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화창한 날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비가 조금 내려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산을 가볍게 뒤집어버리는 강풍이 불어닥쳤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다. 부디 다음 날 아침에는 잠잠해지기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창가로 가 커튼부터 젖혔다. 물기를 머금은 자동차 바퀴소리가 불길했지만, 도로 위에 남아있는 빗물이길 바랐다. 


아, 이럴수가.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고집스러웠다.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만약 여행 일정에 여유가 (엄청) 많았다면, 인천 공항에서 사왔던 책을 들고 카페에 앉아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독서를 하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언제나 여행자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원래 계획에 있었던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도 흥미를 잃었다. 고작 1시간 거리에 있는 그곳의 날씨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이 빠졌다. 빈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위주로 일정을 짤 것인가, 비가 오더라도 브라티슬라바로 갈 것인가.. 순간 번뜩하고 제3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참에 아예 먼 곳으로 가볼까? 


부다페스트 역 내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비를 피할 수 있을 테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 날씨가 바뀌거나 이동하는 시간 동안 비구름이 사라질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기특하기도 하지. 당장 구글 지도를 보면서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다. 음, 음, 음.. 여기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 지나치게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그 곳. 3시간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다. 


부다페스트 역 외부 



"오길 정말 잘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던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여행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 부다페스트의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푸른 빛이 감도는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만들어 낸 풍경들이 경탄스러웠다. 놀라지 마시라. 하늘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예뻐졌다. 동유럽의 새파란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대견함은 뿌듯함으로 진화했고,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잠시 쾌적한 부다페스트 거리를 걷다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계획은 이랬다. 우선,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Donau, 독일 남부에서 시작된 이 강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에 이르고,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으로 이어진다)과 강변에 세워진 국회의사당 등 주변(페스트 지역) 풍경을 감상하고, '부다 왕궁(Budavári Palota)'에 올라 부다페스트의 전경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ösök Tere)'를 비롯해 도심을 전반적으로 둘러보고, 저녁 무렵 '아경'을 보기 위해 다시 '부다 왕궁'에 오르기로 했다. 동선으로 보면 중복이라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지만, 도나우 강과 그 주변의 풍경을 낮과 밤, 중복으로 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날씨가 좋았다. 또, 부다 왕궁의 낮과 밤도 궁금했다. 인공적인 빛이 발산하는 아름다움도 매력적이지만, '햇빛'이라는 천연 조명의 깊은 맛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국회의사당


Calvinist Church


2호선을 타고 Keleti pályadvar 역을 출발해 Batthyány tér 역까지 이동했다. 지상으로 나오자 입이 떡 벌어졌다.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빛났다. "이야, 진짜 오길 잘했다" 정말이지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강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걸으며 부다페스트의 낭만에 빠져들었다. 마냥 걷기만 해도 행복감이 솟구쳤다. 계획에 없던 즉흥성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자 쾌감은 더욱 커졌다. 


파리를 여행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트램(Tram)이 도심 외각에서만 운행을 하고 있어 굳이 탈 일이 없었다. 하지만 체코 · 드레스덴 · 빈에서는 그 활용도가 훨씬 커졌다. 부다페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버스는 노선이 복잡해 이용하기 어려운데, 트램은 훨씬 간단했다. 또, 애초부터 24시간 권(1,650 포린트 = 약 6,800원)을 끊어두었으니 대중교통을 마음껏 이용하기로 했다.

 


부다 왕궁으로 올라가는 트램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믿을 건 두 다리뿐,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19번과 41번 중 빨리 오는 트램을 타고 Batthyány tér 역과 부다 왕궁을 왕복했고, 다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Deák Ferenc tér 역까지 이동한 후 1호선으로 환승해 Hösök Tere 역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일들이 점차 익숙해는 게 느껴졌다. 여행지의 대중교통을 헤매지 않고, 제법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이랄까.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회쇠크 광장)은 헝가리의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인데, 그 좌우에 부다페스트 미술관과 또 다른 미술관인 뮈처르노크가 위치해 있다. 광장 중앙에 있는 코린트 양식(Corinthian order)의 기념비는 그 높이가 36m에 달하고, 헝가리 민족의 수호신인 천사 가브리엘이 날개를 편 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기념비 아래에 아르파드(Árpád, 845년 경-907년 경)를 비롯한 헝가리 민족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있고, 기념비 양 옆으로 헝가리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인물 14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욱한 중생이 헝가리의 역사를 어찌 알겠는가. 그저 푸르스름한 동상과 한없이 푸르른 하늘의 '깔맞춤'에 감탄을 한 후 서둘러 뒤편의 공원으로 이동할 밖에.


