의 조각분수공원(스트라빈스키 분수)를 만든 작가가 바로 니키 드 생팔이었다. 물론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유롭고 창의적인 형태의 조각과 형형색색의 빛깔이 아름다워 신기해 했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찾아보다 알게 됐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말씀하시죠. 수술 얘기하자고 다 모이신 거 아닌가요?"

"무슨 수술 말입니까?"

"대한민국 아픈 곳 살리는 수술 말입니다.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의사 선생님들께서 이제 우리 땅 소외된 곳을 몸소 가서 돕고 싶다, 해서 모였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요? 시작하시죠."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저기서 저런 대사를 날릴 줄이야..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한 구승효(조승우)는 '낙산의료원 파견 사업'에 반발하는 병원 구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데없이 '수술'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대한민국 아픈 곳 살리는 수술.' 구승효의 그 영악한 한마디에 상국대 의료진들은 벙찐 상태가 된다. 그들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패배의 기운이 느껴진다. 


간단한 선공만으로 승기를 잡은 구승효는 계속해서 밀어붙인다. 캠퍼스 내의 검진센터를 강남으로 옮겼을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당신들이 일반 회사원들과 다를 건 또 무엇이냐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 구승효는 의사들의 항변을 논리적으로 무너뜨린 후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보다 산모가 더 많이 죽는다는 기사, 그거 사실입니까?"라며 쐐기를 박는다. 



"그동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서울 사람들의 두 배가 넘는 엄마들이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는데, 여러분들 의사지 않습니까? 간호사잖아요? 여러분들이 가면 그 사람들 안 죽는 거 아닙니까?"


구승효 대 상국대학병원 의료진, 비록 1대 다수의 싸움이었지만, 이 대결은 처음부터 이미 승패가 갈렸다. 구승효가 이 싸움의 프레임을 '의사들의 윤리적 책임 또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본분'으로 설정한 순간부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의료진들의 반발은 단순히 '지방으로 가는 게 싫은 이기심' 정도로밖에 풀이되지 않는다. 구승효는 '지방의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의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논리적 우위를 선점했다.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은 구승효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권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해체시키고, 더 멀리 분산시킬 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구승효는 잠깐 당혹감을 느꼈지만, '보건복지부에 물어보라'며 대답을 회피한 후 "병원은 공공재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내가 지금 공공재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까?"라며 되받아친다.



구승효가 공공재의 개념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무기로 사용하자 의료진들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졌다. 이대로 싸움은 끝나는 것일까. 그 때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이동욱)이 나선다. "흑자가 나는 과는 그럼 파견 대신 돈으로 된다는 뜻입니까?" 드디어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나왔다. 예리한 공격이었다. 그렇다. '돈'이었다. 자본의 논리. 구승효가 애써 가리고 싶어했던 거무튀튀한 본질은 그것이었다.


화정그룹의 장학금 1기 수혜자로 시작해 최연소 CEO까지 오른 구승효는 화물회사를 경영하다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한다. 대기업 출신 전문경영인답게 그가 병원에 오자마자 한 일은 각 과의 경영실적 파악이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료센터. 그렇게 해서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세 개의 과가 구승효의 타깃이 된 것이다. 


구승효는 '지방병원 파견 근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 되면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도 챙길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적자를 줄이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그 방법이 왜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본이 '의료'에 개입하면서, 그것이 의료 '산업'이 된 우리네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 첫회 시청률 4.334%(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JTBC 역대 드라마 최고 기록를 갈아치운 <라이프>는 2회에서도 4.971%로 상승세를 보였다. -


예진우는 그와 같은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보고, 파견 사업의 숨겨진 속내를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각 과별 매출 평가액 표를 구해 병원 게시판에 올린다. 구승효의 '낙산의료원 파견 사업'이 인도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오로지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제 싸움의 국면은 달라졌다. 구승효의 프레임은 깨졌다. 


