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됨을 이르는 말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얼마 동안은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별다른 표시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기간이 제법 길어질 지도 모른다. 1년, 2년, 그러다 10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 이상이 흘러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뾰족함'이 주머니를 뚫기 마련이다. 송곳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빛'을 보는 배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뚫고 나왔구나!' 막혀 있던 강이 터지듯,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그들을 바라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나는 접어두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서 처박아놔서 이거 어딨는지 찾지도 못해. 근데 나도 한때 있잖아. 여기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 만큼 날카롭고 빳빳하던 시절이 있었어. 근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무뎌지고 구겨지더니,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가더라. 결혼할 때 한 번, 애 낳고 나서 아빠 되니까 또 한 번, 집 사고 나서 또 한 번, 그리고 애 대학갈 때쯤 돼서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이게 다 녹아서 없어졌더라구." (KBS2 <김과장> 10회 중에서)


▲ 배우(俳優) : 연극이나 영화에 출연하여 연기하는 사람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tvN <시그널>부터 tvN <혼술남녀>, 그리고 2017년 상반기 가장 뜨거운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KBS2 <김과장>까지 그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배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입밖으로 흘러나온다. "야, 진짜 배우다, 배우. 저런 사람이 진짜 배우지." 물론 연기를 업(業)하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라는 이름을 갖지만, 그 말에 단순히 '직업'이라는 의미를 넘어 '존경심'을 담는다면, 김원해는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다.


물론 그는 '주연' 배우가 아니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 있다. 또, 제작 단계에서 캐스팅 선택지의 첫 번째일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면, 그의 존재감은 주연 배우에 못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아우라'를 뽐낸다.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시그널>을 예로 들어보자. 김혜수와 조진웅 그리고 이제훈이 막강한 포스를 뽐냈던 그 드라마에서 김원해는 자신만의 맛깔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목배개를 차고 컵라면을 들고 등장했던 김계철 형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혼술남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타 강사 앞에서는 나긋나긋한 표정과 말투로 기분을 살랑살랑 맞춰주면서 만만한 강사(민진웅)에게는 잔소리를 쏟아내며 핀잔을 주는 밉상 상사의 모습을 100% 리얼하게 구현했다. 게다가 또 회식은 왜 그리 좋아하는지, 또 어쩜 저리도 우리 회사 상사 같은지, 많은 시청자들이 김원해가 만들어 낸 '현실감'에 몰입했다. 그러면서도 민진웅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곁을 지키며 손을 잡고 다독이는 뭉클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그널>에서는 강력계 형사, <혼술남녀>에서는 공무원 학원의 원장. 이처럼 김원해는 디테일한 직업 묘사와 리얼한 생활 연기를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의 리얼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빨리 몰입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한다. 그렇게 마련된 배경 속에서 주연 배우를 비롯한 다른 연기자들은 마음껏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김원해라는 배우가 만들어 내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김원해가 가진 저력은 <김과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현된다. 



"나, 적어도 앞으로 6, 7년은 더 버텨야 돼. 하나 있는 딸래미 대학은 끝내줘야 한다고. 자꾸 없는 일도 있게, 작은 일도 크게 만들지 말자고. 부탁이야." (KBS2 <김과장> 9회 중에서)


명문대 출신으로 한때는 TQ그룹의 잘 나가는 사원이었던 추남호, 그러나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 만큼 날카롭고 빳빳하던 시절'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그저 자리를 보전하는 게 우선인 경리부장일 뿐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머리를 조아린다. 자존심 따위 접어둔 지 오래다. 새파랗게 어린 직장 상사의 막말도 꾸역꾸역 참아낸다. 간도 쓸개도 내버렸다. 왜 화가 나지 않겠는가. 분노가 치밀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는 추 부장에게 회사는 단지 '그'만의 것이 아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아둥바둥 버텨야만 하는 곳이다.


