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비만 안 오면 된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날씨'에 대한 솔직한 바람은 그 정도다. 맑으면 나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령 구름이 잔뜩 껴 흐려도 큰 상관이 없달까. 제법 너그러운 편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걷는 데 지장이 없는 날씨면 무관하다. 그런데 파리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시테 섬의 '생트 샤펠 성당(Église Sainte Chapelle)'. 왜냐하면 그 곳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고, 그래서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엿보려면 '풍성한' 햇빛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의 샤크레쾨르 성당. 약간의 과장을 보태 지천에 성당이 깔려 있는 파리에서 성당하면 그 정도가 우선적으로 떠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성당을 이야기하라면 '생트 샤펠 성당'이라 대답할 것이다. 샤크레쾨르 성당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파리의 전경(全景)은 언어로 풀어내기 힘들 만큼 아름다웠고, 노트르담 대성당 내에서 울려퍼지던 찬송가로부터 받았던 위로 역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래도 '생트 샤펠 성당'의 이름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13세기, 그러니까 1248년 완공된 생트 샤펠 성당은 파리 법원과 붙어 있는데, 엄밀히는 법원이 생트 샤펠 성당을 품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뮤지엄 패스(Paris Museum Pass)를 구입했다면 따로 티켓을 끊을 필요 없이 곧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줄을 서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생트 샤펠 성당 바로 옆에는 '콩시에르쥬리'가 있기 때문에 '통합 티켓'을 끊을 수 있다. 묶음(?) 가겪은 14유로, 조금 더 저렴하다. 자, 이제 생트 샤펠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보자. 



성당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주로 평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었고, 2층은 왕과 그 일족들이 미사를 드리는 곳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종교라는 것이 결국 초월적 존재를 믿는 신앙 체계 혹은 문화 체계일 텐데, 입으로 '그'를 부르면서도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는 땅에 묶인 인간들의 모습이 한없이 나약하지 않은가. '신'이라는 존재 앞에 인간은 그저 다 똑같은 인간일진대, 신분과 계급을 나눠 '나는 저들과 다르다', '너희들은 우리와 다르다'며 끊임없이 선을 긋는 철없는 인간들의 모습이 신에게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같음' 다시 말해 '평등'을 더욱 열심히 노래해야 할 '종교'가 '계급'을 더욱 충실히 수렴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생트 샤펠 성당의 1층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고딕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다양한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 정도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 않았던가. 하이라이트는 역시 2층이다. 왕과 그 일족들이 미사를 드렸다는 그 곳,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 평민들은 결코 구경하지 못했던 2층의 빛. 계단을 오르는 발길이 괜시리 씁쓸해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감탄스러웠다.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13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1,134 장면으로 꾸며진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들. 1층의 어두운 분위기와 대조(對照)를 이루기 때문일까. 아름다움은 더욱 극적이었다. 아름다움의 속성은 본디 그런 것이었던가. 서글픔이 묻어 있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어버렸다.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찬란한 햇살이 속속들이 스며들었다면 어땠을까. 흐린 날씨가 야속해졌다. 고작, 이 정도의 빛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완전한 미(美)를 드러낸 생트 샤펠 성당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겠는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이대로 시테 섬을 떠나는 건 아쉬우니 콩시에르쥬리(Conciergerie)도 마저 둘러보기로 하자. 바로 옆이니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콩시에르쥬리는 원래는 궁전이었지만, 14세기 말 루브르와 뱅센트로 궁전이 옮겨지자 감옥으로 사용됐다. 이곳은 특히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갇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치의 대명사'가 돼 버린 그 이름 말이다. 그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곧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군에 붙잡혀 끝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어쩌면 그는 무능하고 방탕했던 프랑스 왕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를 모두 짊어져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 그를 변호할 생각은 딱히 없지만, 국정을 이끌었던 책임자 루이 16세보다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비아냥'의 강도가 센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 고딕 양식의 대형 홀을 지나 위층으로 가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갇혀 있던 독방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공사 중이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표를 끊을 때,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당황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은 남았다. 



생트 샤펠 성당과 콩시에르쥬리까지 둘러봤다면, 이제 '밖'을 좀 걸어보기로 하자. 시테 섬으로 연결된 수많은 다리들이 발길을 유혹한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를 꼽으라면,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배경이 됐던 '퐁네프(Pont Neuf)'를 떠올리겠지만, 그 외에도 예쁜 다리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인데, 근처에 프랑스 예술 학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에는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자물쇠들이 매달려 있는데, 이 때문에 사랑의 자물쇠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리에 자물쇠를 걸고, 열쇠를 센 강으로 버리는 사랑의 의식이 이뤄지는 다리. 참 낭만적이다. 빼곡한 자물쇠들에 '빛'이 닿으면 마치 '황금 다리'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아, 야속한 날씨여! 당연히 자물쇠를 팔겠거니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게 웬일? 자물쇠를 파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 딱 좋은 곳인데 말이다. 이미 다 팔아버린 걸까? 자세히 보면 자물쇠들이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 자신만의 자물쇠를 미리 준비해 온 것이다. 그래야 '사랑의 의식'이 좀더 의미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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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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