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이미 밤이 찾아왔다. 걱정이 앞선다. 낯선 나라, 낯선 곳의 어둠은 두렵다. 캄캄함은 나를 감추기도 하지만, 타인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표정이 없는 얼굴은 공포다. 그래도 다행이다. 도우루 강변, 포르투의 히베리아 광장은 빛으로 가득하다. 이제야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때부터 그들은 경계해야 할 타인이 아니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감의 대상이다. 그들은 청자다. 


"가사가 한국어든 영어든 포르투갈어이든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정답이다. 동양인 네 명이 대뜸 노래를 불렀을 때, 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던 자우림의 김윤아에게 대답이 됐을까. 외국에 나가서 우리의 노래가 통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냐며 구시렁대던 사람들에게 대답이 됐을까. 물론 가사는 노래의 중요한 부분이고, 음악을 빛내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소리'는 '언어'를 뛰어넘는다. 거기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굳이 말해 무엇하랴.


김윤아는 'Fly me to the moon'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신비로운 목소리는 지나가던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로이킴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Gravity'를 불렀다. 아니, 읊었다고 해야 할까. 행인은 관객이 됐다. 자우림의 이선규은 기타로, 윤건은 건반으로 음악적 소통에 참여했다. 그렇다. 버스킹이 다시 시작됐다. JTBC <비긴어게인>이 시즌2(이하 <비긴어게인2>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기본 콘셉트만 그대로 안은 채 사실상 모든 게 달라졌다. 우선, 멤버들이 바뀌었다. 게다가 2팀으로 구성돼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편의상 A팀, B팀으로 구분해 보자.) A팀은 자우림의 김윤아 · 이선규, 윤건, 로이킴으로 라인업이 짜여졌는데, 언뜻 <비긴어게인1>이 연상되는 조합이다. B팀은 박정현, 하림, 헨리, 악동뮤지션의 이수현이 포함됐다. 


방송 시간대도 옮겼다. <비긴어게인1>이 다시 늦은 시각(일요일 10시 30분)에 방송됐다면, <비긴어게인2>는 금요일 오후 9시다. 경쟁이 훨씬 치열한, 그렇지만 보다 다양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JTBC가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시청률은 4.449%(닐슨 코리아 기준)로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비긴어게인1>의 1회 시청률(5.097%), 종영 시청률(4.541%)보다는 낮지만, 시청자 반응은 더 뜨거운 편이다.



김윤아의 존재감은 이소라의 그것에 필적한다. 버스킹이라는 무대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김윤아의 목소리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실내에서 듣기 적합했다면, 김윤아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해 거리에서도 쩌렁쩌렁 울린다. 또, 소리가 쉽게 퍼지지 않고, 힘을 받은 상태로 곧게 전달되기 때문에 감미로운 노래를 부를 때도 청자들의 귀에 쉽게 가닿는다.


<비긴어게인1>에서는 3명의 뮤지션과 1명의 예능인의 구성으로 '예능적 재미'에 무게를 뒀다면, <비긴어게인2>에서는 4명 모두 뮤지션으로 음악적 부담이 분산됐다. 가령, <비긴어게인1>에서 윤도현에게 기타 연주의 부담까지 가중됐다면, <비긴어게인2>에서는 자우림의 이선규가 합류하면서 말끔히 해결됐다. 로이킴(기타)과 윤건(건반)은 각자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 완성도는 확실히 높아졌다.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보다 충실해졌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굳이 예능인을 투입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예능적 재미'는 발견되기 마련이다. 이선규의 엉뚱함이나 로이킴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 <비긴어게인2>는 시즌1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충분히 고민하고 보완했다. 이래서 시즌제가 옳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을 잃었어요. 아주 비극적인 사고였죠. 그때 우리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그들을 위해 노래를 만드는 것 뿐이었어요."