이 짠내 가득한 캐릭터를 김원해는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궁민의 활약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회사'가 배경인 <김과장>이 수많은 샐러리맨들의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었던 건 역시 김원해의 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과장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사이다'를 선사하고, 시청자들에게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물하는 바탕에는 추 부장이라는 캐릭터가 제공하는 현실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균형감이야말로 <김과장>의 돌풍을 만들어 낸 진짜 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1997년 <난타>의 원년 멤버로 합류(<김과장>에서 보여줬던 현란한 칼 퍼포먼스는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했던 김원해는 tvN <SNL>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이후 <명량>, <해적>, <타짜2>, <검사외전>, <아수라> 등 스크린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했고, 지금은 '김원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배우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쯤되면 더 욕심을 부릴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주연배우로 남고 싶은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은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OSEN>, '시그널' 김원해, "주연배우로 남을 욕심은 없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김원해가 그려나갈 또 다른 '캐릭터'들이 기대된다. 또, 앞으로 그가 추구하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배우'로 오래토록 대중 곁에 남길 바란다. 주머니를 뚫고 나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이고 있는 '낭중지추' 김원해를 응원한다. <김과장>식 말장난을 한번 해보자면, 대중들은 더욱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배우 김원해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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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 유 씨(42세)가 흉기에 십수 차례 찔려 살해 당했다. 마침 오토바이를 몰고 현장을 지나가고 있던 최 군(16세)가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한 최 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범행을 시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 형기를 가득 채우고 세상을 돌아왔다. (9년 7개월 만에 특사로 출소) '군'이라는 호칭이 '씨'로 바뀔 만큼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2013년 4월 최 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再審) :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송 당사자나 기타 청구인이 그 취소와 변경을 청구하여 다시 하는 재판


▲ "잡히고 나서 바로 경찰서에 간 게 아니라 여관을 데려 갔다. 거기서 머리도 때리고 무자비하게 폭행 당했다. 범행을 거부하면 더 맞았다. 무섭다는 생각만 들었다" (최 씨)

▲ "내가 죄인이야, 뭐야? 그때 일은 기억 안 난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과 2015년 두번에 걸쳐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다뤘다. 최 씨의 억울한 사연을 소개하며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고, 2015년에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자의 진술을 추가로 확보해 공개했다. 당시 혈흔과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폭행 · 강금 등 강압적인 수사를 통해 '범인 만들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참담한 진실 앞에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타락한 공권력, 부패한 공권력의 추악한 민낯에 또 한번 몸서리를 쳐야했다.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다. 


법원은 최 씨가 불법 체포 · 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했고, 새로운 증거(증인)가 확보된 점을 들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항고로 맞섰다. 대법원은 재심을 인용하기로 결정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재항고로 어깃장을 놨다. 대법원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드디어 최 씨에 대한 재심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노경필 부장판사)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면서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사건에 대해 듣는 순간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소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란 것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김태윤 감독)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유명(?)해진 이 사건이 영화로 제작됐다. 바로 <재심>이다. (물론 김태윤 감독이 이 영화의 연출에 착수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되기 전이라고 한다.)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데, 15일 개봉한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개봉 첫 주에는 <조작된 도시>와 함께 쌍끌이 흥행 구도'를 형성했고, <23아이덴티티>, <존윅-리로드>, <싱글라이더>가 개봉한 22일에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재심>의 흥행은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거둔 쾌거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재심>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열광적인 입소문의 파도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무래도 '실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이야기에 훨씬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를 볼 때,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막은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를 고쳐잡게 만들지 않던가?


타이밍도 좋았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도중,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최 씨에 대한 재심이 '무죄'로 결론나면서 영화의 '타당성'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재심>의 김태윤 감독, 그리고 함께 분노했던 국민들의 '판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분명 이 '교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으리라. 흥행의 측면에서 볼 때, '결과'를 모른 채 영화가 개봉됐다면 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해피 엔딩'에 만족하기로 하자. 



이렇듯 <재심>의 첫 번째 힘이 '실화'라면, 두 번째 힘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실제 사건에서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이름은 박준영이다.) 역을 맡은 정우와 억울한 누명을 쓴 조현우 역을 맡은 강하늘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낸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tvN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정우는 <히말라야>, <쎄시봉>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대중 앞에 섰다. 하지만 <히말리야>에서는 황정민, <쎄시봉>에서는 김윤석에 가려져 '정체'됐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재심>에서는 기존의 틀(어쩌면 그는, 그가 연기했던 '쓰레기' 역에 지나치게 묶여 있었는지도 모른다)을 깨고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포인트가 살인 누명을 쓴 조현우의 억울함보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의 변화와 성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기만 하다. 그 무게감을 잘 견뎠다고 해야 할까. 특유의 장난기와 진지함을 동시에 그리고 적절히 표현했는데, 그가 지닌 또 하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폭발력'도 영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하늘은 기존의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저돌적이고 터프한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시도했다. 보여줬던 놀랍게도 이 변신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오히려 강하늘이 원래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강하늘의 연기는 안정적이면서 깊고 단단했다. 그러고 보면 <동주>에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청년 윤동주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냈고,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는 8황자 왕욱 역을 맡아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그였다.



