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을 위한 스케치가 끝났다.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주제도 선명하고, 이를 위한 소재들이 적재적소에 잘 배치됐다. 1, 2회 만에 속전속결로 완성했다.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밑그림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채색이다. 색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이 그림의 미래가 결정된다. 깜짝 놀랄 만한 명작이 될 것인지, 흥미로웠지만 평범한 그림이 될 것인가. JTBC 금토 드라마 <스케치: 내일을 그리는 손(이하 <스케치>)> 말이다. 


<스케치>는 경찰이 등장하는 범죄 수사물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굉장히 식상하다. 그동안 워낙 많은 수사물이 방영됐으니까. 웬만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런데 ‘정해진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이 추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드라마에는 미래를 보는 두 명의 예지자가 등장한다. 미래를 그리는 형사 유시현(이선빈)과 미래를 보는 미스터리한 인물 장태준(정진영)이다.


그들이 보는 미래는 ‘범죄’에 국한되는데, 시현의 경우 72시간 이내에 벌어질 사건을 본다. 그는 마치 무엇에 홀린듯 자신이 본 미래를 스케치한다. 그리고 그 그림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에 비해 태준의 정체는 아직 미궁 속에 있다. 사건의 일정한 장면만을 볼 수 있는 시현이 고도의 추리를 통해 겨우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면 태준의 예지력은 보다 정밀하고 정확하다. 가령, 범죄를 저지를 범인을 미리 알 수 있다. 



끔찍하게 잔혹한 범죄를 미리 알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옥을 사는 기분 아닐까. 처음에는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봤던 그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그 놀라움은 흥미를 동반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어떨까. 시현은 5살 때부터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 어떤 세계관이 생긴다고 한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은 왜 이토록 가혹한 능력을 준 것인가.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공교롭게도 시현과 태준은 똑같이 ‘인과율(因果律)’이라는 법칙을 체득하게 된다. 인과율이란 ‘어떤 상태(원인)에서 다른 상태(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법칙성’을 일컫는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선행하는 원인이 존재하고, 그 결과는 다시 어떤 상태의 원인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서 원인과 결과는 필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고, 톱니바퀴처럼 긴밀히 연결이 돼 있다는 것이다. 


똑같이 인과율을 믿고 있지만, 시현과 태준의 태도는 극명히 다르다. 두 사람은 미리 알게 된 범죄를 자신의 방식대로 막기에 이른다. 시현이 자신이 그린 스케치 속의 단서를 통해 피해자를 구하는데 주력한다면, 태준은 자신이 본 미래 속의 범죄자들을 찾아내 미리 처단하는 데 집중한다. 시현이 스스로 또 다른 원인이 돼 결과를 바꾸려 한다면, 태준은 결과가 생기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는 식이다. 



인과율을 주장하는 두 사람에게 조력자가 합류한다. 시현의 조력자는 강력계 형사 강동수(정지훈)이고, 태준을 돕게 되는 건 특전사 중사 김도진(이동건)이다. 두 사람은 공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충격적으로 그려졌다. 먼저 시현과 동수는 연쇄 성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시현의 스케치 속에 동수의 약혼자인 민지수(유다인) 검사가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연쇄 성범죄자인 서보현(김승훈)과 정일수(박두식)를 쫓던 시현과 동수는 첫 번째 검거 기회를 놓친다. 동수가 서보현를 쫓기보다 인질이 됐던 자신의 약혼자를 구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미래가 바뀐 걸까. 스케치는 실현되지 않는 걸까. 안타깝게도 섣부른 안심이었다. 약이 오른 서보현은 다시 지수를 납치하고, 정일수는 혼자 김도진의 아내 이수영(주민경)이 정일수에게 살해한다. 


아내를 잃은 도진은 분노하고, 자신에게 손을 내민 태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원인을 제거한다는 명분은 그에게 살인을 정당화시키고, 결국 서보현을 죽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도진을 막으려는 민지수 검사마저 희생된다. 결국 시현의 스케치는 실현되고 만 것이다. 한편, 일부분만을 제한적으로 보여주는 시현의 스케치는 불완전했고, 그에 근거한 얕은 추리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이는 스케치의 해석에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시현, 동수 vs. 태준, 도진, <스케치>는 인과율이라는 법칙을 두고 이를 달리 해석하는 양측의 대결을 본격화 했다. 대결의 선봉에 선 정지훈과 이동건의 연기는 안정적이었고, 새로운 얼굴인 이선빈의 연기도 신선했다. 1, 2회만으로 쫄깃한 구도를 완성한 <스케치>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인과율을 둘러싼 정의의 승자는 누가 될까. 3.254%, 3.682%(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도 상승세를 탈 수 있을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