<비긴어게인2> 첫 방송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가장 숨죽이게 만들었던 장면은 김윤아가 자신의 자작곡인 '강'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가사의 뜻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김윤아는 간단히 노래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 노래를 들은 외국인들은 비록 가사의 뜻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김윤아의 진심을 소리를 통해 건네 받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기능과 역할이 아닐까. '낯섦'을 연결하고, 그 간격을 좁히고, 그리하여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 말이다. 그것을 "낯선 데 가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노래하"고 싶다던 김윤아가 보여줬다. 김윤아의 '나'가 '우리'에게 전해지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됐다. 또, 그의 '나'가 외딴 곳에 홀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우리를 든든히 지탱하는 존재였음을.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흐르는 그 강을 따라서 가면

너에게 닿을까

언젠가는 너에게 닿을까


그리움은 바람이 되어서

가슴 안을 한없이 떠도네

너의 이름을 부르며 강은 흐르네

다시 돌아오지 못한 곳으로

누가 너의 손을 잡아 줄까


- 김윤아, '강'의 가사 중에서 -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인물 관계도가 급하게 수정됐다. '애정'을 뜻하는 빨간색이 몽땅 사라졌다. 논란의 남녀 주인공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아이유/이지은)의 것만 지우기 민망했을까. 도준영(김영민)과 강윤희(이지아), 박기훈(송새벽)과 최유라(나라)의 관계에서도 빨간색이 사라졌다. 그래서 놀랍게도 tvN <나의 아저씨>에는 (적어도 관계도에서 만큼은) 애정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나의 아저씨> 제작진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설정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솔직하게 들리진 않는다. 정확히는 '사랑은 나누는 설정이었는데 이젠 아닙니다'라고 해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애시당초 그럴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면, 인물 관계도에서 그들 사이를 빨간색으로 엮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뒤늦게 없앨 까닭은 또 무엇인가.


관형격 조사 '의'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지만,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에서 '의'가 '선행하는 체언이 사물에 대한 소유의 주체임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쉽게 말하면 '아저씨는 내 거야'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애정 관계, 즉 멜로가 잔뜩 깔려 있다. 차라리 제목이 '나와 아저씨'였다면 '서로의 삶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는 제작진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동생아, 난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부럽다. 대기업 부장, 아침에 일어나 갈 데가 있는 놈. 그런데 그곳엔 자길 사모하는 어린 여직원도 있고. 내가 다 눈물나게 설레서 아침부터 눈이 일찍 떠졌다."


첫째 형 상훈(박호산)을 보라. 그는 끊임없이 '영포티(Young Forty)'의 판타지를 상기시킨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안정을 손에 얻은 중년 남성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어린 여직원'과 사귈 수도 있다는 '아재'들의 환상을 말이다. 최대한 선의를 발휘해서 <나의 아저씨>에서 멜로가 없(어졌)다고 믿어보자. 유력한 용의자인 박동훈이 계속해서 지안을 애 취급하며 부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마냥 신뢰하긴 어렵다. 박동훈은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이라 여태 사고 안 친 거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모른 거야.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인지 아닌지."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나의 아저씨>는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기습 키스를 시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제 분명해졌다. 45세 박동훈에게 21세 이지안의 존재는 명백한 '유혹'이다. 



워낙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터라 <나의 아저씨>가 드러내 놓고 두 주인공을 멜로로 엮는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어떻게든 동훈과 지안의 관계를 '사람 대 사람'으로 이끌어 가려 애쓸 테고, 그들을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처럼 포장해 낼 것이다. 마음씨 넉넉한 어떤 칼럼리스트(정덕현)가 이 음흉한 드라마를 '어쩌다 현실의 양 끝에 서게 된 중년 세대와 청춘 세대의 생존스릴러'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이미 중년 세대의 힐링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끊임없이 아저씨들의 시선에서, 아저씨들의 처지를 '변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처량한 존재로 그려내고, 이해받아야 할 존재들로 표현한다. 또, 그 아저씨들은 어쩜 그리도 착하고 선량한지. 마치 평소에 아저씨들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해했던 우리들의 속좁음을 꾸짖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청춘 세대를 중년 세대를 위한 힐링 도구로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의 아저씨>는 동훈과 지안의 관계를 '약자들의 연대'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억압하는 '시스템'과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를 지우고, '계급'을 덮어 씌운다고 할까. 그런데 '우린 다 똑같은 처지야'라는 그 얼버무림은 '여성'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계급을 말살시킨다.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45세 남성 박동훈과 21세 여성 이지안이 서로의 삶을 치유해야 한단 말인가. SBS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 두 중년 남녀의 관계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지 않은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 관계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칼럼리스트 이승한의 '니 아저씨 너나 귀엽지'라는 일갈만 자꾸 떠오른다. 


