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에 '흥행'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1차(원)적인 지표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상업 영화'로서 얼마나 많은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는지는 가장 결정적인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대립군>은 '완전히' 실패했다. 현재(6월 7일)까지 누적 관객 수 74만 6,787명.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총 제작비가 110억 원을 넘는 대규모 영화가 얻은 성적이라기엔 너무 처참하다. 이대로라면 순익분기점인 '330만'까지는 까마득해도 너무 까마득하다.


혹시 '역주행'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같은 날(5월 31일) 개봉했던 <원더우먼>이 158만 7,731명을 동원하며 2배 이상 앞서 가고 있고, 한 주 앞서 개봉했던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도 271만 2,467명을 기록하며 <대립군>의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톰 크루즈를 앞세운 <미이라>의 공습은 결정타라 할 만 하다. <미이라>는 개봉 이틀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할리우드에서 불어닥친 태풍들이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밀린 건 치명적이다. <대립군>에 앞선 5월 25일 개봉했던 <노무현입니다>는 140만 5,529명의 눈시울을 적시며 기적의 역주행을 이뤄내고 있다. 이쯤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립군>의 정윤철 감독은 자신의 SNS에 "승자독식, 1등만 살아남는 사회는 정글이지 사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관객의 권리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라며 스크린 독점을 성토하는 글을 게시했지만, 그다지 공감을 얻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위한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듦새에 상투적인 느낌이 있긴 하지만, '누가 왕을 일깨우고, 나라를 세우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대립군>은 분명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가 분명하다. 제목 그대로 <대립군>은 '대립군(代立軍)'에 대한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남의 군역(軍役,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정남들에게 주어진 의무), 요즘으로 말하면 '국방의 의무'를 대신 치르던 대립군 말이다. 물론 법도에 어긋나는 행위다. 처음에는 '편법'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일부가 저지르던 '편법'이 차츰 성행하게 되고, 어느덧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단계에 이른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째서 '대립'이 통용되게 됐냐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 정부는 왜 이런 불법을 묵인했던가. 착취의 대상이었던 농민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요역(徭役)'이었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대가 없이' 정기 혹은 부정기적으로 백성의 노동력을 징발하는 수취체제의 하나였던 요역은 농사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농민들은 당연히 이를 기피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부족할 때, 가장 용이하게 '끌어' 쓸 수 있는 노동력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군대다. 국가는 자연스레 농민 대신에 군인을 각종 토목공사에 동원했다. 누군들 상관이 있었겠는가. 일만 시키면 그만인 것을. 그러나 군인도 차츰 요역 동원을 꺼리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사서 대역을 시키는 '대립'이 성행하게 된다. 누군들 상관이 없었던 조선 정부는 이 불법을 묵인했다. 15세기 내내 평화가 지속됐던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한 장정의 한 달의 대가가 면포로 3필이니, 1년의 대가는 거의 30여 필이나 됩니다. 대립을 하고서도 대가를 받지 못한 자는 증명서를 받아 가지고 가서 독촉하게 됩니다. 독촉을 받은 사람은 전토를 팔고 혹은 우마를 팔게 돼 몰락하게 됩니다. 직접 군에 가면 비용이 훨씬 줄어들 텐데 우선 한때의 편한 것만 생각하고 후일의 폐해를 염두하지 않고 대립을 시키는 것이 풍속이 됐는데 그 폐단을 금하기가 어렵습니다."


- <세종실록> -


군역과 요역의 혹독함을 외면한 채 '한때의 편한 것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백성이라 탓하는 저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보라. 불법적인 군역 면제는 더욱 성행하게 되고, 포를 받고 군역을 면재해 주는 방군수포(放軍收布)의 폐단이 발생하자 정부는 더 이상 배겨내지 못하고 아예 이를 합법적인 틀 안으로 수용한다. 그것이 바로 군적수포제(軍籍收布制)의 실시(중종 36년, 1541년)다. 관청의 군포 요구가 늘어나면서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갈수록 군대는 부실해지고, 임진왜란(1592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군사가 부족한 실정에 이른다.