버이더후녀드 성






영어로 'City Park'라는 뜻의 시립 공원(Városliget)은 제법 규모가 컸다. 공원 내부에 동물원과 세체니 온천, 버이더후녀드 성(Vajdahunyad vára) 등이 있었고, 호수와 인공 분수 주변에는 휴식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시민들이 찾고, 많은 여행객들이 머무는 장소답게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왠지 모르게 동화 속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호수의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담뿍 맞으며 여유를 즐겼다.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았다. 지도를 보면서 다음 동선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우선,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가서 부다페스트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Corvin Mozi'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센터'에도 가보기로 하자. 








도심의 중앙부는 활력이 넘쳤다. '동유럽', 특히 '헝가리'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노후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패션 거리의 'C&A'라는 의류점 앞에서 만난 '브레이킹 댄스'는 헝가리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 놓았다. 그곳은 젊고, 힘차고, 에너지가 넘쳤다. 다만, 영화관은 생각보다 소박했는데, 예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어 멀티플렉스가 휩쓸기 전의 영화관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람쥐마냥 재빠르게 돌아다녔지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센터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입장 시간이 지난 뒤라 건물 밖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서야 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던가.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됐다. 부다페스트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를 만나러 갈 타이밍이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두 다리는 한껏 지쳐 있었지만,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녹초가 된 두 다리도 살려내는 법이다.


아래의 사진은 부다 왕궁에서 내려다 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이다. 이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보내는 아주 작은 선물이다. 비록 부족한 사진이지만, 마음껏 감상하길.. 마음껏 빠져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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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통독, 음독, 묵독, 정독, 미독(味讀), 속독, 발췌독. 


'읽기'의 다양한 방식이다. 흔히 '책(활자)'를 읽을 때 하나의 방법만 가지고 접근하기 쉽지만, '효과'와 '효율'을 생각하면 그 우직함이 항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정독이 필요한 책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발췌를 해서 일부분만 습득해도 되는 책이 있다. 소리 없이 음미해야 하는 책이 있고, 크게 소리를 내서 읽어야 이해가 빠른 책도 있다. 마치 요리사가 칼을 선택할 때 다양한 용법을 고려하는 것처럼, 헤어 디자이너가 손님의 머리 상태를 보고 시술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처럼 책을 대하는 '독자'에게도 영리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는 어떨까. 그러니까 드라마의 '시청자'의 입장은 어떨까. 과장을 전혀 보태지 않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자면, 우리는 너무도 완벽하게 '시청자'라는 포지션을 이해하고 있다. '드라마 시청학'이라는 과목이 있어 특별히 수강을 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그와 관련한 가르침을 받았을 리도 만무한데 말이다. 놀랍게도 '시청자'가 된 당신은 그때그때마다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어젯밤, 혹은 오늘 아침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오늘 밤에 당신이 그리할 것처럼. 


가령,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봐야 하는 드라마가 있다. 이런 드라마는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끝나는 순간까지 그 긴장감을 유지시켜야 한다. 반면, (굳이 특정하진 않겠지만) 어떤 드라마는 '다른 짓'을 하면서 봐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하등 문제가 없다. 대사 위주로 드라마를 따라가다가 갈등이 고조된 순간에 잠깐 화면을 응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귀로 보는' 드라마라고 할까. 또, 영상이 워낙 수려하고 유려해서 시선을 뗄 수 없는 드라마도 있다. 



한편, tvN <비밀의 숲>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드라마다. '검찰 스폰서 살인'이라는 메인 사건을 바탕으로 범인과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는 검사 황시목(조승우)의 추적극을 그린 <비밀의 숲>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니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넓게 퍼진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시청자들은 빼곡히 울창한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한여진(배두나)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용의자' 선상에 올랐고,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끝도 없이 이어진다. 


허투루 넘길 장면이 없다. 반전이 숨겨져 있고, 복선이 깔려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어쩌면 모든 장면들이 '떡밥'이고, 진실에 접근할 '단서'다. 독서로 치면 '정독'은 필수라고 할까. 모든 장면에 집중해야 한다. 황시목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이창준(유재명)과 서동재(이준혁), 영은수(신혜선)의 '의뭉한' 눈빛과 행동을 놓치면 다음 장면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혹시 혹시 빨래를 개키거나 홈쇼핑 잡지를 읽으면서 <비밀의 숲>을 볼 생각이라면 애초에 그만 둘 것을 정중히 권하고 싶다. 그렇게 봐선 이 드라마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왜 완전히 끝내지 않았지? 이 수고를 치르고서, 왜 굳이 여기야. 얻어지는 게 뭔데."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13분. 애매하다. 차장 말이 사실일까. 뭐지? 웃고 있다. 벨."

"경고. 벌. 차장을 벌할 수 있는 사람. 박무성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 김가영이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 차장에게 벌을 내리고자 할 사람."


