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된 지 오래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언젠가부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그 치열함을 잃어갔고,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전성기 시절의 KBS2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7.9%를 찍을 만큼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두 자릿수 시청률은 꿈도 꿀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발주자로 제법 인기를 끌었던 tvN <코미디 빅 리그>(이하 <코빅>)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단지 치열함의 문제는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들이 재미가 없어진 이유 말이다. 오히려 '불편함'이 더 핵심적이다. 옛날에는 신체와 외모의 차이를 희화하하더라도 웃어 넘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비하가 포함돼 있더라도 쉽게 눈치채지 못했고, 설령 그런 부분이 있어도 '웃기면 되지'라는 대전제 앞에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못은 묵인됐고, 반론은 묵살됐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조금씩 진일보했다. 인권 의식이 성장했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장됐다. 또, 더 이상 외모와 신체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시각이 성숙돼 갔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반면, 개그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다. '어떻게든 웃기면 된다'는 저급한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 조롱과 비하, 무지함과 저속함을 웃음으로 착각한 채 매몰돼 있다. 발전이 없는 개그에 외면은 당연한 결과다.


<코미디 빅리그>의 경우에는 지난 2016년 4월 장동민이 출연했던 '충청도의 힘'이라는 코너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 조롱, 노인 비하, 아동 성추행 등의 내용을 담아 논란을 빚었었다. 결국 담당 PD가 사과하고, 그 코너는 폐지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빅>은 방송 중 여성 방청객의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이 반복돼 방송심의소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 처분을 받기로 했다. 


"비록 개그 소재라 하더라도 소수자 인권과 양성평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삼아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이 반복될 경우에는 법정제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방송소위의 의견이었다. 이쯤되면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은 약자를 조롱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게 아니면 시청자들을 웃길 수 없는 것인가?' 그 수준 낮음에 이젠 화가 난다.



여러 차례 혼이 났음에도 <코빅>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방송의 '이별여행사'라는 코너를 들여다보자. 박나래는 극중에서 이용진의 전 여자친구 캐릭터 역할을 이어나갔는데, 이번에는 tvN <나의 아저씨>의 여자 주인공 이지안(아이유)으로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이용진은 박나래를 허언증 환자로 취급했고, 박나래는 이용진에게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을 따라하자며 졸랐다. 


결국 박나래는 경찰에게 체포를 당했는데, 그 죄목이 '구타유발죄'였다. (아이유만큼) 예쁘지 않아서 폭력을 유발한다는 뉘앙스였다. 다시 말하면 못생긴 여자는 맞아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개그랍시고 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코빅>은 여전히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방송을 반복하고 있었다. 박나래가 배를 맞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뒤에 환하게 웃는 여성 관객을 배치한 건 상당히 저열한 편집이었다.


한편, '이별여행사'에서 연출한 장면은 <나의 아저씨>에서도 논란이 됐던 장면이라 아쉬움이 더 컸다.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광일(장기용)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고 묻고, 박동훈(이선균)에게 "내 뒤통수 한 대만 때려줄래요?"라고 말하는 이지안은 애정과 폭력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데이트 폭력을 연상케 해 많은 이들을 불쾌하게 했었다. 



<코빅>은 이 장면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단지 인기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화화한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박나래를 비롯한 여성 코미디언들의 처지다. 박나래만 하더라도 MBC <나 혼자 산다> 등 리얼버라이티 예능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쾌한 싱글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예쁘지 않은 여자'라는 캐릭터에 한정돼 저급한 개그의 틀 안에 갇힌다는 점이다. 


이건 박나래의 잘못이 아니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비하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제작진의 나태한 인식에 화살을 돌려야 한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과거에 비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방송 시간, 베테랑 부족 등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댈 수 있겠지만, 사회적 의식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낮은 개그의 질이 그 첫번째 아닐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