모르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최악이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나의 아저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회 시청률은 3.373%로 2회(4.133%)에 비해 꽤나 많이 떨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성공을 바라는 아이유의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나의 아저씨>라는 시대착오적인 드라마가 보여주는 기만을 받아주기엔 우리 사회가 많이 진일보했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홍셰프' 홍석천은 프로페셔널했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배치하는 기본적인 스킬부터 제대로 였다. 음식 조리는 (당연히) 능숙했고, 맛도 (물론)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진지했고, 집요했다.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수없이 연습했다. 그가 누구인가. 이미 10여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오너이자 셰프가 아니던가. tvN <현지에서 먹힐까?>의 'the most' 요리사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태원에 있는 홍석천의 음식점을 찾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요리 솜씨는 방송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 감각적인 요리를 선보이며 셰프로서의 능력을 뽐냈다. 또, tvN <윤식당> 시즌1과 2에 등장해 조리법을 전수했고, 메뉴 개발에도 힘을 보탰다. <윤식당>의 성공에는 홍석천의 지분이 꽤 된다. 이처럼 요리 솜씨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적 수완이나 센스도 뛰어났다. 지금이야 태국 음식이 굉장히 익숙해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팟타이, 완탕 같은 요리들은 생소했다. 홍석천은 그때부터 태국 음식의 가능성을 예측했었다. 그리고 10년을 홀로 살아 남았다. 단순히 '연예인 버프'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다수의 실패를 경험했다지만(그래서 더욱 대단하다), 홍석천은 요식업계에서 성공한 전문가가 틀림없다. 


이쯤되면 '현지에서 현지인을 위한 현지 맞춤형 장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홍석천을 필두로 '신화'의 이민우, 여진구가 합류했다. 둘째 이민우는 tvN <삼시세끼>에서 수준급 요리 실력을 선보인 적 있는 만큼 주방 보조로 부족함이 없었다. 막내 여진구는 성실함과 허당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능에 생소한, 그러나 호감형의 배우가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줄 전망이다. <윤식당>의 박서준이 그랬던 것처럼. 



일각에서는 <윤식당>과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윤식당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엔터미디어>, '현지에서 먹힐까', 이럴 거면 차라리 '홍식당'이라고 하지)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홍식당'이라고 하지' 그랬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외국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외국인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는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먹힐까?>를 보면서 <윤식당>을 떠올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시청자들은 '유사성'을 떠올리기보다 '차별화'에 주목했다. <윤식당>이 아마추어들의 어수선함과 휴양지가 주는 힐링을 조합해 자영업의 판타지를 보여줬다면, <현지에서 먹힐까?>는 철저히 전문성을 강조한다. 어설프지 않아 시원시원하고, 더 이상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판타지도 없다. 



<윤식당>이 (의도치 않게) 한식의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현지에서 먹힐까?>는 현지 음식으로 승부를 본다. 어쩌면 '음식'이 아니라 '요리사'에 좀더 비중이 부여된 셈이다. 또, 영업을 하는 공간이 식당이 아니라 '푸드 트럭'이라는 점도 다르다. <윤식당>이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 반복의 지루함을 줬다면, <현지에서 먹힐까?>는 이동성을 활용해 현지의 구석구석을 훑을 수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현지에서 먹힐까?>는 일회적인 방송이 아니다. '현지'는 일본, 중국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유럽의 어느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진 기획으로 보인다. 첫회이기 때문에 <윤식당>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앞으로는 <현지에서 먹힐까?>만의 매력이 보다 도드라질 것으로 보인다. 설령 그 뿌리가 <윤식당>이라 할지라도 이런 식의 변주는 언제든 환영이다.


홍석천의 요리가 현지에서 먹힐지도 궁금하지만, 역시 <현지에서 먹힐까?>가 국내의 시청자들에게도 먹힐지가 궁금하다. tvN의 화요일을 할당받은 이우형 PD가 <신혼일기>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비록 1회 시청률은 1.853%로 조촐했지만, 프로그램의 짜임새와 홍석천과 이민우, 여진구의 케미도 좋아 보여 앞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묵언 수행을 하기 위해 월정사를 찾았던 조세호는 스님에게 질문했다. "당장 눈앞에 헤어짐이 있는데요. 다시 만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야 좋을까요?" 스님은 '지금(현실)에 충실히라'는 조언을 건넨다. 김태호 PD는 조세호에서 "만약 기다리던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유재석은 "다음 주에 또 마지막 인사를 멤버들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방송을 마무리 짓는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소름이 확 끼쳤다. 뉴스를 통해서 숱하게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왠지 거짓말 같았다.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4월 1일 만우절이 되면 익살스럽게 '힝, 속았지?'라며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MBC <무한도전>의 종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주면 2006년 5월 6일부터 시작된 13년 역사가 마무리 된다. (<무모한도전>부터라고 하면 2005년 4월 23일부터다.)