한편, <대립군>은 '대립군(代立君)'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이 터지자 저 혼자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를 향해 떠난 임금 선조를 대신해서 임시 조정이라 할 수 있는 '분조(分朝)'를 이끌었던 세자 광해군 말이다.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 살았던 대립군(代立軍)들과 마찬가지로 광해군도 도망간 임금을 대신해 백성들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왜군을 교란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로 가 군량을 모으고 민심을 수습하는 공을 세웠다.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의 광해군을 '각성 이전'의 모습으로 그려 나간다. 궁궐에서 나고 자란 왕자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전쟁통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가마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궁녀들의 수발을 받으며 생활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이 바껴가는 촉매제는 대립군(代立軍) 토우의 자극이다. 산골짜기에서 가마를 밀어 떨어뜨리는 장면은 광해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광해군은 점차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기 시작한다. 


또, 전쟁의 포화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마주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뤄간다. 그 과정이 단기간에 속성으로 진행된다. 그만큼 '전쟁'이라는 건 극적인 상황이니 말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 춤을 추는 장면은 제법 감동적이기도 하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혹자들은 광해군과 대립군, 그리고 백성들 간의 '화해'가 지나치게 쉽게 그리고 뭉툭하게 그려졌다고 말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무능한 왕의 목을 베어버리지 못하고, 다시 조선 왕조를 받아들였던 그 당시 백성들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또, 왕에 대한 분노를 사그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광해군이 못내 밉기도 하다. 일찌감치 무너졌어야 할 조선 왕조가 지속돼 변화의 시류를 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으로 당시를 재단하는 건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결국 백성들의 선택은 (광해군과 함께) '조선'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고, 그건 오로지 자신의 터전과 삶,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선택이었지 '선조'를 위한 싸움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할 밖에. 그리하여 <대립군>에서 강조하는 '교룡기'는 매우 큰 울림을 준다. 


이처럼 대립군은 대립군(代立軍)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 대립군(代立君)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나' 스스로를 위해 싸우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대립군'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윤철 감독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로 살지 말고, '나'의 존재를 자각한 상태에서 싸워나가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대립군>을 보면서 얼마 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연상일 것이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놓인 나라를 구하는 건 언제나 '민중'이 아니었던가.


한편, 광해군 역을 맡은 여진구는 캐릭터의 성장 과정을 충실히 연기해 냈다. 또, 토우 역의 이정재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웠고, 곡수를 연기한 김무열의 연기도 단연 돋보인다. 이쯤에서 이상한(?) 변명을 하나 더 해보자. <대립군>이 흥행을 하지 못했던 '외부적인' 요인 말이다. 광해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역사 속 인물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는 이미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그 향수를 충분히 느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진짜 노무현이 영화로 등장한 게 아닌가. <노무현입니다>라고 하는 '진퉁'이 영화관에서 상영 되고 있는데, 굳이 그를 빗댄 혹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대립군>을 선택할 리가 있겠냐는 말이다.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위로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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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터덜터덜 지친 마음을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고동만(박서준)은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는다. 정말이지 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 없는 전화이기도 하다. "네,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동만은 또 한번 스스로를 낮춘다. 고개를 숙인다. 쪼그라든 그 마음이 슬프다. "너, 진짜 때려치우려고 이게 작정을 했나. 너 군대 어디 갔다 왔어?" 평소 폭언과 막말을 하며 군기잡기로 일관했던 직장 상사가 쏟아내는 저 악랄함에도 고동만은 다시 꾹 참는다. "진짜 잘 하겠습니다." 


먹고 살아야겠기에, 그것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한 생업이기에, 이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대우에도 한 명의 노동자는 그리 해야만 했다. 푸르른 색으로 피어나던 '꿈'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한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판다. "너 지금 어디야? 너 나하고 장난하냐? 너, 이게, 어디야, 인마!" 그러나 현실은, 그가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이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참지 못하게 만든다.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멈춰선 고동만의 귓가에 맴도는 말들.. 