<비밀의 숲>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극도의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황시목의 추리를 따라간다. 자신의 기분을 이기지 못해 격분하고, 감정적인 선택과 판단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곤 했던 기존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는 달리 황시목은 침착하고 논리적인 태도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없던 캐릭터'이고,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없던 경험'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황시목의 추리는 상당히 섹시한데, 이는 뇌의 특정한 부위에 묘한 쾌감을 준다. 


여전히 사건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건 재연 현장에 황시목과 함께 있었다'는 한여진의 진술로 황시목은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의 의심을 (당장은) 지울 수 있었다. 범행도구로 쓰인 칼에 찍힌 지문에 대한 알리바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박무성(엄효섭)의 아들 박경완(장성범)의 행동도 의심스럽다. 그가 납치됐던 김가영(박유나)와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고, 그를 몰래 촬영한 듯한 사진을 지우는 장면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차장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창준과 그를 컨트롤하는 실세 장인 이윤범(이경영), 그리고 그들을 '앞잡이'로 쓰고 있는 더 큰 집단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덮어씌운 뇌물 혐의로 나락으로 떨어진 영일재(이호재)와 그 사실을 알아버린 딸 영은수. 이토록 깊고 지독한 미궁이라니. 과연 황시목은 범인을 밝히는 동시에 깊이 감춰진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황시목과 함께 이토록 촘촘히 우거진 그래서 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비밀의 숲'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비밀의 숲>은 연기, 연출(안길호 PD), 극본(이수연 작가) 등 무엇하나 흠잡을 데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이야기는 더할나위 없이 치밀하고 쫄깃하며, 연출은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조승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놀라울 만큼 정성스럽다. 케이블 드라마의 것치고는 높은 편이긴 하지만, 시청률이 4%대에 머물고 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출발'이라는 안재현의 '명언(?)'을 떠올리며 <비밀의 숲> 정주행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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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


기자가 '카더라 통신'의 유포자가 됐다. 씁쓸한 일이다. 지라시로 도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대중에게 전달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가십(gossip)을 가려내야 할 기자가 오히려 가십을 생산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현실, 이 구역질 나는 상황에 대해 <오마이스타>의 김윤정 기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고 말이다. 자조(自嘲)와 자성(自省)이 읽힌다. 업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면서도 그 칼날을 자신에게도 겨누고 있는 고독한 외침이었다.


'연예'와 관련한 글을 주로 쓰다보니 아무래도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살필 때 '연예' 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소위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도 제법 참고하는 편이다. '쓰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사실 '보고 읽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괴상한(?) 글을 마주했을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독자'라는 포지션이 그리 간단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예' 면에 시선을 두는 게 참 힘들었다. 솔직히 짜증이 났고, 심지어 욕지기가 올라왔다. 


이래도 되나?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단순히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많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에 대해 '비판적인' 뉘앙스를 띤 기사가 다수라고 해서 그 자체로부터 불쾌감을 느끼진 않는다. 그러한 기사를 쓰게 된 '근거'가 분명하고, 주장을 펼쳐 나가는 '논리'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회적 상식'에서 약간 비켜서 있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부실한' 기반 위에서 '함부로' 휘갈겨진, 그런 '엇나간' 기사들이 도배될 때 우리는 극도의 피로감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 13일 SBS <본격 연예 한밤>은 김소연 · 이상우의 비공개 결혼식을 소개했는데, '검문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라는 설명과 함께 '이은형이 청첩장을 지참하지 않아서 돌아가야 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과 그 방송으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기사들을 접한 대중들은 '(김소연 · 이상우가) 유난을 떤다'며 눈총을 보냈다. 하지만 곧 밝혀진 '사실 관계'는 전혀 달랐다. 이은형은 애초에 결혼한 두 사람과 친분도 없었고, 따라서 청첩장을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 19일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는 '정유라'에 대한 '가십'을 다루면서 '연예계를 뒤흔든 문제적 금수저 스타'로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를 '지목'하며 각종 '설'들을 쏟아냈다.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기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도 밝히지 않은 온갖 풍문과 추측을 덧댔다. 굉장히 신난 듯한 분위기였다. 방송이라는 공공재를 통해 질 낮은 '뒷담화'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한 사람의 '인격'이 무참히 말살되는 순간, 당사자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이뿐인가. 지난 21일부터 배우 '심은하'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그와 관련한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를 가득 채웠다. 전날인 20일 심은하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던 90년대 최고의 스타의 근황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은 과도한 취재 경쟁을 펼치며 온갖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다. 심지어 심은하의 남편인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의 사무실에 찾아가고, 집을 찾아가 이웃 주민에게 심은하를 본 적 있냐며 인터뷰를 해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과 기자들은 대중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그릇된 명분을 끌어안고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취재와 보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과 '펜'이 얼마나 무겁고, 또한 무서운 것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칼춤'을 추고 있는 듯 하다. 지난 25일, MBC <섹션TV 연예통신>은 송중기와 송혜교의 열애설에 대한 취재 내용을 전파로 내보냈는데, 굳이 당사자들이 부인했던 열애설을 발리까지 쫓아가서 그들이 묵었던 호텔 관계자를 인터뷰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그 인터뷰 내용은 다음 주에 보도하겠다며 시청자들을 낚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범람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하리라.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이 '보도'라는 이름으로 사실과 다른 소식들을 무분별하게 전하고, '기자'들이 팩트체크가 되지 않는 각종 풍문들을 마치 '진실'인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는 이를 받아적은 기사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물론 우리는 저마다 알몸의 고디바 부인을 훔쳐봤던 피핑 톰(peeping tom)의 관음증적 욕망을 갖고 있다. 스타들의 삶이 궁금하고, 그들의 뒷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욕망이 '옳다'라고 말해선 곤란하다. 적절히 제어되고 조절돼야만 한다. 적어도 그 욕망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그 시선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놓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오히려 그런 울타리를 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언론'이 철없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다시 한번, '연예 뉴스도 '뉴스', 연예 기자도 '기자'라는 점을 잊지 말자'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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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민망한 일이지만, 최근 영화관에서 깜빡 '조는' 일이 부쩍 늘었다.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일정한 리듬에 고개를 자연스레(?) 맡기는 것이다. 그래도 '코를 고는' 최악의 매너로 영화관을 경악으로 몰고가진 않았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혹시 잔잔한 영화 위주로 선택해 감상을 했냐고? 더욱 민망하게도, 실은 그렇지 않다. 놀라지 마시라. 무려 우리의 톰 아저씨(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미이라>를 보면서도 졸음을 이기지 못했으니.. 