"(종영하는 것이 맞다면)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너무나 큰 웃음을 주셔서 정말 고생하셨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소지섭)


"<무한도전>을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무조건 그분들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노홍철)


여러가지 감정들이 교차한다. 우선, (소지섭이 그랬던 것처럼)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무한도전>이 줬던 웃음, 눈물, 위로, 응원은 정말이지 무한히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또, (노홍철의 진심처럼) <무한도전>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물론 이렇게 쿨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다. 그런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왜냐하면 <무한도전>과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시즌제'다. 2015년 11월 25일 김태호 PD는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무한도전>이 토요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2009년까지 웬만한 건 다 했다. (TV)플랫폼 밖으로의 도전이 필요했던 상황인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한도전>이 시즌제가 되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분명 <무한도전>은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힘겨운 여정이었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매주 70~90분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진정한 '극한직업'은 <무한도전>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버텼지만, 2016년 연말 <무한도전> 제작진은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열심히 고민해도 시간을 빚진 것 같고.. 쫓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고.. 택시할증시간 끝날 쯤 상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회의실 가족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준다면.. 한 달의 점검기간과 두 달의 준비기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에라모르겠다 #방송국놈들아 #우리도살자 #이러다뭔일나겠다


나영석 PD가 tvN에서 '시즌제'를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작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김태호 PD는 계속해서 착취를 당했다. 시즌제를 요구했던 김 PD의 바람은 계속해서 묵살 당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돈 때문이었다. <무한도전>아 앞뒤로 붙는 15초짜리 광고 한 편의 단가가 1,320만 원(2012년 이전에는 편당 1126만 5000원 수준)이라고 한다. 40편 가량의 광고가 붙으니, 회당 광고 수익만 5억 2800만원이다. 


<무한도전>의 가치를 광고 수익만으로 한정지을 순 없을 텐데, 어찌됐든 MBC 입장(정확히는 고위직)에서 <무한도전>은 단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이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황금알을 쉬지도 않고 생산하는 거위 말이다. 정작 제작진들은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이 한심한 윗분들은 가볍게 외면했다. 아마도 '짜내면 나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2년 파업 당시 이상로 MBC 공공노조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추천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이 됐다)이라는 사람은 "김태호 PD에게 (파업으로 인한 손해) 20억 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러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MBC의 저급한 욕망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그 한심함이 <무한도전>을 괴롭혔고 망쳤다. 


이제 <무한도전>은 멈춰선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고쳐야 할 곳을 고치지 못한 채 달려 왔다. 자체적으로 기름칠을 하며 간신히 버텨 왔다. 멈춰보니 부서진 곳 투성이다. 영광의 상처라고'만' 하기 미안하다. 김태호 PD는 "새 프로그램을 고민할 기회를 13년 만에 얻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의 고민이 어떤 결론으로 귀결될진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되든 간에 과거의 MBC를 용서하긴 힘들 것 같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misty : ① 안개 낀 ② 안개가 자욱한 ③ 어렴풋한


(기대했던) 반전은 없었다. 드라마가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진범을 가리고 있던 안개는 서서히 걷혀 나갔다. 케빈 리(이재영)를 살해한 범인으로 강태욱(지진희)이 유력해졌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 결과를 원하지 않았다. 제3의 인물이 등장하길 바랐다. '사건 현장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거야!' 설령 그 전개에 논리적 결함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모완일 작가는 고집스럽게 비극을 선택했다. 


제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걸까. 안개는 더욱 자욱해졌다. 뭔가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았던 마지막 회는 당혹 그 자체였다. 세계를 제패한 골프 선수답게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했던 케빈 리는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허탈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강태욱은 살인범이 됐다. 아무리 검사 출신 변호사라 하더라도 완전범죄를 꾸미는 건 힘든 일일텐데, 강태욱은 너무도 쉽게 그 일을 해낸다. 