이처럼 정우와 강하늘, 두 젊은 배우의 '기'가 맞부딪치면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재심>의 관람 포인트다. 여기에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힘겨운 싸움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승리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토록 힘겹게 싸워야만 '겨우'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정의'인가, 라는 답답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법의 존재 이유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만, 여전히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아니겠는가.


김태윤 감독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하루빨리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 강압적인 수사를 했던 경찰은 물론이고, 검사, 판사, 국선 변호사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비록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그 반성이 없다면 여전히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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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는 사랑스럽다. 그에게는 애정을 듬뿍받고 자란 '막내'의 에너지가 내재돼 있다. 그 에너지는 분위기를 전환하는 건강한 긍정의 힘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맑고 밝은 기운이며, 어쩌면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당돌함'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걸그룹 '걸스데이'에서 막내이기도 하고, 온국민이 그를 '덕선'이라 기억하게 만든 tvN <응답하라 1988>에서도 '쌍문동 5인방' 가운데 막내였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현실에서 혜리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 어엿한 언니니까 말이다.


'막내'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혜리에게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MBC <진짜 사나이>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됐던 '애교(투정에 가까웠지만)'는 대중들을 사로잡는 스타로서의 '힘'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발랄하고 장난기 가득한, 심지어 엉뚱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들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그 이미지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케이스가 바로 '알바몬'의 CF였다. 혜리는 최저시급을 비롯해 알바들의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주장하는 CF 시리즈에서 "알바가 갑(甲)"이라 거듭 외쳤다.



▲ "알바를 무시하는 사장님께는 앞치마를 풀러 똘똘 뭉쳐 힘껏 던지고 때려치우세요. 시급도 잊지 말고 챙겨나가세요."

▲ "사장님들, 대한민국 알바들의 야간근무수당은 시급의 1.5배. 안 지키시면 으~응"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특유의 애교, 그 안에 내포돼 있는 '막내'의 당돌함. 그의 목소리는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가져왔다. 마치 우리집 '막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불합리함을 외치는 혜리의 외침에 다수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는 혜리에게 '최저임금의 취지를 알리는데 기여했다'며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임창정과 함께 알바몬의 광고 모델로 다시 발탁돼 '알바의 상식' 편을 촬영했는데, 공개한 지 1달 만에 조회 수 1천 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혜리를 두고 '애교' 하나로 엉겹결에 뜬 반짝스타라고 했다. 그가 <응답하라 1988>에 캐스팅 됐을 때, 우려를 넘어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혜리는 덕선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젖어들었고, 그가 연기한 덕선은 온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당당하게 '덕선=혜리'라는 등식을 완성했다. 혜리가 아닌 덕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도였다. 물론 좋은 작품에 꼭 맞는 캐릭터를 연기한 덕분이지만, 혜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과 역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덕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국민적 사랑의 대상이 됐던 혜리는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온전히 되돌려줄 줄 아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대중의 사랑과 지지가 존재의 근거이자 이유인 '스타'라면, 당연히 그 사랑을 대중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스타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이 혜리를 사랑하고, 그에게 더 큰 애정을 쏟아붓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의 착한 심성 말이다. 


지난해 2월, 혜리의 소속사인 드림티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응답하라 1988> 종영 후 혜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드라마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받은 혜리가 기부할 곳을 찾다가 '사랑의 열매'를 찾아 5,000만 원 상당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소속사 측은 "혜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렵게 산 경험이 있어 노인과 아이들에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2014년 'HAPPY Together 연탄 100만장 기부 캠페인'에 동참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12월에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수많은 상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 소식을 접하고 마음 아팠다. 추운 겨울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했는데 알려져서 부끄럽다"는 혜리의 마음씨가 참으로 예쁘기만 하다. 단순히 '기부'를 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맞닥뜨려 힘겨운 이들에게 '온기'를 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일이다.