나름대로 영화를 제법 많이 보는 편인데, 이 불가항력의 힘에 무릎을 꿇었던 경험은 극히 적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장르'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아무리 시끌벅적한 사운드와 액션이 쏟아져도 이야기 자체가 단조롭거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는 영화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또, 뻔한 '합'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의심)이 들면 지루함이 몰려온다. 액션과 이야기, 혹은 기존의 액션을 뛰어넘는 파격적 액션. 이 두 가지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액션은 관객을 졸리게 만든다.



"올해 가장 놀라운 액션 시퀀스"(Quiet Earth)

"역동적인 액션 스릴러의 발견"(Screen daily)


분명 <악녀>는 달랐다. 감히 졸음이 찾아 올 틈이 없었다. 슈팅 게임을 연상케 하는 1인칭 오프닝 시퀀스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한 상태였음에도) 가히 압도적이었다. 숙희(김옥빈)의 칼, 도끼, 총을 사용한 과감한 액션과 뒤이어 전개되는 맨몸 액션도 감탄스러웠다. 리허설만 2회차가 소요됐고, 촬영에 총 4일이 걸렸다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보였다. 제70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분에 공식 초청된 이 영화를 향해 쏟아졌던 찬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싶었다. 


물론 초반의 경탄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프닝 스퀀스의 그 화려하고 강렬했던 숙희의 '죽임'에 대한 이유와 설명이 지나치게 빈약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숙희가 그토록 많은 살육을 저질러야만 했는가. 물론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실(?)하게 제시한다. 다만, 그 성실함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진부하다.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기존의 틀을 깨는 데 성공했지만, 그 액션과 함께 빛나야 할 '이야기'에서는 틀 안에 갇힌 채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까.



숙희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조선족 출신의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한다. '보호자'이자 '울타리'였던 존재를 상실한 아픔, 그것도 '배신'에 의한 잔혹한 죽음은 뇌리에 깊이 박힐 수밖에 없을 터. 숙희는 복수의 칼날을 갈며 때를 기다린다. 킬러인 중상(신하균)은 숙희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다. 중상으로부터 구제받고, 그로부터 훈련받고, 그로부터 길러진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또 다른 '전부'가 숙희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숙희는 중상과 결혼하게 되지만, 신혼여행을 떠난 날 끔찍하게도 남편을 잃는다. 그를 보호하던, 그의 전부였던 또 한 명의 '남자'를 잃어버린 트라우마는 숙희를 또 다시 어둠 속에 가두고 내팽개친다. 나락에 빠진 숙희를 끄집어올린 건 또 다른 '국가'라고 하는 또 다른 '남자'였다.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국가'가 갖고 있는 상징과 이미지가 어떤지 연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숙희는 국정원에 의해 살인 병기로 길러진다. 국가는 숙희의 '모성'을 이용해 그를 포섭하고, 그를 억압한다. 