하긴 <미스티> 속의 경찰은 무능 그 자체니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이야!'라며 신묘한 촉을 보여줬던 강기준 형사(안내상)는 끝까지 심증으로 일관했다. 그가 들이민 것은 증거가 아니라 추측뿐이이었고, 매일같이 수사가 아니라 소설을 쓰느라 바빴다. 정기찬 사무장(이준혁)의 "그럼 좀 똑바로 좀 하세요!"라는 고함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언제나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을 펴보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어. 어쩌면 우리는 잡히지도 않는 걸 잡기 위해 미친듯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정작 화가 났던 이유는 따로 있다. <미스티>가 고혜란을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 헛된 힘을 쏟았던 욕망 덩어리로 결론지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 고혜란을 둘러싸고 있던 3명의 남자들을 끝내 파국 속으로 몰아 넣었다. 고혜란을 욕망했던, 그러면서도 고혜란을 믿지 못했던 케빈 리(이재영), 하명우(임태경), 강태욱(지진희)은 각각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결말이 불만스러운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고혜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 때문이다. 우리는 고혜란의 삶에 완전히 이입된 상태였고, 그래서 그가 부디 행복해지길 기대했다. 그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강태욱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한편, 고혜란이 품었던 사회적 욕망, 그 성공을 누리는 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었으리라. 경쾌한 구둣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그런데 고혜란은 무너져 내렸다. "행복하세요?" '고혜란의 인터뷰' 촬영장에서 느닷없는 방청객의 질문. 고혜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강태욱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행복하니?" 고혜란은 그 지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삶을 반추한다. 그 깨달음은 고혜란의 성장을 보여줬지만, 고혜란이라는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고, 그에게 자신을 투영했던 수많은 시청자들의 희망을 산산조각냈다. 



'도대체 왜 고혜란은 행복해질 수 없는 건데? 왜 고혜란은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건데?' 이렇게 따지고 싶었다. 설령 그의 방식이 완전무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한된 조건 하에서 그가 추구했던 삶의 방식을 어찌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고혜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또, 누가 과연 그의 욕망을 쉽사리 재단(裁斷)할 수 있겠는가. 


한 권의 헛똑똑한 도덕책을 읽은 느낌이다. <미스티>는 말한다.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네 삶은 결코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그 과정은 안갯속을 헤메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말한다. 고혜란이 자욱한 안갯속을 헤치며 당당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어쩌면, 고혜란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고 말이다. 역대급 여성 캐릭터를 바닥에 주저앉힌 <미스티>의 선택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미스티>는 3.473%(닐슨 코리아 기준)로 시작해 마지막 회에서 8.452%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카리스마와 고혹미를 발휘하며 최고의 열연을 펼친 김남주와 또 한번 멜로 장인으로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킨 지진희는 빛났지만, 그들의 연기가 더욱 돋보일 수 있었던 기회가 안갯속에 갇혀버린 듯 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홍일점(紅一點). 현재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사실상 유일한 방식이다. 달리 표현하면 여성들은 홍일점이 되지 않고서는 예능에 출연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좀더 현실적인 언어로 말해볼까. 홍일점은 생존 방식이 돼 버렸다. 그것말고는 살아남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꽃병풍이 돼야 하고,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 그리고 남성 고정 출연자를 위해 애교를 부려야 한다. 


홍일점은 '많은 남자들 틈에 하나뿐인 여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만큼 예능계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를 '남탕 예능'이라 불러보자. 그 예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MBC <무한도전>, JTBC <아는 형님>, MBC <라디오 스타>, SBS <집사부일체>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부분의 예능이 해당되니 말이다. 이렇듯 '남탕 예능'이 주류를 넘어 전부가 된 시점에서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는 좁아들다 못해 없어져 버렸다.


