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무법 변호사>의 기세가 무섭다. 바야흐로 '기성'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접어들고 있다. 봉상필 변호사(이준기)는 살인의 누명을 쓰고 경찰에 체포됐고, 골칫덩어리를 제거한 차문숙 판사(이혜영)와 안오주 회장(최민수)판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과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출연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무법 변호사>는 시청률 6.085%(닐슨 코리아 기준)로 순항 중이다. 


극본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 <무법 변호사>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한 조건들을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두루 갖추고 있다. '어머니의 복수'라는 사적 복수와 '기성의 정의'라는 공적 복수가 절묘히 조합을 이룬 이야기의 쫄깃함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연출도 군더더기가 없는 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덕목은 역시 주연배우들의 활약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존경받는 판사와 탐욕스러운 악의 축,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인물인 차문숙 판사를 연기하고 있는 이혜영의 존재감은 <무법 변호사>의 큰 힘이다. tvN <마더>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그 색채가 완전히 달라져 놀랍기만 하다. 그 변화무쌍함은 이혜영이라는 배우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형적이거나 평면적이지 않은 그의 연기는 매번 새롭고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밑바닥 깡패에서부터 오주그룹의 회장, 그리고 기성의 시장까지 뛰어오른 안오주 역을 맡은 최민수의 무게감도 든든하기만 하다. 극악무도한 악역을 맡은 최민수의 연기 변신은 이혜영의 그것과 함께 매우 인상적이다. 극 중에서 최민수는 뱀처럼 섬뜩한 눈빛을 내보이고,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야비한 인물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악역이다.



두 중견 배우가 탄탄한 연기로 4, 50대 시청층을 흡인하고 있다면, 무법(無法)에서 무법(武法) 변호사로 성장한 이준기의 활약은 젊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tvN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실패의 쓴맛을 본 이준기는 한층 더 성숙한 연기로 돌아왔다. 액션뿐만 아니라 달콤한 멜로, 긴장감 넘치는 법정신까지 못하는 게 없는 완전체 배우로 거듭났다. 외삼촌 최대웅(안내상)을 죽음에서 구하려 애쓰던 열연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여기에 차문숙 판사의 그림자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남순자 역의 염혜란은 '미운 연기'를 맛깔스럽게 연기하고 있고, 사건의 키를 쥐고 있으며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우형만 형사 역의 이대연도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여기에 봉상필과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천승범 검사 역으로 박호산이 새롭게 가세하면서 캐릭터가 더욱 풍부해졌다. 



이렇듯 <무법 변호사>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을 뿐더러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게 차별화된 장점이다. 뻔하지가 않다고 할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여자 주인공 서예지의 존재감이다. 봉상필과 함께 정의를 위한 싸움에 뛰어든 하재이 변호사는 명실상부 드라마의 투톱이었지만, 그 역할과 무게감이 현저히 축소되고 있다. 


<무법 변호사>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판사의 오판에 "이 판결 잘못하신 거예요"라며 주먹을 날리는 하재이를 통해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그만큼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잡아가는 데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하재이는 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받고도 끝내 소신을 꺾지 않았고, 봉상필과의 기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강단 있는 여성 변호사였다. 봉상필에 못지 않은, 그보다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하재이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처음의 당찬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봉상필의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제한되고 있는 느낌이다. 봉상필의 이벤트에 감격해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기보다 봉상필에게 마냥 의지한다. 러브라인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때문인지 드라마를 홍보하는 기사에서도 서예지는 '애교', '청순' 등의 이미지와 결부돼 있다.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봉상필이고, 하재이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의 전개는 뻔한데, 차 판사를 무한 신뢰하는 아빠와의 갈등이 가속화될 테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와의 재회는 신파적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하재이는 계속해서 감정적인 문제로 흔들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봉상필이 그를 감싸고 위로하는 구도가 정착된 것이다. 결국 하재이는 유일하게 뻔한 캐릭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쫄깃쫄깃한 법정 드라마를 추구하는 듯 했던 <무법 변호사>도 결국 멜로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대중적인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달달한 사랑을 그리는 걸 나쁘다 할 순 없지만, 그 비중이 많아질수록 극의 긴장이 사라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멜로가 강조되면서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의존적이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팩트다. 이것이 잘 나가는 <무법 변호사>의 유일한 옥의 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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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지 오래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언젠가부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그 치열함을 잃어갔고,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전성기 시절의 KBS2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7.9%를 찍을 만큼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두 자릿수 시청률은 꿈도 꿀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발주자로 제법 인기를 끌었던 tvN <코미디 빅 리그>(이하 <코빅>)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단지 치열함의 문제는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들이 재미가 없어진 이유 말이다. 오히려 '불편함'이 더 핵심적이다. 옛날에는 신체와 외모의 차이를 희화하하더라도 웃어 넘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비하가 포함돼 있더라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고, 설령 그런 부분이 있어도 '웃기면 되지'라는 대전제 앞에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못은 묵인됐고, 반론은 묵살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조금씩 진일보했다. 인권 의식이 성장했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장됐다. 또, 더 이상 외모와 신체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시각이 성숙돼 갔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다. '어떻게든 웃기면 된다'는 저급한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 조롱과 비하, 무지함과 저속함을 웃음으로 착각한 채 매몰돼 있다. 발전이 없는 개그에 외면은 당연한 결과다.


<코미디 빅리그>의 경우에는 지난 2016년 4월 장동민이 출연했던 '충청도의 힘'이라는 코너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 조롱, 노인 비하, 아동 성추행 등의 내용을 담아 논란을 빚었었다. 결국 담당 PD가 사과하고, 그 코너는 폐지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빅>은 방송 중 여성 방청객의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이 반복돼 방송심의소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 처분을 받기로 했다. 