자꾸 '숙희'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니까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속의 숙희가 떠오른다. <아가씨> 속의 숙희가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되바라짐을 마구 발산해 관객들에게 '청량감'을 줬던 것과 달리 <악녀> 속의 숙희는 체제 속에 철저히 종속된다.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스스럼없이 눈앞의 적을 죽여버리는 숙희지만, 그의 '액션'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다. 정병길 감독이 <악녀>의 숙희를 두고 "나쁜 여자는 아니다. 착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다"라고 말했던 건,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여성 (원톱) 액션 영화'를 표방했지만, 그 타이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을 앞세운' 액션 영화라고 칭하는 게 맞지 않을까. 특히 숙희와 현수(성준)의 로맨스는 불필요하다 여겨질 만큼 '지루'해 순간 졸음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는 또 다시 숙희를 우리에게 친숙한, 그래서 '옳다'고 여기는 '가족 형태' 속으로 밀어넣으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마치 숙희에게 '남편'이 있어야만 '완전한' 가족이 되고, 또한 행복할 수 있다는 강박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김옥빈이 보여준 연기는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다. 오토바이 장검 액션, 시내버스 안 액션 등 유려한 액션은 말할 것도 없고, 워낙 다양한 표정을 품고 있는 그의 얼굴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피칠갑을 한 김옥빈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우리에게 이런 배우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인상적이다.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통해 '각성'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연기력은 JTBC <유나의 거리>(2014)를 통해 한층 성숙해졌고, 마침내 <악녀>를 통해 만개한 듯 보인다. 


<악녀>는 지난 22일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개봉한 지 15일 만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핸디캡을 안고 거둔 성과라 더욱 값지다. 또,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박스오피스에서 <하루>, <미이라>에 이어 4위를 기록하는 중이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매드맥스>와 <원더우먼>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내재하고 있는 영화에 '여성 액션 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뭔가 어색하다. 그렇지만, <악녀>가 거둔 기술적 성취와 그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김옥빈의 존재감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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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솔직히 말하면 이동건을 '배우'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1999년 SBS <광끼>로 데뷔한 그의 연기 경력이 무려 18년이나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안에 너 있다."라는 국민적 유행어를 남긴 SBS <파리의 연인>(2004)의 윤수혁뿐만 아니라 MBC <너 멋대로 해라>(2002)의 시크했던 한동진도 기억하고, 그의 전성기를 열어 젖힌 KBS2 <낭랑 18세>(2004)와 영화 <B형 남자친구>(2004)도 떠오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뭔가 한발 더 나아갔어야 했던 게 아닐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이어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MBC <밤이면 밤마다> 이후 제법 긴 공백기가 이어졌다. 그의 동생에게 있었던 불행한 사건도 휴지기(休止期)가 길어지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다. 2013년 KBS2 <미래의 선택>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던 이동건은 "공백이 길어질수록 욕심이 커졌다. 욕심만큼 작품에 만족이 안 돼서 공백기간이 길어졌다"며 공백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7)로 최고 시청률 36.2%를 기록하고, 평생의 동반자인 조윤희를 만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이 이어졌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그건 <파리의 연인>에서 순애보의 진수를 보여줬던 이동건을 기억하고, 다수의 작품에서 시크한 매력을 어필했던 그의 섹시함에 반했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언저리에 멈춰 있는 발걸음을 좀더 과감히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KBS2 <7일의 왕비>에서 연산군 이융으로 돌아온 이동건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광기어린 얼굴, 불안정한 눈빛, 사랑을 갈구하는 태도.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깨달은 유약한 한 남자의 불안정한 내면. 이동건은 연산군의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한 듯 보였다. 캐릭터 분석이 수월했던 덕분에 '감정'을 싣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상처 입은 남자가 여성들에게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모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다크한 느낌의 섹시함까지 풍기는 데 성공했다. 워낙 호평을 받았기에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MBC <역적>의 연산, 김지석을 지우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극 첫 출연이라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이역(백승환/연우진)에 대한 열등감과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감을 탁월한 눈빛 연기로 영리하게 풀어냈다. 또, 광기가 뒤범벅이 된 표정과 카리스마와 잔혹함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간담이 서늘해진다. 왕좌를 지켜내기 위해 애처롭게 싸워나가는 모습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꾸만 끌어당겨 응원하게 만들 정도다. 지금 생각하면, 연산군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그건 이동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얼굴에 숨겨져 있던 특유의 '쓸쓸함'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고 할까.


거기에다 '순애보'까지 더해지니 그 매력은 몇 갑절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융은 훗날 중종의 정비(正妃) 단경왕후가 되는 신채경(박시은/박민영)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른 남자로 변하는데, 달달함으로 가득한 180도 달라진 눈빛이 놀라울 정도다. 자칫 잘못하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정치의 최전선에 있을 때의 날카로움은 간데없고, 한없이 부드럽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이역과 채경의 아역이 출연했던 초반에도 이동건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줬다.