KBS2 <해피 투게더>의 엄현경처럼 '홍일점(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박미선처럼 하차하게 된다.)'이 되거나 SBS <불타는 청춘>처럼 남성들과 함께 짝을 이뤄 출연해야 한다. 과거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JTBC <님과 함께>가 그랬던 것처럼. 또는 SBS <싱글 와이프>처럼 남편들의 관찰 대상이 돼야만 한다. 철저히 성 역할 편견에 의해 소비되고, 그럴수록 기존의 성 역할 편견은 고정되며 강화된다.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On Style <뜨거운 사이다>는 4개월 동안 여성들의 시각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다뤘다. <뜨거운 사이다>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해갈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기회가 없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에겐 말할 수 있는 장이 생겼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던 이들에겐 반가운 소통의 창구였다. 종영 방송에서 김숙은 "고민이 깊어지면서 불편함을 알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듯 <뜨거운 사이다>는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지만, 저열한 비난의 타깃이 돼야 했다. 능력있는 여성 예능인들이 사라져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똑똑한 여성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예쁘게 미소를 짓고, 물개 박수를 치며 웃거나, 애교를 부리는 것만이 허용된다.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면 벼랑 끝이다. 과거 <라디오 스타>에서 애교를 거부하고 눈물을 흘린 카라의 강지영이 뭇매를 맞았던 것처럼.


자, 상황이 이렇다. 생산자와 (일부) 소비자가 담합한 구조적 문제다. 좀더 쉽게 방송을 만들기 위해, 당장의 실적을 내기 위해 예능계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남성 중심의 방송들을 꾸려 왔다. '남탕'을 재탕, 삼탕 해왔다. 시청자들의 선호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남성을 중심으로 한 예능이 잘 나가는 건 사실이다. 인기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또, 남성에 보다 관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 역시 분명하다.

FNC엔터테인먼트


일각에서는 '여자들이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 '능력있는 여성 예능인이 없어서 그렇다'며 여성의 문제 혹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시켜 나간다. 더 나아가 이 구조적인 문제를 여성 예능인이 좀더 노력하면 될 일로 몰아간다. 그 예로 요즘 대세로 자리잡은 송은이를 들기도 한다. 송은이처럼 웃기면 방송 출연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니냐며 반문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송은이가 일궈낸 성과는 위대하기까지 하다. 또, 그는 여성 예능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처럼 보인다. 그는 2015년 4월 팟캐스트라는 음지로 들어가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비밀보장>은 방송 초기에 누적 다운로드 수가 1,700만 회에 이르렀고, 전체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송은이와 김숙은 그 기세를 몰아 SBS 라디오 러브FM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를 맡게 됐다.


송은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016년 2월 유튜브에 '비보TV'를 개국해 본격적으로 기획자로서 나섰다. 새롭게 판을 짠 것이다. 송은이는 '짠돌이' 김생민을 발굴했고, '가모장' 캐릭터를 앞세운 김숙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런가 하면 김신영,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와 함께 걸그룹 '셀럽파이브'를 결성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송은이는 대세로 자리잡았고, 그가 손을 대면 대박이 터진다는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빅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송은이가 '밖'으로 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왜 TV 예능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통해 재기를 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 '남탕 예능' 때문이었다.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활로를 찾아야 했고, 그 절박했던 도전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일이 없어지니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적성검사를 했다"는 송은이의 말은 가볍게 들을 농담이 아니다.


상황이 쉽사리 바뀔 것 같진 않다. 여전히 여성을 '홍일점'으로 소비하는 패턴은 유지될 것이다. 여성 출연자에게 애교를 강요하는 성 역할 편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송은이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그런데 구조적인 문제를 남겨둔 채, 한 명의 뛰어난 기획자 송은이에게 모든 걸 기대는 게 정답일까? 비주류에서 출발해 주류를 전복시키는 송은이의 행보가 유쾌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건 그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 예능, 여성 예능인을 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지나치게 야박하다. 그들의 능력을 말하기 전에, 그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했는지를 돌아보자. 실패는 남성 예능, 남성 예능인들이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송은이를 희망으로 만들지, 아니면 돌연변이로 만들지는 송은이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회사에서 잡무를 하고, 퇴근 후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남은 음식은 비닐봉투에 싸서 집으로 가져 왔다. 회사에서 몰래 슬쩍한 믹스 커피를 타서 뒤늦은 저녁을 먹었다.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사채까지 빌려썼다.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의 병원비를 내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병원의 감시가 소홀한 틈에 할머니를 침대째 옮겨 왔다. 버거운 삶은 그를 고립시켰고, 그래서 지안(아이유/이지은)에게선 한기(寒氣)가 가득하다. 처절한 삶이다. 