그뿐인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혜리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제목의 영상의 내래이션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국가적인 중요 사업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영광이다. 전사자 유해가 어서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라는 다부진 그의 메시지가 고맙기만 하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철없는 '막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책임감이 강하고 섬세한 '큰딸'이 아닌가. 


가수로서뿐만 아니라(8년차 걸그룹의 신화를 쓰고 있는 걸스데이는 3월 복귀를 앞두고 있다) 배우로서도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혜리를 응원한다. '막내'와 '큰딸'을 오가는 그의 유쾌하고 든든한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아직 94년생에 불과한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부디 그가 지금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 또, (지금처럼)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그래서 사회를 조금 더 온기 넘치게 만드는 스타로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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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다시는 액션을 하지 않겠다"


솔직히 다른 배우의 말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 말을 한 배우가 바로 '지창욱'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마디, '지창욱이 아니면 누가 액션을 해?' 그리고 또 한마디, '누가 지창욱만큼 액션 연기를 맛깔스럽게 할 수 있어?' 



지난 2016년 9월 20일, tvN <더 케이투> 제작 발표회에서 지창욱은 "다시는 액션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다잡는 계기가 됐다"면서 "<더 케이투>는 지창욱의 마지막 액션 작품이다"라고 선언했다. 산전수전 고생을 하며 촬영한 드라마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던진 저 말이 단순히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창욱의 액션은 화려한 만큼 혹독했고, 전율스러운 만큼 고된 것이었다. 정말이지 당분간 그가 '액션물'에서 거리를 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창욱은 2014년 말 KBS2 <힐러>에 출연한 이래 줄곧 '액션물'에 출연했다. 2015년에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촬영했고, 2016년에는 <더 케이투>에 합류했다. 정말 쉼 없이 '액션'에 매진해 왔던 셈이다. 정두홍 무술 감독은 <힐러>를 촬영할 당시 지창욱을 두고 "액션 전문 배우 못지 않은 연기를 할 줄 안다"고 칭찬했는데, 그만큼 그의 액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수려한 비주얼과 감정선이 살아 있는 연기력, 그리고 액션을 소화하는 능력까지 모든 것을 갖췄으니 어찌 그를 캐스팅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 지창욱이 '더 이상 액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다행히도 2015년 촬영한 <조작된 도시>가 지난 9일 개봉을 하면서 다시 지창욱의 액션 연기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그 때문일까. <조작된 도시>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200만 관객 돌파(19일 기준, 197만 4,421명)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재심>과 함께 또 한번의 쌍끌이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10대와 20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어, 지창욱의 힘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톱스타를 섭외해 안전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어요. 물론, 흥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틀린 얘긴 아니에요. 하지만 요즘 충무로를 보면 늘 같은 배우들이 나오고 도전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조작된 도시는 젊은 영화란 말이에요. 비겁하게 배우에게 목 매지 말자고 했어요. 결과를 떠나 새로운 영역의 배우를 발굴했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스태프들도 꼭 영화판 사람들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함께했어요. 저 역시 광고 감독 출신이잖아요." (박광현 감독) <마이데일리>, [MD인터뷰②] '조작된 도시' 박광현 감독, 반대 뚫고 지창욱 캐스팅한 이유


그런데 <조작된 도시>에서 지창욱을 볼 수 없을 뻔 했다는 게 사실일까? 일단 영화를 보고나면 지창욱이 아닌 권유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영화를 기획하던 당시에는 지창욱을 캐스팅하는 것에 대해 관계자들의 반대가 컸다고 한다. 그럴 법 하다. 아무래도 총 제작비가 100억 원대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충무로에서' 검증이 안 된 배우에게 맡긴다는 선택은 쉬운 게 아니었다. MBC <기황후>, KBS2 <힐러>를 통해 최고의 스타를 발돋움한 지창욱이었지만, 스크린은 또 다른 세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관현 감독의 뚝심있는 선택은 적중했다. <조작된 도시>에서 지창욱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권유 역을 맡아 그 감정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소년의 이미지와 남자의 이미지, 두 얼굴을 모두 가진 지창욱은 영화를 '젊게' 만드는 데 일조했고, 그리하여 <조작된 도시>는 활력이 넘치는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또, 맨몸 액션에서부터 시작해서 총기, 카체이싱 등을 퍼펙트하게 소화해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더 케이투>를 보며 지창욱의 액션이 발군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조작된 도시>를 촬영하며 그 능력이 만개했던 듯 싶다.