"비록 개그 소재라 하더라도 소수자 인권과 양성평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아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반복될 경우에는 법정제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방송소위의 의견이었다. 이쯤되면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은 약자를 조롱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게 아니면 시청자들을 웃길 수 없는 것인가?' 그 수준 낮음에 이젠 화가 난다.



여러 차례 혼이 났음에도 <코빅>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방송의 '이별여행사'라는 코너를 들여다보자. 박나래는 극중에서 이용진의 전 여자친구 캐릭터 역할을 이어나갔는데, 이번에는 tvN <나의 아저씨>의 여자 주인공 이지안(아이유)으로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이용진은 박나래를 허언증 환자로 취급했고, 박나래는 이용진에게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을 따라하자며 졸랐다. 


결국 박나래는 경찰에게 체포를 당했는데, 그 죄목이 '구타유발죄'였다. (아이유만큼) 예쁘지 않아서 폭력을 유발한다는 뉘앙스였다. 다시 말하면 못생긴 여자는 맞아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개그랍시고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코빅>은 여전히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방송을 반복하고 있었다. 박나래가 배를 맞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뒤에 환하게 웃는 여성 관객을 배치한 건 상당히 저열한 편집이었다.


한편, '이별여행사'에서 연출한 장면은 <나의 아저씨>에서도 논란이 됐던 장면이라 아쉬움이 더 컸다.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고 묻고, 박동훈(이선균)에게 "내 뒤통수 한 대만 때려줄래요?"라고 말하는 이지안은 애정과 폭력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데이트 폭력을 연상케 해 많은 이들을 불쾌하게 했었다. 



<코빅>은 이 장면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단지 인기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화화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박나래를 비롯한 여성 코미디언들의 처지다. 박나래만 하더라도 MBC <나 혼자 산다> 등 리얼버라이티 예능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쾌한 싱글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예쁘지 않은 여자'라는 캐릭터에 한정돼 저급한 개그의 틀 안에 갇힌다는 점이다. 


이건 박나래의 잘못이 아니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비하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제작진의 나태한 인식에 화살을 돌려야 한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과거에 비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송 시간, 베테랑 부족 등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댈 수 있겠지만, 사회적 의식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낮은 개그의 질이 그 첫번째 아닐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제가 존경하는 여성 대법관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퇴임하실 때 히말라야를 혼자 오른 어느 등산가의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긴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 울면서 철수했다. 우리는 웃으면서 철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렇게 많은 분들이 첫발을 내디뎠으니까요."


성공충(차순배) 부장판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로 인해 유산까지 하게 된 홍은지(차수연) 판사를 위한 전체판사회의가 소집됐다. 젊은 판사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면수)은 법원 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현실과 부딪쳤다. 그들의 패기 있는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결국 동료 판사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과반수 이상의 출석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회의는 열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첫발은 위대한 출발이었다.


'정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섣불리 동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고, 그들만의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법원을 나서던 박차오름은 "저 불빛 하나하나마다 다 생각이 다르네요. 높으신 분들의 생각이나 입장은 비슷비슷한데, 젊은 판사들의 뜻을 모으는 건 다양한 이유로 참 쉽지가 않네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임바른은 레프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같다며,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읊조린다. 과거 누구보다 열렬히 부조리한 법원 내 현실에 맞서 싸웠던 부장판사는 그 누구보다 몸을 사리는 기득권이 됐다.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는 판사들은 동료을 걱정할 여력이 없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판사들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 건가봐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기가 어려워서." 박차오름의 한마디가 참으로 아프다. 사회 곳곳에서 '연대'를 부르지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서 서로의 손을 맞잡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무엇인들 바꾸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매일같이 제자리걸음일까.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기 어려운 현실. 수렁에 빠진 우리들이 가엽기만 하다.


그럼에도 임바른의 "어쩌면 사실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면서도 그걸 모르는 걸지도 모르죠."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언뜻 보기에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달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 이유라는 게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를 각개전투에 나서게 만들었던 건, 오히려 우리들의 편협한 생각들은 아니었을까. 무한한 가능성을 막아섰던 건 결국 우리가 만들어냈던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마음의 여유 한 점 없이 사건 구조에 쫓기는 이런 구조가 너무 싫습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한 욕망이나 낙오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다는 보람으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사건을 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들여다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전체판사회의는 열리지 못했지만, 박차오름과 임바른의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박차오름의 가슴 따뜻한 연설은 부장 판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동료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서로 간에 쌓여있던 불신과 오해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순간이었다. 또, 보수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법원이라는 철옹성에 균열을 냈다. 그 자그마한 틈새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변화들의 전조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JTBC <미스 함무라비>를 두고 '신파'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신파가 주는 울림이 반가울 때가 있는 법이다. 또, 지나치게 '판타지'스럽다고 말하지만, 이는 법원이라는 조직의 변화를 바라는 의지의 반영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스 함무라비>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판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되지 않는가. 법원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판사가 아니라, 딱딱한 서류와 과거의 판례에만 의존하는 판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는 판사가 우리 곁에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가. 그래서 박차오름과 임바른이라는 '계란'들의 도전을 더 응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판사회의가 열리지 못했던 <미스 함무라비>와는 달리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을 비롯한 7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하던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을 미끼 삼아 거래를 하고,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뒷조사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혹은 수치심이라고 할까. 헌법에 규정된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103조)을 침해한 만행에 판사들이 들고 있어선 것이다.


<미스 함무라비>를 두고 신파니 판타지니 말을 하지만, 오히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다이내믹할 때가 많다. 분명 '정의'라는 이름은 살아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향해 손을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자. 설령 당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박차오름의 말처럼 웃으면서 철수하자.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