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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과 조승우가 의기투합한 <라이프>의 아쉬운 옥에 티

너의길을가라 2018. 8. 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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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의 시대가 열리면서 스타 작가의 시대도 함께 시작됐다. 전 세대를 아울렀던 김수현의 시대가 있었고, 대중성을 지닌 송지나와 작품성을 갖춘 노희경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문영남과 임성한으로 대표되는 막장 드라마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를 제패한 건 김은숙이었다. 흥행력을 갖춘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김은숙은 tvN <미스터 션샤인>으로 자신의 로맨스는 불패란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가 하면 SBS <싸인>, <유령>, <쓰리 데이즈>, tvN <시그널>를 집필한 김은희의 지분도 만만치 않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품위있는 그녀>, KBS2 <우리가 만난 기적>의 백미경도 각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을 준 작가가 있으니 바로 tvN <비밀의 숲>이라는 경이로운 작품을 쓴 이수연이다. 



이수연의 힘은 김은숙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김은숙이 '로맨스'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면, 이수연에겐 '사회 고발'이라는 폭발적인 무기를 품고 있다. 201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에 한획을 긋는 대작이었다. 오죽하면 한국 드라마 사(史)는 <비밀의 숲>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수연의 관점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꿰뚫고 있었고, 이수연의 시선은 검찰이라는 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본 듯 꼼꼼하고 세밀했다. 신인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극본이었다. 특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캐릭터였다. 절제미 가득한 조승우의 탁월한 연기는 시청자들을 열광시켰고, 그 결과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비밀의 숲>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 이수연 작가가 검찰에 꽂았던 칼을 뽑아들어 의료계를 겨냥했다. <라이프>는 '돈의 논리'가 스며든 '병원(의료계)' 내의 갈등을 그린다. 구승효(조승우)라는 항원과 예진우(이동욱)이라는 항체를 통해서 말이다. 이수연은 <비밀의 숲>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조승우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조승우는 "다시 뿌리를 향해 가고 있는 거 같다"며 본질과 시스템을 파고드는 이수연의 글을 극찬했다. 



<비밀의 숲>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라이프>에서도 조승우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섬세한 연기는 컷 하나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그가 연기하는 구승효는 자본논리의 대변자이자 강성노조 파괴 전문가로서 악역을 자처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그는 선악을 넘어선 입체적인 인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암센터 내에서 발생한 약물 투약 오류와 이를 은폐했던 병원의 행태를 두고 "진정으로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라고 일갈하는 조승우의 연기는 경탄스러웠다. 회장의 명령을 받고 송탄 부지를 구입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의 부친 김병수(김익태)를 찾아 설득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조승우는 단순히 돈만 좇는 냉혈한이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캐릭터 구승효를 완벽히 소화했다. 



<라이프>를 지탱하는 조연 배우들도 막강하다.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 역의 유재명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연기를 펼치며 구승효와 대립각을 세운다. 강당과 사장실에서 조승우와 맞붙는 장면은 <비밀의 숲>과는 또 다른 쾌감을 줬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병원장 이보훈 역의 천호진이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부병원장 문성근의 연기도 흥미진진한 요소다.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드라마의 묘미 중 하나다.


또, 강경아 역의 염혜란은 똑부러지는 일처리로 구승효 사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데, 문득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연기를 참 맛깔스럽게 하는 배우다. 구승효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는 '먹깨비',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선우창도 눈길이 간다. 응급의학 센터장 이동수 역의 김원해의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렇듯 조승우와 조연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지만, <라이프>의 캐스팅에는 약간의 의문점이 남는다. 무엇보다 조승우와 맞서 싸우는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 역을 맡은 이동욱의 무게감이 다소 아쉽다. 의료기관을 자본논리로부터 수호하려는 예진우라는 캐릭터가 좀더 설득력을 가져야 극의 균형이 잡힐 텐데, 현재로선 조승우에게 시소의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가 됐다. 


또, 예진우와 동기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노을 역에 원진아를 캐스팅한 건 의아하다. 원진아는 이동욱과 10살 차이가 나고, 예진우의 동생 예선우 역의 이규형보다도 훨씬 어리다. 이규형이 원진아를 '누나'라고 부르는 대목은 몰입이 깨진다. <비밀의 숲>,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자리잡은 이규형의 연기도 아직까지는 다소 어색하기만 하다.



물론 이런 건 아주 사소한 의문이고, 약간의 아쉬움일 뿐이다. 의료계 전반의 문제점을 세세히 짚은 문제의식과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캐릭터 설정, 이를 통해 이수연이 이끌어낼 '사회 고발'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역시 조승우가 있지 않은가. 이수연과 조승우가 의기투합하고, 저 훌륭한 배우들이 그득한 <라이프>에 사소한 옥의 티가 있다한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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