우리는 역사 속의 연산군이 어떤 비극적인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알고 있다. 수없이 많이 카피됐던 연산군이라는 캐릭터가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연산군이야?'라는 심드렁한 반응이 아니라 '이런 연산군은 처음이야!'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기존의 연산군에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7일의 왕비>의 영리한 접근이자 그런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 이동건의 공이라 하겠다. 


죽은 줄 알았던 이역이 재등장하면서 채경과 재회하고, 그로 인해 다시 위기에 빠져드는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이역을 짝사랑하는 윤명혜(고보결)의 존재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들의 삼각 관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대목이 바로 이동건이 그리고 있는 연산군의 행보다. 그는 권력과 사랑, 이복동생에 대한 질투와 애정 사이에서 얼마나 더 번뇌할 것인가. 연산군의 비애가 얼마나 더 깊어질까.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 것일까. 연우진과 박민영의 멜로가 깊어질수록 이동건의 치명적인 매력은 커질 것이다. 


<7일의 왕비>의 낮은 시청률이 못내 아쉬운 까닭은 '배우'로 돌아온 이동건을 더 많은 시청자들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채경을 둘러싼 연산군 이융과 진성대군 이역의 대립이 더욱 뚜렷해질 예정이라고 하니 시청률 반등을 기대해 본다. 전혀 다른 색깔을 띤 두 남자의 사랑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그려지게 될지 궁금하다. 5.2%까지 떨어진 시청률이 가슴 아프지만, 총 20부작으로 제작돼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만큼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 중심에는 역시 한층 '깊어진' 이동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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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2분에 프라하를 출발한 기차가 14시 50분이 돼서야 빈(Wien)에 도착했다. 거의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체코는 평지와 산지의 비율이 7:3 정도인데, 기차로 이동하는 내내 푸른 초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간혹 건물들이 눈에 띠긴 했지만, 워낙 간헐적이라 '밋밋해진' 풍경들에 지루해져 어느덧 잠이 쏟아졌다. 인간이란 이토록 간사한 것이다. 어떻게 유럽의 풍경들이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단 말인가. 


한참을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도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중간중간 몇 번의 스트레칭을 거듭한 끝에 결국 국경을 넘고 빈에 당도하게 됐다. 맙소사, 오스트리아라니, 그것도 빈이라니! 빈 중앙역 (Wien Hauptbahnhof)의 근처(도보로 5분)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채비를 했다. 우선, 숙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부터 가 볼 예정이다.





1. 벨베데레 궁전

- 입장 시간 : 10시부터 18시까지 

- 입장료 : 14유로


벨데베레 궁전은 상궁(Oberes)과 하궁(Unteress)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무래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상궁 쪽이 보다 핫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숙소가 인근에 있어서 산책 겸 총 3번 방문했는데, 역시 한국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았다. 패키지 여행의 필수 코스로 지정돼 있는 듯 했다. 도심 속에 있는 궁전이라는 점에서 파리의 '뤽상부르 궁전(Jardin du Luxembourg)'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I(1901)」, 「키스(1907-8)」

에곤 실레, 「포옹(1917)」, 「가족(1908)」

자크 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1908)」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들판(1890)」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 정원길(1902)」


벨베데레 상궁이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당연히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실부터 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유럽의 어느 미술관을 가더라도 한 점씩 포함돼 있기 마련인 고흐나 모네의 그림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기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긴 아깝지 않은가. 





아쉬운 점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미술관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랐던' 건 관람에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다시 말하면 관람객 친화적 분위기라고 할까. 접근을 불허하는 라인을 만들어 놓지도 않았고, '조용히 하라'는 암묵적 억압도 없었다. 또, 사진 촬영도 허용됐다. (다만, 플래시와 셀카폰은 금지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림'과 마주했고, 대화를 나눴으며, 그 순간을 만끽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벨베데레 상궁은 사진 촬영을 불허했고, 이 때문에 재미있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금지된 욕망은 그만큼 유혹적이라 했던가. '카메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휴대전화가 '카메라'를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드는데, 일일이 그들이 사진을 찍는지 아닌지 확인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당연히 틈을 봐서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나 눈에 띠었다. 


그 비양심적인(?) 행동들은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용납됐지만, 구스타프 클림프 전시실에서만큼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 곳에 상주하고 있는 직원은 잔뜩 날을 세운 날카로운 눈빛으로 오로지 사진을 찍으려는 행동을 취하는 듯한 관람객들을 예의주시했다. 앞서 몰래 사진을 찍어왔던 사람들은 이번에도 같은 기술을 시전하려 했지만, '감시'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깨갱'하는 모습이 왠지 통쾌했다.






