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필수품을 확보하면 불필요한 것을 더 얻으려 애쓰지 말고 비천한 노동으로부터 한숨 돌리고 삶의 모험을 감행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에서 -


피실험자 A와 B가 각각 제주도의 외딴 숲 속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전기, 수도, 가스 등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누렸던 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다. 자가발전을 통해 동력을 얻어야 한다. 이른바 '오프 그리드'의 삶이다. 최소한의 필수품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과연 그들은 '미니멀 라이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언뜻 듣기에 다큐멘터리 같지만,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분명히 예능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할까. 연출을 맡은 이가 예능계의 '미다스의 손' 나영석 PD이고, 피실험자 A와 B가 소지섭과 박신혜다. 나 PD의 기획력에 한번 놀라고, 나 PD의 섭외력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오래된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나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 아무리 더불어 있기에 좋은 사람이라 해도 이내 지루해지고 싫증이 난다. 나는 홀로 있는 것을 즐긴다. 고독만큼 마음이 잘 통하는 벗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는 보통 집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에서 -


언뜻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떠오른다. 월든(Walden)의 호숫가 숲속에서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 동안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했던 철학자 말이다. 소로는 문명사회에 반대하고, 타인으로부터 강요받는 삶에서 벗어나길 꿈꿨다.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사회를 비판하고, 스스로를 통해 대안적인 삶이 가능하는 걸 증명했다. 


소로는 주위의 자연을 관찰하고, 교감을 나눔으로써 깊은 성찰을 얻었다. 또, 그로부터 경이로움을 느꼈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의 전환은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 나간다. 문명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은 더욱 자유롭고 풍유로워진다. '자발적 고립'을 통해 소로는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동시에 인간성을 지켜냈던 것이다.



"시청률 안 나와도 되니까 만들어도 된다고 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숲속의 작은 집>을 "심심한 프로그램"이라 소개하면서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내려놨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망할 거라 예상했던 <삼시세끼>가 대박을 터뜨렸고, 별다른 웃음 포인트가 없었던 <윤식당>이 무려 15.986%(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던 전례를 떠올려보라. 나 PD는 '금요일 저녁'에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연출자다.


일주일의 고된 노동으로 온몸이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힐링'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식'이리라. 그건 시끌벅적한 예능인들의 수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동물,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뭔가를 하기보다 뭔가를 하지 않는 데 초점을 둔 <숲속의 작은 집>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베르겐~오슬로행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7시간 동안 방송했다. 편집은 물론, 성우의 내레이션도 없고, 자막조차 없었다. 이른바 '슬로 티비', 누가 이런 걸 보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이 '심심한' 방송은 2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경이로운 기록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나 PD는 <숲속의 작은 집>을 두고 심심할 것이라 겸손해 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현대인들의 심리를 가장 적확하게 꿰뚫고 있는 연출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있는 나영석 PD이기에 가능한 기획이다. 그의 진화가 놀라우면서도 반갑다. 나영석식 '슬로 티비'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썸만 타며 애태우는 청춘남녀들을 위해 친절히 동거의 기회를 선물했던 채널A <하트시그널2>에 이어 이번에는 ‘맞선 전문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름하야 tvN <선다방>이다. 제목에서부터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소개팅도 아니고, 미팅도 아니고, (맞)선이라니! 게다가 카페가 아니라 다방이라니!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가볍지 않은 만남, 진지한 관계 맺기. 그런데 과연 잘 될까? 


분명 방송가는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열었던 SBS <짝>(2011-2014)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 듯 하다. 하긴 최고 시청률 11.3%를 찍었을 만큼 큰 관심을 받았고, 엄청난 화제성으로 포털 사이트 연예면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프로그램이 아닌가. 점차 출연자들의 스펙만을 강조하고, 급기야 촬영 도중 자살이 발생하는 등 많은 논란 끝에 폐지됐지만, 최고 시청률이 0.7%에 불과했던 <하트시그널2>에겐 감히 넘볼 상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수요는 존재한다. 사실상 <짝>과 다른 없었던 SBS <로맨스 패키지>는 4.3%를 기록했고, 파일럿에서 정규 편성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연애세포가 깨어나는 봄을 맞아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일까? 그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발을 내디딘 <선다방>은 자신만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좋은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선다방>은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일까? 구성은 단순하다. '선다방'이라는 공간에 일반인 출연자(출연은 신청을 통해, 그리고 제작진의 선별과 매칭이 의해 이뤄진다)가 방문하고, 이들은 그야말로 맞선을 보게 된다. 여기에 MC들로 구성된 '카페지기(보다 '다방지기'라고 해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닐까?)'가 열과 성을 다해 맞선이 성사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연애 노하우를 늘어놓는다. 


제작진은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유인나, 이적, 양세형, 아이돌 'SF9'의 로운까지. 무엇보다 유인나를 섭외한 건 흥미로웠다. 새롭고 참신하면서도 '맞선'이라는 콘셉트에 달달함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유인나는 적격이었다. 약 4년 반 동안 KBS 쿨FM <볼륨을 높여요>의 DJ로 활약했던 '유디' 유인나는 소통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또, 달콤한 목소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능력은 발군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첫 방송 시청률은 1.6%에 그쳤다. 반전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애석하지만 이 글도 많이 읽히지 않고 사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만큼 <선다방>의 화제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유인나를 활용한 마케팅의 효력도 사그라들었다. 무엇보다 <선다방>을 어렵게 하는 건, 프로그램의 '매력 없음'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무색무취에 가깝다. 


우선, 카페지기가 주인공인지 맞선 출연자들이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4명이나 되는 연예인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좀더 단출한 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또, 카페지기들이 늘어놓는 대화들도 '맞선(혹은 연애)꿀팁'이라기엔 평이한 내용에 불과했다. 만담 수준이랄까. 출연자들이 어색하지 않게 중간중간 쿠키를 배달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도대체 카페지기가 왜 필요했던 걸까?



"선남선녀가 아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출연자로 등장할 것이다. 방송 지망과 홍보 목적은 철저히 배제했다" (최성윤 PD)


그나마 <선다방>의 미덕이라면 자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이 외모, 학력, 직업, 재산 등 외적인 부분들을 지나치게 강조해 눈살을 찌푸렸다면, <선다방>은 출연자들에게 상대방의 정보를 최소화해 전달하고 있다. 외적인 정보들이 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사람'과 '대화'에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또, 특별한 룰도 없을 뿐더러 제작진의 개입도 없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선다방>은 연애 프로그램의 고질적 병폐였던 방송 지망과 홍보 목적의 출연은 없었다. 그러나 미덕은 거기까지였다. 서사가 없는 출연자들의 단편적인 대화만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감을 이끌어내긴 어려워 보인다. 카페지기의 역할(엿듣기?)도 의문스럽고, 맞선을 생중계하는 것의 효용도 애매하기만 하다. 결국 남는 건 '200억대 재산가'와 같은 타이틀뿐이었다.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지?' <선다방>은 대답하지 못했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