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예술의 언덕 


“벨기에는 그냥 거쳐가는 나라 아니에요?”

“하루면 충분하지 않아요? 이틀은 많지 않나?”


벨기에를 간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관된 리액션이었다. 7박 8일의 여행 일정 가운데 고작 이틀이라고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라리 그 이틀을 파리에서 더 보내는 게 낫지 않아?”였다. 질 수 없었다. 벨기에 때문이 아니라 내 여행을 수호하기 위해서. “벨기에도 볼 게 많은데, 왜 그래?” 도대체 뭐가 있냐는 반문, 나도 가봐서 아는데 별 게 없다는 확신 앞에 몇 가지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브뤼셀에 가면 오줌싸개 동상도 있고, 왕립미술관에는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이 전시돼 있어. 또, 마그리트 미술관도 있는데, 거기도 꼭 갈 거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헤는 또 어떻고!”


그럼에도 반응은 시들시들했다. 굳이 갈 거라면 하루면 충분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여행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히 섭섭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설명이든 설득이든, 사실 그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대답은 한마디면 충분했다. ‘가고 싶으니까. 그곳에 가보고 싶으니까.’ 천상병 시인의 방식대로 대답하자면 “그냥 벨기에,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이 가보고 싶었다” 정도일까. 


파리 북역 


일정상 벨기에는 3, 4일차(일, 월)였다. 파리에서 이틀을 보내고,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틀을 보내고,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둘째 날 몽생미셸에서 출발해 파리에 도착할 시각이 새벽 3시 무렵이라 브뤼셀로 떠나는 기차 시간은 조금 여유있게 예약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너무 여유를 부리게 되면 벨기에 왕립 미술관과 마그리트 미술관을 둘러볼 시간이 없으므로 12시25분 표를 끊었다. 그래도 강행군인 건 마찬가지였다. 


파리에서 브뤼셀까지는 탈리스(Thalys)라는 국제 고속철도로 이동하는데, 대략 1시간 22분 정도가 소요된다. 탈리스는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을 연결하고 있는데, 1996년 운행을 시작했다. 사실 일정에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암스트레담까지 가볼 욕심이 있었다. 현지에서 표를 끊어도 되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두면 좀더 저렴하다. 토, 일에는 ‘주말요금’이 적용돼 더 싸게 표를 구할 수 있다. 


브뤼셀로 가는 기차는 파리 북역(Paris-Nord, Gare du Nord)에서 타야 한다. 지베르니에 가기 위해선 생 라자르 역(Gare Saint Lazare)으로 가야 하듯 역마다 노선이 다르다. 또, 브뤼셀 중앙역(Bruxelles-Central)이 아니라 브뤼셀 미디 역(Brussel-Zuid, Bruxelles-Midi)까지만 운행이 된다. 브뤼셀 중앙역으로 가야 한다면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으로 갈아타야 한다. 어차피 연결이 잘 돼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안녕하세요? 아기가 정말 예뻐요. 이름이 뭐예요?” 

“고마워요, ‘스텔라’예요”


기차를 탔을 때 옆자리에 누가 탈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일까. 갓난아기를 안고 탄 젊은 아빠였다. 통로를 끼고 그 옆에는 딸과 함께 엄마가 있었다. 표 예약을 잘못했는지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기꺼이 자리를 바꿔 주고 창가 쪽에 앉았다. 주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갓난아기는 이름이 스텔라였다. 표를 확인하던 승무원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아기를 보며 부모와 대화를 나눴다. 


브뤼셀 미디 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인 ‘베드퍼드 호텔(Bedford Hotel)‘이동했다. 브뤼셀은 ‘그랑플라스(Grand-Place)’를 중심으로 볼거리가 모여 있기 때문에 그 근처에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그리 넓지 않아서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숙소에서 집을 풀고 그랑플라스를 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미술관까지 둘러보려면 갈 길이 바쁘다. 가는 길에 브뤼셀의 명물이라는 ‘오줌싸개 동상’을 보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멀찌감치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었다. 저기다 싶었다. 그런데 이 ‘감흥 없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줌싸개 동상을 실제로 보고 실망했다던 수많은 관광객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심지어 볼품 없었다. 