분명 <조작된 도시>의 '히든 카드'는 민천상 역을 맡은 오정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반전의 키를 쥐고 있기도 하고, 연기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주포'가 든든하지 않다면, 숨겨 놓은 카드의 쓰임새는 반감됐을 터. 그만큼 영화 전반에 걸쳐 지창욱의 역할은 컸다. 커다란 눈망울에 소년의 얼굴을 한 지창욱은 억울한 누명을 쓴 권유라는 캐릭터에 관객들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액션을 소화하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는 복수의 통쾌함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조작된 도시>에서 지창욱은 자신의 가치를 여실히 증명한다. 당대 최고의 액션 배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누구나 "다시는 액션을 하지 않겠다"는 지창욱을 말리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말려야만 한다. 지창욱에 대한 신뢰는 그가 다시 액션 영화에 출연한다면, 기꺼이 영화관을 찾아지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이렇게 타협을 해보면 어떨까. '다른 장르들도 해보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액션으로 돌아오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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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내레이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천상병 시인의 <나무>라는 시다. 사람들이 '썩은 나무'라고 했던 그 나무가 사실 무한한 생명력을 내재한 존재였고, 꿈 속에서 그 잠재성을 발견한 '나'는 다시 사람들을 모아 이렇게 외친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흘러나오는 '썩은 나무' 타령에 처음에는 '뭐? 무슨 말이야?'라는 의문이 들 법 한데,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첫 장면의 내레이션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다시 읊어지는 저 시를 마주한 관객들은 '맞아, 썩은 나무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천상병의 <나무>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꿰뚫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조작된 도시>가 천상병의 <나무>라는 시에 대한 '재해석'이라 여기지기도 한다. 그만큼 두 '작품'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단순히 '썩은 나무'의 재조명을 넘어 어떤 존재를 '썩은 나무'라고 '규정'짓는 '닫힌'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뒤집기 위해선 또 다시 '사람을 모아'야 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게임과 현실을 넘나든다. 마치 <나무> 속의 '나'가 ''꿈'을 꾸듯이. 권유(지창욱)는 게임의 세계에서는 팀원들을 이끌고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리더 '권대장'이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백수에다 'PC방 죽돌이'에 지나지 않는다. 3만 원이 없어서 정모에 참석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러니까 '썩은 나무'라 할 만 하다. 그의 팀원들은 어떠한가. 데몰리션(안재홍)은 특수효과 회사의 말단 스태프이고, 용도사(김민교)는 용산 전자상가 출신 이른바 '용팔이'다. 여백의 미(김기천)는 지방대 교수인데, 게임 속 그들의 멋진 캐릭터와 현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썩은 나무'인 셈이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팀원 은폐(김슬기)와 엄폐(심원철)는 성인 인터넷 방송 VJ와 감독으로 우리 사회의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할 수 있다. 또,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인 '털보형님' 여울(심은경)은 천재적인 해커 실력을 자랑하지만, '메시지'로 대화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대인기피증이 있어 현실에선 부적응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의리'를 발휘해 누명을 쓴 '권대장' 권유를 물신양면으로 돕는다. 살인범으로 몰려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권유를 돕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팀원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들은 웃음을 주는데, 이들이 힘을 모아 권유의 억울함을 해소시키는 과정은 묘한 쾌감을 준다. '썩은 나무',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루저'라고 규정된 어떤 존재들이 현실의 '질서'를 뒤집고, 기득권의 오만함에 한방 먹이는 그 유쾌한 반란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정보'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했던가. 어느덧 정보는 권력이 됐다. CCTV,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인 정보가 자동적으로 수집되고,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사회에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민천상(오정세)은 '21세기 빅브라더'이다. 자신의 서버에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은폐'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한다. 그의 기획에 따라 전문가 · 언론 등이 움직이고, 여론은 신명나는 춤을 춘다. 그 과정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소위 기득권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 '의뢰'를 하면, 민천상은 시나리오를 짜고 그럴듯한(!) 범죄자를 선택한다. 권유처럼 게임에 빠져 PC방을 전전하는 백수라면 '땡큐'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쾌히 수긍을 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성매매 여성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가 톱스타에 대한 집착으로 엽기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세상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민천상이 '인권 변호사'라는 탈을 쓰고 있다는 설정이다.