큰형 상훈(박호산)은 오래 몸 담았던 회사에서 잘렸다. 장사를 시작했지만, 여러 번 말아 먹었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동생 기훈(송새벽)은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데뷔는커녕 별볼일 없는 처지다. 불쌍한 삼형제의 둘째인 동훈(이선균)은 번듯한 회사의 부장자리까지 올라가 가족의 자랑이 됐다. 그래서 형제들의 뒤치다꺼리는 그의 몫이다. 늘 욕망보다 양심을 선택했던 그였지만, 뇌물의 유혹 앞에 무너져 내렸다. 씁쓸한 삶이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지안과 동훈은 악연으로 엮였다. 배달사고로 동훈에게 뇌물이 잘못 전달됐고, 동훈이 챙겨둔 상품권을 지안이 훔쳐간 것이다. 결국 상훈은 감사에 걸려 끌려가게 되고, 지안은 그런 상훈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처절한 삶을 견뎌가는 지안과 씁쓸한 삶을 버텨가는 상훈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그것은 치유일까. 



tvN <나의 아저씨>는 방영하기 전부터 뜨거웠던 드라마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의 이름값도 그 온도를 끌어올렸지만, 역시 두 배우의 '나이 차이'가 8할 이상의 몫을 했다. 무려 18살 차이였다. 드라마 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로맨스라니!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아무리 봐도 좀 과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 나이 차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 : 나이에 비해 젊게 살고 싶어 하는 40대를 뜻하는 신조어)가 '아재', '개저씨'라는 놀림 가득한 별명을 몰아내고 40대 남성들을 구원했다. 경제력을 갖추고, 안정적인 삶을 구축한 40대 남성들에게 '영포티'라는 산뜻한 이름은 자신감을 부여했다. 젊게 사는 그들은 어린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꿨고, 자신들의 욕망과 판타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의 아저씨>는 그러한 끈적한 기반 위에서 출발한 드라마였다.


그런가 하면 오달수 후폭풍도 있었다. 오달수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후 성폭력 사실을 부인하며 버티다가 뒤늦게 사실을 인정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오달수가 맡았던 상훈 역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박호산이 투입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이처럼 <나의 아저씨>는 출발 전부터 상당히 시끄러웠다. 


지난 22일 방송된 1회(시청률 3.923%, 닐슨코리아 기준)에선 전반적으로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됐는데, 캐릭터들이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드라마가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간간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삼 형제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지안이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하는 장면 등)이 섞여 있었지만, 우울하고 다크한 공기에 질식감이 들었다. 다만,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답게 연출만큼은 합격점을 줄 만 했다.



"40대를 넘어선 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마치 한물간 사람, 트렌드에 뒤처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분위기가 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아저씨>의 박호식 CP 


<나의 아저씨>는 '아저씨'를 위한 드라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 소개는 또 어떠한가.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고 한다. 좋다. 40대 남성의 기살리기도 좋고, 그들을 치유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왜 그걸 '20대 여성'에게서 얻어야 하는 걸까. 


드라마 소개에서는 (비겁하게) '여성'이라 얼버무리고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 '여성'은 40대도 아니고, 30대도 아니고, 20대이다. 게다가 지안 역을 맡은 아이유/이지은은 왜 그리도 작디작은 것일까. 왜 아저씨들의 삶을 치유하는 존재가 20대 여성이어야 하는 걸까. 어째서 아저씨들은 20대 여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치유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아저씨>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자.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은 채무 관계에 있는 지안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의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고, 그가 없는 집안에 침입하기도 한다. 광일이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끔찍하게도 지안을 괴롭히는 것이다. 급기야 지안을 향해 주먹질을 가하기도 한다. 복부, 얼굴 가리지 않고 때린다. <나의 아저씨>는 이 장면을 불필요하게 자세히 묘사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이라니,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좋아하니까 때릴 수 있다', '좋아하면 때려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을 은연중에 주입시킬 위험이 있다. 이미 tvN <또 오해영>에서 '데이트 폭력'에 해당하는 상황을 애정신으로 그려내 비판을 받았던 박해영 작가는 이번에도 논란의 캐릭터와 장면들을 드라마에 집어 넣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이해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렇듯 <나의 아저씨>는 '영포티'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나쁜 남자' 캐릭터를 재생산하는 데에도 일조할 듯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쁜 남자는 그냥 나쁜 남자일 뿐이다. 거기에서 예술을 찾고, 인간을 탐구한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만약 <나의 아저씨>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그건 당신이 이미 예술을 알고, 인간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