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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학 드라마라니! <라이프>, 조승우와 이수연 작가는 남달랐다.

너의길을가라 2018. 7. 2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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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죠. 수술 얘기하자고 다 모이신 거 아닌가요?"

"무슨 수술 말입니까?"

"대한민국 아픈 곳 살리는 수술 말입니다.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의사 선생님들께서 이제 우리 땅 소외된 곳을 몸소 가서 돕고 싶다, 해서 모였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요? 시작하시죠."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저기서 저런 대사를 날릴 줄이야..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한 구승효(조승우)는 '낙산의료원 파견 사업'에 반발하는 병원 구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데없이 '수술'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대한민국 아픈 곳 살리는 수술.' 구승효의 그 영악한 한마디에 상국대 의료진들은 벙찐 상태가 된다. 그들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패배의 기운이 느껴진다. 


간단한 선공만으로 승기를 잡은 구승효는 계속해서 밀어붙인다. 캠퍼스 내의 검진센터를 강남으로 옮겼을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당신들이 일반 회사원들과 다를 건 또 무엇이냐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다. 구승효는 의사들의 항변을 논리적으로 무너뜨린 후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보다 산모가 더 많이 죽는다는 기사, 그거 사실입니까?"라며 쐐기를 박는다. 



"그동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서울 사람들의 두 배가 넘는 엄마들이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는데, 여러분들 의사지 않습니까? 간호사잖아요? 여러분들이 가면 그 사람들 안 죽는 거 아닙니까?"


구승효 대 상국대학병원 의료진, 비록 1대 다수의 싸움이었지만, 이 대결은 처음부터 이미 승패가 갈렸다. 구승효가 이 싸움의 프레임을 '의사들의 윤리적 책임 또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본분'으로 설정한 순간부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의료진들의 반발은 단순히 '지방으로 가는 게 싫은 이기심' 정도로밖에 풀이되지 않는다. 구승효는 '지방의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의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논리적 우위를 선점했다.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은 구승효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권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해체시키고, 더 멀리 분산시킬 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구승효는 잠깐 당혹감을 느꼈지만, '보건복지부에 물어보라'며 대답을 회피한 후 "병원은 공공재다. 이 땅의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내가 지금 공공재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까?"라며 되받아친다.



구승효가 공공재의 개념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무기로 사용하자 의료진들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졌다. 이대로 싸움은 끝나는 것일까. 그 때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이동욱)이 나선다. "흑자가 나는 과는 그럼 파견 대신 돈으로 된다는 뜻입니까?" 드디어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나왔다. 예리한 공격이었다. 그렇다. '돈'이었다. 자본의 논리. 구승효가 애써 가리고 싶어했던 거무튀튀한 본질은 그것이었다.


화정그룹의 장학금 1기 수혜자로 시작해 최연소 CEO까지 오른 구승효는 화물회사를 경영하다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한다. 대기업 출신 전문경영인답게 그가 병원에 오자마자 한 일은 각 과의 경영실적 파악이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료센터. 그렇게 해서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세 개의 과가 구승효의 타깃이 된 것이다. 


구승효는 '지방병원 파견 근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 되면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도 챙길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적자를 줄이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그 방법이 왜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본이 '의료'에 개입하면서, 그것이 의료 '산업'이 된 우리네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 첫회 시청률 4.334%(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JTBC 역대 드라마 최고 기록를 갈아치운 <라이프>는 2회에서도 4.971%로 상승세를 보였다. -


예진우는 그와 같은 자본의 논리를 꿰뚫어 보고, 파견 사업의 숨겨진 속내를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각 과별 매출 평가액 표를 구해 병원 게시판에 올린다. 구승효의 '낙산의료원 파견 사업'이 인도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오로지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제 싸움의 국면은 달라졌다. 구승효의 프레임은 깨졌다. 


tvN <비밀의 숲>을 집필했던 이수연 작가의 작품답게 <라이프>는 1, 2회만에 시청자들을 꽉 사로잡았다.  드라마의 분위기, 그 밀도부터 남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병원을 바꾸려는 구승효와 병원을 지키려는 예진우의 대립을 그려나가고 있지만, <라이프>는 이를 통해 병원 내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시스템적인 문제를 다뤄나갈 전망이다. 법조계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줬던 <비밀의 숲>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히 선악 대결을 좇지 않는다. 초반 '재수없는 캐릭터'로 나오는 구승효가 수술실에서 쓰러져 잠든 주경문에게 수술복을 덮어주고 나온 장면은 <라이프>이 지향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선 인간 군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야말로 이수연 작가의 전매특허이니 말이다. 과연 <라이프>가 이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또 어떤 대답을 찾아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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