은폐된 진실, 조작된 증거, 여기에 가담한 언론.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린 권유와 그의 팀원들은 이 공고한 '세상'에 기꺼이 맞서 싸운다. 그 '전투'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은 조금씩 '조작된 도시'에 균열을 내고, 끝내 그 거짓된 세상을 박살내고야 만다. 특히 이들이 '진실과 거리가 먼' 방송국을 배경으로 마지막 활극을 벌이고, '권력의 언어를 고스란히 읽는' 앵커를 향해 돌진하고, 결국에는 성인 인터넷 방송의 은폐와 엄폐가 '진실을 담은' 뉴스를 전국에 생중계하는 장면은 눈과 귀를 닫은 이 시대의 언론에 경종을 울린다. 


누군가가 처음 그들을 향해 '썩은 나무'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덩달아 그들을 '썩은 나무'라고 믿었다. 하지만 <조작된 도시>는 그 시선과 생각들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를 알아챌 수 있는 '안목'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기득권이 만들고 주입시킨 딱딱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뿐일까. 아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외칠 준비가 됐는가.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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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사랑하는 아내 금옥(신은정)까지 잃었던 아모개(김상중)는 강상죄에 강상죄로 맞서며 조참봉의 부인(서이숙)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위기에서 벗어난 아모개는 익화리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고, 큰어르신으로 거듭났다. 길현이와 길동이를 위해서, 그들이 '계급'이라는 낡은 사슬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딸은 양반집 규수처럼 키웠다. 비록 '건달'로서의 삶이었지만, 부족함이 없었고 남부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모개는 알고 있었을까? 결국 자신이 추구한 것은 '가족의 안위'라는 좁은 범위의 '정의(正義)'였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첫걸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리가 뭔 잘못이 있겄소. 온통 노비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허는디. 나리라고 뭔 뾰족한 수가 있었겄어?"라며 자신의 주인을 베어버린 아모개의 생각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고 진보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익화리에서 새로운 사회를 열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이름'은 '건달'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다. 



길동은 자꾸만 아모개에게 '건달'을 그만두고 농사나 짓고 살아가자고 말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다. "형, 우리 엄니가 왜 죽은 줄 알아? 아버지가 죽인거야. 아버지 욕심이 울 엄니를 죽였어. 사람이 분수를 모르면 제 명을 못 채우고 죽어. 이러고 살면 다 죽어." 길동은 반상(班常)의 도리를 저버린 아버지, 공고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질서를 뒤엎어버린 아버지가 불안하기만 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다시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보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아모개가 "농사를 지으면서 먹고사는 것도 좋겠지. 보리도 심고 콩도 심고."라고 말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분수를 지키며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제 명을 채우며 살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아, 이럴수가!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도망친 계집종'을 찾아오라는 충원군(김정태)을 속인 것이 들통난 것이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며 오열하는 계집종을 차마 충원군에게 데려다 줄 수는 없었다. 아모개는 감옥에 갇혔고,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참봉부인까지 나타났다.


12년 전의 일은 족쇄처럼 그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통째로 삼켰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동료들은 계략에 빠져 뿔뿔히 흩어져 각개격파 당할 위기에 놓였고, 길현과 길동은 죽음의 문턱 앞에 서게 됐다. 아모개는 이제 알게 됐을까? 결국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패하고 낡아빠진 세상, 기득권들이 틀어쥐고 있는 썩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질서'를 뒤집지 않으면, 결국 전복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모개야, 내가 아직도 널 미워하는 줄 아느냐. 아니다. 내가 미워하는 건 따로 있어.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속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욕 보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노비가 주인을 죽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야. 헌데, 너는 주인을 속이고 욕 보이고 죽였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관절 나라에서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너 같은 놈들은 조선의 옴이요, 악창이다. 너 같은 놈들이 많아지면 장차 이 조선의 코가 베이고, 손가락이 문들어지고, 창자가 썩어질 것이야. 해서 너를 죽이고, 네 자식들을 죽여 나라를 지킬 것이다. 내가 이 나라 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이니라." 