2. 성 슈테판 대성당


성 슈테판 대성당은 빈의 상징이자 심장이라 할 만한 곳이다. 하늘 높이 뽀죡하게 솟아 있는 첨탑이 '내가 성 슈테판 대성당이다'라고 외치는 듯 하다. 1137년에 착공해 1160년에 완공됐는데,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다양한 색상으로 꾸며진 지붕 타일은 빛을 받으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데, 그 압도적인 외관은 보는 이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덩달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성당 내부는 무료로 구경이 가능한데, 전망대에 올라가려면 입장료(남탑 : 4.5유로, 북탑 : 5.5유로)를 내야 한다. 북쪽 탑에 오르면 형형색색의 지붕 타일을 볼 수 있다. 성 슈테판 대성당 주변에는 케른트너 거리, 그라벤 거리 등 쇼핑 거리가 펼쳐져 시선을 끄는데, 모차르트하우스(Mozarthaus), 페터 성당(Peterskirche), 로스하우스(Loos haus) 등 관광 명소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에서도 그랬지만, 성 슈테판 대성당에서도 알 수 없는 위안을 얻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휴식을 취하면서 얻은 안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인근의 슈니첼(Schnitzel)로 유명한 '피그뮐러(Figlmueller)'라는 식당에서 한껏 음식을 섭취한 다음이라 다소 '배부른' 안식이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래도 유서 깊은 종교 시설이 주는 위안은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예의를 갖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성당 안을 구석구석 누볐고, 내부를 가득 채운 오르간 소리는 속세로부터 온 사람들의 다소 시끄러울 수 있는 소음을 완벽히 제압한 채 울려 퍼졌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그 공간을 느끼고, 그 공간에 나 자신을 맡겼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위로였고, 여전히 풍성한 채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성당을 나왔을 때, 갑자기 쏟아진 비에도 짜증이 나지 않았던 이유가?








3. 미술사 박물관 

- 입장 시간 : 10시부터 18시까지 

- 입장료 : 15유로


사실 빈(Wien)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모로 충분하지 않았다. 우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게다가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성 슈테판 대성당을 나서던 저녁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다음 날까지 계속해서 쏟아졌다. 아침에 숙소의 창문을 여는 순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에 따라 여행은 계속될 수밖에.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빗발이 사납게 날렸고, 상상을 초월하는 강풍이 불어닥쳤다. 우산은 걸핏하면 뒤집어졌고, 옷은 마를 틈이 없었다. 사실 넉넉히 생각하면, 그 또한 여행이다. 언제 오스트리아 빈에서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을 맞아내며 걸어가는 경험을 해보겠는가. 오히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도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잠시나마 그 상황을 즐기게 만들기도 했다. 나도 질러볼 걸 그랬나?


'미술사 박물관'이라는 도피처가 있었기에 '반나절'은 어찌 보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궂은 날씨는 여행에 있어 결코 반가운 조건이 아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은 10시부터 개관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바람이 몰아쳐 관람객들이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눈빛 공세를 보냈지만 얄짤 없었다. 미술관 직원들은 정확히 10시가 되어서야 문을 열어주었다.


자꾸 파리와 비교를 하게 되는데, '미술사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에 필적하는 컬렉션을 갖췄다. 괜히 유럽 3대 미술관(또 다른 한 곳은 '마드리드의 프라도'이다.)의 하나로 꼽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합스부르크 왕가(The House of Habsburg)가 16세기 이후 유럽의 상당 영역을 지배하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과거 프랑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라파엘로, 「초원 위의 성모(1505-6)」

아르침볼도, 「여름(1563)」

브뢰헬, 「바벨탑(1563)」, 「농가의 결혼식(1568)」

벨라스케스,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초상화 시리즈(1653-4/1659)」

렘브란트, 「자화상(1652)」

루벤스, 「1636-1640)」


0.5층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 그리고 이집트의 유물이 전시돼 있고, 1층에는 유럽 각국의 주요 회화들이 자리하고 있다. 2층에는 동전과 메달 등이 있다. 아무래도 관심은 1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루벤스 등 거장들의 그림들도 심장을 벌렁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브뢰헬 컬렉션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설렘을 안겨줬다.


특히 인간의 오만함을 담아낸 「바벨탑」은 워낙 좋아하던 그림이라 실제로 봤을 때의 감격스러움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책이나 컴퓨터를 통해서만 봤던 작품을 현실에서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역시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머물렀다 가는 그림이기도 했다. 워낙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서 한 바퀴를 둘러보는 데 진이 빠질 정도였는데, 4시간의 관람에도 마지막까지 브뢰헬 컬렉션을 한번 더 둘러보고 퇴장했다. 