"사람은 진짜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 하나 봐." (최애라)

"지금은 뭐가 행복하고? 뭐가 치열하기라도 하냐?" (황코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소꿉친구 최애라(김지원)는 백화점의 인포데스크에서 근무하게 됐지만, 임시로 사내 아나운서로 발탁되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고작 하루였음에도 애라가 느낀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컸다. (물론 애라는 점장인 형부의 빽으로 치고 들어온 다른 사원에게 자리를 빼앗겨야 했다.) 태권도 유망주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쳤던 황코치(김성오)는 끈질기게 고동만을 자극한다. 동생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고동만의 곁에서 10년 동안 머물며 그가 다시 꿈을 꾸도록 밀고 당긴다.


갑자기 울분이 쏟아진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한(恨)이 솟구친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래, 이렇게 게속 살아갈 수는 없다. 고동만은 뒤로 돌아선다. 걸어왔던 길을 다시 마주한다. 지금이면 늦지 않았다. 까짓거 좀 늦으면 어떠한가. 그는 전화기 속의 직장 상사에게 소리친다. 어쩌면 그건 끊임없이 자신을 속박해왔던 현실이라는 벽을 향해 내던진 외침이었고, 그 현실에 무릎 꿇은 채 꿈을 사장(死藏)시켜야 했던 비겁한 자신을 향해 폭발시킨 일갈이었다. 



"저 잘 못 할 거 같아요. 맨날 저한테 그 따위로밖에 못할 거면 관두라고 하시잖아요. 근데요, 저는 그 일이 신이 안 나서 그렇게밖에 못할 거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요! 저 그냥 그만 둘래요! 관둘게요! 관둘래요! 못 먹어도 고다!"


짠하다. 이 감정은 '측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못 먹어도 고!'라는 고동만의 외침은 우리가 그토록 내뱉고 싶었던 최후의 한마디가 아니던가. 입안에 맴돌던, 차마 던지지 못했던 최후의 한마디 말이다. 물론 고동만의 앞날이 무조건 '맑음'은 아닐 것이다. 패기 있게 격투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앙숙인 김탁수(김건우)의 꾐에 빠져 섣불리 격투기 데뷔전을 치르다가 KO패를 당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애라는 백화점 VIP의 갑질 횡포를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괜찮아, 무직이야'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잠시 놓아버렸던 꿈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신이 나는 순간, 그가 가장 빛나는 순간, 최애라가 오롯이 최애라일 수 있는 순간을 향해 달려가기로 한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서류 심사를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최애라가 걷는 그 길도 고동만의 것처럼 녹록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하는 모습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처럼 KBS2 <쌈, 마이웨이>의 주인공들은 언더독(Underdog) 신화를 쓰고 있다. 어려운 처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마이웨이'를 가고자 하는 고동만과 최애라의 도전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언더독'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그들을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가 거머쥔 성취다.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로 시작했던 <쌈, 마이웨이>는 경쟁작인 SBS <엽기적인 그녀>와 MBC <파수꾼>을 제치고 당당히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언더독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언더독에 성공했다고 할까. 제법 '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쌈, 마이웨이>는 결코 울적하다거나 침울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코믹한 뉘앙스를 유지할 뿐 아니라 그 분위기를 살려야 할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동만 · 최애라의 동창이자 '4인방'인 김주만(안재홍), 백설희(송하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쌈, 마이웨이>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들이 마침내, 결국, 활짝 웃게 되길 '청춘'의 이름으로 응원해본다.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고동만과 최애라를 위해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 


난 좋아하는 일을 해

예측할 수 없고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날 떨리게 만드는 일

불안한 마음마저

난 모험이라 생각해


- 웨일(Whale), Donkey(좋아하는 일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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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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