tvN <비밀의 숲>을 집필했던 이수연 작가의 작품답게 <라이프>는 1, 2회만에 시청자들을 꽉 사로잡았다.  드라마의 분위기, 그 밀도부터 남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병원을 바꾸려는 구승효와 병원을 지키려는 예진우의 대립을 그려나가고 있지만, <라이프>는 이를 통해 병원 내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시스템적인 문제를 다뤄나갈 전망이다. 법조계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줬던 <비밀의 숲>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히 선악 대결을 좇지 않는다. 초반 '재수없는 캐릭터'로 나오는 구승효가 수술실에서 쓰러져 잠든 주경문에게 수술복을 덮어주고 나온 장면은 <라이프>이 지향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선 인간 군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야말로 이수연 작가의 전매특허이니 말이다. 과연 <라이프>가 이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또 어떤 대답을 찾아냈는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정말이지 못하는 게 없다. 볼 때마다 감탄한다. 뉴욕대 유학파답게 영어가 능숙하고, 간단한 요리 정도는 금세 뚝딱 만들어 낸다. 가끔 길을 못 찾는 실수를 하긴 하지만, 그건 도시 계획의 오류(?)일 뿐이다. 그의 섬세함과 꼼꼼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할배들의 컨디션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불편함이 없는지 챙긴다. 예의바를 뿐 아니라 눈치도 빠르고 센스가 넘친다. 주변에 저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꼭 붙어있고 싶다. 


눈치챘겠지만 ‘짐꾼’ 이서진 이야기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할배들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김용건 우리들의 꽃할배들이다. 그런데 '짐꾼'이 없어도 이 프로그램은 굴러가지 않는다. 오로지 할배들끼리의 여행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고령인 터라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훌륭한 짐꾼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꽃보다 할배> 시즌 1이 방영됐던 원년(2013년)부터 그 절대적 역할을, 그것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 짐꾼이 바로 이서진이다. 대체자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믿기지 않겠지만, 이서진의 나이가 곧 지천명이다. 71년생인 그는 48세다. 워낙 동안인데다 귀태가 나기 때문일까. 여전히 상큼한 보조개 미소를 날리는 그의 나이가 아무래도 낯설기만 하다. 


짐꾼의 이미지가 강해 쉽게 연상되진 않지만, 이서진도 어딜가면 어엿한 큰형님 뻘이다. tvN <삼시세끼>에서는 에릭과 윤균상을 부려먹고(?), tvN <윤식당>에서는 실권을 쥐고 있는 전무다. 박서준과 정유미가 선발대라면 그는 윤여정과 함께 느긋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꽃보다 할배>에선 영락없는 짐꾼이다. 할배 중 막내로 합류한 막내 김용건(73세)보다 25살이나 어린 탓에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하는 처지다. 



"서진이 없으면 못다닌다", "정말 고생한다", "서진이가 참 큰 역할을 한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끼리의 여행에서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부담감과 피로도가 얼마나 큰지 말이다. 그런데 할배 5명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니 오죽할까. 이서진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는 방송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도통 하지 않던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피곤에 절어 초점없는 동공을 하기 일쑤다. 할배들도 이서진의 노고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한다. 


사실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이서진이 짊어진 부담감과 짐꾼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보는 게 재미가 쏠쏠하면서도 짠하다. 부하가 걸린 짐꾼의 활약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물론 이서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몫을 충실히 수행할 게 분명하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다음 시즌부터는 그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게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이서진은 자신의 후임으로 택연을 지목했지만, 이서진이 출연하지 않는 <꽃보다 할배>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써니가 특별출연했던 대만 편이나 최지우가 깜짝 출연했던 그리스 편의 반응이 좋았던 점도 고려해봄직 하다. 김용건의 투입으로 할배들의 수가 늘어난 만큼 짐꾼의 수를 늘리는 것도 좋은 대안일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출연자의 수가 너무 많아진다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충분히 분량 안배는 가능하리라. 



나영석 PD와 이서진의 만남.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대한민국 예능사에 큰 족적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PD는 이서진이라는 캐릭터(투덜거리면서도 할 건 다하는 능력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연출자이고, 이서진은 나PD의 연출 포인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연기자다. 누가 이서진에게서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었겠는가. 나PD의 탁월한 안목에 놀랄 뿐이다.


한 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톰과 제리'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이젠 누가 톰인지 제리인지 판단 불가다. 오히려 둘은 '동반자'에 가까워 보인다. 앞으로도 두 사람의 콤비가 계속되길 바란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 역시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언제나 청춘인 꽃할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듯이, 언제나 청춘인 일꾼 이서진을 통해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동이 크다. 만능 예능인으로 진화한 이서진이 시청자들의 오랜 동반자로 남길 기대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