오줌싸개 동상은 브뤼셀의 상징이다.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Jerome Duquesnoy)의 작품으로 60cm 크기의 청동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청동상이 굉장한 옷 부자라는 것이다. 무려 700벌 가령의 의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무슨 까닭일까. 동상이 직접 옷을 샀을 리 없으니 누군가 선물을 한 걸까? 그렇다. 오줌싸개 동상을 약탈했덩 루이 15세가 동상을 돌려주며 프랑스 후작의 의상을 입혀 보낸 일화가 그 유래다. 



이후 국빈들이 벨기에를 방문할 때 오줌싸개 동상을 위한 의상을 선물로 가져왔고, 그렇게 옷이 쌓이고 쌓여 700벌이나 된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 앞에 자연스럽게 식당가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오줌싸개 동상 주변에는 와플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벨기에의 명물인 와플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기왕에 먹는 거 과일과 데코가 왕창 들어간 것으로 주문했는데, 유럽의 단맛, 그 과한 달콤함에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오줌싸개 동상과 와플에 실망(나중에 와플은 다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와플이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하고, 그랑플라스로 향했다. 가로 70m, 세로 110m의 광장 안으로 들어서자 빅토르 위고가 왜 이 곳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는 없었지만,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의 풍미가 멋스러웠다. 



광장 주변으로 15세기 초반이 건축된 시청과 왕의 집, 길드 하우스 등이 있고, 상점을 비롯해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광장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아쉽게도 왕립 미술관의 폐관 시간(토, 일은 18:00까지)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차피 그랑플라스는 숙소 옆이라 오고 싶을 때마다 올 수 있었다. 실제로 그랑플라스는 밤이 되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신했다.


아쉬움을 안고 그랑플라스를 빠져 나와 벨기에 왕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세 정거장 거리였지만, 대중교통 1일권을 끊어둔 터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미술관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에 가급적 체력을 아껴둘 필요가 있다. 왕립 미술관 입구에 여러 언어로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반갑게도 한글도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도 한글이 표기돼 있는데, 브뤼셀은 한국인들이 그리 많이 찾는 곳도 아닐 텐데 신기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입장했을 때가 16시쯤 됐던 것 같다. 마그리트 미술관(콤비 티켓을 끊었다)도 함께 둘러봐야 했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시간을 각각 1시간씩 배정했다. 좀 빠듯한 시간이긴 하지만, 어차피 봐야 할 작품은 정해져 있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마라의 죽음> 말이다. 방대한 수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에서 모든 작품에 동일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순 없다. 


<마라의 죽음>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림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오는듯 했다. 죽음을 맞이한 장 폴 마라(Jean-Paul Marat)의 얼굴은 초연해 보였다. 마치 순교자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급진적 혁명가였던 마라가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살해당하자, 다비드는 마라의 장례에 쓰일 그림을 그린다. 물론 마라의 죽음을 통해 민중을 선동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그가 <마라의 죽음>을 세 점이나 그린 건 그 때문이다. 



그림 앞에서 한동안 떠날 수 없었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확실히 다비드는 회화의 힘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영민한 화가였고, 그 힘을 매번 여실히 드러냈던 정치적인 화가였다. 왕립 미술관에는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브뢰헬, 브뤼헐)의 그림도 다수 전시돼 있었다. 브뤼겔은 농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재치있는 풍속화(<농부의 결혼식>, <교수대 위의 까치> 등)로 유명하다. <바벨탑>도 빼놓을 수 없다.



왕립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브뤼겔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이카루스의 추락>이다. 자유를 갈망했던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된 날개를 단 채 너무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뜨거운 햇볕에 날개가 녹아 바닷속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카루스는 추락했지만, 그 주변에 있는 농부나 낚시꾼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은 채 무심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역시 브뤼겔다운 재치있는 표현이다. 



무심코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문득 이곳에 '(인공) 조명'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로지 햇빛을 이용한 자연채광(自然採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분위기가 훨씬 더 근사했고, 왠지 모를 포근함마저 느껴졌다. 고대했던 왕립 미술관 관람이 끝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왕립 미술관이 주는 안락함과 따뜻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