형문을 받고 피범벅이 된 채 감옥에 갇힌 아모개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하는 참봉 부인을 보라. 그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는 시대의 논리를 대변할 뿐이다. 달리 '질서'라 불러도 좋다. 그는 자신이 사사롭지 않다고 말한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아모개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조선이라는 나라의 질서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중이라고 단언한다. 자신의 행동은 나라를 위한 '충'이라는 것이다. 확신에 차 있는 참봉 부인의 저 말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가. 


씁쓸하게도 참봉 부인과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국정 농단의 핵심이자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사익 추구한 적 없다"며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쳤다고 주장(정말 그는 그리 생각하는 듯 하다. 확신범이라 불러도 무방하다.)하고, '탄핵은 잘 기획된 음모'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를 따르는, 부끄러움 모르는 어떤 정당은 국민의 뜻을 거스른 채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문회에 나와서 자신은 죄가 없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 강변하는 저 무리들은 또 어떠한가. 


탄핵은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매국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감히 대통령에게!"를 연발하기도 한다. 국민을 '개, 돼지' 쯤 취급하는 누군가들에게 '탄핵 정국'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해프닝일 것이다. 권력은 여전히 강고하고, 기득권은 언제든지 반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탄핵'을 이뤄냈지만, 제대로 된 '정권 교체' 그리고 '정치 교체'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동생의 위험 앞에 길동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힘'을 되찾는다. '아기장수'라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각성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도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길동은 알게 됐을까. 아모개의 시대는 어느덧 저물었다. 신분제라는 세상의 질서에 반(反)했던 그들의 유쾌한 도전은 잠시 멈춰서게 됐다. 혁명 1세대의 첫걸음은 분명 위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아모개의 혁명이 '나'와 '내 가족'이 신분제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데 몰두했다면, 이젠 그 너머를 지향해야 한다.


이제 길동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그는 아모개의 뒤를 이어 새로운 혁명을 이끌어 낼 것이다. 과연 길동 만들어 가는 시대는 아모개의 것보다 진일보한 것일까. 역사가 발전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암울한 질곡을 뚫고 기어코 한걸음씩 더 나아간다고 가정한다면, 그 나선형 구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희망'이 아닐까? MBC <역적>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여, 기꺼이 역적이 되자.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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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하숙집 주인' 이미숙을 필두로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까지 KBS2 <하숙집 딸들>은 '여배우'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여기에 '굳이 예능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이수근과 예능 대세로 등극한 박수홍을 투입했다. '여성 예능'이라는 타이틀로 론칭하긴 했지만, 사실상 예능 초짜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긴 불안했던 모양이다. 첫 방송 시청률은 5.4%, 정희섭 PD는 "화요일 심야 시간대는 KBS가 워낙 고전하던 시간대임을 감안했을 때 만족스럽지만,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할 것"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딸 예쁘기로 소문난 하숙집에 매주 남자 게스트가 방문해 토크와 리얼리티, 버라이어티를 오가며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예능 프로그램"


남초 현상이 압도적인 예능 판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예능을 편성했다는 것 자체는 반갑고 또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기대했다.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어떤 '조합'들이 펼쳐질까, 어떤 '이야기'들이 나열될까. 첫 방송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긴 어렵겠지만, 일단 매우 실망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급해 보였다. 여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흡은 가빠졌고, 스텝은 꼬였다. 저들은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가?