+ 링 도로의 야경


그밖에도 왕궁(Hofburg),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무제움콰르티에 빈(MuseumsQuartier Wien), 레오폴트 박물관(Leopold Museum), 무목(mumok), 제체시온(Secession) 등 빈을 '예술의 도시'라 부르는 이유가 되는 명소가 수두룩하다. 또, 트램을 타고 링 도로를 이동하며 야경을 즐기는 것도 잊지 말자. 물론 낮에 링 도로를 돌며 <비포 선라이즈> 속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낭만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국회의사당, 시청사, 빈 대학, 포티프 성당을 지나 도나우 강을 따라가는 트램에 몸을 맡기고 경치를 구경하다보면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짐을 느끼게 된다. 물론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번 왕복을 할 필요가 있다. 주요 스팟에 내려 야경을 감상하고, 다음 도착하는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 식으로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기 위해선 24시간 권(혹은 48시간 권이나 72시간 권)을 구입해 활용하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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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인 


꽃에는 그마다 '꽃말'이라는 게 있는데,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억'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물망초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가 이 순간을 환기(喚起)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가령, '4월 16일'에 누군가 자신의 SNS에 물망초 사진을 게시했다면, 우리는 그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센스를 (적어도 앞으로는)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 누군가는 바로 '신민아'인데, 그래서 그를 떠올리면 맨 먼저 떠오르는 꽃이 바로 물망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신민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악의 대답을 미리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김우빈'일 것이다. 설령 그런 연상을 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두 이름을 '동등한 선상'에서 떠올리지 않고, 김우빈'의' 여자친구 정도로 기억했다면 그건 문제가 좀 다르다. 물론 그건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선, 언론의 책임이 아주 무겁다. 



'신민아, 김우빈도 반한 눈빛'

'신민아, 김우빈 사로잡은 미모', 


비단 신민아만 이런 제목의 '제물'이 되는 건 아니다. 공개 연애를 하는 많은 여성 연예인들은 매번 타깃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더 나아가 '내조'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김우빈을 위한 특급 내조' 같은 식이다. 김우빈이 비인두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더 노골적이다. tvN <알쓸신잡>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은 강릉 오죽헌을 찾았다가 격분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그처럼 분개했던 이유는 여전히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제한한 채 기억하는 가부장적 역사관 때문 아니었던가.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고, 훌륭한 아들을 둬야만 좋은 여성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던 조선시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최고의 톱스타조차도 다른 누군가의 '무엇'으로 기억되고 불려지는 상황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콩당콩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그 자체로 응원하기로 하고, 우리는 신민아를 신민아라는 이름의 한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양민아(신민아의 본면)라는 자연인에 대한 접근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신민아'라는 스타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건 가능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 게 제겐 '예뻐 보인다'는 말이랑 같아요" 


-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얼마 전, 신민아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고 그가 참 단단하고 강한,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영화와 드라마, CF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약하며,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저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1998년 하이틴 잡지 『키키』의 전속 모델로 데뷔하고, 2001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과 영화 <화산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신민아는 자신만의 영역을 단단히 구축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신민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스러움'인데, '블리'라는 별명의 진정한 주인은 신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사랑스러움의 대명사'이다. 스크린에서는 <마들렌>(2003), <야수와 미녀>(2005), <고고70>(2008), <키친>(2009),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 출연하며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고, TV에서는 <때려>(2003), <이 죽일놈의 사랑>(2005), <마왕>(2007),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아랑사또전>(2012), <오 마이 비너스>(2015)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갔다.



최근에는 tvN <내일 그대와>에서 기존의 '사랑스러움'에 더해 생활 연기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제훈은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해서 "드라마를 찍기 전부터 신민아 씨랑 꼭 함께 하고 싶었던 열망이 컸다"면서 그 바람이 10년 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민아는 '사랑 이야기'를 함께 연기하기에 최고의 파트너가 틀림 없다. 다만, 시청률이 부진했던 점과 그의 연기에 대해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점은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흔히 신민아의 사랑스러움은 그의 외적인 모습들 때문인 것으로 강조되곤 했지만, 사실 그 사랑스러움의 비결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기부한 금액이 14억 원을 넘었다는 소식은 신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진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꾸준함이 더욱 놀라웠다. 그건 기본적으로 '사랑'이 내재돼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또, '나눔'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출처 : 실버스푼 


그동안 신민아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왔는데, 가령 공부방 선생님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든지 여성 및 어린이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 사업, 독거 노인의 난방비 지원, 탈북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업 등에 자신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또, 지난 2015년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1억 원을 기부해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부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사랑을 다시 대중들에게 되돌려주는 신민아의 삶의 궤적은 뭇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웃을 때마다 깊게 패는 그의 보조개와 상큼발랄한 미소가 덩달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의 따뜻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마다 온기를 전염시킨다. 신민아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 그리고 이런 바람을 전해주고 싶다.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얼굴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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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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