다짜고짜 '하숙집'을 운영한다는데, 그 이유가 불명확하다. 여배우들의 '민낯'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맨얼굴이라는 게 단순히 '망가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너무 1차원적이다. 그리고 왜 남자 게스트를 초대해야 하는 걸까? 이수근과 박수홍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들의 투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이수근과 박수홍의 목소리가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사실상 이수근이 흐름을 '리드'하는 걸 보면 그들의 투입은 제작진의 '쉬운'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획 의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콘셉트가 또렷하지 않다보니 의미도 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첫 회는 산으로 가버렸다. 난데없이(1) 이다해의 고급스러운 집을 공개해 구석구석 소개한다. 한참을 걸어야 하는 길다란 복도와 운동장 같은 거실, 명품으로 즐비한 그의 방을 꼭 보여줬어야 했을까? 제작진은 "상견례는 식당에서 하려고 했는데 이다해 씨 제외하고 다들 모르는 사이라서 편한 분위기를 위해 집에서 촬영을 해보자 했"다고 설명했지만, '짜증'을 유발하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애초에 '차례차례' 등장하도록 '콜'을 줬으면서 난데없이(2) 몰래 카메라를 하는 구태의연함이라니. '무서운 선배' 이미숙은 자신의 이미지를 또 다시 반복하며 윤소이를 속였지만, 신선하지도 않았고 재기발랄함도 느껴지지 않는 식상한 장면이었다. 차라리 '상견례'라는 형식적인 만남을 없애는 건 어땠을까? 아니면 순번을 정해 차례차례 등장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좀더 자유로운 롤을 부여하고, 출연자들을 마음껏 놀게 했으면 어땠을까? 그러지 못하다보니 난데없이(3) 게임이 이어지고, 여배우들은 억지로 망가지고야 만다.




<하숙집 딸들>은 여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하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는 걸 강조한다. 한번이야 곱게 들어주겠지만, 그 언어가 반복되다보니 이렇게 들린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야. 근데, 당신들을 위해 기꺼이 망가져 주겠어. 웃지 않고 못 배기겠지?' 과연 그 '망가짐'을 누가 원했단 말인가? 게다가 벌칙으로 '빨간 내복'을 입는 그 저차원적인 망가짐을 말이다. 여배우들이 '망가지면' 시청자들은 즐거워할 것이라는 제작진의 속내가 참으로 얄팍하다.


"예능 초보이다 보니까 다들 게임할 때 당황스러워하더라"라며 "'왜 해야 되냐', '안하면 안 되냐'라고 질문하니까 게임하는 데 30분씩 걸린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명분이 없으면 안 하니까. 그런 거 설득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서 카메라 옆에서 부탁한다는 표정, 빨리하자는 표정 짓고 있는다" (정학섭 PD) <OSEN>, [Oh!쎈 톡] '하숙집딸들' PD "시청률? 만족하지만 더 노력해야죠"


지난 2009년 개봉했던 영화 <여배우들>은  개성이 또렷한 여배우들의 '만남'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굳이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그들은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빛났다. 그런데 <하숙집 딸들>은 '예능은 이런 것'이라는 기존의 공식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데 바쁘다. 이수근과 박수홍은 철저히 제작진의 입장을 대변해 여배우들을 망가뜨리는 데 앞장 선다. 여배우들은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해?"라고 반문하지만, 제작진은 '그게 예능이니까'라는 동어반복에 그친다. 



이는 최근 나영석이 구현한 예능의 새로운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박을 터뜨린 tvN <삼시세끼> 시리즈나 최근에 방송을 시작한 tvN <신혼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나 PD는 출연자들을 그냥 놓아둔다. '공간'을 마련해두고, 그 안에서 그저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관찰한다. 마치 그들의 배경이 되는 자연 환경이나 동물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선은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한데, 그래서 피사체가 되는 대상을 더욱 진솔하게 전달한다. tvN <꽃보다 누나>를 떠올려보라.


여배우의 집을 공개하지 않아도, 게임을 통해 망가짐을 연출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굳이 게스트를 출연시키지 않아도 괜찮았을 테고, 남자 예능인을 배치해 여배우들을 '조련'하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정말 제대로 된 '여성 예능'을 만들 요량이었다면, '여배우가 이렇게 망가지면 시청자들이 즐거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나 PD라면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사람'에 집중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저 사람 참 좋다'라고 느끼도록 하는 데 포인트를 뒀을 것이다.


이제야 <하숙집 딸들>이 빠진 늪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제목'에서부터 이 프로그램의 '한계'가 엿보이지 않는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예능에 출연했다지만, 정작 그들은 '딸'이라는 '역할'에 묶인 채 '망가짐'을 연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존재'가 아니라 '역할'이 그들을 압도하는 구조적 문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예능의 구태의연한 공식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하숙집 딸들>은 발전 없는 여성 예능의 표본처럼 기록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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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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